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걸 X파일’ 숨은 돈 찾기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2.04.2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택 구입비·거액 생활비 출처에 의심 집중…5년 사이에 재산 8배 늘어
지난 1월8일 오전 11시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윌셔그랜드 호텔에 일제 고급 승용차인 신형 렉서스가 미끄러져 들어갔다. 차를 운전한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의 셋째 아들인 김홍걸씨. 그가 그곳에 간 것은 김홍일 의원의 수술을 지켜 보려고 그 날 오전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 이희호 여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여사와 홍일·홍걸 씨는 호텔 15층에서 4시간 가량 정담을 나누었다.





한나라당은 그 날 홍걸씨가 타고 간 차의 가격이 6만5천 달러(약 8천만원)라고 주장한다. 이신범 전 의원은 홍걸씨가 이 차를 제외하고서도 차를 3대나 갖고 있다며, 유학생인 그가 무슨 돈으로 이런 차를 굴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홍걸씨와 관련해 제기되는 의문의 핵심은 ‘돈’이다. 구속된 최규선씨의 입이 열리면서 이와 관련한 내용들이 속속 공개되고 있다. 아직 사실로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최씨가 홍걸씨에게 주었다고 주장한 것만 합쳐도 16억원이나 된다. 이 때문에 홍걸씨가 각종 이권에 개입하면서 일종의 ‘지분’ 형태로 돈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마저 일고 있다.


“김홍걸이라는 연구원은 근무하지 않는다”


홍걸씨가 이런 의심을 받는 것은 다음 두 가지 사례 때문이다. 최규선씨는 지난 4월19일 “코스닥 등록업체 ㄷ사의 박 아무개 회장으로부터 내가 받은 10억원 가운데 2억원과 법인카드 5천만원만 내 몫이고 나머지는 홍걸씨 몫이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홍걸씨에게 전달했다”라고 진술했다. 최씨의 측근이었던 천호영씨도 “스포츠 토토 사업권을 타이거풀스측에 주는 대가로 김홍걸·최규선·김희완 씨가 각자 자기 몫을 배당받아 관리해 왔다”라고 주장했다.


사실 ‘유학생 김홍걸’의 생활은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된다. 일단 그는 97만5천 달러(약 13억원)짜리 집에서 산다. 집을 사기 위해 은행에서 융자받은 60만 달러에 대한 이자만 매월 8백만원 가량이 든다. 이신범 전 의원과의 민사 소송을 끝내기 위해 11만 달러(약 1억4천만원)라는 거금도 지불했다. 집에는 외부인 출입을 차단하기 위한 철문이 설치되어 있고, 감시 카메라가 24시간 출입자 동향을 감시하고 있다.





또 가정부도 있다. 미국에서 가정부를 두려면 월 2천 달러(약 2백60만원) 정도는 주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들도 학비가 비싼 사립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1995년 은행에 제출한 서류에서 자신의 재산을 14만 달러라고 적었던 그는 2000년 5월 은행에 제출한 서류에는 1백12만 달러라고 적었다. 직업도 없는데 재산은 5년 사이에 8배나 늘어난 것이다.


최규선씨는 또 “홍걸씨가 홍콩 증시에 5억원을 투자했다가 날렸다”라고 말했다. 홍걸씨가 주식에 관심을 가졌던 흔적은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동교동계 한 인사에 따르면, 홍걸씨는 미국에서 만난 한 지인에게 주식 얘기만 했다고 한다. 평소 사람들과 활발하게 어울리는 성격이 아닌 홍걸씨는 컴퓨터를 가까이 하며 주식 투자를 한 것으로 보인다.


사정이 이러니 홍걸씨가 쓰는 돈의 출처를 놓고 궁금증이 이는 것은 당연하다. 홍걸씨측은 객원연구원으로 급여를 받고 있어 생활비나 대출금을 갚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해명은 신빙성이 약하다. 홍걸씨가 객원연구원으로 있는 포모나 대학 태평양연구소의 유일한 연구원인 에디 영 씨는 “김홍걸이라는 연구원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는 여기 근무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태평양연구소의 홈페이지를 살펴본 결과 홍걸씨는 이 연구소에 사무실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런 정황으로 미루어 홍걸씨는 이 연구소에 단지 적만 올려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풍언·최규선·황인돈·이희호 ‘4대 주목 인물’


이신범씨는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갖고 있지 않은 연구원에게 급여를 주는 경우는 없다고 단언했다. 이 연구소 기브니 소장은 1973년 경희대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김대중 대통령과 만난 사진이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등 한국 사정에 밝은 인사로 알려져 있다. 이 연구소가 국제교류재단에 신청한 ‘한국 문학작품 번역 출판’ 계획서에 따르면, 1년간 참가자의 인건비는 4천 달러이다. 규모나 재정 상태가 그리 넉넉한 연구소가 아니라는 반증이다.





‘김홍걸의 돈’과 관련해 주목되는 사람은 모두 4명이다. 우선 진작부터 관련설이 나돌았던 무기중개상 조풍언씨다. 1999년 김대중 대통령의 일산 집을 매입했던 조씨는 미국 군수 업체인 ITT 사의 대리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가 홍걸씨 집에 드나드는 장면이 로스앤젤레스 교민들에게 여러 차례 목격되었고, 조씨 스스로도 홍걸씨를 돕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나라당은 조씨가 무기 거래에 개입해 받은 커미션의 상당 부분을 홍걸씨에 배당해 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두 번째 인물은 최근 정가를 뒤흔들어 놓은 최규선씨. 그는 홍걸씨와 함께 지폐 보안장치를 개발하던 ㄷ사 관계자들과 만나는 등 홍걸씨를 배경으로 100억원대 부를 쌓았다. 특히 최씨는 지난해 열다섯 차례나 입국한 홍걸씨와 자주 만나 수시로 용돈을 주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건설업체 ㅊ토건을 운영하는 홍걸씨의 동서 황인돈씨도 주목되는 인물이다. 그를 잘 아는 한 인사의 증언에 따르면, 홍걸씨가 귀국해서 사람들을 만날 때면 황씨가 거의 매번 자리를 함께 했다고 한다. 황씨는 자기 회사 직원들의 명의로 타이거풀스 인터내셔널 주식 1만 3천주를 보유하고 있는데, 최규선씨의 비서였던 천호영씨는 이 주식이 사실상 홍걸씨의 주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특별히 주목하고 있는 사람은 영부인 이희호 여사이다. 홍준표 의원은 지난 4월16일 “이여사가 김홍일 의원을 병문안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했을 때 행낭 30개를 갖고 갔으나 귀국할 때는 아무 것도 없었다”라며 내용물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청와대측은 이에 대해 병원 의사·간호사 들에게 줄 도자기와 책 등을 가져갔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한 핵심 인사는 두고 보면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며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검찰은 현재 홍걸씨 소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희호 여사의 유일한 혈육인 그는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