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YS 철옹성, 구멍 뚫리고 있다
  • 부산/경남·吳民秀 기자 ()
  • 승인 1996.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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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곳에서 이변 일어날 수도…YS, 물갈이로 ‘마지막 보루’ 지키기
한때 부산은 전형적 야도(野都)였지만 YS가 3당 합당을 결행한 이후 야당 세력은 씨가 말랐다. 이곳 야당 세력이 하루아침에 통째로 여당으로 돌변했으니 그러고도 남을 일이었다. 3당 합당 이후 이곳에서 야당 활동을 해온 인사들은, 그래서 “독립 운동을 하는 심정으로 정치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그렇다고 독립군에게 은밀하게 건네진다는 군자금이 넉넉하게 들어오는 것도 아니었다. 춥고 배고픈 세월의 연속이었다. 독립군처럼 명분을 먹고 살기조차 여의치 않았다. 오히려 YS를 따라가지 않았다고 해서 ‘배신자’라는 소리를 밥먹듯 들어야 했다. 부산은 YS의 철옹성 그 자체였다. 당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평가되어 온 이들은 서울에 있는 소속 당 당료들로부터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엄동 설한에 잔뜩 움츠러들었던 부산 야당가에도 제법 따뜻한 봄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곳 야당은 지난 지방 선거를 계기로 모처럼 기지개를 켰다. 당시 부산시장에 출마한 노무현 전 의원은, 여권의 파상 공세와 DJ의 지역등권론이라는 ‘이중의 적’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서도 37.6%라는 높은 득표율을 보였다. 처음으로 야당의 가능성이 엿보인 선거였다. 게다가 지방 선거 이후에는 정치 지형까지 한결 유리하게 달라졌다. DJ가 민주당을 깨고 국민회의를 창당한 이후 민주당 사람들은 최소한 ‘배신자 리스트’에서는 빠져나왔다.

봄 기운의 첫 징후는 민주당 공천 희망자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 부산시지부의 한 관계자는 “예전 같으면 민주당 간판으로 출마하라고 말도 못 꺼냈는데, 지금은 물밑 경합이 벌어지는 곳도 있다”고 귀띔한다. 물론 문전 성시를 이룰 정도는 아니다. 몇몇 재야 인사와 대학 교수 이름이 간간이 오르내리고 있을 뿐이다.

부산에서 YS의 인기는 확실히 예전처럼 절대적이지 않다. 이는 신한국당 시지부 관계자들도 솔직히 인정하는 점이다. 현지에서 만난 택시기사 20여 명은 대부분 “YS가 야당할 때는 야당 도시라고 발전하지 못했는데, 대통령 되고 나서는 대통령이니까 못 챙겨준다는 식이다. 부산 시민이 무슨 봉이냐. 말뚝만 박아도 당선이라는 말은 옛날에나 통했다. 몇 군데는 무너질 것이다”라고 지역 민심을 전한다. 이처럼 YS를 원망하는 민심은 지난 지방 선거에서 표로 나타났다.

총선에서 신한국당이 진짜로 ‘말뚝’을 내보냈다가는 유권자의 반발 심리가 어디로 튈지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 지난 지방 선거에서도 부산 강서구와 남구청장 당선자는 무소속이었다. 부산이 YS의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에, 신한국당은 이곳에서 단 2~3석만 잃어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가뜩이나 총선 결과는 여소야대로 점쳐지는 형편이다.

마지막 보루를 지키기 위한 YS의 전략은 말뚝을 갈아치우는 것이다. 요즘 부산 지역 신한국당 의원들의 최대 관심사는 공천 물갈이 대상자와 그 폭이다. 특히 민정계 출신 의원들은 언제 목이 날아갈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 지역 정가에는 구체적인 명단까지 나돌고 있다. 12·12 관련자인 허삼수 의원(부산 동구)의 공천 탈락은 이미 기정 사실로 굳어졌다. 이 지역 출신 한 민주계 핵심 인사는 “공천 물갈이는 부산에서부터 시작한다. YS가 자기 지역을 손대지 않고 수도권 공천에서 물갈이를 시도하는 것은 명분이 없다. 여기서는 대략 5~6명 선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다.
한이헌·노무현·허삼수 ‘백병전’

YS는 말뚝을 갈아치운 자리에 자신의 핵심 측근들을 앉힐 전망이다. 허삼수 의원 지역구인 동구에는 한이헌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내정되어 있다. 반면 허의원은 무소속 출마 결심을 굳혔다. 따라서 부산 동구는 신한국당 한이헌, 무소속 허삼수,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맞붙는 3파전으로 압축됨으로써 벌써부터 전국적인 관심 지역으로 떠올랐다. 또한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은, 부산 강서구(송두호 의원)와 남구 갑(허재홍 의원) 두 곳에서 거론되고 있다.

