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치기 개혁, 등 돌린 민심
  • 朴晟濬 기자 ()
  • 승인 1997.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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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정권이 종말을 향해 치닫기 시작하던 79년 8월9일 새벽 6시께 YH무역 여성 노동자 2백여 명은 사측의 공장 폐쇄에 반대해 농성하다가 마침내 회사 기숙사를 나와 김영삼 총재가 이끄는 마포 신민당사로 몰려가 농성을 시작했다. 이른바 YH 여공 신민당사 농성 사건이다.

경찰은 노동자들의 희생을 예방한다는 명분으로 8월11일 오전 2시께 이른바 ‘101호 작전’을 개시했다. 신민당사 정문을 부수고 사다리를 타고 창문에 올라가 여공들을 끌어내는 강제 진압 작전을 단행한 것이다.

문민 시대의 비극 ‘정권 퇴진 운동’

경찰은 당시 농성장에 있던 야당 국회의원, 신민당원, 취재 기자와 여공을 가리지 않고 난타하며 건물 바깥으로 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YH무역 여공 김경숙양이 죽고, 국회의원과 취재 기자 다수가 부상했다. 한마디로 당시 경찰의 신민당사 기습은 평소 노동 기본권을 철저히 무시하는 등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부인해온 박정희 정권 최후의 폭거였다. 이 사건 직후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는 기자 회견을 갖고 ‘박정권 타도’를 공식 선언했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최근 노동 문제가 빌미가 되어 또 하나의 정권 퇴진 운동과 반독재 투쟁이 거세게 번져나가고 있다. 그것도 군부 독재 시대나 권위주의 통치 시대가 아닌 문민 시대에 말이다. 노동자들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중심으로 최근 벌어진 정부의‘폭거’에 대항하여 사상 유례 없는 총파업을 선언했다. 일부 시민단체와 인권단체는 현 정권에 항의하며 국민 불복종 운동을 조직할 조짐이다. 정치권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국민회의와 자민련 등 야권 정치인들은 지난해 12월26일 국회 귀빈식당에 모여 ‘반독재 투쟁’을 위한 공동위원회를 결성하고 ‘장외 투쟁’을 선언했다.

의미 심장한 점은, 이들이 준비하고 있는(또는 실행하고 있는) 정권 퇴진 운동이 우리 사회 민주화의 주요 계기로 작용했던 87년 6·10 항쟁이 있은 지 꼭 10년째 되는 해의 벽두에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며, 정권 퇴진 운동의 대상은 바로 민주화 투쟁의 전면에 서서 군사 독재 정권을 무너뜨렸고 10여 년이 지난 뒤 빛나는 투쟁의 후광을 등에 업고 6·10 항쟁의 열매를 거머쥔 김영삼 대통령이라는 사실이다.

노동자·농민은 물론 지식인·교수·변호사 등 국민 대다수로부터 광범위한 저항을 받으며 ‘폭거’로 지탄받고 있는 최근의 정부 행위란 다름 아닌 지난해 12월26일 새벽 국회에서 신한국당 소속 의원들만으로 이루어진 안기부법과 노동관계법 개정안 날치기 통과를 말한다. 신한국당 소속 의원들은 이 날 새벽 6시께 철통 같은 보안 속에서 총무단의 인솔 아래 국회에 집결해 안기부법 개정안과 노동법 개정안 등 11개 법안을 단 7분 만에 날치기 통과시켰다. 평소 원칙을 중시하는 의회주의자임을 자처했고, 그로 인해 집권에 이르기까지 박정희·전두환 정권 등 누대에 걸쳐 유형·무형의 정치적 박해를 받아왔던 김영삼 대통령의 의지가 관철된 사건이었다.

특히 날치기 통과된 법안에서 관심의 초점이 된 것은 노동관계법안이었다. 신한국당은 이 날 당초 정부안을 일부 수정한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했다. 즉 근로자에 대한 정리 해고 요건을 △계속되는 경영 악화 △생산성 향상을 위한 구조 조정 △기술 혁신 또는 업종 전환 등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로 한정했으며, 사용자가 일정 규모 이상 인원을 해고하고자 할 때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노동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한 것 등이다. 여당, 경제·안보 논리로 날치기 합리화

야당을 배제하고 법안을 단독 처리한 데 대한 반발을 의식해서인지 법안 단독 처리 후 오세응 국회 부의장은 기자들에게 “노동법은 경제 회생을 위해, 안기부법은 국가 안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에 변칙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 인권이 탄압 받던 시절에는 야당의 실력 저지가 영웅시됐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는 논리로 법안 변칙 통과를 합리화했다. 여권내 유력한 대선 후보 중 한 사람이자 신한국당의 간판이기도 한 이홍구 대표 역시 법안 변칙 통과에 대해‘우리의 선택이 옳은가 여부는 내년 선거에서 국민이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얼버무렸다.

