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아들' 그 빛과 그림자
  • 안철흥 기자 (epigon@e-sisa.co.kr)
  • 승인 2001.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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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일, '이용호 배후설' 등 도마 올라…
야당, 최종 타깃 삼아 집중 포화…
확증 없는 정치 공세로 그칠 가능성
김홍일 의원. 김대중 대통령의 장남이자 여권 막후 실세인 그를 향한 한나라당의 융단 폭격이 시작되었다. 그는 과연 '이용호 게이트'의 몸통일까. 김홍일 의원을 둘러싼 의혹설의 내막을 파헤쳤다.


"깜짝 놀랄 만한 거물도 있다." 이른바 '이용호 게이트'가 정치권을 강타한 9월21일, 한나라당 이재오 총무가 여권 실세 개입설을 제기하며 던진 말이다. 그로부터 닷새 후인 9월 25일, 국회 행정자치위 경찰청 국정감사장에서는 여야 의원들 사이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유성근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 3명이 '여권의 막강한 전·현직 의원 K씨 2명과 LG 스포츠단 사장인 정학모씨가 여운환의 배후 아니냐'는 돌발 질의를 했기 때문. 한나라당은 나아가 이번 정기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머리 글자로만 떠돌던 여권 실세의 실명을 공개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막강한 여권 실세', 'K씨' 등으로 불리는 인물은 다름 아닌 김대중 대통령의 장남인 민주당 김홍일 의원과 DJ 최측근인 권노갑 전 민주당 최고위원. 그 중에서도 김의원이 한나라당의 최종 타깃이다. 김의원은 지난해 가을 '정현준 펀드 가입설'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고, 지난 여름에는 '인천공항 주변 개발사업자 선정 의혹 사건'에서도 머리 글자가 거론되었다. 이번이 세 번째로 도마에 오른 셈이다.


한나라당은 일단 김의원과 정씨의 관계를 축으로 의혹을 집중 제기한다는 계획. 김의원의 경희대 선배이자 목포상고 출신인 정씨는, 진로건설 부사장을 지내 건설업계에 인맥이 넓고, 호남 출신 정·재계 인사들과도 가깝다는 평이다. 그는 또한 대학 시절 잠시 '주먹 세계'에 몸 담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인연들을 엮어내면 김홍일-정학모-이용호-여운환으로 이어지는 커넥션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주장이다. 한나라당은 이를 계기로 금융·건설·인사 관련 의혹을 계속 터뜨리겠다는 자세다.


물론 지금까지는 모든 것이 '한나라당의 추리'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익명의 제보'를 넘어서는 확실한 카드도 없어 보인다. 따라서 이번 파문 또한 정치 공세로 그칠 개연성이 높다. 과거 '정현준 게이트'와 '인천공항 사건'에서도 김의원 관련 의혹은 사실이 아닌 '설'이었음이 드러난 바 있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일부에서는 '이총재의 이미지에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으니 증거가 없으면 빨리 매듭짓자'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대세는 확전 쪽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어떻게든 김의원을 등장시키는 것이 최소한의 목표라고 말하기도 했다. 의혹을 끊임없이 증폭시키는 것만으로도 김의원과 여권에 타격을 주기에 충분하다는 계산이다.


김현철과 같은 점·다른 점


전례로 볼 때, 정권 실세가 관련된 의혹 사건은 해명이 먹혀들기 힘들다는 점이 여권으로서도 고민이다. 김의원측도 정씨와 대학 선후배여서 친한 사이지만 인사 개입설이나 조폭 대부설 등은 터무니없는 억측이라며 부인하고 있을 뿐, 뾰족한 수단을 찾지 못하고 있다. 건드릴수록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친인척 비리 의혹은 과거 정권마다 도덕성에 치명적 상처를 낸 단골 메뉴였다. 김영삼 정권 때의 김현철씨 경우가 대표적이다. 현철씨가 구속된 뒤로 YS는 급속히 레임 덕에 빠져들었고, 국정 막바지를 사실상 대통령 유고 상태로 보내야 했다. 한나라당이 노리는 것도, 여권이 우려하는 것도, 모두 이 점이다.


