법원은 왜 ‘서울역 폭행범’을 구속하지 않았을까
  • 정우성 객원기자 (wooseongeric@naver.com)
  • 승인 2020.06.05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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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체포영장 신청 안 해…구속 적법하려면 체포도 적법해야
법원 “영장 없이 체포 가능한 예외 상황 아니었다”
불구속 상태서 수사받거나 구속 영장 재청구 전망
이씨가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역에서 모르는 여성을 폭행한 이아무개씨가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법원이 서울역에서 모르는 여성을 폭행한 30대 남성 이아무개씨(32)에게 발부된 구속영장에 대해 적법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씨는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지거나 검찰이 적법한 요건을 갖춰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김동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검찰이 청구한 이씨의 구속영장을 4일 오후 8시 40분쯤 기각하기로 결정했다. 김 부장판사는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신원과 주거지 및 휴대전화 번호 등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고, 피의자가 주거지에서 잠을 자고 있어 증거를 인멸할 상황도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긴급체포가 위법한 이상 그에 기초한 이 사건 구속영장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한 사람의 집은 그의 성채라고 할 것인데, 비록 범죄 혐의자라 할지라도 헌법과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주거의 평온을 보호받음에 있어 예외를 둘 수 없다"고도 했다.

법원은 국민적 관심을 고려해 검찰이 신청한 이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이유를 특별히 자세하게 설명했다. 경찰은 주민 탐문을 거쳐 이씨 성명, 주거지, 휴대전화 번호를 파악하고 있었다. 이씨 집을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리며 전화를 걸었다. 잠든 이씨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경찰은 강제로 출입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다음 자고 있던 피의자를 긴급체포했다.

경찰이 용의자를 체포하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미리 검사에게 체포영장을 신청해야 한다. 검사가 법원에 체포영장을 청구해 발부받으면 그 때 영장을 제시하고 체포하는 것이 원칙이다. 국가가 수사기관을 동원해 부당하게 공권력을 이용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을 막으려는 조치다.

다만 현행범이거나 법에서 정한 긴급체포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영장없이 체포한 다음에 구속영장을 신청할 수 있다. 수사기관은 현행범이 아닌 이씨의 체포가 긴급체포 요건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는 사형, 무기,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른 용의자가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는 상황을 말한다. 특히 상해죄가 장기 7년 이하 징역에 해당하는 만큼 긴급체포요건 성립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구속영장이 발부되지 않은 피의자는 구속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사기관을 오가며 조사를 받는다. 검찰이 재판에 넘길지 여부를 결정하고 재판 결과에 따라 중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수사기관은 이씨는 단순 폭행죄가 아닌 상해죄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형법은 상해를 저지르면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수사기관이 다시 적법한 요건을 갖춘 다음 법원에 구속영장을 신청할 수도 있다. 이씨에게 체포 영장이 발부되면 체포한 다음 구속 영장을 신청하는 식이다. 법원이 그 경우에는 구속영장이 적법하다고 보면 이씨는 수사 과정에서 구속돼 재판을 받을 수도 있다. 현행법은 구속 영장이 기각된 피의자에 대해 재차 구속영장을 신청할 수 있는 횟수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이씨는 지난달 26일 공항철도 서울역에서 부딪힌 30대 여성 A씨의 얼굴 부위 등을 폭행하고 자리를 피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신과 치료 경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씨는 과거에도 서울역 등지에서 폭행 사건이나 소란을 여러차례 일으켰다는 제보가 나왔다. A씨를 폭행한 이유도 뚜렷하지 않고 체포 이후에서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한 상황이다. 

A씨가 피해 상태와 자신의 억울함을 SNS에 게시하고 이것이 유포되면서 국민적 관심도가 높아졌다. 경찰은 CCTV를 추적해 지난 2일 서울 동작구 자택에서 이씨를 체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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