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재조사는 '부실투성이'
  • 나권일 기자 (nafree@sisapress.com)
  • 승인 2003.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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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몰카’는 정말 있는 것일까. 청와대 국정상황실은 왜 용역업체 사장을 비밀리에 조사했을까. ‘양길승 청주 향응’과 관련해 새롭게 드러난 의혹들을 집중 추적했다.
‘양길승 청주 향응’ 파문이 청와대의 부실 조사 논란으로 확대되고 있다. 김대중 정부의 도덕성 시비를 낳았던 옷 로비 사건의 재판(再版)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시사저널>은 청주 현지 취재를 통해 양길승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향응 파문과 관련해 알려지지 않은 몇 가지 사실을 찾아냈다. 취재 결과 8월5일 발표한 민정수석실의 향응 사건 재조사가 전반적으로 부실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청와대는 사건을 총체적으로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번 사태를 서둘러 봉합하는 데 급급했다. 재조사 내용에 대해 “99% 사실이다”라고 말했던 문재인 민정수석의 호언장담이 무색할 지경이다. 은폐·축소와 거짓말 시리즈 시비를 낳고 있는 이번 사건은 노무현 정부의 도덕성이라는 뇌관을 건드리고 있다.

<시사저널>은 ‘양길승 몰래 카메라’(몰카)가 공개된 직후, 청와대 국정상황실이 청와대 민정수석실 감찰팀과 별도로 양길승 몰카와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인물을 비밀리에 추적했다는 민주당 충북도지부 간부의 증언을 확보했다. 또 청와대가 청주 현지 조사 때 몰카와 관련된 인물을 접촉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도 청취했다.

민주당 충북도지부 간부 박 아무개씨(51)는 8월7일 청주에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양길승 몰카가 공개된 직후인 8월1일 밤, 평소 알고 지내던 민주당 주변 386 인사 ㅅ씨(38)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광재 국정상황실장이 청주 지역 용역업체인 ㅎ뱅크 김 아무개 사장이 누구인지 궁금해 하는데 한번 알아봐 달라는 내용이었다.” (주)ㅎ뱅크 사장 김 아무개씨(47)는 현재 청주지검 몰래카메라 특별전담팀이 수사하고 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이다. 이 간부가 <시사저널>에 제보한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양길승 몰카가 공개된 뒤 국정상황실이 양길승 전 실장의 과거 행적을 탐문하다가 지난 7월 말 광화문 ㅋ호텔 커피숍에서 양실장이 이번 사건과 관련된 특정 인사를 접촉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 대상자가 충북 번호판을 단 현대 에쿠우스 차량 소유자 ㅎ뱅크 사장 김 아무개씨라는 정황도 파악했다는 것. 그래서 국정상황실이 청주 사정에 밝은 ㅅ씨와 자신을 통해 김씨의 인적사항과 행적을 더 자세히 알아보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청와대는 나흘 만에 김씨에 대한 추적을 중단했다. 박씨에 따르면, 8월4일께 ㅅ씨가 박씨에게 전화를 걸어 “양길승 실장과 김사장이 서로 모른다고 완강히 부인한다고 한다. 김씨 문제는 일단락될 것 같으니 신경쓰지 말고, 비밀을 유지해 달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김씨 관련설을 조사한 뒤 사건을 덮었다는 의심을 살 수도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박씨의 이런 주장에 대해 386 인사 ㅅ씨는 “박씨로부터 용역업체 김사장 얘기를 전해듣기는 했지만 내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 적은 없다”라고 부인했다. ㅅ씨는 또 “이광재 실장과는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시절부터 알고 지내지만 청와대에 들어간 뒤에는 한번도 만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민정수석과 이광재 국정상황실장은 ‘회의중’이라며 기자의 취재에 협조하지 않았다. 청와대로부터 몰카 제작자로 의심받고 있는 ㅎ뱅크 사장 김씨도 지난 8월9일 기자와 만나 “7월 24∼25일에 서울에 머물렀고, 25일 오전에 ㅋ호텔 커피숍에 있었지만 단연코 양실장이나 다른 청와대 인사를 만나지 않았다”라고 부인했다. 김씨는 또 몰카는커녕 수동 카메라조차 조작할 줄 모른다고 몰카 관련 의혹을 강하게 부인한 뒤 “몰카 사건은 나이트 클럽 사장의 자작극 아니냐”라며 의심의 눈길을 나이트클럽 사장 쪽으로 돌렸다(42쪽 상자 기사 참조).

