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년 올해의 인물' 검찰의 시대 연 ‘전사’ 안대희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3.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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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올해 검찰의 위상은 크게 달라졌다. 그 중심에는, 사건을 만지면 만질수록 커진다는 뜻에서 ‘비뇨기과 의사’라는 별칭을 얻은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이 있다.
‘원칙의 힘’. <시사저널> 기자들은 2003년 올해의 인물로 대검 안대희 중수부장을 선정했다. 불법 대선 자금을 파헤치고 현직 대통령 측근들을 구속시키는 안대희 중수부장은 달라진 검찰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한때 비아냥의 대상이었던 검찰은 이제 ‘독립’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필요가 없을 만큼 국민적 신뢰를 받고 있다. 강금실 법무부장관이 올해의 인물 2위로 뽑힌 데 이어, 송광수 검찰총장까지 거론되었으니, 2003년은 한마디로 ‘거듭난 검찰의 해’였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제 스포츠 등 분야별 올해의 인물과 최악의 인물도 함께 선정했다.


<시사저널>이 1989년 창간된 이후 현직 검사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1993년 슬롯 머신 사건을 파헤친 홍준표 검사(현 한나라당 국회의원)가 첫 번째 주인공이다. 검찰 수뇌부와 충돌하며 슬롯 머신 수사를 밀어붙였던 홍검사는 좌천성 인사를 당하며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그에 비하면 안대희 중수부장(48)은 운이 좋다. 그 자신이 검찰 수뇌부이고, 총장부터 평검사까지 그와 일심동체다. 상층부와 갈등할 까닭이 없다. 검사장인 그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것 자체가 대한민국 검찰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준다.

지난 한 해 검찰은 옐로칩에서 시작했다. 참여정부 초기 검찰의 인기는 하한가였다. 인터넷에는 검사들을 조롱하는 ‘검사스럽다’는 말이 유행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검사와 국민 앞에서 검찰 독립을 선언했고, 검찰 인사 파동이 평정되면서 그는 대검 중수부장에 발탁되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 한직을 맴돌았던 안대희 중수부장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이다. 그는 마지막 공직이라는 각오로 중수부를 지휘했다. 거침 없는 행보가 시작되었다. 나라종금 재수사를 진두 지휘한 것이다. 안희정·염동연 등 대통령 측근 인사들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갔다. 청와대가 당황할 정도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국민들은 반신반의했다.

대검 안대희 중수부장은 앞만 보고 걸었다. 현대 비자금 사건을 파헤치며 대검 중수부는 권노갑·박지원 씨 등 동교동계를 초토화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형 수사가 계속되었다. 위기가 없을 리 만무했다.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대검에서 조사를 받은 후 투신 자살했다. 민주당 함승희 의원은 전화번호부로 정몽헌 회장의 머리를 때렸다며, 검찰의 과잉 수사 의혹을 제기했다. 수사 검사들이 함의원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려고 했지만 원칙주의자인 안대희 중수부장은 정면 돌파했다.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수사 결과로 말하겠다’며 정치권의 반응을 일축했다.

 
“마지막 공직이라는 각오로 일한다”

옐로칩으로 출발한 검찰은 여름을 지나면서 블루칩으로 반등했다. 그 중심에 바로 안대희 중수부장이 있었다. 강금실 법무부장관과 송광수 검찰총장도 검찰 상종가의 일등공신이다. 송총장은 수사에 관한 한 안중수부장을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있다. 불법 대선 자금 수사진 구성도 그에게 전권을 맡겼을 정도다. 호흡도 척척 맞는다. 최병렬 대표가 송총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계좌 추적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하자, 송총장은 “외풍을 막으라고 총장이 있다”라고 말했다. 안대희 중수부장은 “총장이 막아주신다면 우리는 원칙대로 한다”라고 화답했다.
강금실 장관도 긴장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안대희 중수부장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때 강장관과 검찰은 인사권을 두고 갈등설이 팽배했지만, 적전 분열은 없었다. 정치권에서 검찰을 흔들 때마다 강장관이 두 팔을 걷어붙였다. 정몽헌 회장에 대한 과잉 수사 의혹을 제기했을 때도 강장관은 “증거를 제시하라”며 수사팀인 대검 중수부를 옹호했다. 정치권에서 특검이 제기되었을 때도 강장관은 검찰을 육탄 방어했다.

