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돌풍 ‘전국 이 영향권’
  • 안철흥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2.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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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여론조사/지지 계층 고르지만 충성도 낮은 것이 약점
노무현 태풍이 계속되고 있다. 노무현 민주당 상임고문은 3월24일 춘천에서 치러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강원도 경선에서 이인제 상임고문을 7표 차로 누르고 1등을 차지했다. 종합 득표에서는 여전히 2등이지만, 광주 경선 승리를 기점으로 이미 ‘심리적인 1등’에 올라 있기도 하다. 노고문은 3월13일 이후 모든 여론조사 맞대결에서 이회창 총재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3월19일 이후부터는 박근혜 의원을 포함한 3자 대결에서도 승자로 나섰다.




정치권·언론·여론조사 기관 모두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지지도 폭등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해 하는 분위기다. 3월22일 전화로 통화한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어제 업계 전문가들 몇몇이 모였는데, 노무현 돌풍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놓고 모두들 곤혹스러워했다”라고 말했다. 한 언론에는 ‘묻지마 지지’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이는 노무현 돌풍이 기존 정치공학에서 한참 벗어나 있기 때문. 그동안 노무현 고문은 돈도, 조직도, 지역 기반도, 학벌도 없는 그저 유망한 주자였을 뿐이다. 그런 그가 민주당 국민 경선을 거치면서 전국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여론조사에서의 잇단 상승 작용, 광주에서의 극적인 승리, 빌라 파문 등으로 인한 이회창 총재 추락, 한나라당 내분 등이 노무현 돌풍에 일조한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2주 만에 20~30%나 지지도가 폭등한 원인을 설명하기는 부족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시사저널>이 미디어리서치와 함께 3월22일 실시한 조사에서도 노무현 돌풍의 위력은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노고문은 맞대결에서 49.9%를 얻어, 이회창 총재(33.1%)를 16.8% 포인트나 앞질렀다(무응답 17.0%). 박근혜 의원을 더한 3자 구도에서도 노고문(43.0%)은 이회창 총재(29.8%)와 박근혜 의원(16.8%)을 누르고 승리했다(무응답 10.4%).


노고문 지지도 분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여럿 발견된다. 이총재와의 맞대결에서 노고문은 20대(56.5% 대 29.8%), 30대(62.5% 대 23.4%), 40대(52.0% 대 32.1%) 연령층으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특히 30대 연령층에서 노고문과 이총재에 대한 지지도 격차는 39.1% 포인트나 되었다. 사회의 여론 주도층이면서 지지율이 실제 투표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30~40대 연령층의 폭발적인 지지는 주목할 만하다. 여권의 한 정세분석 전문가는 “1980년대 민주화 투쟁을 거친 이른바 386 세대가 노고문에게서 집단적인 희망을 발견한 것 같다”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30~40대 고학력층에서 압도적 지지





직업 별로도 자영업(52.8%대 34.0%), 블루칼라(52.9% 대 31.8%), 화이트칼라(62.3% 대 26.5%), 학생(54.8%대 30.1%) 층에서 노고문은 이총재를 압도했다. 특히 대학 재학 이상의 고학력층(57.4% 대 31.9%)에서 노고문이 이총재를 압도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이인제 고문과 극명하게 구별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고문은 고졸 이하 층에서 선전한 반면, 대학 재학 이상 층에서는 34.9% 대 41.5%로 이총재에게 졌다. 이 또한 여론주도층의 정치 개혁에 대한 기대 심리가 담겨 있다는 것이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논평이다.


노고문은 영남에서도 선전했다. 대구·경북(36.7% 대 51.7%)과 부산·울산·경남(35.8% 대 46.7%)에서 이총재에게 지기는 했지만, 두 지역 모두 35% 이상의 지지도를 확보했다. 11.7~17.6%에 이르는 무응답층을 빼면, 사실상 유효 지지도의 40% 이상을 얻은 셈이다. 영남에서 이 정도의 지지를 얻어낸 민주당 후보는 지금껏 없었다.


특히 민주당 지지층 가운데 이고문을 찍겠다는 사람이 70%인 데 비해, 노고문을 찍겠다는 사람은 79%나 되었다. 정체성을 논점으로 삼아 대안론을 주장한 노고문의 전략이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결과 민주당 후보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노무현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절반(50.0%)에 달했다. 이인제라는 응답은 24.9%에 그쳤다. 1월31일 같은 조사에서는 이고문이 40.8%로 노고문(13.8%)을 압도했었다.





