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동 등에 업은 호남 사단의 '전횡'
  • 정희상 기자 (hschung@e-sisa.co.kr)
  • 승인 2001.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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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용택 · 임동원 체제 때 국정원 장악…
신 건 원장, '척결'에 한계
"김은성 전 2차장과 정성홍 전 경제과장은 안기부맨도 국정원맨도 아니었고, 중앙정보부맨이었다." 최근 경제 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두 사람을 두고 그동안 이들의 행태를 쭉 지켜본 한 국정원 간부는 이렇게 표현했다. 정보기관을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뜨린 두 사람이 '중정맨'이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이는 정식 지휘 계통을 벗어나 권력 실세와 줄을 대고, 그 힘을 통해 국정원 안팎에서 무소불위의 전횡을 일삼았던 이들의 행태에 대한 야유이다.




그러면 지난 3월 취임한 신 건 국정원장은 그동안 이들의 전횡을 몰랐을까. 신원장은 현정부 들어 첫 국정원 체제에서 국내 파트를 담당하는 2차장을 지냈다는 점에서, 김은성 2차장을 정점으로 하는 일부 경제팀 간부의 무리한 행태를 알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내부 인사들의 전언에 따르면, 신원장은 그동안 이들이 일으키는 잡음을 심각하게 보고 경고 조처(김은성 전 2차장)와 일부 좌천성 보직 변경(정성홍 전 경제과장)을 해 기강을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곪은 상처'를 완전히 치유하기는 신원장으로서도 힘에 부쳤다는 것이다.


김대통령과 주례 보고를 통해 독대하는 신원장으로서는 이론적으로는 얼마든지 이들을 제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러나 역시 김대통령이 신임해온 동교동 실세들을 뒷배경으로 삼아 활개치는 이들을 단호히 도려내기가 신원장으로서도 간단치 않았을 것이다.


신원장이 취임 후 6개월여가 지나도록 이 사건을 내부에서 말끔히 정리하지 못한 데는 현정부 초반부터 누적된 국정원 조직 내부의 인사 난맥이 자리 잡고 있다. 분란은 이종찬 원장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이종찬 원장은 YS정권 시절 김현철씨에게 줄을 댄 직원들과 대통령 선거 때 여당 후보 지원 등 정치에 개입한 혐의가 있는 직원을 색출해 약 8백명을 해직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호남 출신이 전횡하는 체제는 아니었다. 전반적으로 호남 출신을 능력에 맞게 중용하는 기조로 바뀌기는 했지만 이종찬 원장과 인사 및 예산을 다루는 기조실장(문희상 의원)이 호남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국정원 안에서 이른바 '끼리끼리' 정서는형성되지 않았다.


'호남 출신 5적' 행태에 호남 출신도 경악




그러나 극성스런 일부 호남 출신 국정원 직원들은 이종찬식 인사를 못마땅해 했다. 정권 교체 초기부터 권력 핵심인 동교동계와 줄을 대고 있던 이들은 살생부를 만들었다. 이 문건을 넘겨받은 실세들이 이종찬 원장에게 이를 들이밀었지만 이원장은 수용하지 않았다.


그러자 동교동계 및 국정원 일각에서는 이종찬 원장이 차기 대권 욕심을 가지고 국정원에서 서울·경기·영남 출신을 우대해 지지 세력을 만들려 한다는 의구심을 확산시켰다. 실제 정치인 출신인 이종찬 원장은 버스를 대절해 지역구민들에게 국정원을 개방하는 등 정보기관 운영에 문제가 있다는 여권 핵심의 심증을 뒷받침하는 행동을 해 천용택 원장으로 교체되었다.


군 출신으로 국정원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천용택 원장 체제가 들어서자 권력 실세 그룹과 선이 닿은 국정원의 호남 출신 인사들은 초기에 작성한 '살생부'를 인사에서 관철했다. 김은성씨가 2차장이 된 때는 이 무렵이다. 그는 당시 최 아무개 기조실장, 권 아무개 1차장과 함께 권력 실세가 구축한 국정원 호남 사단으로 분류되었다. 최근 비리 사건의 도마에 오른 김형윤 경제단장과 정성홍 경제과장 역시 이 시기에 국정원 호남 인맥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이 즈음부터 국정원 인사도 표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호남 출신 한 전직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퇴직 인사들에게는 호남 출신 5적이란 말이 있다. 당시 기조실장과 그 아래 총무·인사 분야 호남 출신 몇 사람인데, 문제는 새까만 후배가 호남 출신이라는 것만 믿고 인사를 주물렀다는 점이다. 그나마 능력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부서에 호남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심어야 한다는 식이었다. 호남 출신인 나조차 마음이 떴다."


비상식적인 호남 인사의 전형으로 거론되는 경우는 김 아무개씨이다. 1997년 대선 막바지에 국정원 감사실 직원이던 김씨는 내부 서류를 가지고 나와 김대중 후보에게 넘겨주려다 발각되어 구속된 사람이다. 정권이 교체되자 핵심 실세들 사이에서는 김씨의 '충정'과 공로를 높이 사야 한다며 원직 복귀를 추진했다. 그러나 이종찬 원장이 조직 기강을 이유로 원직 복직 대신 산하 단체에 복직시키겠다고 제의하자 김씨 본인이 이를 거부했다. 결국 김씨는 천원장 체제가 들어선 후 3급 과장으로 승진해 원대 복귀했다. 이런 인사를 지켜본 국정원 직원들 사이에서는 '다음 대선 때는 나도 자료 들고 유력 후보에게 가야겠다'라는 자조 섞인 얘기가 돌았다고 한다.


천원장 시절 구축된 호남 세력 중심의 인사 체제는 이후 임동원 원장 시기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임원장은 비서실 직원마저 전임자 체제를 그대로 이어받을 정도로 인사 개입에 소극적이었던 데다 햇볕정책에만 집중적으로 매달렸기 때문에 실세들의 국정원 인사 개입은 더욱 극성을 부렸다고 한다. 결국 임원장이 대북 정책에 혼이 팔려 있는 사이에 국내 파트인 김은성 2차장 체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시기는 기업 구조조정 정책과 벤처 육성 시책이 맞물려 있던 상황이어서 일부 직원들이 비리를 저지르기에 알맞은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신 건 원장의 '정치 불개입' 원칙이 파멸 막아


결국 지난 3월 임원장은 김대통령의 햇볕정책 보좌에 전념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물러나고 법조인 출신 신 건 국정원장 체제가 들어섰다. 신원장은 지난 4월 정치인 출신을 일부 기용하리라는 야당의 예상을 깨고 차관급인 1·2·3 차장과 기조실장 등 핵심 요직을 모두 내부 인사로 채웠다. 그러나 신원장은 이미 오랜 기간 국정원을 장악하고 있던 호남 사단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다. 국정원 안팎에서 권력 실세들과 사적으로 연결된 내부 인사 난맥상과 비리 구조를 바로잡기에는 신원장 취임 시기가 너무 늦었다는 시각도 있었다.


국정원 직원들은 이번 사건이 일부 간부의 비리 사건에 머무른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한다. 비록 전임자 시절에 발생한 비리지만 경제팀뿐만 아니라 정치팀마저 구설에 올랐다면 국정원은 치명타를 입었을 것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동안 신원장이 입만 열면 강조해온 '정치 불개입' 지시가 그나마 원장 자신은 물론 조직을 최악의 상황에서 구해냈다는 안도감이 담겨 있다.


신원장은 이번에 드러난 국정원 내부의 환부를 도려내고 국정원 조직을 장악해 정보기관 본연의 틀을 세울 수 있을지 시험대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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