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 노도 노무현 급제동 걸렸다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2.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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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후보의 생명은 ‘기존 정치인과는 다른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대통령 후보로 결정되자 그는 실직자 가족·의사·농민 등 각계각층 국민 39명에게 둘러싸인 채 수락 연설을 했다. 연설 후 그는 국민에게 엎드려 절했다. 후보 부인이 청중석에서 박수로 화답하는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에 비쳤다. 잠시 뒤 그는 단상에 함께 있던 장애인의 휠체어를 밀며, 시민들과 함께 퇴장했다. 그는 이튿날 국립묘지도 당사도 아닌, 서울 시내의 한 거리에서 아침을 맞았다. 청소부 차림이었다. 이른바 ‘국민 우선 정치’를 실천하는 것으로 후보의 첫 일정을 시작한 것이다.




이 후보의 이름은, 노무현이 아닌 이회창이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경선 기간 내내 장급 여관에서 자고 기사 식당에서 먹는 초유의 일정을 소화했다. 한나라당 당직자는 ‘노풍’이 이후보를 변화시켰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작 ‘서민 후보’라는 노무현씨가 후보로서 첫 방문지로 택한 곳은 민주당사와 국립묘지였다. 이후 대통령 후보가 된 지 3주째. 노후보는 국민 속으로 들어가는 대신 당에 안착하는 쪽을 택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방문과 사흘 간의 고향 방문을 빼면, 노후보는 대부분의 일정을 민주당 인사들과 만나며 보내고 있다.


이는 물론 민주당의 주류가 아니었으면서 후보가 된 그의 독특한 처지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당이 나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노후보의 불만이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그렇더라도 최근 행보는 잘못이라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김상현 고문은 영입 후보도 아니면서 너무 당에만 머무른다고 노후보를 비판한 뒤 “외부 인사와 접촉하면서 표를 끌어들이는 활동에 좀더 비중을 둬야 한다”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30~40대 층과 영남 지지율 급락


노후보의 이런 ‘한가함’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노풍이 조정기를 지나 위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진단 때문이다. 광주 경선에서 승리한 직후인 3월20일쯤 노풍은 상한가를 쳤다. 당시 노후보는 20~30% 포인트 안팎의 차이로 이회창 후보를 눌렀다. 이후 조정기를 거쳤지만, 15% 포인트 정도의 지지율 격차는 꾸준히 유지해 왔다. 그러나 최근 여론조사 결과는 심상치 않다. 어느덧 8% 포인트 차이(5월6일 <한국일보>)로 좁혀지는 듯하더니, 이제 오차 범위 내인 3.2% 포인트(5월13일 <문화일보>)까지 접근했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상대적으로 투표율이 낮은 젊은층의 지지를 받고 있는 노후보에게 이런 결과는 위험 신호임이 분명하다.




현재 노후보의 관심은 6·13 지방 선거, 특히 부산시장 선거에 집중되어 있다. 민주당은 영남권 선거대책위원회를 따로 설치하는 등 부산 공략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부산시장 선거를 이기면 12월 대선 승리는 그만큼 쉬워진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세 곳과 부산 중 어느 한 곳도 녹록치 않다는 전망이다. 역으로 전패할 가능성과 함께, 노후보가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노무현의 시련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는 말이다.


노풍은 과연 어디서 얼마나 빠져나갔고, 원인은 무엇일까. 노풍이 최고점에 도달했던 무렵인 3월22일 <시사저널>·미디어리서치 조사(노무현 49.9% 대 이회창 33.1%)와 <한국일보>·미디어리서치의 5월6일 조사(노무현 44.7% 대 이회창 36.7%)를 비교하면, 주로 30~40대와 영남 지역에서 노후보 지지율이 급속히 빠져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두 조사는 같은 기관이 실시한 것이어서 시계열 분석 자료로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여론조사 전문가의 말이다).


3월에 노후보는 30대(62.5% 대 23.4%), 40대(52.0% 대 32.1%) 연령층에서 이후보를 압도했다. 여론 주도층이면서 지지율이 실제 투표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계층이기에 이는 더욱 주목되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경험했던 이들이 노후보에게서 집단적인 희망을 발견한 것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들 30~40대 고학력층이 한달 보름 만에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5월에도 노후보는 30대(54.1% 대 32.8%)와 40대(42.8% 대 38.6%)에서 모두 이후보를 앞섰다. 하지만 격차는 39.1% 포인트→21.3% 포인트(30대)와 19.9% 포인트→4.2% 포인트(40대)로 줄었다. 40대의 지지율 격차가 오차 범위 내로 좁혀졌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5월13일 발표된 <한겨레>와 <문화일보> 조사에서는 40대 지지율이 역전되었다).