새로 생겨난 지역구를 조정하면서도 YS는 모두 자기 심복을 심었다. 박관용 전 청와대 비서실장(동래 갑)·서석재 전 총무처장관(사하 갑)·김무성 전 내무부 차관(남구 을)·김도언 전 검찰총장(금정 을)·정형근 전 안기부 제1차장보(북구)는 전부 심복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다. 지역에서 “이렇게 가다가는 YS 측근 아니고서는 금배지 달기 어렵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정치판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바로 남의 밥그릇을 빼앗는 것이다. 필사적인 저항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부산이 YS 텃밭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기존 조직의 이탈과 반발이 심상치 않다. 특히 부산 지역의 여권 조직은 3당 합당의 여파로 인해 민주계·민정계·공화계 조직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들은 조직책이 바뀌면 즉각 반대편으로 돌아선다. 부산의 한 신한국당 지구당위원장은 “바로 그게 가장 골치 아픈 문제다. 당원들을 상대할 때 특정 계파를 떠올리는 단어 구사를 피하는 것은 상식이다”라고 말한다.

지방 선거 때 하부 조직에 ‘돈맛’을 보인 것도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4대 선거를 한꺼번에 치렀던 터라, 여당의 공조직은 네 군데서 재미를 보았다고 한다. 엄격해진 선거법은 눈을 부라리고 있는데, 조직원들의 기대치는 한층 높아져 있다. 부산의 여당 선거 관계자들은 “돈을 쓰자니 법이 무섭고 안 쓰자니 조직원 이탈이 눈에 보이고, 여간 고민스럽지 않다”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반면 야당 쪽은 여당 조직이 사분 오열되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이탈한 여권의 조직표를 흡수하겠다는 심산이다.

총선 분위기가 이처럼 심상치 않기 때문인지 최근 부산 지역 여당 지구당위원장들 모임에서,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는 ‘패키지 선거론’이 자연스럽게 대두했다고 한다. 즉 ‘부산 시민이 YS 안 밀어주면 누가 밀어주노’라는, 지역 감정 자극 전략을 다시 동원하자는 것이다. ‘설마 YS당 간판으로 떨어지기야 하겠느냐’고 자위하면서도, 선거를 앞두고 불안하기 마련인 후보들로서는 입맛 당기는 제안임에 틀림없다.

부산에서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두세 군데로 꼽는다면, 경남 쪽은 그 폭이 더 커질 것이라고 정가에서는 내다본다. 지난 지방 선거 결과가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당시 신한국당은 광역단체장 선거에서는 이겼지만 기초단체장은 전체 스물한 군데 중에 열 군데만 차지했다. 열한 군데에서는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다.

지역 행정가에서는 흔히 경남을 생활권에 따라 3개 권역으로 나누는데, 이곳 정치권에서도 3개 권역의 특성에 따른 선거 전략을 따로 세우는 것이 상식이다. 경남 지역 표밭은 마산과 창원을 중심으로 하는 중부 경남, 울산·밀양·양산·김해 등의 동부 경남, 지리산 기슭의 진주·거창·합천·함양 등 전형적인 농촌 지역으로 분류되는 서부 경남으로 나뉜다.

이 중에서도 위험한 지역은 서부 경남이다. 부산보다 대구 쪽에 더 가까운 서부 경남은 보수 성향이 매우 강하며 TK 정서의 영향권에 있는 지역이다. 특히 검찰이 전두환씨를 그의 고향인 합천에서 잡아간 이후, 이쪽의 반YS 정서가 어느 때보다 드높아졌다는 분석이다. 합천의 신한국당 권해옥 의원은 요즘 ‘전두환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더구나 경남지사 선거에 출마해서 선전했던 자민련 김용균씨가 이곳에서 부지런히 표밭을 갈고 있어서, 신한국당 경남지부는 전씨의 영향이 주변 지역까지 확산될까 노심 초사하고 있다.

경남의 다른 지역에서도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은 산재해 있다. 결코 재선을 시켜주지 않기로 유명한 마산, 노동자 표의 흐름을 종잡기 어려운 울산도 관심거리다. 국민회의 일색이라고 점쳐지는 광주·호남과 달리, 신한국당은 부산·경남의 균열과도 싸워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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