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아들 '3홍'의 정권말 홍역
  • 이숙이 기자 (sookyi@e-sisa.co.kr)
  • 승인 2001.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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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일·홍업·홍걸씨, 벤처 게이트 관련해 입방아 올라...
홍걸씨(김대중 대통령의 3남) 얼굴을 잘 모르는 한 민주당 의원이 홍일·홍업 씨와 같이 있는 진승현씨를 홍걸씨로 착각했다. 진승현 게이트가 터지자 텔레비전에서 진씨를 본 그 의원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최근 의원회관에 돌고 있는 엽기적 소문 가운데 하나다. 동교동 모임에 초청되었던 한 의원의 경험담이라며, 그래서 홍일·홍업 씨가 아무리 진씨와의 관계를 부정해도 여권 인사들조차 내심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얘기를 전해 들은 한 동교동 출신 의원은 ‘대꾸할 가치도 없는 거짓말’이라고 잘라 말했다. 홍일·홍업 씨가 자리를 함께한 적이 드문 데다, 둘이 있을 때 외부 인사가 낀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그런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이 오히려 진씨 사건에 연루됐을 수도 있다”라며 흥분했다.


진승현씨를 DJ 아들로 착각했다는 그 주인공이 나오지 않는 한 이런 소문은 확인할 길이 없다. 하지만 그만큼 두 아들에 대한 불신이 정가에 확산되고 있다는 증거는 된다. ‘대통령 아들’이라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인화성 강한 물질로 의혹의 불씨가 옮겨 붙었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자식 단속’부터 했다. 그는 1998년 1월 세 아들을 일산 자택으로 불러 대통령의 가족은 처신에 주의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1월18일 가진 첫 번째 ‘국민과의 대화’에서는 ‘자식 문제를 어떻게 하겠느냐’는 탤런트 유동근씨의 질문에 “가족 문제는 저에게 맡겨 달라”고 대답했다.


둘째 홍업씨에게 아태재단 부이사장을 맡기기로 한 것도 자식 관리의 일환이었다. 당시 홍업씨는 ‘밝은 세상’이라는 기획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DJ 참모진은 이 회사를 그대로 놓아두면 구설에 오르기 십상이라며 해체를 건의했다. 그 대신 활동이 공개되는 일을 홍업씨에게 맡겨 비리의 여지를 차단하자는 것이었다. 장남은 유권자가 지켜 보는 정치인이고, 막내 홍걸씨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어 달리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임기 말이 되면서 속속 터져 나오는 아들 관련 의혹은 이런 DJ의 단속이 헛일이었음을 보여준다. 여권의 한 고위 인사는 “YS 때는 한 사람이 문제였는데, 이제는 세 사람으로 확대 재생산되었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국내에 있는 두 아들도 모자라 미국에 유학 중인 홍걸씨까지 국내 정치권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30쪽 상자 기사 참조).


국내에 있는 홍일·홍업 씨를 둘러싼 의혹의 핵심은 과연 두 아들이 DJ 정권의 ‘권력형 비리’에 연루되었느냐 여부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벤처 게이트마다 홍일씨 이름이 거론되더니, 급기야 이번 진승현 게이트에서는 그동안 베일에 가려 있던 홍업씨마저 등장했기 때문이다.


정현준 게이트 때는 김홍일 의원이 신양팩토링 개업식 때 화환을 보냈다는 정현준씨의 증언이 국정 감사장에서 터져 나왔고, 이용호 게이트 때는 김의원이 조폭과 어울려 다닌 사실이 불거졌다. 그리고 이번 진승현 게이트에서는 진씨의 로비 창구 노릇을 한 혐의로 구속된 정성홍 전 국정원 경제과장이 김홍일 의원에게 총선 자금을 전달하려 했던 점과, 역시 진씨의 로비스트였던 당료 출신 최택곤씨가 김홍일 의원 이름으로 검찰에 돈봉투를 돌리고 홍업씨에게 구명을 요청한 일이 구설에 오르고 있다.