여름 휴가까지 반납하며 앞만 보고 내달린 안대희 중수부장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SK 비자금 수사가 실마리였다. 최도술씨 비리 수사는 대통령 재신임 파문까지 몰고왔다. 검찰 안팎에서는 검찰과 청와대가 통했다며 ‘노심검심’이라는 표현까지 만들어냈지만, 안대희 중수부장은 ‘드러나면 덮지 않는다’는 원칙을 내세우며 돌파했다. 그는 기자간담회 때마다 이 말을 강조했다. 일종의 자기 암시인 셈이다.

평소 말을 아끼던 안중수부장이 마음을 드러내 입을 연 적이 있다. 지난 10월 시민의 처지라는 전제를 달고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시민의 처에서 한마디 하자. 정치 자금을 받아 부정 축재를 일삼는 정치인이 있다. 수사를 하다 보면 분노를 느낀다.” 정치권으로부터 질타를 받았지만, 국민들로부터는 환호를 받았다. 이 발언 이후 안중수부장의 인기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안짱 팬클럽까지 생기며 그는 일약 ‘국민의 중수부장’으로 발돋움했다.

불법 대선 자금 수사가 본격화하자, 그는 출근길마다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정면으로 카메라에 잡힌 적이 거의 없다. 세심하면서도 소심한 성격 탓이다. 중수부장이면서도 주임검사처럼 직접 수사 상황을 챙긴다. 검사는 공소장으로 말한다면서, 그는 인터뷰에 응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지난 10월 <시사저널>은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안대희 중수부장은 꼭 두 달 만에 약속을 지켰다. 12월4일 대검 703호 중수부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안대희 중수부장은 수사 내용과 무관한 질문 5개만 받겠다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다. 소감은?

검찰을 인정해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고맙게 여긴다. 수사하는 처지에서 기쁘기보다 오히려 부담스럽다.

별명이 ‘미스터 빈’이라고 하던데?
외모가 코믹 배우 미스턴 빈(로완 앳킨스)과 닮아서 가족들이 그렇게 부른다. 요즘은 살이 붙어서 닮지 않았다고 한다.

비뇨기과 의사라는 별명은?
(웃음) 내가 사건을 맡아 만지면 만질수록 커진다는 의미인데, 심재륜 고검장이 붙여주었다. 칭찬으로 여긴다.

 
요즘 네티즌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는 <대선 자객>을 보았나?

아들이 권유해서 보았다. 그런데 수사 검사와 수사 당하는 사람을 적의 개념으로 묘사해 부담스러웠다. 적을 설정하고 하는 수사가 아니다. 범죄 피의자를 적으로 보지 않는다. 수사 대상자는 모두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특히 화이트칼라 범죄는 구조적 관행에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흔한 말로 죄가 밉지 사람이 미운 것은 아니다(<대선 자객>을 만든 신규용씨(33)는 안대희 중수부장을 만나면 기자에게 ‘안짱 팬‘이라고 전해 달라고 했다. 기자가 신씨의 메시지를 전하자 안중수부장도 검찰 수사를 신뢰하고 힘을 실어준 신씨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 달라고 했다.).

스무 살에 사법 고시에 합격했다.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직업 전선에 나선 것 같아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한 때가 많았다. 연륜이 부족하다 보니 세상을 작게 보고 수사한 것은 아닌지 반성도 많이 했다. 그래도 때가 덜 묻은 상태에서 수사에 임했고, 후배 검사들이나 기자들과 나이 차가 적다 보니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는 장점도 있었다.

