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짐 진 대책... 파란 하늘이 두렵다
  • 金恩男·安殷周 기자 ()
  • 승인 2000.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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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오존 피폭 역대 최고치…정부 대책 ‘땜질’ 수준
‘장마 끝 파란 하늘에 감탄하지 말 것. 여름철 뙤약볕 아래 씩씩하게 뛰노는 어린 것을 보며, 행여나 흐뭇해 하지 말 것.’ 어느새 우리 숨통을 조이고 있는 ‘오존 수칙 제1조’이다.

오존(O3) 공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오존 경보제가 본격 시행된 1997년 이래 오존 농도는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로 자동차 운행률과 공장 가동률이 뚝 떨어지면서 연료 사용량이 전년 대비 15.1% 감소하고, 그 덕분에 아황산가스(SO2) 일산화탄소(CO) 미세먼지(PM10) 따위 다른 오염 물질이 크게 줄어든 1998년에도 오존 농도는 꾸준히 높아졌다(표 참조).

단순히 평균 농도만 높아진 것이 아니다. 지난 4년 사이 오존주의보 최초 발령일은 6월 중순에서 5월 말로 앞당겨졌다. 최종 발령일은 8월 중순에서 9월 중순으로 늦추어졌다. 그만큼 오존에 노출되는 기간이 늘어났다는 얘기이다.
1주일에 4천명 죽인 ‘런던 스모그’

올해는 상황이 더욱 심상치 않다. 7월5일 현재 서울·경기 지역에 발령된 오존주의보 횟수는 모두 38회. 여름이 아직 절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지난해 5∼9월 총 발령 횟수(35회)를 훌쩍 넘어섰다. 시간당 최고 농도 또한 기록을 갱신했다. 지난 6월3일 경기도 부천시 상일동 측정소에서 잰 시간당 최고 농도는 0.177ppm으로, 역대 최고치(0.170ppm)를 앞질렀다(오존은 평균 농도보다 시간당 최고 농도가 중요하다. 짧은 시간이라도 고농도 오존에 노출되는 순간 기관지가 손상되기 때문이다).

오존 농도가 환경 기준(0.1ppm)을 넘어선 다음날이면 사망률이 6% 이상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80~81쪽 딸린 기사 참조). 물론 오존 농도가 증가한다고 해서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쓰러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1주일 사이에 4천 명이 사망했다는 ‘런던 스모그 사건’(1952년)에서도 건강한 사람이 쓰러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런던 스모그가 악명을 떨친 것은 어린이·노약자·만성질환자를 중심으로 이른바 ‘초과 사망’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종태 교수(연세대 예방의학교실)는 이렇게 말한다. “사망은 생명 현상의 마지막 단계이다. 따라서 사망률 증가는 오존 피해를 나타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오존으로 인해 폐 기능이 떨어지고 호흡기 질환이 악화한 사람 숫자는 사망자의 수십∼수백 배에 이른다고 보아야 한다.”

오존 오염은 왜 줄어들지 않는 것일까. 그간 정부는 오존 오염을 개선하기 위해 수도권을 포함한 대도시 지역을 ‘대기환경규제지역’으로 지정해 집중 관리하는 등 여러 가지 대책을 추진해 왔다. 그런데도 오염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 환경부 대기정책과 최흥진 서기관은 ‘그만큼 오존 생성 메커니즘이 복잡하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로스앤젤레스 광화학 스모그 사건(1955년)의 충격으로 1960년대부터 대대적으로 오존 규제에 나섰던 미국마저도 199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오존 농도가 진정되는 기미를 보였다는 것이다.

오존은 이른바 2차 오염 물질이다. 일반적으로 아황산가스나 일산화탄소 같은 대기 오염 물질은 연료 자체나 그 연료가 연소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따라서 원인 물질을 규제하면 오염 물질도 줄어들게 되어 있다. 한 예로 정부가 서울 지역 연료를 청정 연료로 완전 대체하게끔 강제한 이래 이 지역 아황산가스 배출량은 극히 미미한 수준(1999년 0.007ppm)으로 줄었다.

