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고토를 수복하라"
  • 이숙이 기자 (sookyi@e-sisa.co.kr)
  • 승인 2001.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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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교동 구파 '당·정·청 장악 작전' 전모
각개 격파로 '한광옥 역풍' 잠재우고 실세 재구축
한광옥 대표 지명을 둘러싸고 벌어진 민주당 내분은 동교동 구파의 전면 등장과 개혁파의 좌절로 일단 봉합되었다. '동구파' 3인의 무사가 당내 역풍을 잠재우고 당·정·청을 장악하기까지 7일 간의 숨가쁜 과정.


"정말 좋은 기회를 놓쳤다." 이한동 총리 유임과 한광옥 대표 임명으로 요약되는 김대중 대통령의 당정 쇄신에 대한 정치권 안팎의 총평이다. 지난 9월3일 임동원 장관 해임안이 가결되고 DJP 공조가 깨졌을 때만 해도 여권 내부에는 '오히려 잘 됐다' '위기를 기회로 삼자'는 긍정적인 기류가 형성되었다. 일반 국민들 역시 이런 여권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기대는 얼마 못 가서 무너졌다. 김대중 대통령이 빅3 가운데 2명을 다시 쓰는 이른바 순환보직형 인사를 단행했고, 그 결과 '쇄신 대상'이었던 특정 계파가 오히려 당·정의 전면에 나섰기 때문이다. DJP 공조 파기 이후 '동구파'(동교동 구파)가 당·정·청(청와대)을 장악하기까지 여권 내부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졌던 것일까. 그 긴박했던 7박8일을 되짚어 본다.




9월3일 해임안 통과와 DJP 이별 :

임동원 장관 해임안이 찬성 148 대 반대 119로 가결되었다. 한나라당과 자민련이 똘똘 뭉친 결과였다. 하지만 표결 직후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장의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허전하지만 홀가분하다' '오늘을 계기로 당의 개혁성과 정체성을 더 확고히 하자'는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9월4일 민주당 의원 워크숍과 이한동 자민련 총재직 사퇴 :


민주당 지도부와 의원들은 오전 10시부터 늦은 밤까지 경기도의 한 리조트에서 워크숍을 가졌다.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이번에는 여권의 면모를 일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앞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도 당·정·청의 대대적인 인적 개편을 통한 국정 쇄신이 절실하다는 의견이 봇물을 이루었다. 김중권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와 워크숍 결과를 대통령에게 가감 없이 전달하기로 했다.


하지만 워크숍 도중에 이한동 총리가 자민련 총재 직을 사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전면적인 당·정 쇄신 기류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쇄신파 사이에서는 이총리가 각료 임명 제청권만 행사하고 그만둘 것이라는 희망 섞인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이미 청와대와 여권 핵심부에서는 이총리 유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김대통령에게 이총리 유임은 △국정 혼란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을 다독이고 △총리 인준 문제로 골치를 썩지 않아도 되는 등 다목적 카드였다.


이 날 저녁 시내 한 호텔에서는 권노갑 전 최고위원을 비롯한 동교동 핵심 인사들이 모여 당·정 개편 방향을 논의했다. 권씨는 이 날 30여일 간의 외유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으며, 공항에는 김옥두 의원을 비롯한 동교동 구파는 물론 그동안 긴장 관계를 유지해온 한화갑 최고위원도 마중을 나갔다. 정가에서는 바야흐로 동교동계 맏형의 역할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9월5일 이총리 유임과 한화갑 대표설 :

하루 종일 이한동 총리가 사퇴하느냐 안 하느냐, 민주당 대표는 누가 되느냐를 놓고 정치권이 뒤숭숭했다.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는 일본 방문길에 나서면서 "이총리가 각료 제청권만 행사하고 당으로 복귀하기로 약속했다"라고 공언했다. 두 시간 후 전국장애인부모대회에 참석한 이총리는 "이것이 총리로서 마지막 사인이 될 것이다"라며 방명록에 서명했다.