하지만 민주당 충북도지부 박씨의 이같은 증언은 새로운 의혹을 낳기에 충분하다. 민정수석실이 감찰반을 운영해 청주 현지에서 조사하고 있었는데도 왜 국정상황실이 직접 비선을 가동해 내사했었는지, 그리고 양길승 실장이 지난 7월25일 오전 ㅋ호텔에서 몰카 관련자를 실제 만났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키스나이트클럽 소유주 이원호씨(50)는 최근 검찰에서 “몰카 사건이 터지기 전에 몰카를 공개하겠다고 한 사람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때문에 양실장에게 몰카 공개를 빌미로 누군가 거래를 시도했는지 여부도 밝혀져야 한다.

문재인 민정수석은 지난 8월5일 재조사 발표 때 양길승 전 실장이 7월25일 ㅋ호텔에서 누군가를 접촉했다는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민주당 충북도지부 간부 박씨는 “만약 몰카 관련자와 청와대가 부적절하게 접촉해 사건 확대를 막았다면 옷 로비 사건보다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지난 8월5일 청주문화방송 보도국에 20대 목소리로 추정되는 한 남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양실장의 청주 행적과 관련한 제2의 몰카 비디오가 있다. 3천만원을 내면 그 비디오를 제보하겠다”라며 돈을 요구했다. 전화를 받았다는 청주문화방송 보도국 송재경 부장은 “새로운 인물이 찍힌 2탄도 있다. 몰카는 고위층을 겨냥한 것인데, 검찰과 언론이 나이트클럽 주변 인물이 찍은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는 말도 했다”라고 전했다. 청주문화방송은 제보자의 주장에 신빙성이 낮다고 본 데다 방송사가 돈 거래를 하는 것은 윤리에 어긋난다고 판단해 거절했다. 하지만 뒤이어 다른 한 40대 남자도 중앙 언론사인 ㄷ일보에 몰카를 팔겠다고 전화로 제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청주 현지에서는 ‘제2의 양길승 몰카’가 있다는 말이 끊임없이 나돌고 있다. 7월31일 밤 SBS 8시 뉴스 방송 화면에는 키스나이트클럽 맞은편에서 찍은 장면만 나왔고, 룸 안의 술자리 장면은 방송되지 않았다. 민주당 충북도지부 관계자는 “며칠 전부터 예약되고 ‘세팅’된 술자리이기 때문에 룸 내부 술자리를 찍은 풀버전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파다하다”라고 말했다. 몰카를 수사하고 있는 청주지검 특별전담팀은 키스나이트클럽 소유주 이원호씨와 원한 또는 경쟁 관계였던 한 아무개·이 아무개 씨와 용역업체 관계자를 용의자로 압축해 수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의혹도 제기되었다. 한나라당 대변인실에는 ‘양실장이 3월과 6월 사이에 대통령 측근과 청와대 고위 인사와 함께 광주·대구·부산을 방문해 술자리를 가졌다’는 제보가 들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 내용이 사실이라면 제3자가 양실장이 청주를 방문한 6월28∼29일이나 4월17일에 양실장과 동행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양실장의 청주 방문에 제3자가 함께 했을 것이라고 의심하는 근거는 또 있다. 청주에서 국화향 베개를 만든 신 아무개씨(48·청원군 호정면 낭성리)는 “베개값 18만원은 오원배씨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계산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신씨는 돈을 낸 사람이 누구인지는 입을 다물고 있다. 베개 값을 누가 지불했는지는 청주 향응 당시 제3자 참석설의 진위를 가릴 단서다. 신씨는 현재 국화향 베개가 품절될 정도로 주문이 폭주하고 있는데도 연락이 두절된 상태이다. 신씨의 부인은 8월11일 “며칠째 가족과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해 신씨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매우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내비쳤다.
키스나이트클럽 실제 소유주 이원호씨가 2월25일 국회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뿐만 아니라 4월18일 대통령이 참석한 충북 청원의 청남대 개방 행사에도 참석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원호씨와 동명이인인 한나라당 충북도지부 사무처장 이원호씨는 “4월18일 청남대 행사장에서 이씨를 보고 인사를 나누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충북도지부 실무자도 “이원호 사장이 행사장에 참석한 것은 사실이다”라고 확인했다.

