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患나라당’?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2.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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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탈당·빌라 파문 겹쳐 ‘들썩’…“내부 변혁 없으면 위기 가중”
한나라당 이성헌 의원은 지난 3월6일 지구당 대의원 대회를 가졌다. 행사장인 연세대 동문회관 3층을 가득 메운 참석자들은 ‘이성헌 만세’ ‘한나라당 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이의원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왜일까. 그와 15년 동안 생사고락을 같이 해온 김덕룡 의원이 한나라당을 탈당하기를 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의원은 “고민이 많다. 명분으로 보면 따라가야 하는데 현실이 전혀 그렇지 않으니…. 일단 당원들의 의견에 따르기로 정리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한나라당의 요즘 상황은 한마디로 ‘불안하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박근혜 의원이 당을 박차고 나가고 이총재의 ‘빌라 타운’ 사건이 터진 뒤 모든 것이 불투명해졌다. 서울시장 후보 경선 불참을 선언한 홍사덕 의원은 이총재가 총재 직을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홍의원이 ‘최병렬 권한대행 체제’를 주장하면서 주류-비주류 간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대목도 심상치가 않다. 최병렬 부총재는 ‘비선’까지 거론하며 이총재를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때문에 이회창 총재 주변 인사들은 현재의 난맥상을 빨리 수습하지 않으면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당이 분열될 수 있다는 위기 의식에 휩싸여 있다.


이총재 주변에서 당을 정비하기 위한 1차 마지노선으로 삼은 것은 김덕룡 의원의 탈당이다. 하지만 김의원의 측근은, 김의원이 이미 탈당 결심을 굳혔고 혼자 나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춘·이성헌·조웅규 등 김의원 계보로 분류되는 의원들은 김의원의 탈당을 만류하고 있는 중이다.


김덕룡 탈당하면 내홍 더 심해질 듯


만약 김의원이 탈당한다면 한나라당의 내홍은 급류를 탈 가능성이 높다. 3월9일 이총재가 긴급 소집해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총재단·상임고문·지도위원 회의에서 발언자 대부분이 이총재의 지도력과 포용력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것은 그 신호탄이다. 부산 출신 한 초선 의원은 탈당 도미노가 일어난다면 의원들이 막연히 느끼고 있는 불안감이 터져 나와 당내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상황에서 신당 창당을 향한 박근혜 의원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이수성 전 총리와 만난 데 이어 김영삼 전 대통령, 정몽준 의원과도 만남을 계획하고 있다. 이회창 총재에게 반대하고 민주당 대선 후보들도 마뜩찮아 했던 중간 지대 사람들이 박의원의 깃발 아래로 속속 모여들고 있는 분위기이다. 이런 흐름이라면 박의원은 지방 선거를 앞두고 상당한 세를 구축하리라는 것이 정가의 관측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민주계 인사들도 예전과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김 전대통령은 “박의원이 큰일을 했다”라며 박의원을 치켜세웠고, 대변인 격인 박종웅 의원은 “박의원의 파괴력이 상당할 것이다”라며 홍보에 열심이다. YS의 의중에 밝은 오경의 민주산악회장은 “이미 판의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김 전 대통령은 당분간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말을 아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동교동계 한 핵심 인사는 김영삼 전 대통령-김종필 자민련 총재- 일부 민주당 인사- 김윤환 민국당 대표 측이 1년여 전부터 교감하며 정치권의 지형 변화를 꾀해 왔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유력한 경선 주자 중 한 사람도 이들 가운데 한 인사로부터 합류 제의를 받았다. 이렇게 본다면 외부 세력의 ‘한나라당 흔들기’는 당분간 조직적으로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유승민 여의도연구소장은 “여권이 주도하고 있는 정계 개편 그림이 확실하게 그려질 때까지 한나라당의 위기는 계속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이총재 측근들은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위기를 돌파하기 힘들다는 보고서를 잇달아 올렸다. 이총재의 한 측근 의원은 내부 혁신을 하지 않으면 위기가 가중될 것이라며 인사와 정책 결정 시스템에 일대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총재가 다시 대세를 잡기에는 이미 안팎의 상황이 너무 크게 변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당 내부든 외부든 이총재가 힘을 나누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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