그러나 여권 소식통에 따르면, 이총리는 처음부터 자민련에 돌아갈 마음이 없었다. 여권의 한 고위 인사는 "이총리는 이 날 아침 JP에게 총리 직에 남겠다는 뜻을 밝혔고, 이에 JP가 격노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화가 난 JP가 '이총리 복귀' 쪽으로 언론 플레이를 하는 바람에 이총리가 곧바로 유임 발표를 못했고, 이 때문에 이총리만 오락가락한 것으로 비쳤다는 것이다. 이총리의 '어정쩡한' 태도는 여권의 쇄신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한편 민주당에서는 차기 대표를 둘러싼 신경전이 벌어졌다. 논란의 핵심은 실세형 대표를 세우느냐 관리형 대표를 세우느냐. 여소야대 정국을 정면으로 돌파하기 위해 실세형 대표가 필요하다는 사람들은 한화갑 최고위원을 지목했고, 당을 무난하게 추스를 수 있는 화합형 대표가 필요하다는 사람들은 주로 김원기 최고위원을 밀었다. 당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한화갑 대표'를 선호하는 쪽으로 기울자 청와대와 동교동 구파 진영에서는 '대표를 하려면 차기 주자를 포기하라'는 조건을 내걸어 한위원을 압박했다.


9월6일 이총리 유임과 한광옥 대표 내정 :


아침부터 한화갑 위원과 김원기·이인제 위원 사이에 팽팽한 설전이 벌어졌다. 쟁점은 역시 실세형 대표냐 화합형 대표냐였다.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후 한위원은 의원회관의 문희상 의원 방에서 측근들과 긴급 회의를 가졌다. 그리고 나서 "조건이 붙어 있는 대표는 맡지 않겠다"라고 입장을 분명히 했다. 당시 문의원을 비롯한 대다수 측근들은 "일단 대표를 받고 보자"라고 한위원을 설득했지만 그는 거부했다.


한위원이 조건부 대표를 안 하겠다고 발표하자마자 청와대는 이총리 유임과 한광옥 대표 내정 사실을 공개했다. 당은 곧바로 충격에 휩싸였다. 이총리 유임에 대한 반대 의견을 여러 차례 올렸는데도 반영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당내 반발이 워낙 커 일찌감치 수그러들었던 '한광옥 대표' 카드를 DJ가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날 오전 김중권 대표가 최고위원회의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지만, 청와대측은 '대통령이 바쁘다'며 미루었다.


그동안 당내 개혁 그룹이 한광옥 대표 기용을 반대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김중권 대표에 이어 또다시 비서실장이 당 대표로 온다는 점. 둘째, 지난 5월 정풍 파동 당시 쇄신 대상이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청와대 비서진과 동교동 구파는 일찍부터 '한광옥 카드'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다만 당의 반대 여론이 높아 주저하다가 한위원이 물러선 것을 계기로 전격적으로 밀어붙인 것이다. 한실장과 가까운 한 동교동계 의원은 '한광옥 대표'가 선택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김대통령은 관리형과 차기 주자군 가운데 관리형을 택했고, 관리형 중에서도 명망가보다 힘있는 사람을 원했다. 그 결과가 바로 한광옥 카드다." 한마디로 한광옥은 '실세 관리형' 카드라는 얘기다.


청와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번 대표 임명 과정에서 김대통령이 가장 경계했던 것은 YS 때처럼 불공정 경선 시비가 이는 것이었다. 차기 주자군은 애당초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9월7일 소장파의 반발과 동교동의 진압 작전 :


한광옥 대표 내정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권이 긴박하게 돌아갔다. 소장파들은 조직적인 반발 움직임을 보였고, 청와대와 동교동 구파는 발 빠르게 진압 작전에 돌입했다. 결과는 동교동 구파가 한수 위였다.


동교동 구파는 9월6일 밤부터 이른바 '위험 인물'에 대한 맨투맨 마크에 들어갔다. 정동영 최고위원을 비롯한 바른정치모임 소속 의원들은 6일 저녁 한 재선 의원 집에 모여 대책을 논의했는데, 밤새도록 청와대와 동교동 의원들의 설득 전화에 시달렸다. 그 작전이 통한 것일까. 이 날 아침 김성호·이호웅·정범구 의원 등 초선들이 '탈당 불사'를 외치며 반발하고 나섰지만, 재선 그룹은 "대통령의 인사권을 침해할 수 없다"라며 물러섰다.


