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과 ‘원수’ 진 <동아일보>, 국정원 맹공
  • 문정우편집장 (mjw21@sisapress.com)
  • 승인 1999.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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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락 주필 땅투기 의혹 기사, 출처는 정권” 의심하며 국정원 맹공
권력이 정보기관에 힘을 실어주면 가장 먼저 감지하는 쪽은 언론이다. 편집국이나 보도본부에 정보기관 수뇌부의 전화가 수시로 걸려오고, 말단 기관원의 표정이나 어투부터 바뀌기 때문이다. 5공 때는 기관원들이 언론사 간부 방을 제 집 드나들 듯했다. 김영삼 정부를 거치고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보기관의 횡포는 옛이야기가 되는가 했으나 최근에는 심상치 않은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동아일보>는 지난 6월18·19일 이틀간 연이어 1면 머리 기사로 국정원을 맹렬히 비난하는 기사를 실었다. 내용은 국정원이 언론단을 만들어 언론대책기능을 강화하고 있으며(18일), 이에 대해 야권이 ‘언론 장악 음모를 중단하라’고 반발하고 있다(19일)는 것이었다. 당시 언론이 대부분 서해 교전 후속 보도로 1면을 채우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언론계에서는 <동아일보> 보도의 배경에는 뭔가 특별한 사연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동아일보>가 첫 보도를 내기 전 날인 17일 긴급 간부회의를 열고 정부 비판 논조를 계속 유지하며 현정권에 대해 단호한 조처를 취하기로 했다는 얘기도 흘러 나왔다.

<동아일보>가 이 날 긴급 간부회의를 연 까닭은 같은 날짜로 발행된 <미디어 오늘>(주간·언론노련 발행)에 <동아일보> 이현락 주필이 땅 투기를 한 의혹이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기 때문이다. <미디어 오늘>은 이주필이 수도권 신도시 토지를 수 차례 매입했다가 되판 것으로 밝혀져 투기 의혹이 있으며, 서울 양재동에 있는 자기 땅에 주상복합 건물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공사 대금 일부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했다는 기사와 함께 이주필의 반론 및 해명을 실었다.

<동아일보> “현 정권, 치부 드러날 때마다 압박”

<동아일보> 간부회의에서는 <미디어 오늘> 기사 중 과장되거나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시정을 요구하거나 법적 대응을 하기로 했으나 정작 신경을 곤두세운 것은 바로 기사 출처였다. <미디어 오늘> 기사의 바탕이 된 것은 증권사 주변에서 주로 유통되는 A4 용지 2장 분량의 사설 정보지이다. <미디어 오늘>은 이 사설 정보지에 나와 있는 첩보를 토대로 다시 취재해 기사를 만들어냈다. 이 사설 정보지는 <미디어 오늘>이 기사를 쓰기 훨씬 이전부터 각계에 흘러다녔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정보지가 이런 류의 사설 정보지와는 다르게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시중에 떠도는 정보지 중에는 이주필이 소유한 땅의 등기부등본 사본까지 부록으로 붙어 있는 것도 있었다. 따라서 <동아일보>에서는 이 사설 정보지를 증권가 주변의 첩보 수집가 따위가 만들었을 리 없다고 판단한다. 개인의 재산 목록을 낱낱이 밝혀내려면 국세청이 개입해야 하고, 그것도 국세청 일개 직원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고(기록이 남으니까) 국정원이나 사직동팀 같은 공적 조직이 깊숙이 개입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동아일보> 한 기자는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국민연금 파동, 유종근 전북도지사집 털이 사건, 라스포사 추문 등 현정권의 실책이나 치부가 드러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여러 경로를 통해 현정권은 압박을 가해 왔다. 그 뒤에도 <동아일보> 논조가 변하지 않은 것과 이주필 관련 문건이 떠돈 것은 무관하지 않다”라고 말한다. 요컨대 이주필 관련 문건은 <동아일보>의 정부 비판 논조에 대한 경고이자 응징이라는 것이다.

물론 <동아일보>가 ‘오버’하고 있지 않느냐 하는 시각도 있다. 사실 관계를 명백히 밝히고 시시비비를 가리면 될 일을 권력과 언론 간의 분쟁으로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동아일보> 내부의 갈등 때문에 김영삼 정부 때 조사되었던 내용이 불거진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물론 국정원은 터무니없는 억측이라고 펄쩍 뛴다.

하지만 최근 <국민일보>도 정부 비판 기사가 실종해 편집국장 신임 투표까지 가는 진통을 겪었고, MBC도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이 스크린 쿼터 관련 기사 삭제를 요구했다 하여 내홍을 겪는 마당이어서 <동아일보>의 주장은 분명 설득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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