노풍이 위력을 더하면서, 민주당에 대한 정당 지지도도 급상승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도는 29.6%로 한나라당(27.9%)을 앞섰다(‘지지 정당 없다’ 38.8%). 민주당 지지도가 한나라당을 앞선 것은 거의 1년여 만이다.


민주당은 20~30대 연령층, 화이트칼라, 자영업 계층에서 한나라당을 앞섰다. 자영업은 전통적으로 구여권 성향으로 분류되어 왔으나, 이번에는 민주당 지지로 돌아섰다. 지역 별로도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의 지지율 상승이 전체적인 민주당 지지도 상승을 이끌었다. 이는 지난 대선 때 민주당을 지지했던 전통적인 민주당 표가 서서히 복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돌풍의 원인 “이회창 실책 탓” 46%


이런 민주당의 상승세는 1차적으로 노무현이라는 스타 탄생에 힘입은 바 크지만, 지난해부터 계속되어온 민주당의 쇄신운동이 민주당의 이미지를 개선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민주당은 쇄신 과정을 거치면서 10여 명 이상의 스타를 거느리게 되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총재와 함께 경선을 벌일 주자마저 거의 없다. 민주당과 한나라당 지지도가 역전된 데에는 이런 요인도 한몫 한 것으로 보인다.” 여권의 한 분석 전문가는 이렇게 진단하기도 했다.


민주당 국민 경선이 성공한 것은 숫자로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경선 시작 2주 만에 국민선거인단 지원자 수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민주당은 경선이 끝까지 치러질 경우 2백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체 유권자가 3천2백만명이고, 대통령 선거 투표율이 80%라고 가정할 때, 투표에 참가하는 유권자는 대략 2천5백만명 안팎. 이 중 여야가 절반씩의 지지를 얻는다고 볼 때, 민주당 지지자의 6분의 1 정도가 민주당 경선에 직접 참가 신청을 할 정도로 활기를 띠고 있다는 말이다. 국민경선제를 실시한 것이 대선 때 민주당의 자산으로 나타나리라는 민주당측의 장담이 빈말이 아닌 것이다.


또한 권노갑 고문으로 대표되는 동교동계 구파가 힘을 잃으면서, 당내 민주화도 사실상 이루어지고 있다. 시·도 지부장 경선에서 동교동계 구파 출신들이 연이어 낙선하고 있는 것이 좋은 사례다. 또한 김대중 대통령이 총재 직을 물러나면서 ‘민주당=DJ당’이라는 등식도 힘을 잃고 있다. 민주당이 뜰 수 있는 조건은 이미 갖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국민 경선에서 다른 사람이 아닌 노무현 고문이 ‘뜬’ 이유는 무엇일까. 노고문은 지역 대결을 동서 화합이라는 아젠다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당내 조직세가 없다는 점 또한 돈·조직 없이 선거를 치른다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그런데다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같은 열성 지지자들의 열기가 결합되면서 조직적 열세를 일거에 만회했다. 이회창 총재의 빌라 파문이 터져 ‘서민 정치인’이라는 반사 이익을 얻은 것도 노고문에게는 행운이었다.





경선 구도도 노고문에게 유리하게 진행되었다. 김근태 의원이 후보를 사퇴하면서 노고문은 사실상 개혁후보 단일화 효과를 누렸다. 더구나 이인제 고문은 대세론의 역작용 때문에 경선 초반 6 대 1 구도로 싸워야 했다. 제주와 울산에서 1등을 한 번도 못한 점은 이고문에게 치명타였다. 한 분석가는 “제주의 3표가 이인제를 날렸다”라고 표현했다. 이어 광주 민심이 ‘동서화합 후보’인 노무현을 택하자, 그는 사실상의 승자로 떠올랐다.


거시적으로 보면 몇 년 사이 국내 정치권을 지배한 것은 3김과 양이(이회창·이인제)였다. 국민들은 이런 대결 구도에 식상해 있었다. 게다가 문제는 3김에 비해 양이 지지자들의 ‘충성도’가 낮다는 점이었다. ‘노무현 돌풍이란 노무현 5% 상승과 이회창 10% 하락이 빚어낸 것’이라는 분석은 이 점을 지적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민들이 노무현 돌풍의 원인을 노고문 자체보다 ‘이회창 총재가 잘못하고 있는 것’(45.6%)에서 찾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반면 ‘노무현 고문이 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응답은 33.2%였다. 국민들은 ‘노풍’의 상당 부분을 ‘외풍’이라고 보는 것이다.





