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 인터뷰/"총재 선거에도 출마하겠다"
  • 이숙이 기자 (sookyi@e-sisa.co.kr)
  • 승인 2001.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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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 가장 힘든 인터뷰였다. 민주당 내부의 권력 갈등 양상이 한 고비를 넘기면서 이인제 고문이 숨고르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의 한 측근은 이고문이 당분간 말을 아끼면서 당의 발전과 쇄신을 위한 특별대책위원회의 활동을 지켜 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신 이고문은 정치 현안보다는 자신의 비전을 밝히고 싶어했다. '정계 개편' '연대' '음모론' 같은 구시대 정치의 상징어들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려는 의도였다. 서울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일요일(11월11일)인데도 분 단위로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왜 총재 직을 사퇴했다고 보는가?




사퇴문에 동기와 사퇴 후 하실 역할 등이 나와 있다. 그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게 옳다. 이제 새 지도부가 당을 책임 있게 운영해야 하고, 후보가 등장하면 정치적 지도력도 서서히 대통령으로부터 이양될 것이다.


'김심'이 개입할 여지는 없어진 셈인가?


대통령은 과거에도 국민의 지지를 가장 높게 받는 사람이 당원들의 지지를 받아 다음 후보가 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총재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든 가지고 있지 않든 대통령의 영향력은 특별히 문제될 게 없다고 본다.


한광옥 대표나 중도개혁포럼이 '김심'을 대변하리라는 관측이 있다.


그렇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국민의 자유로운 판단, 당원들의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기조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리라고 본다.


이고문측은 3∼4월 전당대회를 주장하고 있지만, 주자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엔 1월 전당대회가 불가피한 것 아닌가?


비상대책기구에서 정치 일정과 새 지도체제에 대해 당의 총의를 반영한 안을 만들어낼 것이다. 1월 전대는 당헌에 규정된 정기 전당대회로, 절차에 의해 얼마든지 변경할 수 있다.


합의가 안될 경우엔 어떻게 하나?


후보들의 합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비상대책기구에서 논의된 결과를 당무회의에서 의결하면 된다. 정 의견이 나뉘면 대책기구에서 다수안과 소수안을 내고, 이를 놓고 표결하면 되는 것 아닌가.


총재 선거에도 나설 작정인가?


일단 출마할 것이다. 당원들의 단결된 힘을 모아 선거를 승리로 이끌려면 총재와 후보가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다만 취임 후에는 대통령이 당직을 가지는 게 국가 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동교동 구파나 중도개혁포럼이 이고문 지지 세력이라고 소문 나 있다. 사실인가?




많은 사람이 나를 지지해 준다는 보도는 항상 달콤하다. 하지만 나는 늘 담담하게 모든 당원들과 만나고 있다. 파벌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큰 목표를 향해 모든 당원이 힘을 합해야 한다.


권노갑 전 고문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그 분은 지금 뚜렷한 직책이 없고, 그동안 공적으로만 접촉했기 때문에 어떤 영향력과 지도력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른다. 다만 그분이 늘 하는 말씀은 국민의 지지가 높은 사람을 후보로 내세울 때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고문측이 제기했던 '음모론'을 두고 동교동계 압박 카드라는 해석이 있다.


나는 내 입으로 음모론을 얘기한 적이 없다. 한 기자가 '음모론이 있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하기에 '내가 음모가 있는지 없는지 알 길이 있느냐. 알면 기자들이 알지'라고 했더니 이상하게 써서 시끄럽게 됐다.


반이인제 진영이 연대를 모색하고 있는데….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앞서가는 후보를 제치려고 다른 주자들이 연대하는 것은 맞지 않는 일이다. 미국 예비 선거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이 한 번이라도 있나? 1997년 신한국당이 국민적 지지가 많은 나 대신 정파간 이해에 따라 이회창씨를 후보로 만들었다가 결국 망했다.


이번에 민주당에서도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과거 여당은 후보가 누구든 무조건 이길 수 있다는 교만함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 민주당은 그런 교만을 부릴 여유가 없다.


전당대회 대의원 수를 10만명으로 늘리자는 제안에는 동의하는가?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 장소에서 모이려면 기술적인 제약이 따르므로 가능한 범위에서 인구 비례·성별·나이 등 국민의 여론을 제대로 담아낼 대의원을 충원해야 한다.


이고문은 '국민적 지지'를 강조하지만, 이고문의 본선 경쟁력을 의심하는 분석도 많다.


내가 후보가 되면 영남에서 표를 못 얻을 것이라고들 하는데 1997년 대선 당시 영남에서 이인제 지지율이 3개월 이상 60%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이인제가 YS로부터 돈을 받았다' '이인제 찍으면 DJ가 당선된다' 같은 흑색선전 때문에 20%대로 떨어졌다. 하지만 당시 내가 얻은 26%와 DJ가 얻은 13%가 결국 어디로 가겠는가?


'이인제 학습 효과'가 나타나 이고문을 찍었던 사람도 돌아서리라는 관측이 있다.


그건 한나라당 사람들이 만들어낸 궁색한 논리에 불과하다. 현실에 맞지 않고 의미도 없다. 아닌 말로 영남 사람들이 바보인가? 예전에는 몰라서 이인제 찍고 이젠 학습했다고 안 찍게….


당내 경쟁주자 진영에서도 하는 말이다.


궁하면 뭐든 동원하지 않겠나.


DJ가 총재 직에서 물러나면서 정계 개편 가능성이 더 커진 것 아닌가?


인위적인 정계 개편은 거의 불가능하고, 자연발생적인 정계 개편 역시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 야당에도 분열 조짐이 전혀 없고… '영입' 얘기도 나오는데, 우리 당은 개방 정당이니까 누구든 입당해서 경선에 출마할 수 있다. 다만 '만들어진 후보'는 다 옛날 얘기다.


일각에서는 반이회창 세력이 뭉쳐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반대하면 이회창씨를 안 찍으면 되지… 그런 만들어진 논리에 거부감을 느낀다. 다음 대통령은 국민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지 누구를 반대하기 위한 선거가 아니다. 그런 이상한 논리를 전개하는 사람들에게 언론이 왜 지면을 할애하는지 모르겠다.


영남 출신이 제3 후보로 나올 가능성은?


현실성이 없다. 다음 선거에서 지역주의는 상당 부분 극복될 것이다. 내가 후보가 되면 영남에서도 깜짝 놀랄 만한 득표를 할 것이다.


YS와 JP는 다음 선거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이제는 대결과 투쟁으로 점철된 시대가 가고 새로운 비전과 신념과 전략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일선에 나서야 한다. 두 분은 새로운 세대 지도자가 국가를 잘 이끌어갈 수 있도록 후견인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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