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형 부패 부르는 ‘정치 우선주의’
  • 崔寧宰 기자 ()
  • 승인 1995.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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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경제 간섭’ 많을수록 검은 거래 기승… 보스 정치 청산, 중앙당 기능 축소 필요
국정 최고 책임자가 권력을 이용해 대형 비리를 저지르고 나라 돈을 도둑질하는 것이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부패한 전·현직 최고 통치권자를 처벌한 방식과 수준은 나라마다 다르다.

92년 9월 브라질 하원은 페르난도 콜로르데 멜루 대통령을 독직 혐의로 탄핵했다. 전직 대통령도 아니고 현직 대통령을 탄핵한 것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처음 일어난 일이었다. 베네수엘라 국민은 페레스 대통령을 공금 1천7백만달러를 유용한 혐의로 탄핵하고 사법 처리했다. 아르헨티나 카를로스 사울 메넴 대통령의 비서 아미라 요마는 돈세탁 추문에 연루돼 해임 당했다. 니카라과 차모로 대통령도 그의 양아들이자 국가자문위원장인 안토니오의 대형 뇌물 수수 사건으로 퇴진 요구를 거세게 받았다.

멕시코 전 대통령 4명, 부패 혐의로 추방

멕시코는 통치권자의 부패가 전통이 되다시피 한 나라다. 70~94년 대통령 4명이 바뀌었는데, 그들 모두 임기가 끝난 뒤 부패 혐의로 추방되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사법 처리 되거나, 법정에 서지는 않았다. ‘부패’와 ‘정치적 해결’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지는 셈이다. 에콰도르의 다익 부통령은 부패 혐의로 조사 받던 중 제 3국으로 숨어 버렸다.

이탈리아의 성역 없는 ‘마니 폴리테’(깨끗한 손)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탈리아의 마니 폴리테 사정팀은 3년 사이에 이탈리아 정계의 최대 거물 줄리오 안드레오티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등 전직 총리 3명과 정치인·기업인 3천여 명을 사법 처리했다. 정치인의 부패는 이웃 나라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다나카 전 총리의 록히드 추문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76년 7월 도쿄지검 특수부는 다나카 전 총리를 뇌물 수뢰죄로 구속했다. 일본 검찰이 성역 없는 수사를 벌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일본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금권 정치라고 할 수 있다. 94년 일본 열도를 뒤흔든 ‘사가와 규빈 사건’은 금권 정치의 부패상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큰 트럭 운송 회사인 사가와 규빈의 동경지사장이 88~92년 집권 자민당 정치인에게 21억5천만엔을 건넨 것이 사가와 규빈 사건이다. 나카소네·다케시타·우노 등 전직 총리 세 사람과 자민당 최대 파벌 다케시타파의 우두머리 가네마루 부총재가 사건과 연루되었다. 이 사건으로 가네마루 부총재는 구속되었다.

이처럼 최고 권력자와 거물 정치인의 부패는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부패의 사슬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일본의 사가와 규빈 사건은 국민 경제의 모든 국면을 소수 정치인과 관료가 통제하는 관행 때문에 일어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사실 정치 권력이 경제를 통제하는 곳에서는 특혜를 얻기 위한 뒷거래가 성행하게 마련이다. 록히드 사건, 리크루트 사건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발생했다. 일본 기업가들이 연줄 없이 자본과 시장에 접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현실에서 기업가들이 정치인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권력 부패도 마찬가지이다. 남미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정치 권력이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영역을 좌지우지하는 권위주의 체제이다. 물론 90년대 접어들면서 이곳에도 개혁을 표방하는 민주 정권들이 들어섰다. 변화와 개혁을 외치는 목소리는 높지만, 이를 구조적으로 뒷받침하는 제도적 장치는 없는 실정이다. 민주화가 진전되고 있기는 하지만, 정치 우선주의 전통이 여전히 남아 있는 한, 이 지역에서 부정 부패가 일어날 가능성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다.

정부의 경제 간섭이 많으면 많을수록 부패가 심해진다. 이는 부패 권력이 지니는 공통점이다. 권력은 특정 경제 주체의 꼬리를 물고, 특정 경제 주체는 권력의 꼬리를 물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부패가 끊임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권력형 부패를 원천적으로 방지할 길은 없는 것일까. 이영조 교수(경희대·국제관계학)는 “무엇보다 정치 우선주의를 버려야 한다. 경제에 대한 정부 통제를 축소하여 시장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규제를 줄이고 작은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홍욱헌 박사(POSCO 연구소)는 ‘보스 정치’를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치가를 뽑는 과정도 중앙 당이 조정하지 말고 지방 주민이 직접 뽑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구조적 개혁 이전에라도, 비리를 저지른 권력자를 법에 따라 처벌하는 ‘법치주의’ 전통을 세우는 일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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