그러나 오존에는 이런 ‘밀어붙이기’가 통하지 않는다. 오존은 연료나 연소 과정에서 직접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 발생한 질소산화물(NOx)과 휘발성유기화합물(VOC)이 대기 중에서 광화학 반응을 일으키면서 생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존이 만들어지려면 질소산화물·휘발성유기화합물·햇볕·열(30℃ 안팎의 높은 기온) 네 가지 요소가 필수 불가결하다(76쪽 그림 참조). 여기에 오존 관리의 어려움이 있다. 자동차가 거리를 메우고 있어도 햇빛이 없으면 오존은 발생하지 않는다. 반대로 자동차가 줄어도 구름이나 바람이 적고 날씨가 더우면 오존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실제로 환경부는 IMF 시기에 교통량이 줄었는데도 오존 농도가 늘어난 최대 요인을 기상에서 찾고 있다.

도심보다 외곽 지역의 오존 농도가 높은 기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2차 오염 물질이라는 오존의 특성에 따른 것이다. 도심에서 배출된 질소산화물과 휘발성유기화합물이 바람을 타고 50∼150km씩 이동하면서 대기 중의 산소(O2)와 결합해 오존 분자(O3)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미국 산림청은 1976∼1983년 뉴욕 등 세 군데에서 대기오염 물질 농도를 조사한 결과 도심에서 외곽, 시골로 갈수록 아황산가스나 이산화질소는 줄되 오존 농도는 증가했다는 결론을 얻었다(그림 참조). 국내 또한 오존 측정망이 서울 근교에 몰려 있어 정확한 통계가 나오지 않을 뿐이지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이종범 교수(강원대·환경공학)의 지적이다. ‘전원 도시’란 착각인 셈이다. 실제로 지난해 국립환경연구원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인천에서 발생한 오염 물질이 바람(서풍)을 타고 서울을 지나 강원도 춘천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드러났다. 시간당 오존 최대치는 인천(101ppb)-서울(102ppb)-구리(135ppb)-춘천(120ppb) 순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높아졌다.

문제는 이처럼 일반 대기 오염 물질과 달리 복잡미묘한 오존의 특성을 강조하는 정부 당국이 오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밀어붙이기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6월 발표한 ‘하절기 대도시 오존 오염 저감 대책’에 따르면, 환경부는 올 여름 오존 오염을 줄이기 위해 △자동차 배출 가스 특별 단속 △승용차 운행 억제 △오존 및 악취(휘발성유기화합물 포함) 배출 사업장 관리 강화 등의 대책을 실시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같은 단기 응급 처방으로는 대기질 개선은커녕 환경부가 자가당착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 이종범 교수의 지적이다. 환경부 대책은 1차적으로 자동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자동차 운행을 줄이는 것과 비례해 오존이 줄어든다는 보장도 없고, 만에 하나 오존이 오히려 늘어날 경우 시민들의 정책 불신만 가중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 운행을 줄이는데도 오존 농도가 증가하는 ‘오존의 역설’은 앞서 설명한 대로 2차 오염 물질이라는 오존의 특성에 기인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자동차 아닌 다른 배출원이 과소 평가되고 있다는 데 있다. 배출원을 정확히 알아야 오염 물질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환경부가 자동차를 1차 규제 대상으로 삼은 것은 서울시의 경우 질소 산화물의 80%, 휘발성유기화합물의 53%가 자동차에서 나온다는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 통계의 정확성에 대해 어떤 전문가 도 신뢰하지 않는다. 장영기 교수(수원대·환경공학)는 “휘발성유기화합물의 경우 환경부가 주로 문제 삼는 자동차·도장 업체·세탁 시설·주유소 말고도 배출원이 매우 다양한데 이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선행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라고 지적했다. 휘발성유기화합물을 다량으로 배출하는 대형 사업장은 어느 정도 파악되어 있으나 동네 세탁소·미장원·일반 가정(가정에서 사용하는 스킨·스프레이 등이 모두 휘발성유기화합물을 배출한다) 같은 소형 배출원, 항공기·기차 같은 비(非)도로 차량이 배출하는 휘발성유기화합물 양에 대한 조사는 전무하다시피 하다는 것이다(미국에서는 이들 비도로 차량이 용제를 사용하는 업체·자동차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양을 배출한다).

