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검찰 독립’ 믿지 않는다
  • 고제규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3.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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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여론조사/10명 중 7명 “검찰·청와대 유착되어 있다”
집권당 대표에게 검찰이 칼을 들이대도, 지난 정권 2인자를 사법 처리 해도 ‘검찰 독립’에 대한 여론은 싸늘했다.

우리 국민 10명 가운데 7명(68.6%)은 검찰과 청와대가 유착되어 있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8월15일 <시사저널>과 미디어리서치가 전국 20세 이상 성인 남녀 1천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다. 조사에 따르면, 현재 국민은 검찰 수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검찰이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는 견해는 25.4%에 그쳤다.
검찰 독립은 노무현 정부가 최고 덕목으로 삼아온 국정 좌표이자 성과이다. 청와대와 검찰을 잇는 핫라인(직통 전화)과 팩스를 없앴고, ‘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를 통해 국민에게 검찰 독립 선언을 했다. 검찰도 청와대 눈치를 보지 않는다고 누차 강조했다. 청와대에 구명을 요청했다는 정대철 대표를 두고, 검사들은 시대의 흐름을 모르는 낡은 정치인이라는 뒷말을 했었다.

그러나 이번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검찰 독립에 대한 국민의 체감지수는 지극히 낮다. 특히 노무현 정권 지지층인 젊은층은 청와대와 검찰의 유착에 강한 의혹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생(78.4%) 20대(76.7%) 30대(77.5%)는 청와대가 검찰을 지시하는 관행이 남아 있다고 보고 있다.
젊은 세대는 송광수 검찰총장 체제에도 부정적이었다. 대학생(48.3%)과 30대(46.6%)에서 송광수 체제에 부정적인 평가가 높아, 전체적으로 ‘검찰 본연의 사명을 잘못 수행하고 있다’(42.4%)가 ‘잘 수행하고 있다(38.6%)’보다 높게 나타났다. 검찰과 청와대가 유착 관계인 것으로 본 젊은층이 송광수 검찰 체제도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미디어리서치 김지연 부장은 “젊은층은 개혁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 검찰 독립에도 기대가 높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판단해 부정적인 평가를 한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이는 노무현 정부 지지도와도 관련된다. 지난 2월27일 <문화일보>가 취임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노대통령은 92.2%라는 높은 지지를 받고 출발했다. 하지만 취임 6개월 만에 40% 선까지 지지도가 떨어졌다. 정권 말기도 아닌 초기에 지지도가 곤두박질한 것은 이례적이다. 지지층마저 전국민적인 노무현 비판 대열에 동참한 것도 그 원인이다.

이번 여론조사에서도 지지층 이탈 현상이 두드러진다. 인터넷 상에서 ‘노무현 광신도’라고 조롱당하는 ‘노빠’들이 포진한 20∼30대까지 노정권이 자랑하는 검찰 독립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지역 별로는 민주당 텃밭인 호남에서 검찰 독립을 바라보는 시선이 싸늘했다.
검찰과 청와대의 유착에 대해 광주는 75%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는 대구(65.4%) 부산(75%) 경남(73.4%) 경북(79.3%) 등과 비슷한 결과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송광수 검찰 체제에 대해 광주 민심은 유보적이었다. 검찰이 잘하고 있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광주 지역 무응답률(46.4%)이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정몽헌 회장에 대한 검찰의 강압 수사 논란에 대해서도 국민들은 검찰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어주지 않는 분위기다. 10명 가운데 6명(59.9%)은 수사 과정을 조사해야 한다고 답했다. 근거가 부족한 정치 공세이므로 수사 과정을 조사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35.9%)보다 많았다.

지난 8월11일 함승희 의원은 국회 법사위에서 검찰이 정회장에게 강압 수사를 했다고 폭로했다. 그러자 송광수 검찰총장이 직접 나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며 강압 수사 의혹을 진화했다.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이번 여론조사에서는 거의 모든 계층에서 과반수가 넘게 함의원 주장이 믿을 만하다고 대답했다. 국회 차원에서라도 진상 조사가 필요한 이유다. 한때 정회장을 직접 조사한 대검 중수부는 함승희 의원에 대해 법적 대응을 강구했었다. 하지만 곁가지 소모전에 매달린다는 이유로 철회했다. 내심 검찰이 요즘 너무 튄다는 국민들의 비판도 염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광수 총장은 기자들과 만나 ‘검찰 공화국’ ‘검찰 독재’라는 표현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검찰이 정상적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이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는 ‘검찰 공화국’이라는 일각의 주장을 놓고 국민들의 의견은 갈렸다. 검찰 공화국에 공감한다(50.7%)는 견해가 공감하지 않는다(45.55%)보다 약간 우세했다. 특히 호남권에서 검찰 공화국에 공감한다는 견해가 상대적으로 더 높았다(64.6%). 이런 결과는 여론조사 당일이 동교동계 맏형 권노갑씨가 구속된 날이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법조 개혁과 관련해 노무현 정권의 2탄은 사법부 개혁이다. 대법관 인선을 놓고 강금실 법무부장관이 대법관 제청위원회에서 탈퇴한 것은 그 신호탄이다. 강장관의 행보는 노심(盧心)으로 읽힌다. 국민들은 강장관의 행보에 잘못했다(37.9%)보다 잘했다(42.4%)며 높은 점수를 주었다. 그러나 청와대가 대법원장 제청을 거부하는 것에는 부정적이었다. 대법원장이 추천한 대법관이 비록 개혁적인 인물이 아니더라도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35.4%)하기보다 대법원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53.4%)고 보았다. 아직까지 국민들은 삼권 분립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반증으로 풀이된다.

이번 여론조사는 송광수 검찰 체제에 대해서나 검찰과 청와대의 유착에 대해 특히 젊은층이나 화이트칼라층에서 비판적이라는 점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여론이 냉랭하더라도 검찰 개혁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는 것이 전문가들 지적이다. 손호철 교수(서강대 정치학과)는 노대통령 지지도가 낮은 상황에서 어느 한 부분이 높게 나타날 수 없다고 말했다. ‘바보 노무현’이 청와대로 들어가 ‘영악하고 세련된 노무현’이 되면서 자기 색깔을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손교수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보다, 집토끼(지지층)라도 잘 키우기를 주문했다.

노무현 정부는 이른바 시스템론을 강조한다. 국정원이나 검찰 등 과거 권력 기관과 정치 유착을 끊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포부다. 이 과정에서 다소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비정상적인 시스템을 정상화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더디고 엇갈린 것으로 보인다. 검찰 개혁과 관련해 부정적인 평가가 수치상 약간 높지만 내용으로는 검찰 개혁을 후퇴시키기보다 개혁 강화를 바라고 있다.

지난 50년 동안 검찰에 덧씌워진 권력의 시녀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지난 5개월 동안 검찰 개혁으로 한순간에 말끔히 지워지지 않은 셈이다. 검찰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냉소적인 시선을 바꿀 주체는 여전히 검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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