그러나 여권이 법안 날치기 통과의 의미를 애써 합리화하거나 축소하려는 것과는 정반대로 날치기 통과의 파문은 날이 갈수록 위력을 더해 가고 있다. 특히 노동계의 반발과 분노는 극에 달해 있다. 신한국당에 의해 개정 노동법이 기습 처리된 직후부터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노동계에서 일고 있는 총파업 움직임이 단적인 사례다.

노동계의 총파업은 지난해 연말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노사관계개혁위원회(노개위)가 노사 양측의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해 법안 개정의 주도권을 정부에 빼앗겼을 때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힘의 논리에 따른 일방적 노동법 개정은 없다’는 애초의 약속을 파기하고 정부가 사용자 편향의 법안을 확정하자 노동계는 ‘노동법 개정 관련 정부안은 노사 관계 개선이 아닌 개악’이라고 반발하며, 정부안이 통과될 경우 총파업 투쟁을 벌이겠다고 선언했었다.

지난해 12월26일부터 노동계의 이같은 ‘총파업 불사’ 경고는 현실로 나타났다. 민주노총은 이 날 ‘노동법 개악안을 기습 날치기 처리한 신한국당의 반민주적 폭거에 맞서 26일부터 산하 전 단위 노조에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하라’는 지침을 전달했으며, 이 지침은 곧 실행되었다.

12월26일 하루 만에 울산 현대그룹노동조합총연맹(현총련)을 비롯한 대규모 사업장 일부가 오후 1시부터 전면 파업에 돌입한 것이다. 12월27일에는 민주노총 산하 병원노련이 파업에 돌입했고, 28일에는 서울지하철 노조가, 29일에는 부산지하철이 파업에 돌입해, 총파업은 공공 사업 부문과 서비스 업종으로 확산 일로를 치달았다. 한국노총 역시 전국 25개 산별노조 대표자회의를 긴급 소집하고 27~28일 1단계 시한부 파업에 돌입했다. YS 정권에 건 마지막 기대도 무너지고

새해 연휴 동안 잠시 주춤했던 총파업 열기는 연휴 마지막 날인 1월2일 민주노총측이 2단계 총파업 투쟁을 선언함으로써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지난 2일 민주노총 권영길 위원장은 항의 농성하던 명동성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총파업에 임하는 입장과 총파업 일정을 밝혔다. 권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정부가 날치기 통과된 노동 악법을 12월31일 또다시 기습적으로 공포한 데 대해 끓어오르는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만일 정부가 날치기 노동 악법을 전면 백지화하고 새로운 노동법 개정에 즉각 착수하지 않으면 예정대로 3일 오전부터 강력한 2단계 총파업 투쟁에 돌입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예정된 2단계 총파업이란 △자동차연맹을 중심으로 한 금속노조 약 50개 업체(1월3일부터) △금속연맹·현총련·화학노협 등 제조업체와 사무노련·전문노련·건설노련 등 2백여 개 노조(1월6일부터) △방송 4사·병원 등 공공 부문 노조 (1월7일부터)의 단계적 파업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1월3~4일 민주노총 산하 46개 노조(연인원 9만6천명·민주노총측 집계)가 총파업에 들어갔다.

1월5일 민주노총은 다시 기자회견을 갖고 총파업 세부 일정을 재확인하며 정부측에 최후 통첩을 띄웠다. ‘7일로 예정된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 때 대통령이 개정된 노동 관계법 무효화를 선언하지 않으면 8일부터 앞서 연말에 했던 것보다 훨씬 강도 높은 전면 총파업에 돌입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민주노총측은 지하철·한국통신·화물노련 등 나머지 공공 부문 사업장의 파업은 일단 유보했다. 이유는 두 가지다. 공공 부문 노조의 파업으로 인한 국민 불편을 고려하고, 정부가 개정 법안을 기정사실화하여 공권력을 동원해 지도부를 침탈할 경우 이에 대응할 수 있도록 ‘예비 병력’으로 남겨두겠다는 것이다.

개정 노동법에 대한 원천 무효화 요구는, 일견 노동법과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일반 시민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실천불교전국승가회·민주언론운동협의회·참교육시민모임 등 시민·종교·교육 단체가 다수 참여한 ‘노동법·안기부법 개악 철회와 민주수호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범국민대책위)는 1월5일 서울 종묘공원에서 집회를 열고 노동법·안기부법 ‘개악’ 무효화를 위해 투쟁하기로 결의했다. 이유는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가 최소한의 민주주의 절차 없이 국민의 뜻을 정면으로 거역한 반민주적 폭거라는 것이다.

