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의 요정’ 전지현의 CF 정복기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4.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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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순·발랄 전지현의 ‘CF 정복기’
그녀는 너무나 완벽하다. 사람들이 원하는 여성상을 완벽히 구현해낸다. 찰랑찰랑한 머리를 쓸어올릴 때의 모습은 청순하고(엘라스틴), 요구르트를 먹을 때는 귀엽고(비요뜨), 립스틱을 바를 때는 섹시하다(라네즈). 직장 상사에게 혼나는 동료에게 술을 사고(LG카드), 남자 친구와 헤어진 친구를 위로하는(네이버카페인) 그녀는 따뜻하다.

CF에 나오는 배우 전지현의 이미지들이다. 광고업계에서 전지현은 이영애와 함께 최고의 블루칩 모델로 꼽힌다. 그녀가 출연한 광고마다 대박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1999년, 삼성전자는 전지현을 마이젯 프린터 모델로 기용해 시장점유율 44%를 기록하며 엡손과 HP를 제치고 단숨에 업계 1위로 뛰어올랐다.

새로운 미디어·산업 세대의 합작품

광고계에서 ‘전지현 신화’는 계속되고 있다. 뒤늦게 인터넷카페에 뛰어든 네이버는 그녀를 모델로 기용하면서 다음을 누르고 방문자 수 1위를 기록했다. 올림푸스 디지털 카메라는 캐논을 제치고 시장점유율 1위와 브랜드 이미지 1위를 차지했다. 비요뜨 요구르트는 예상 판매량보다 3배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

요부이면서 성녀이고 성녀이면서 요부인, 애인인 동시에 친구이며 여성적이면서도 중성적인 전지현의 이미지는 스타 시스템이 안정된 단계의 스타 모형을 보여준다.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그녀의 이런 이미지는 ‘새로운 미디어’(광고·인터넷) ‘새로운 산업’(정보통신) ‘새로운 세대’(사이버 세대)와 결합해 그녀를 CF퀸에 등극시켰다.

전지현의 스타 모형과 관련해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광고의 역할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텔레비전과 영화에 이어 CF가 스타 제조기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텔레비전과 영화에서 스타로 떠서 광고에 출연하는 것이 아니라 광고로 떠서 역으로 텔레비전과 영화에 출연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TTL 소녀’ 임은경과 한솔이동통신 모델이었던 김민희와 김효진이 대표적인 예다.

전지현도 대표적인 CF스타다. <내 마음을 뺏어봐> <해피 투게더> 등의 드라마에 먼저 출연했지만 그녀를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삼성전자 마이젯 프린터 광고였다. 마이젯 광고에서 현란한 춤솜씨를 보여준 그녀는 단숨에 섹시 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2% 부족할 때’ 광고로 그녀는 신세대 스타로서 입지를 굳혔다.
광고를 통해 스타가 된 전지현은 이후에도 광고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해 갔다. 같은 세대의 빅모델인 김희선과 송혜교가 드라마를 통해 이미지를 구축하고 이효리와 박정아가 쇼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미지를 쌓아가는 동안에도 그녀는 오직 광고에만 의지했다.
전지현이 광고를 미디어로 활용하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광고가 바로 비요뜨나 메타콘 광고이다. 이 두 광고에서 그녀는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에서 함께 연기한 장 혁(비요뜨에서는 목소리만 출연)과 커플로 등장해 영화를 간접 광고한다. 이런 모형은 선후가 바뀐 것으로, 지금까지는 드라마나 영화의 성공에 힘입어 주인공이 광고에 커플로 등장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광고와 함께 그녀를 스타덤에 올리는 데 기여한 또 하나의 미디어는 바로 인터넷이다. 마이젯 광고에 출연했을 때, 네티즌들은 광고의 동영상 파일을 여기저기 퍼날라 전지현 신드롬을 일으키는 데 기여했다. 최근에도 그녀를 모델로 기용한 서울우유는 싸이월드에 비요뜨 미니홈피를 만들어 네티즌들이 광고 동영상을 퍼나르도록 독려했다.

CF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미디어를 적극 활용한 전지현은 정보 통신이라는 새로운 산업의 모델로 두각을 나타냈다. 삼성전자 마이젯 프린터 모델을 시작으로 네이버카페인, 올림푸스 디지털카메라, 그리고 중국 시장에 진출한 VK 핸드폰 모델까지, 그녀는 정보 통신 업체의 모델을 많이 했다.
공격적 마케팅 펼치는 기업이 특히 선호

모델의 일생은 보통 산업 구조에 따라 결정된다. 굴뚝 산업이 전성기였을 때, 여성 연예인의 일생은 음료와 제과 모델을 맡는 것으로 시작해 숙녀복과 화장품 광고 모델로 전성기를 누리다가 결혼한 이후에는 분유와 조미료 광고를 맡고, 중년 이후에는 의약 광고를 맡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산업의 발달로 인해 모델의 운명도 달라졌다. 신세대 모델은 음료나 제과보다는 휴대전화와 이동통신 서비스 모델로 시작한다. 20대 중·후반에 숙녀복이나 화장품 모델을 맡을 때보다 30대 초반에 신용카드, 대형 냉장고, 고급 아파트 모델을 맡을 때가 더 전성기이다.

전지현이 CF퀸을 유지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새로운 세대의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는 점이다. 인터넷 소설을 영화화한 <엽기적인 그녀>에서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함으로써 그녀는 인터넷 세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또래인 장나라와 이나영은 드라마를 통해, 공효진과 배두나는 영화를 통해 이런 신세대 여성상을 구현하면서 역시 스타로 떠올랐다.
전지현은 이미지 변신에 능하다. 전지현과 다른 여성 연예인의 차이점이 있다면 기존 여배우들은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해 기업의 ‘수성’에 도움을 주는 반면 전지현은 자신의 이미지를 꾸준히 변신시켜 기업의 ‘창업’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녀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는 회사의 모델로 자주 이용된다.

네이버는 난공불락의 다음카페를 공략하기 위해 전지현을 네이버카페인의 모델로 내세우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잊어버려. 잊어버려. 깨끗이. ‘다음’에 잘 하겠다는 말 믿지 말랬지”라는 전지현의 충고에 네티즌은 기꺼이 다음을 버리고 네이버로 둥지를 옮겼다. 이나영과 전지현을 ‘everyday new face’ 시리즈의 듀얼 모델로 채택한 라네즈는 이나영에게는 기초 화장품의 ‘수성’을 맡기고 전지현에게는 색조 화장품의 ‘창업’ 역할을 맡겼다.
CF를 찍을 때 카메라 앞에 서면 전지현은 본능적인 감각으로 움직인다. 그녀는 15초 동안의 광고에서 자신이 보여주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바로 자신과 같은 여성들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녀에게 광고는 너무나 쉽다. 그녀는 “영화보다 광고가 훨씬 쉽다. 영화가 그 사람의 인생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라면 광고는 잠깐 그 사람 기분을 느껴보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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