두 아들 “비리 연루자들의 물귀신 작전일 뿐”


이에 대해 홍일·홍업 씨는 비리 연루자들의 물귀신 작전이자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의 지나친 의혹 부풀리기라고 항변한다. 단지 안면이 있을 뿐인 사람들이 자기 위상을 과시하려고 대통령 아들을 끌어들였다는 주장이다. 한 측근은 “돈 주러 온 것 거절했고, 사법 처리 막아 달라고 부탁하러 온 것 그냥 돌려보낸 것말고 뭐가 문제냐. 한마디로 실패한 로비 아니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들의 결백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동안 대통령의 아들이 누렸던 위세로 보면 고의든 아니든 권력형 비리에 연루되었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정·관계 사람들에게 ‘대통령의 아들이 세냐?’고 물어보면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DJ 정권에서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한 인사는 “대통령의 결정에는 이의를 제기해도 대통령 아들의 부탁은 거절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대통령과는 척질 가능성이 적으나 대통령 아들들과는 감정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우려해서다.
도대체 대통령 아들이면 다 통한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말미암는 것일까.
권력은 일인자와의 거리에 따라 결정된다는 만고불변의 법칙을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다. 집권 초기 김대중 대통령 가족은 매주 일요일 청와대에서 가족 모임을 가졌다. 외부에서는 그 자리에서 오가는 말이 대통령의 판단에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야당 시절 밀사 역할 주로 맡아



‘김현철 학습 효과’도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아들이 정권을 쥐고 흔들던 YS 때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똑같은 경우를 예상하며 ‘알아서 긴다’는 것이다.
더욱이 홍일·홍업 씨는 현철씨와는 또 다른 무게를 지니고 있다. 아들을 넘어서서 김대중 대통령과 생사고락을 같이 한 ‘동지’ 개념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대통령이 아들들에게 가진 연민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는 것이 측근들의 전언이다. 이 때문일까. 청와대 고위직을 거친 한 인사는 사석에서 “다른 건 몰라도 대통령 아들의 부탁은 최대한 들어주려 노력했다”라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문희상 전 정무수석은 이런 분위기를 잘못 파악해 낭패를 본 경우다. 그는 집권 초기 홍일·홍업 씨를 외유시키라고 여러 차례 건의했다. 잡음이 일 소지를 아예 없애자는 충성 발언이었지만, 그의 건의가 관철되기는커녕 오히려 그가 조기 퇴진하는 빌미가 되고 말았다.


이런 DJ와 두 아들의 각별한 관계를 이해하려면 야당 시절로 거슬러올라가야 한다. DJ가 대통령에 처음 출마했을 때 청년이었던 김홍일 의원은 ‘특수’ 임무를 도맡아 했다. 최근 박정훈 전 의원의 부인이 폭로한 정치자금 수수가 대표적이다. 공천 헌금은 주로 권노갑 전 고문이 관리했지만, 간혹 김의원이 공천 헌금 창구 역을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15대 총선 때 전북에서 당선된 ㅈ 아무개 의원의 사례가 유명하다. 그는 공천 헌금을 김의원에게 낸 후 수표를 복사해 두었다가 공천이 불투명해지자 이희호 여사에게 내보인 후 공천을 따냈다고 한다.


그러나 돈보다는 밀사 역할이 더 많았다는 것이 동교동 참모들의 증언이다. 1970∼1980년대는 DJ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던 터라 김의원이 아버지의 메신저 노릇을 한 것이다. 김의원은 또 ‘연청’이라는 전국적인 청년 조직을 만들어 직접 관리했다. 김의원이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 남산에 끌려간 죄목도 ‘연청을 통해 김대중의 내란 음모를 도우려 했다’는 것이다. 그때 당한 고문으로 김의원은 심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DJ가 주위의 만류를 무릅쓰고 장남에게 정치인의 길을 열어준 데에는 그런 부채감이 크게 작용했다.