법안 날치기, 특히 노동법 개정안 날치기를 계기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파업과 항의 시위에서 특히 눈에 띄는 점은, 파업과 시위 현장에서 문민 정부 출범 이래 가장 격렬한 비난 구호가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월5일 집회에서 범국민대책위는 김영삼 정부가 노동법·안기부법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정권 퇴진 투쟁’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 12월30일부터 노동법과 안기부법 국회 날치기 통과에 항의해 시한부 철야 농성에 들어갔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회장 최영도)은 1월1일 농성을 풀면서 국민 불복종 운동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노동법 날치기 처리로 인해 정부에 배신당했다고 생각하는 노동계의 구호는 한층 격렬하다. ‘신한국당을 해체하고, 김영삼 정권을 타도하자’는 것이다. 국가 경쟁력 강화와 경제난 극복을 내세워 법안을 서둘러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하는 정부·여당의 주장에도 아랑곳없이, 법안 변칙 처리에 대한 반발이 이처럼 정권에 대한 도전으로 발전한 까닭은 분명하다. 첫째는, 노사 관계와 인권 상황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중대 법안을 정부·여당 스스로가 인정했듯이 일방적으로 ‘변칙 처리’한 데 대한 분노가 작용하고 있다. 말하자면 정부·여당이 민주적 절차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야당측은 이에 대해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킨 임시국회 본회의 개회 자체를 ‘불법’이라고 주장한다. 즉 12월26일 있었던 국회 본회의는 개회 시간이 애초 오후 2시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야당 의원들에게는 통보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새벽 6시에 변칙 개회했기 때문에 불법이라는 것이다. 민변측 역시 1월3일 ‘날치기 통과는 회의 일시를 의원에게 통지조차 하지 않고 몰래 이뤄진 것이므로 국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며, 국회의장 앞으로 문제의 본회의 진행 건에 관한 ‘정보 공개 청구서’를 제출했다.

정부·여당이 국민 대다수의 공분을 사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날치기 처리된 개정 법률안이 그 내용 면에서 과거 김영삼 정부에 요구되었던 민주 개혁의 추진 방향에서 크게 후퇴하거나 변질되었다는 점이다. 예컨대 노동 운동의 발전을 오랫동안 저해해 온 복수 노조 금지 조항은 2000년까지 존속하게 되었다. 노동법 개혁안의 핵심 주제였던‘제3자 개입 금지’ 조항 역시 부분적으로 자구가 수정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효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 노사 관계 개혁 논의 과정에서 노동계가 그토록 반대한 변형근로시간제·정리해고제·파업 기간 중 대체 근로자 허용 문제 등은 약간의 단서 조항이 붙은 채 사측 요구 내용이 그대로 수용되었다. 정부·여당은 한사코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국민 전체의 이익을 내세워 사실상 기득권자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그러나 정권 퇴진 운동 등 국민 사이에서 민심 이반 현상이 발생하는 진짜 원인은 다른 데 있다. 5·6공 부패 세력들에 대한 특별 사면, 공안 분위기 조성을 통한 사회 통제 강화 등 민주 개혁에서 자꾸만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던 김영삼 정부가 이번 일을 통해 문민 정부에 걸었던 한 가닥 기대감마저 여지없이 짓밟았던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4월 노사관계 개혁 추진 구상을 발표하면서 ‘각계 각층이 참여하는 공론화 과정을 통해 국민적 공감대를 먼저 형성하겠다’고 선언했었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가 지난해 발족한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노개위에 참여했던 것도 ‘합의에 의한 노동법 개혁’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노동법은 86년 12월과 87년 11월 두 차례 개정된 바 있다. 이를 통해 변형근로시간제가 폐지되고, 냉각 기간이 단축되었으며, 독소 조항으로 꼽혔던 기업별 단위조합 강제 규정과 노동조합 해산 및 임원 개선 명령권도 사라졌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노동법 날치기 처리를 통해 폐지되었던 변형근로시간제가 화려하게 부활했다. 임원 개선 명령권이 없어진 대신 파업 기간 중 대체 인력 투입이 합법화하면서 노조 활동에 대한 사측의 통제 권한은 더욱 강화되었다. ‘넥타이 부대’ 궐기하는가

김영삼 정부의 노동 정책이 애초부터 보수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문민 정부 출범 초까지만 해도 정부의 노동 정책은 노사자치주의를 내건 이인제 노동부장관(현 경기도지사)을 중심 축으로 일정하게 개혁성을 띠고 있었다. 사정이 바뀐 것은 이장관의‘무노동 부분 임금’ 발언을 계기로 정부내 개혁파가 정책 일선에서 주도권을 빼앗기면서부터였다. 이광택 교수(국민대·법학)는 “정부의 노동법 개정 작업은 처음부터 한계를 갖고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노총이 등장해 노동법 개정을 강압하는 상황이었고, 정부가 목표로 했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위해서는 어차피 부분적으로라도 노동법을 개정해야 할 처지였던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국가·자본·노동의 관계를 민주적 이행 과정에 부합하도록 어떻게 재정립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권위주의 정권으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은 문민 정부가 해결해야 할 최대 과제로 지적되어 왔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는 국가·자본·노동의 관계에서 국가·자본 대 노동이라는 종래의 구도를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을 뿐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사무직·전문직 노동자들이 1월6일부터 총파업 전선에 뛰어든 사실은 의미 심장하다. 그들은 87년 6월 항쟁 때 민심의 향배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던 이른바 ‘침묵하는 다수’ ‘넥타이 부대’이기 때문이다. 문민 정부의 개혁성은 곳곳에서 심각한 도전을 받으며 출범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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