민주당 충북도지부의 한 인사는 “4월17일 김원기 고문과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 서갑원 대통령 의전비서관, 양길승 제1부속실장, 송경희 대변인, 문학진 정무1비서관 등이 청남대에 미리 내려와 있었다. 당시 문학진 비서관과 가까운 김 아무개 전 국민회의 청원군 지구당위원장 등 몇몇 인사가 비공식으로 청남대 안으로 들어갔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인사는 당시 오원배 전 민주당 충북도지부 부지부장이 청남대에 들어갔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양길승 전 실장은 6월28일뿐만 아니라 4월 17일 밤에도 이원호·오원배 씨 등과 키스나이트클럽에서 술을 마셨다. 이원호씨는 양실장과 술을 마신 다음날 청남대 공식 행사에 참석한 셈이다. 민주당의 한 인사는 “이원호씨가 소유한 나이트클럽 룸에서 양실장과 오원배씨만 술잔을 나눴는지는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만약 4월17일 술자리 참석자가 알려진 인물보다 더 늘어난다면 양길승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원호씨가 지난 대선 때 노대통령과 만난 사실이 있다고 주장하자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 시절인 10월29일과 12월11일, 12일 두 차례 청주에 내려가 12월 11일 밤에 이원호씨 소유 리호호텔에서 숙박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노후보는 대선 직전인 12월8일에도 민주당 충북도지부 후원회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청주를 방문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민주당 충북도지부 직원은 “12월8일 저녁 6시에 청주시 석교동 일산웨딩홀 행사장에서 도지부 후원회가 있었는데, 노무현 대통령 후보와 한화갑 민주당 대표, 정대철 선대위원장이 참석했다”라고 확인했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도 “노후보와 정동영 의원 등이 후원회에 참석한 뒤 청주 북문로 성인길에서 대선 유세를 하고 천안으로 이동했다”라고 말했다.
충청지역 CATV 방송인 충북방송은 8월8일 “사정 당국이 키스나이트 자금 거액이 민주당으로 흘러든 정황을 포착했다”라고 보도했다. 때문에 이원호씨가 오원배씨 등을 통해 충북 지역 노무현 후보 선거운동 진영에 돈을 지원했다는 소문이 사실로 확인되어 가는 양상이다. 오원배 전 부지부장은 “이원호씨가 대선 후보 경선 때 노고가 많았다”라며 양실장에게 이씨를 소개했었다.

국화향 베개도 청와대의 거짓말 시비를 낳고 있다. 청주 현지에서는 양실장이 대통령에게 전달할 2개를 실제 전달하지 않았겠느냐고 보는 시각도 있다. 베개 선물 문제가 불거지자 누군가 새로 주문해 일반 배갯잇으로 교체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국화향 베개는 배갯속 내용물을 교체하기도 쉽다. 리필용 베개 가격은 3만5천원으로, 내용물을 넣거나 빼내기 쉽도록 지퍼가 달려 있다. 이 점도 양실장에 대한 금품 전달 의혹이 가시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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