더구나 언론사 세무 조사 이후 현정권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주요 언론과 사이가 좋지 않다. 사소한 사건도 충분히 확대 증폭될 수 있다. 정학모씨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의혹'의 경우 〈조선일보〉가 한 면을 털어 집중 보도하자, 다른 신문들도 'J씨 관련 의혹'을 크게 취급하기 시작했다. 민주당 일부에서 이번 사건을 '언론의 복수극'이라고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왜 김홍일 의원을 타깃으로 삼을까.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선정성이 제일 큰 이유지만, 막후 실세라는 김의원의 여권내 위치 또한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배경이기도 하다. 한나라당의 주장처럼 '제2의 김현철 사건'은 현실로 일어날까.


김의원과 김현철씨는 여러 모로 비교 대상이다. 아버지가 현직에 있을 때 대통령의 아들이고, 아들 가운데 유일하게 정치에 참여했거나 하고 있다. 공공연하게 '황태자' '소통령'이라고 불리던 김현철씨와 'K2'(DJ를 K1이라고 부를 때)라는 은어로 지칭되는 김의원 모두 자타가 공인하는 막후 실세이다. 두 사람 모두 아버지의 정치적 동지였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공통점 못지 않게 차이점도 많다. 집권 전부터 아버지를 돕기는 했지만, 김현철씨가 본격적인 정치 참여를 시작한 것은 집권 후였다. 김현철씨는 1996년 총선 때 소수의 주변 인사로 짜인 광화문팀을 이끌면서 여론조사를 진두 지휘했고, 공천 작업을 사실상 좌우하면서 권력의 핵심에 자리 잡았다. 이후 그는 짧은 시간 안에 YS의 대리인으로 떠올랐다. 국정 전반에 대한 큰 밑그림을 짜기도 했고, 나아가 집행에 이르기까지 관여했다. 정권 후반, 그는 이원종 당시 정무수석과 호흡을 맞추며 문민 정부의 실질적인 2인자로 활동했다.


김현철씨는 손수 조직을 꾸리지 않아 주변에 챙겨주어야 할 사람이 없었고, 소소한 잡음 따위는 생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위상을 볼 때, 한보 사태 같은 굵직한 비리에 깊숙이 개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반면 김홍일 의원은 김현철씨와 비교할 때 위상과 정치적 스타일에서 매우 다르다. DJ는 그에게 청년조직 관리 역할만을 주었고, 그 또한 1980년대 초반부터 지금껏 민주연합청년동지회(현재의 새시대새정치연합청년회·연청) 명예회장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민주당 안팎에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독자적인 인맥을 쌓을 수 있었다. 달리 말하면 그가 챙겨야 할 식구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권 인사들이 그와 관련한 대형 비리 의혹에는 초연해 하면서도, 소소한 측근 비리에는 신경을 곤두세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DJ, 안쓰럽게 여기며 철저하게 아들 관리


정치인 김홍일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후광보다 그늘로 다가온 적이 많았다는 점도 김현철과 다른 점이다. 그의 불운은 다른 동교동계 인사들과 비교해도 확연히 드러난다. 동교동의 가신들은 대부분 1992년 총선에 출마했고, 공식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만은 '총재에게 도움이 안된다'는 한마디에 뜻을 꺾어야 했다. 그가 정치인 명함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1993년, 아버지가 대선에서 패한 후 정계 은퇴를 선언한 다음부터였다. 그는 1996년에야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했고, 의원 배지를 달았다.


건강 문제도 김의원의 행동 반경을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1980년 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 구속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한 그는, 그때 척추를 다친 후유증으로 지금껏 고통받고 있다. 혼자서는 열 걸음도 채 걷지 못할 정도로 다리가 불편하며, 말을 절반 이상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언어 구사에도 문제가 있다.


김대통령도 이런 김의원을 한없이 안쓰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동교동계 인사들을 만나면, 김대통령이 김홍일 의원 얘기를 하며 눈시울이 붉어진다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그러나 한 사람에게 힘을 몰아 주지 않는 성격 때문에, 또한 김현철 사건을 경험했기 때문에, DJ의 아들 관리는 매우 철저했다는 평이다.