다음 목표는 탈당 불사파. 동교동계와 가까운 한 소장 의원은 가장 강경한 김성호 의원과 아예 밤을 새웠다. 이호웅·정범구 의원에게도 다각도로 회유 작전이 진행되었다. 이 작전의 선두에는 중도개혁포럼(중개포) 소속 의원들이 섰다. 정균환 특보단장이 이끄는 중개포에는 동교동 구파와 가까운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소장파에 대한 개별 설득과 함께 김대통령은 '청와대 비서실장 외부 기용'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박지원 정책기획수석이 한광옥 실장 후임에 오르는 것 아니냐는 당의 의구심을 미리 차단해 소장파의 반발을 하루빨리 누그러뜨리려는 의도였다. 사실 민주당에는 한광옥 대표-박지원 비서실장 체제로 동교동이 국정을 농단하려 한다는 우려가 팽배했다.


오전 11시 청와대가 개각을 발표했다. 박지원 수석은 개각 후일담을 소개하면서 자신은 청와대 비서실장 자리를 고사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동교동계 김옥두 의원도 해양수산부장관에 내정되었으나 역시 사양했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당 안팎에 다시 한번 충격을 던졌다. 한 정치학자는 "동교동계가 다 해 먹으려다 양보했다는 뉘앙스다"라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김옥두 장관설의 내막은 이렇다. 당초 DJ는 자민련 정우택 장관 유임을 적극 고려했다. 하지만 박람회를 유치하기 위해 외국에 나갔던 정장관이 청와대에 알리지 않고 귀국해 해임안 표결에 참여한 것이 드러나 결국 교체 쪽으로 기울었고, 곧바로 김옥두 의원이 내정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광옥 대표 내정에 대한 당내 반발이 걸림돌로 떠올랐다. 1997년 대선 직전 '동교동 7인은 임명직에 진출하지 않겠다'고 국민에게 한 약속도 걸렸다. 결국 '김옥두 장관' 임명이 무산되었다.


9월8일 김근태 최고위원의 반발 합류 :


김근태 최고위원의 요청에 따라 긴급 최고위원회의가 열렸다. 김위원은 대통령에게 대표 내정을 재고해 달라고 요청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상황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한 참석자는 "대통령이 승인한 사항이다. 결정을 번복하게 만들 수도 없고, 괜히 당에 상처만 날 뿐이라는 분위기가 우세했다"라고 전했다.


이 날 오후 '중개포'의 한 핵심 실세는 사석에서 "탈당파들이 다 진압되었다"라며 여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9월9일 탈당 의사 철회와 여진 :

일요일인데도 정대철·김근태 최고위원이 당사에 나와 기자들을 만났다. 특히 김위원은 △이한동 총리와 한광옥 대표 자진 사퇴 △당 위에 군림하는 특정 계보 해체 △한광옥 대표 인준을 위한 당무회의 연기를 주장했다. 평소 신중하기로 소문난 김위원 성격에 비추면 매우 강한 톤이었다. 한광옥 옹호론자들 사이에서는 즉각 '김위원이 장관을 기대했다 무산되자 튀는 것'이라는 음모론이 나왔다. '이미 진압 국면인데 뒤늦게 꺼진 불씨를 살리려 한다'는 비아냥도 뒤따랐다. 아니나 다를까, 탈당 불사파 초선 의원 3명은 이 날 탈당 의사를 철회하고 물러섰다.


그 와중에 청와대에서는 '새 대통령 비서실장=이성주 정신문화연구원장'이라는 발표가 났다. 여기저기서 "박지원 정책기획수석이 청와대를 쥐고 흔들겠군" 하는 평이 쏟아졌다. 말이 좋아 비정치인 출신 비서실장이지, 실제로는 얼굴 마담일 뿐이라는 얘기다. DJ와 별 인연이 없는 이실장은 '2001년 한국 방문의 해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을 때 문화관광부장관이던 박수석과 친하게 지냈다.


9월10일 한광옥 대표 인준 :


한광옥 대표 인준을 위해 열린 당무위원회의가 2시간이 넘게 진행되었다. 대통령이 내정한 인사를 일사천리로 인준했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었다. 하지만 결국 DJ의 결정을 번복하지는 못했다.


이렇게 해서 동교동 구파의 당·정·청 장악 작전은 1주일 만에 완료되었다. 거센 반발에 부딪쳤던 '한광옥 귀향 작전'도 마침내 성공했다. 이제는 내친 김에 차기 대권까지 좌우하려는 동교동 구파와 이를 견제하려는 세력 간에 치열한 암투가 전개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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