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 여론조사-DJ 지지율 급상승
  • 문정우편집장 (mjw21@sisapress.com)
  • 승인 1997.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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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 파동 계기로 지지율 급상승…이홍구에는 ‘압승’, 이회창·박찬종과도 해볼 만
조사 방법

누구를:전국의 20세 이상 성인 남녀

몇명이나:1,020명(제주도 포함)

어떻게 뽑아서:전화번호부에 의한 체계적 할당법으로 가구를 선정해서, 다시 인구 구성비에 따라 성별·연령별·지역별로 응답자 비율을 정함.

어떤 방식으로:조사 요원이 설문 내용을 전화로 불러줌.

언제 조사했나:1997년 1월25일~26일

조사 기관:코리아리서치센터

오차가 생길 수 있는 범위:95% 신뢰구간에 ±3.1%여론 쿠데타가 일어났다. 야권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던 민심이 노동법·한보 파동 이후 역류하고 있다. 지난 12월 초까지만 해도 완만한 여고야저 곡선을 그리던 여론조사 지표들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흐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지난 1월 25~26일 전국의 성인 남녀 1천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시사저널>의 여론조사에서 여론의 이같은 현상은 분명하게 드러났다. 민심은 정부·여당의 독주와 실책에 진저리를 치며 급격하게 야당 쪽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흐름이 이어진다면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 때 건국 이후 최초로 선거에 의한 정권 교체가 가능할 것이라는 예측을 낳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야권의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도 그동안의 열세를 만회하고 여당의 지지율 선두 주자들을 따라잡거나 맹렬히 추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한국당 지지자 상당수 국민회의 쪽으로

이번 조사에서 여당인 신한국당에 대한 지지율은 말 그대로 급전 직하했다. 지난해 6월5일 <시사저널> 조사에 따르면 신한국당의 지지율은 35.2%로 단연 선두였다(국민회의 15.2%, 자민련 7.3%, 민주당 6.3%).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 신한국당은 지지율 15.8%로 자민련(13.2%)과 키재기를 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그동안 우리나라의 여권 핵심 지지층이 18% 정도라고 추산해 왔다. 핵심 지지층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가 지지하는 당을 바꾸지 않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런데 이번 조사에서는 여당의 핵심 지지층마저도 일부 떨어져 나간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야당에 대한 지지율은 크게 상승 곡선을 그렸다. 국민회의는 지난해 6월에 비해 지지율이 12.7% 포인트나 올라가 선두로 나섰으며, 자민련 지지율도 5.8% 포인트 치솟았다. 자민련에 대한 지지율이 두 자리 수를 기록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노동법과 한보 파동으로 여당이 얼마나 큰 타격을 입었는지는 일련의 사태 이후 지지 정당에 변화가 있었는지 물어본 항목에서 더욱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응답자 10명 중 2명꼴(19.2%)로 지지 정당을 바꾸었다고 답했는데, 지지 정당을 바꾼 사람들의 85.2%가 본래는 신한국당을 지지하던 사람들이었다. 신한국당 지지 대열에서 이탈한 사람 중 29.9%는 국민회의, 24.4%는 자민련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집계되었다. 여당 지지자들이 여당에 등을 돌릴 때는 대개 태도 유보 쪽으로 가게 마련인데, 이번 조사에서는 대부분 이탈자들이 막바로 야당 쪽으로 돌아선 것이 특징이다. 신한국당에 대한 민심 이반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약진은 괄목할 만하다. 지난해 4·11 총선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김총재는 내내 지지율 20%대의 저공 비행을 했다. 지난 한 해 이양호 국방부장관, 공로명 외무부장관, 이성호 보건복지부 장관이 비리에 연루되거나 석연치 않은 이유로 물러나는 호재가 터졌는데도, 김총재 지지율은 움직일 줄을 몰랐다. 자민련 김총재와 손을 맞잡고 야권 공조를 길게 가져가면서 야권 후보 단일화 바람을 일으키려고 시도했으나 그 효과도 신통치 않았다. 당내에는 알게 모르게 패배주의가 뿌리를 내렸고, 김상현·정대철·김근태 등 일부 당내 인사들은 ‘김대중 불가론’을 전파하며 대안론을 들고 나왔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김총재 지지율이 저조한 것으로 나타나자 당내 주류는 연초에 각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를 비난하는 문건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해 12월1일 <시사저널>의 조사에서도 김총재의 미래는 지극히 어두운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여권 주자들과의 가상 표대결에서 열세를 면치 못했다. 이회창·김대중·김종필 3자 대결 구도에서 김총재는 21.3 % 지지율을 기록해 선두인 이고문(42.5%)에게 무려 21.2 % 포인트나 뒤졌었다. 그는 이회창을 포함한 이홍구·박찬종 등 이른바 여권의 빅3 모두에게 최소 7% 포인트 이상 처졌었다. 그는 심지어 여권 주자 중 지지율이 최하위권을 맴도는 최형우·김덕룡 등 민주계 주자들과의 가상 표대결에서도 밀렸다. 김덕룡에게는 소폭이지만 열세를 보였으며, 최형우와는 박빙의 대결을 펼칠 것으로 점쳐졌다.