노풍이 이총재의 실수에서 비롯한 반사 이익이라는 시각은 한나라당 지지층(44.6%)이나 민주당 지지층(43.9%) 모두 비슷하다. 다만 한나라당 지지층의 27.4%만이 ‘노무현이 잘해서’라고 응답한 데 비해. 민주당 지지층은 40.6%가 이같이 응답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외부 요인 못지 않게 노고문 개인의 장점도 평가하고 있는 점은 노고문에게 일단 긍정적이다.


이총재 지지율이 하락한 원인에 대해서도 ‘빌라 파문이나 손녀의 국적 문제 등 이총재 개인의 문제’(37.5%)보다 ‘한나라당 비주류와의 내부 갈등’(52.4%)을 꼽는 지적이 더 많았다. 이는 조사 시점에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이총재 지지층이 무엇을 더 큰 문제로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영남에서 이같은 응답이 특히 많다. 대구·경북의 59.2%, 부산·울산·경남의 60.6%가 빌라 파문보다 당 내분이 더 큰 문제라고 보았다. 한나라당 지지자(61.8%)의 시각도 마찬가지다.


이런 결과는 이총재가 자기 지지자들의 바람과 반대의 길을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만큼 이총재의 영남 기반이 취약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인간적인 실망보다 당 내분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큰 만큼 이총재가 하기에 따라서는 지지율이 반등할 여지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노풍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총재와의 맞대결에서 노고문을 지지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왜 노무현을 지지하느냐’고 물었다. 그 결과 ‘인물이 소박하고 신선해서’(48.0%)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개혁적 성향이 강하기 때문’(36.5%) ‘민주당 후보이기 때문’(7.8%) ‘이회창 총재를 이길 수 있는 후보이기 때문’(5.1%)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수도권(서울 49.6%, 경기 55.1%)과 부산·울산·경남(62.7%)에서 ‘소박하고 신선해서’라는 응답이 많다. 이는 노고문이 아직 노출이 안되어 있고, 따라서 상대방의 ‘끌어내리기’ 전략에 얼마나 버티느냐에 따라 지지율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노무현 지지자 50.2% “바뀔 수도 있다”





‘언제부터 지지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민주당 경선 이전부터’라는 응답이 68.2%였고. ‘광주 경선 이후부터’(14.1%) ‘빌라 파문 이후부터’(10.2%) ‘여론조사에서 이총재를 이긴 후부터’(4.3%) 순으로 응답했다. 다시 말해 민주당 경선 이후부터 노후보를 지지했다는 응답이 28.6%였다. 이를 전체 응답자 기준으로 다시 분류해 보면, 이총재와 맞대결을 가상했을 때 노고문이 얻은 지지율 49.9% 중 ‘민주당 경선 이전부터 노고문을 지지’한 사람은 35% 정도이고, 국민 경선 이후 노고문으로 지지자를 바꾼 사람이 15% 정도라는 셈이다. 즉 노풍 폭발로 인해 늘어난 ‘새로운 지지표’는 15% 정도라는 말이다.


본격적인 ‘노무현 검증’을 앞두고 있는 현재 노무현 지지표는 얼마나 견고할까. 전체 응답자 가운데 ‘앞으로 지지 후보를 바꿀 수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50.5%였다. 후보 별로 보면, 이회창 대 노무현 맞대결 때 이총재 지지자의 55.9%는 이총재를 끝까지 지지하겠다고 응답한 반면, 노무현 지지자 중에서는 ‘바꿀 수도 있다’는 응답이 50.2%로 더 많았다. 이총재와 비교할 때, 노고문 표는 아직 바람표이고 다져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노풍이 꽤 갈 것’이라는 데 의견을 모은다. 민주당 전통 지지층이 복귀하고 있고, 선거 국면이 본격화할수록 정당 지지도는 여야 팽팽히 결집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노고문 지지율이 20%대 이하로 급전직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지지도가 전국적·전계층적·폭발적이라는 점도 노고문에게 긍정적인 부분이다. 특히 영남에서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폭발적 지지세는 시간이 갈수록 빠질 것이라는 점 또한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다만 얼마나 내려갈 것인가가 문제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김지연 미디어리서치 차장은 “지방 선거에서 영남의 한나라당 아성을 어느 정도 무너뜨릴 수 있느냐에 노풍 지속 여부가 달려 있다”라고 말했다. 현대리서치 윤지환 부장은 “신선하다는 말과 검증되지 않았다는 말은 같은 말이다. 가볍다, 급진적이다, 불안하다는 말은 모두 우리 사회 주류 계층을 자극하는 말이다. 노후보가 이에 대해 얼마나 잘 대처하느냐가 지지율을 지속시키는 관건이 될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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