특히 수도권은 난지도·수도권 쓰레기 매립지 같은 대형 폐기물 처리장에서 발생하는 휘발성유기화합물 양이 자동차에서 발생하는 양과 맞먹는 수준일 수도 있다는 것이 장교수의 지적이다. 그러나 기존 휘발성유기화합물 배출량 조사 대상에서 폐기물 처리장이 빠져 있었던 만큼 정확한 배출량은 누구도 모른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는 서울시는 2002년 월드컵 경기 장소가 난지도 바로 옆이라는 사실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이에 따라 서울시는 난지도에서 발생하는 휘발성유기화합물을 채취해 지역 난방 연료로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난지도는 ‘오존 생산 공단’?

이처럼 다양한 배출원을 빠뜨린 결과 나라 별로 대기 오염 물질 배출량을 비교했을 때 한국의 휘발성유기화합물 배출량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한국과 인구가 비슷한 프랑스·이탈리아의 연간 배출량이 2백50만t 수준인데 한국은 14만t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이에 대해 환경부는 올해 말까지 질소산화물·휘발성유기화합물 주요 배출원에 대한 정밀 조사를 실시해 전국적인 배출량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휘발성유기화합물 배출원 파악이 중요한 이유는 뚜렷하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질소산화물과 휘발성유기화합물 가운데 어느 한쪽 물질만 줄이는 방식으로는 오존 오염을 막을 수 없다. 1986∼1994년 미국 뉴저지 주정부에서 대기행정담당관으로 근무한 리사 한씨는, 미국의 경우 해당 지역의 지형·기후·산업화 특성에 따라 오존 생성에 주로 기여하는 것이 질소산화물인지 휘발성유기화합물인지 가린 다음 비용 대비 효과를 따져 오존 저감 대책을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한국의 정책 당국은 충분한 사전 조사 없이 시민의 양보(차량 운행 억제)만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비판이다.

배출원을 파악하는 작업은 오존경보를 발령할 때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최근 서울시는 조례를 제정해, 오존 경보가 발령되면 자가용 2부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오존 경보(0.3ppm)가 발령될 수준이면 ‘소독약을 몸에 직접 쏟아 붓는’ 비상 상황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오존 경보가 발령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서울시 또한 실효성보다는 시민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취지에서 이 제도를 도입했다고 밝히고 있다.

오히려 문제는 이미 만성화한 오존주의보 단계에서 시민의 건강을 어떻게 지킬 것이냐 하는 것이다. 환경단체가 비아냥대는 대로 오늘날 한국에서 오존을 피할 유일한 방법은 집 밖에 나가지 않는 것뿐이다. 그러나 미국 대부분의 주는 오존 농도가 환경 기준을 초과할 것으로 예측될 경우 배출원 명단에 올라 있는 사업장에 미리 연락해 조업 단축을 권고한다는 것이 리사 한씨의 설명이다. 시카고 같은 경우는 연간 100t 이상 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공장을 그 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미국, 오존 경보 발령되면 사업장 조업 감축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오존 저감 대책에 적극 나서고 있는 서울시 또한 올해부터 2천여 사업장을 대상으로 ‘오존 오염 사전 통보제’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것은 명칭대로 아직 ‘통보’ 수준일 뿐이다. 경보를 발령한 다음에야 조업 단축 명령을 내릴 수 있는 현행법(대기환경보전법)이 바뀌지 않는 이상 이보다 강력한 조처를 취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서울시 관계자의 말이다.

그러나 법 개정이나 규제 강화에 앞서 선행해야 할 것이 정책 당국자의 인식 전환이라고 이종범 교수는 지적한다. 공기는 대체재가 없다. 물이 썩으면 정수기라도 이용할 수 있지만 공기가 썩었다고 숨을 멈출 수는 없다. 그런데도 대기 분야 예산(4백7억 원)은 전체 환경 관련 예산(2조8천 억 원)의 1.5%밖에 안되는 것이 현실이다.

멕시코의 경험에서 드러났듯 투자한 효과가 당장 나타나지는 않지만 오염을 방치했을 경우 온 나라를 공황 상태로도 몰아넣을 수 있는 것이 대기 문제이다(1992년 오존 발생률이 200% 증가하면서 멕시코시티에 극심한 혼란이 빚어졌다).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은 말한다. “대기 정책에는 배기 가스가 앞으로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반영되어야 한다. 그것은 군사 전략을 수립할 때처럼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계획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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