김총재가 야권의 단일 후보로 나섰을 경우를 상정한 가상 표대결에서도 결과는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여권의 영입파 빅3에게는 3자 대결 구도에서보다도 오히려 더 큰 폭으로 밀렸으며, 김덕룡·최형우도 압도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 자민련 김총재가 기대하는 것만큼 야권 후보 단일화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아 보였다. 그가 대통령 후보로 나서면 여권에서는 말뚝을 내세워도 이긴다는 여권의 장담이 설득력 있게 들리기도 했다.

그런데 노동법과 한보 사태 이후 여론의 흐름은 순식간에 김총재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뀌었다. <시사저널>의 이번 조사에서 노동법 파동 이후 가장 이미지가 좋아진 후보가 누구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5.3%가 그를 지목했다. 그는 여야 주자를 통틀어 이미지가 좋아진 후보 1위에 올랐다.

김총재는 여당 주자들과의 가상 표대결에서 처음으로 여권의 영입파 빅3 중 이홍구 신한국당 대표를 따돌리는 기염을 토했다. 그는 이홍구·김대중·김종필 3자 대결 구도에서 30.9% 지지를 얻어 이대표(20.7%)를 10.2% 포인트나 앞질렀다. 앞서 12월1일의 <시사저널> 조사 이후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7.3% 열세를 10.2% 우세로 역전시킨 것이다. 그는 이회창 고문과의 지지율 격차도 크게 줄였다. 지난 12월1일 조사에서 이고문에게 20% 이상 뒤졌던 그는 이번 조사 중 이회창·김대중·김종필 3자 대결 구도에서 지지율 26.3%를 기록해 이고문(33.8%)과의 차이를 7.5% 포인트로 줄였다. 그가 여론조사에서 이고문과의 지지율 격차를 한 자리 수로 좁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원외에 있었기 때문에 노동법 파문의 구정물을 피해갈 수 있었던 박찬종 고문과의 가상 표대결에서만 유일하게 10% 넘는 열세를 보였다. 박찬종·김대중·김종필 3자 대결 구도에서 그는 26.7% 지지를 받아 박고문(39.9%)에게 13.2% 포인트 뒤졌다. 그러나 그는 95년 서울시장 선거 때 조 순 후보를 내세워, 여론조사에서 앞서 있던 박고문을 꺾은 경험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회의 쪽에서는 사실상 박고문에 대해서는 크게 경계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각종 여론조사에서 야권의 후보 단일화 약효는 별로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야권의 단일 후보가 DJ가 되든 JP가 되든 야권 후보가 얻을 수 있는 표는 크게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는 것이 그동안의 여론조사가 보여준 결과였다. 그러나 이번 조사는 야권의 후보 단일화가 여권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노동법과 한보 파동 이후 야권에 거는 민심의 기대가 커지면서, 그만큼 야권의 후보 단일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국민회의 김총재가 야권의 단일 후보로 나설 경우를 상정한 이홍구·김대중 양자 대결 구도에서 그는 40.3% 지지를 얻어 이대표(25.2%)를 15.1% 포인트나 앞질렀다. 어떤 조사에서건 그에 대한 지지율이 40%대까지 치솟은 적은 없다. 그는 이회창·김대중 양자 대결 구도에서도 35.7% 지지를 얻어 이고문(36.3 %)과 박빙의 승부를 펼칠 것으로 점쳐졌다. 그가 야권의 단일 후보로 나서면 이고문과 맞대결해도 밀릴 것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동안의 여론조사에서는 만약 이고문이 여권의 대통령 후보로 나서면 DJ나 JP가 아닌 제3 후보가 나서야만 승산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그는 박찬종·김대중 양자 대결 구도에서도 34.2% 지지율을 기록해 박고문과의 격차를 한 자리 수(7.4% 포인트)로 좁혔다. 3자 대결 구도 때와 비교해 박고문 지지도는 1.7% 포인트 상승하는 반면, 김총재 지지율은 7.5% 포인트나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가 야권의 단일 후보로 나서면 지금 거론되고 있는 여권 주자 중 누구와 대결해도 해볼 만하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런 여론의 흐름이 계속 탄력을 받는다면 야권 후보 단일화가 이번 대통령 선거의 최대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김총재는 지난해 총선 뒤 철저하게 실리를 취하는 노선을 걸어 왔다. 그는 대통령 선거까지 남은 기간에 김대통령의 실책을 비판하기보다는 신한국당이나 여권의 대통령 후보군에 공격의 초점을 맞추라고 당에 주문했다. 대통령 선거 때 그와 직접 맞붙을 인물은 김대통령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DJ 지지율, 비호남권에서 특히 큰 폭 상승