1993년부터 정치를 시작한 김의원과 달리 차남인 홍업씨는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언론사의 한 간부조차 홍업씨가 DJ의 전 부인 소생인지, 이여사 소생인지 헷갈려 했을 정도다. 이는 야당 시절부터 사람 앞에 잘 나서지 않는 그의 성격 때문이다. DJ 정권 들어 그가 정치인이 모이는 자리에 나타난 것은 권노갑 전 고문 자제의 결혼식이 유일하다.


경희대 의대에 입학한 홍업씨는 2년 만에 경영학과로 옮겼다. 의사 공부를 감당할 만한 여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 남산에 끌려가 치도곤을 당했고, DJ가 미국에 망명했을 때는 아버지를 수행했다.


형과 달리 뒤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던 그는 1987년 대선을 앞두고 고등학교·대학교 친구인 윤흥렬씨와 함께 정치광고 대행사를 만들어 아버지 선거를 도왔다. 홍일씨의 처남이기도 한 윤씨는 당시 대기업 광고대행사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홍업씨가 그를 설득해 일반 광고를 담당하는 ‘키 프로덕션’과 정치 광고를 대행하는 ‘평화기획’을 만든 것이다. 1997년 대선에서 DJ의 정치 광고를 맡아 혁혁한 공을 세운 ‘밝은 세상’이 바로 평화기획의 후신이다.


ROTC 출신인 홍업씨는 1997년 대선 때 ROTC 인맥을 묶어내는 데도 힘을 쏟았다. 군 사정에 밝은 여권의 한 인사는 “전국 4년제 대학에서 매년 배출되는 ROTC는 군내 단일 조직으로는 가장 크고 결속력도 강하다”라면서, 평생 사상 논쟁에 시달려온 DJ에게는 대선 때 군의 지지가 무엇보다 절실했다고 말했다. 부자지간의 이런 동지적 관계가 DJ 집권 후 두 아들에게 힘이 쏠리는 원동력으로 작용한 셈이다.


두 아들의 위세는 주로 인사에서 드러났다. 우선 청와대에는 홍일·홍업 씨 인맥이 촘촘하다. 김길성 민정비서실 행정관과 박한수 통치사료실 행정관이 연청 출신이고, 이만영 정무비서관은 김홍일 의원의 보좌관을 지냈다. 홍업씨와 함께 일했던 ‘밝은 세상’ 팀도 모두 청와대 식구가 되었다. 역시 ‘밝은 세상’ 기획위원으로 일했던 민주당 현역 의원은 ‘밝은 세상’ 직원들의 일자리를 알아보던 홍업씨를 도운 적이 있다고 말했다.


공직에도 두 아들과 가까운 사람이 적잖이 진출했다. 안영칠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감사·신재돈 노량진 수산시장 감사·신극정 경기부도 지사가 대표적인 홍일씨 인맥이다. 민주당 부위원장에서 일약 외교통상부 동남아국장으로 발탁되어 설왕설래가 많았던 김세웅씨는 홍업씨 작품으로 꼽힌다. 한 여권 인사는 “김씨는 지난해 총선 때 무소속으로 출마해 민주당 후보를 공격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당직에 복귀시켰다가 공직에 발탁하는 일은 대통령 아들 아니면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호가호위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구설 오른다”



김홍일 의원은 국회의원 공천에도 관여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공천팀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김의원은 어느 실세처럼 무조건 자기 사람을 심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미 물망에 오른 자기 사람이 밀리는 것은 최대한 막으려고 했다. 심재권·배기선 의원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라고 말했다. 심재권 의원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 가장 고생했다는 이유로 김홍일 의원이 끔찍하게 여기는 사람 가운데 하나다. 심의원이 지난 9월 ‘뜬금없이’ 총재 비서실장에 임명된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하면 쉽다. 배의원은 연청 초기 멤버로 현재 연청 중앙회장을 맡고 있다.