김의원과 가까운 동교동계 한 의원은, DJ가 김의원에게 돈과 조직 아무 데도 손대지 못하게 했다면서, 김의원이 알려진 것처럼 여권 2인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의원의 측근은 김의원이 아버지에게 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으며, 무척 조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민주당 안팎에는 '김의원한테는 로비가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 퍼져 있다.




그렇지만 한국적 상황에서는 대통령 아들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힘이 쏠리게 마련. 동교동계의 한 인사는, 권노갑 고문과 함께할 때보다 김의원과 함께할 때 주위에서 훨씬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며 김의원의 여권내 비중을 암시했다. 또한 김의원을 안쓰럽게 여기는 DJ의 마음이 워낙 알려져 있어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김의원을 알아서 챙겨 주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현정권 초반 정부의 핵심 요직에 근무했던 동교동계의 한 인사는, 이런 정황을 들어 20년 넘게 정치를 한 김의원으로서는 꼭 챙겨줘야 할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고, 이들의 민원 처리 정도는 들어 주었을 개연성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그 정도 민원이야 다른 의원들도 모두 처리하는 수준이며, 자기가 확인한 바로는 김의원이 이권이나 인사 개입에는 전혀 손대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당 안팎에서 제기하는 불만들 중에는 '보통 민원'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 꽤 있다. 연청이나 경희대 인맥 등 가까운 측근들을 열심히 챙겼고, 정부기관 등의 낙하산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는 의혹도 그 중의 하나다. 현재까지 김의원 측근 출신으로 청와대나 정부 주요 기관 임원에 임용되었던 사람은 10명 남짓 된다. 이만영 청와대 정무 제1비서관은 김의원의 보좌관 출신이고, 신극정 경기도 정무부지사, 조동회 국민건강보험공단 감사, 장남진 농업기반공사 감사, 조만진 한국보훈복지공단 사장 등은 연청의 핵심 간부 출신이다. 그러나 김의원측은 김의원이 영향력을 발휘한 것보다는 당 생활을 오래하면서 공로가 인정된 점이 더 크게 반영되었다고 주장한다.


당내 인사나 장관 인사 개입설에 대해서도 측근들은 사실과 다르다고 항변한다. 개입할 통로가 아예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총선 때 그가 관여한 흔적은 거의 없다. 연청 출신 정치지망생 중 공천을 받은 사람은 현재 연청 중앙회장을 맡고 있는 김덕배 의원이 유일하다.


김홍일 의원은 매일 오전을 국회 의원회관 3층에 있는 의원 사무실에서 보낸다. 그때마다 그의 사무실은 사람들로 붐빈다. 방문객들도 측근에서부터 지역 촌로, 정부기관 관료까지 다양하다. 몸이 불편하고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만남 자체가 전부인 경우가 많지만, 김의원은 이들 방문객을 마다 않고 거의 다 만난다. '대통령은 만날 수 없으니 아들이라도 보고 가겠다는 사람들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 김의원의 생각'이라고 황우연 보좌관은 설명했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원치 않게 의혹 대상자와 접촉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작심하고 김의원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이용호 게이트와 관련해서 이름이 거론되는 사람은 물론 김의원 후원회에 한 번이라도 다녀간 사람은 모조리 조사한 것.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비리는 없다는 판단이 섰다. 김의원은 생각 이상으로 주변 정리를 깨끗하게 했고, 그래서 청와대는 안심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청와대, 최근 김의원 주변 샅샅이 뒤져


여권이 특검제를 도입해서 이용호 게이트를 샅샅이 파헤치자고 선수를 치고 나온 것도 이런 자신감 때문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국정조사를 주장하며 대통령이 수용 의사를 밝힌 특검제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의혹에 대한 확증이 없는 상황에서는 정치 공세를 펼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 때문이다.


김홍일 의원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 김의원은 평소 앞으로도 10년은 더 정치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평생 배운 게 정치밖에 없는데, 국민의 신임을 받는 한 정치를 계속해야 하는 것 아니냐." 측근들의 호소다. 그러나 여권 일부에서는, 김의원이 정치를 계속하는 것 자체가 DJ에게 짐이 된다고 보는 시각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대통령 아버지와 국회의원 아들. 서로 간에 힘이면서 짐이기도 한 이들의 이야기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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