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 갈린 '호남선'
  • 안철흥 기자 (epigon@e-sisa.co.kr)
  • 승인 2001.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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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와〈동아일보〉왜 틀어졌나


김대중 대통령과 〈동아일보〉, 한때 서로 호감을 표시했던 둘의 관계가 왜 이토록 험해졌을까. 민주당 관계자들을 만나면 '어떻게 〈동아일보〉가 그럴 수 있나'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런데 이 말을 〈동아일보〉의 한 간부에게 했더니, 그는 이렇게 받았다. "그 말은 우리가 할 소리다." 이에 대해 〈동아일보〉의 한 기자는 이렇게 해석했다. "우리는 과거 야당의 목소리를 반영하면서 전라도 신문이라는 멍에를 뒤집어썼다. 피해는 우리가 더 많이 봤다는 게 경영진의 생각이다."




〈동아일보〉는 지난 대선 때 〈조선일보〉 〈중앙일보〉와 달리 중립을 지켰다. 신한국당 강삼재 사무총장이 DJ 비자금을 폭로했을 때 빅3 신문이 보인 태도는 상징적이었다. 당시 〈조선일보〉·〈중앙일보〉는 신한국당 주장만으로 제목을 뽑은 반면, 〈동아일보〉는 두 줄 제목으로 처리하면서 신한국당의 주장과 국민회의의 해명을 나란히 실었다. "그때 동아가 최소한 중립을 지키며 브레이크 역할을 했다. DJ도 이런 사실에 고마워했다." 당시 정치부 기자의 말이다. DJ를 도왔다고 생각할 법도 하다.


물론 악연도 있었다. 〈동아일보〉는 1997년 9월 〈한국 논단〉 이도형 발행인이 DJ를 비난한 글을 상자 기사로 보도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가 하지 않은 편향적인 편집이었다. 이에 대해 한 간부는 "당시 일부 편집국 간부들의 독단적인 행동이었고, 회사 차원에서 질책을 받았다"라고 해명했다. 실제로 기사를 실은 김차웅 정치부장은 이 일이 문제가 되어 경질되었다. 이런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대선 당시의 보도 때문에 DJ와 틀어진 것 같지는 않다.


〈동아일보〉 간부 출신인 전직 기자는 민주당 신·구파 갈등의 정서가 오랫동안 남아 있었고, 이 때문인지 〈동아일보〉와 김대통령은 예전부터 가깝지 않았다고 했다. 〈동아일보〉 창업주인 김성수씨는 민주당 구파의 대부였고, DJ는 신파 출신이다. 그러나 이 또한 관계 악화의 이유로는 타당성이 떨어진다.


현정권 출범 이후 〈동아일보〉가 반DJ·탈호남 노선을 분명히 하면서부터 둘 사이의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했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이 있다.


DJ와 〈동아일보〉의 사이가 결정적으로 틀어진 것은 김병관 명예회장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DJ는 야당 총재 시절부터 김명예회장을 만나면 "동아는 한국의 아사히가 돼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부수는 2등이지만, 영향력은 1등인 신문을 만들라는 뜻이었다. 〈동아일보〉 출신인 한 여당 의원은 그만큼 동아에 대한 DJ의 애정이 컸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현정부에 대한 동아의 비판이 도를 넘고, 김명예회장이 이런 논조를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DJ도 정을 끊었다는 것이 이 여당 의원의 진단이다. 1999년 중반 무렵 DJ는 마침내 측근에게 "김회장을 더 만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 이후부터 김명예회장의 행동에서도 초조감이 묻어났다고 이 여당 의원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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