특수통 검사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수사는?
저질 연탄, 시내 버스 비리, 학원 비리 사건 등 서민의 편, 국민의 편에서 세상을 보고 구조적 모순을 해결해 보고자 달려 들었던 수사다. 검사로서 나름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지금 돌아보아도 사심 없이 수사했다.

저질 연탄 사건이 더 기억에 남지 않나? 이 수사로 선배들이 인사 이동을 했는데?
현직에 있는 이상 말하기 어렵다. 초임 검사 때여서 외풍이 뭔지도 몰랐고 수사에만 전념했다. 선배들이 외풍을 막아주었는데, 그 과정에서 다친 선배들이 있었다.

검사장 승진에서 두 번이나 탈락하고 욕심을 버렸다고 했다. 5년 뒤 자신의 모습은?
특수통으로 오래 근무한 처지에서 중앙수사부장에 오른 것 자체가 최고의 영광이다. 마지막 공직이라는 각오로 일하고 있다. 아마 5년 뒤쯤에는 평범하면서도 욕심 안 내는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을 것이다. 작게 생각하고 작은 행복을 느끼겠다.

이탈리아 마니폴리테 수사를 담당한 피에트로 검사에 빗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피에트로 검사는 나중에 정계로 진출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불법 대선 자금 수사는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중앙수사부 검사와 직원들, 크게 보면 검찰 조직 전체가 하는 것이다. 개인이 부각되어서는 안된다. 수사를 기반으로 개인적으로 무엇을 도모해본 적이 없다. 다시 말하지만 한국적인 상황에서 수사는 검찰 조직이 하는 것이다. 개인이 하는 게 아닌 만큼 외국 검사와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참여정부 초기 검찰 개혁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중수부 개혁 내지 폐지였다. 검찰개혁론에 대해?
원칙적으로 개혁은 해야 한다. 그러나 제도보다는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중요하다. 현재 송광수 총장이 법대로 원칙적으로 잘 운영하고 있다. 누가 말했듯 검찰 내에서도 파워 시프트가 일어나고 있다. 총장부터 평검사까지 바른 자세로 수사에 임하고 있다.

그렇다면 검찰 독립이 95% 정도 되었다고 보면 되나?
독립이라는 말이 필요 없을 만큼 검찰 조직이 원활하게 운영되고 있다. 독립이라는 말은 예속이 심했을 때 검찰권을 강조하기 위해서 쓰는 말이었다. 현재는 독립을 강조할 필요가 없을 만큼 원칙대로 운영되고 있다. 예전에 원칙적으로 수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검찰이 독립되지 않았다는 오해를 샀던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사법고시 합격서를 받으러 가면서 무단 횡단을 했다던데?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특별한 기억이 없다. 지금은 서로 알든 모르든 원칙대로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받아들여 달라.

노무현 대통령이 수사력을 평가해 중수부장에 발탁했다는데?
그것은 잘 모르겠다.

수사 스타일과 관련해 ‘먼지털이 수사’라는 비판도 있다
민망스러운 지적이다. 나는 원칙적이다. 범죄 혐의가 있으면 일단 수사한다. 화이트칼라 범죄의 특징은 기득권층은 기득권층끼리, 권력은 권력끼리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사를 하다 보면 막힌다. 계속 파헤쳐야 한다.

불법 대선 자금 수사를 제대로 파헤친다면 얼마나 걸리나?
최소 1년은 걸려야 수사다운 수사가 된다. 하지만 한국적인 여건이 있다. 국민들이 피로를 느끼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다. 가급적 빠른 시간에 끝내도록 노력하겠다.

불법 대선 자금 수사를 지켜보는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검찰은 사심 없이 수사에 임하고 있다. 혐의가 나오면 덮지 않는다. 수사 결과로 모든 것을 말하겠다. 결과를 보면 국민들이 검찰이 얼마나 바르게 수사했는지 납득할 것이다.

안대희 중수부장과 인터뷰를 마치는 순간 국회에서는 특검이 재의결되었다. “특검에 연연하지 않겠다. 특검이 활동을 시작할 때까지 측근 비리 수사를 계속하겠다”라고 안대희 중수부장은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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