김총재는 노동법 파동에 대처하는 데도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일관되게 명분보다는 실리를 계산해 움직였다. 노동법이 국회에서 여야 간에 쟁점이 되었을 때 그는 결코 노조 편을 들지 않았다. 그는 노조의 대리인이 되어 정부와 다투던 종래의 자세를 버리고 정부와 노조 간의 싸움이 진전되는 상황을 보아 가며 움직였다. 그의 노선에 대해 당내에서조차 비판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청와대가 여론에 밀려 영수회담을 받아들였을 때도 그는 중도를 걸었다.

영수회담이 끝난 뒤 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회담이 결렬되었다’, 노조측에서는 ‘성과가 전무했다’라고 평가절하했으나 그만은 달랐다. 그는 ‘중요한 진전’ ‘환영할 만한 일’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나름대로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며 김대통령의 얼굴을 세워 주었다. 그가 신년 휘호로 택했던 ‘실사구시’를 연상케 하는 이같은 노력은 결과적으로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된다. 노동법 파동의 와중에서 여권이 예외없이 노조의 용공성을 공격했는데도, 노조와 거리를 두었던 그는 색깔론 시비에 말려들지 않았다. 그가 일방적으로 노조 편을 들지 않았기 때문에 정국은 보혁 구도로 나뉘지도 않았다.

노동법을 날치기하던 날 새벽 동원되어 거수기 노릇을 했던 여권의 주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타격을 입었다. 여권 주자들을 대통령의 눈치나 살피는 줏대 없는 인물이라고 공격해온 국민회의의 전략은 노동법 파동을 거치면서 큰 효과를 발휘했다.

김총재가 노동법 파동 때 중도 노선을 걸어 얼마나 이득을 보았는지는 이번 조사에서도 분명히 나타났다. 지난 12월1일 <시사저널>의 조사와 비교해 광주·전라 지역에서의 김총재 지지율은 여당 빅3과의 대결 구도에서 많게는 15% 정도까지 떨어졌지만, 대전·충청, 부산·경남,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10% 이상 올라갔다. 그가 야권의 단일 후보로 대선에 나설 경우 지지 여부가 주목되는 대전·충청권 응답자들이 특별히 그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와 여당 영입파 빅3의 대결 구도에서 대전·충청권 응답자의 김총재 지지율은 지난 12월1일 조사에 비해 많게는 21.2%까지 뛰어올랐다. 그에 대해 비교적 거부감이 큰 영남권 응답자들의 지지율까지 전반적으로 오름세를 보였다. 호남 유권자의 일부 이탈은 일시적인 현상일 공산이 크기 때문에 그의 소득은 적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

한보 사태 이후 김총재는 노동법 파동 때와는 또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는 파동이 나자마자 ‘대통령도 필요하다면 조사받아야 한다’라고 김대통령에게 직격탄을 쏘았다. 노동법과 달리 여권을 정면으로 공격할 수 있는 호재라고 판단한 듯하다. 측근들은 김총재가 직접 나서서 여권을 공격하는 것에 반대했지만 그가 일축했다고 한다. 노동법 파동으로 탄 상승세를 한보 사태 이후에도 계속 이어 가겠다는 계산이다. 그에 대한 지지율이 계속 상승한다면 당내에서 제기되고 있는 제3 후보론도 손쉽게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는 아직 갈 길이 먼 사람이다. 대통령 선거 때까지 또 무슨 일이 터져 상황이 반전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그가 여야의 주자 중 유일하게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는 어쩌면 그가 도전했던 과거의 어느 대통령 선거 때보다 지금 정상에 가장 가깝게 접근해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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