이렇듯 두 아들과 가까운 사람들이 출세하는 것을 지켜 본 사람들 사이에 ‘대통령 아들이면 다 된다’는 생각이 퍼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심지어 민주당 의원들조차 어려운 일은 두 아들에게 부탁하는 일이 왕왕 발생했다. 김의원에게 청탁을 해본 적이 있다는 한 인사는 김의원이 자기 명함 뒤에 소개 말을 써주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홍일·홍업 씨는 다 그만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지 결코 자기들이 밀어서 발탁된 것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자기들도 고생한 사람을 도우려고 청탁을 넣었다가 거절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이다.


두 사람은 오히려 대통령 아들로 살아가는 것이 죽을 맛이라고 하소연한다. 수십 년 동안 아버지를 도운 사람들이 모두 자기들을 찾아오지만 별로 해줄 것이 없다는 말이다. 홍업씨의 한 측근은 “무턱대고 찾아오는 분을 내칠 수는 없고, 그러다 보니 호가호위하는 사람들 때문에 구설에 오르게 된다”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처럼 대통령 아들들이 화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두 아들을 사칭한 사기 사건이 연속해서 터지고 있다. 김홍일 의원 명의로 후원금을 보내달라는 팩스가 중소기업에 날아드는가 하면, DJ가 진주교도소에 수감되었던 시절, 면회 간 식구들이 잠시 머무르곤 했던 교도소 앞 도장가게 주인은 최근 ‘대통령 양아들’이라며 사기 행각을 벌이다가 붙잡혔다.
DJ 참모들은 진승현 게이트에 홍일·홍업 씨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반박한다. 최택곤씨가 두 아들 이름을 팔고 다녔다는 것이다. 이들은 두 아들이 게이트에 연루되었다면 그 주변에 ‘돈’이 돌아야 할 텐데 상황은 정반대라고 주장한다. 아태재단은 최근 대규모 구조 조정을 해 연구원 임금을 35%까지 깎았고, 김홍일 의원은 아주 가까운 의원들에게조차 후원금을 20만원 이상 못 주는 형편이라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두 아들의 해명을 그대로만 믿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당장 김의원은 정성홍씨와 단순히 아는 사이일 뿐이라고 했으나, 국정원 안에는 두 사람의 관계가 ‘그 이상’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공항에서 출국 정지를 당한 최택곤씨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홍업씨라는 점도 뭔가 믿는 구석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는다. 둘 다 경희대·ROTC 출신인 홍일·홍업 씨 주변에는 최씨를 비롯해 유난히 경희대·ROTC 출신이 많다.


김대중 대통령은 12월18일 3대 게이트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를 지시했다. 이를 두고 여권의 한 고위 인사는 아들들이 결백하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일 것이라고 ‘좋게’ 해석했다. 당초 의혹 확산에 곤혹스러워하던 청와대도 “차라리 잘 됐다. 이번 기회에 모든 것을 털고 가자”라며 자신감을 회복하는 분위기다. 여권의 한 소식통은 “청와대와 국정원이 현직 각료와 국정 현안에 대한 여론 조사를 어느 때보다 세게 하고 있다. 연말 연시 개각과 함께 새로운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모양이다”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아들을 둘러싸고 또 어떤 변수가 터질지 모른다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특히 권노갑 전 고문과 두 아들 사이에 흐르고 있는 냉기류가 심상치 않아, 언제 불똥이 튈지 모른다는 걱정이 팽배하다. 이번 진승현 게이트로 구속된 자칭 ‘깃털’들 중에는 권씨와 가까운 사람이 많다.


‘다음 대통령은 아들이 없거나, 아들이 미성년인 사람을 뽑자’는 한 정치인의 말이 결코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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