지역 별로 보면 역시 영남 지역의 지지율 하락이 두드러졌다. 3월 조사에서 노후보는 이후보에 비해 대구·경북에서 15% 포인트, 부산·울산·경남에서 10% 포인트 뒤졌지만, 무응답을 뺀 실질 지지율이 40%대를 넘었다. 그러나 5월 조사에서는 대구·경북·부산·울산·경남 모두 지지율 격차가 다시 크게 벌어졌다. 노후보 지지율이 하락한 대신, 이후보 지지자들이 결집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노후보측은, 기본 지지층에는 변화가 없으며, 실망한 사람들이 부동층으로 빠지고 있지만 다시 노후보를 지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볼 때 노후보측의 진단은 사실과 다르다. 한달 보름 사이에 30대의 노후보 지지율은 8.4% 포인트 빠졌고 이후보 지지율은 9.4% 포인트 올랐다. 같은 기간 노후보에 대한 40대의 지지율은 9.2% 포인트 빠졌고 이후보 지지율은 6.5% 포인트 올랐다. 두 계층 모두 ‘무응답=부동층’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30대 14.1%→13.1%, 40대 15.8%→18.7%).


노풍이 빠진 원인으로 이른바 ‘아들 게이트’ 등 외부 요인이 더 크냐, 아니면 YS 앞에서 저자세를 보인 점 등 노후보의 개인적인 실점이 더 영향을 미쳤느냐에 대해서는 여론조사 전문가들도 반응이 엇갈린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아들 게이트 등 여권의 악재가 겹쳤고, 이회창 후보가 정식 후보로 선출되면서 노풍에 영향을 미쳤다”라면서, 홍업·홍걸 씨에 대한 사법 처리가 마무리되는 5월 말쯤 되면 노풍이 다시 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노후보 본인의 실책이 여럿 겹쳐 노풍을 끌어내렸다는 지적 또한 만만치 않다. 우선 무리한 정계 개편 추진이 하락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YS 앞에서 저자세를 보이고 부산시장 후보를 낙점해 달라고 부탁한 것에 대해서는 노후보 지지층 사이에서도 반발이 많았다.


후보가 된 이후에도 언동이 가볍다는 지적 또한 끊이지 않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만난 다음날 그는 YS에게 부산시장 후보 낙점을 요청했다면서, 후보로 거명된 세 사람을 공개했다. 이에 대해 정치권의 한 인사는 “YS나 거론된 당사자는 물론, 공천을 책임지고 있는 민주당과 선거를 해야 하는 국민들에게도 실례를 범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5월9일 인천 집회에서 노후보는 노풍이 가라앉는다는 데 걱정하지 말라면서 “부동층은 원래 왔다갔다한다”라고 했다. 그를 띄운 것도 떨어뜨린 것도 부동층이었다는 점에서 보면 너무 경솔한 표현이었다.




“국민 후보로 거듭날 기회 놓치고 있다”


또한 신민주대연합이라는 구도가 국민들에게 미래지향적이 아니고 복고적인 것으로 비친 점도 실책이었다. 노후보가 대선 구도에 대한 근본적인 전략 수정을 고려한 것도 이런 위기감 때문이다. 노후보는 5월8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지역 구도를 정책 구도로 바꾸는 정계 개편의 필요성을 물어보면 국민 대다수가 지지하지만, 신민주대연합을 물어보면 (지지도가) 조금 떨어지고, 내가 YS를 만난 것을 물어보면 더욱 떨어진다”라고 말했다. 박종웅 의원을 영입하려던 시도가 불발한 직후였다. 이어 ‘신민주대연합 노선을 폐기하고 정책 중심의 미래 지향적인 정계 개편을 추진하겠다’는 말이 나왔다. 정계 개편을 단순히 정치권 개편으로만 끝내지 않고, 국민 통합의 계기로 삼겠다는 포석이다.


한화갑 대표는 민주당 제주도 행사에서 “노무현 후보는 서민의 대변자이자, 20~30대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한다”라면서, 특히 20~30대의 지지를 강조했다. 노후보측이 ‘민주화 세대(민주당 세력)와 신진 세대(20~30대)의 결합을 통한 국민 통합’이라는 말을 꺼낸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러나 이런 시도로 노풍을 복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노후보의 생명은 ‘기존 정치인과는 다른 정치인’이라는 점에 있었다. 또한 노후보라는 존재는 ‘기존 정치판을 바꾸어낼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최근 행보는 그를 ‘실리만을 추구하는 현실 정치인’으로 탈바꿈시켜 버렸다. 한 정치 평론가는 “후보가 된 뒤로 2주일 동안 노후보는 YS 면담 외에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듯이 비치고 있다. 노후보가 주도해서 아젠다를 만들지도 못했고, 자기가 기존 정치인들과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지도 못했다”라고 지적하면서, ‘국민 후보’로 거듭날 기회를 노후보 스스로 놓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무현이 변하지 않으면 노풍은 거품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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