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대세론 다시 업다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2.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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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의 양자 대결 지지율이 5개월 전으로 복귀했다.
딱5개월 만이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노무현 민주당 후보 양자 대결 지지율이 ‘원상 복귀’ 했다. 이회창 51.2% 대 노무현 36.2%(무응답 12.7%). 이는 <시사저널>과 미디어리서치가 6월27~28일 국민 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이다. 1월31일 실시한 조사 결과는 이회창 51.3% 대 노무현 34.1%였다(무응답 14.7%). 이회창 후보는 꼭 다섯 달 만에 노무현 후보와의 격차를 15% 포인트 벌리면서 전세를 역전시켰다.


이회창 대세론이 복원되고 있다는 점은 양자 대결의 세부 내역을 살펴볼 때 더욱 확실해진다. 이후보는 20대와 30대를 뺀 모든 연령층에서 노후보를 압도했다. 지난 3월 노무현 후보에게 크게 기울면서 노풍을 상징하는 세력으로 등장했던 40대가 이번에 이후보를 택한 점은 특기할 만하다(이회창 55.5% 대 노무현 30.3%).





‘노풍’ 주력군 대다수 이회창 쪽으로 이동



직업과 학력 분류에서도 이회창 후보는 학생이라고 응답한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계층에서 승리했다. 특히 자영업(53.9% 대 30.5%), 블루칼라(44.6% 대 41.4%), 화이트칼라(42.2% 대 41.6%) 층과 대학 재학 이상 고학력층(46.2% 대 40.1%)에서 노후보를 압도한 점이 돋보인다. 이 계층은 지난 3월22일 <시사저널> 조사에서 모두 노무현을 지지했다. 흔히 ‘30~40대 고학력 화이트칼라’로 대표되던 노풍의 주력군 가운데 30대 일부를 뺀 대다수가 이제는 등을 돌려버린 것이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에 대해 “민주당 정권의 부패상과 노후보의 불안정한 이미지가 겹치면서 여론주도층이 대거 빠져나갔다”라고 해석했다.



노풍 후퇴는 이밖에도 곳곳에서 감지된다. 특히 ‘영남 후보’인 노무현 후보의 영남권 성적표는 초라하다. 지난 3월 노후보는 이후보에게 뒤지기는 했지만 35% 남짓한 지지를 확보했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는 대구·경북(79.7% 대 14.0%)과 부산·울산·경남(67.1% 대 27.9%)에서 모두 벽에 부딪혔다. 노후보가 이번에 얻은 영남 지지율은 김대중 대통령이 이전에 이 지역에서 확보해둔 고정표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노·창 대결’의 역전 현상에 이어서 이회창 대세론을 받쳐주는 지표는 정당 지지율이다. 이번에 한나라당이 얻은 지지율은 43.9%. 민주당(22.2%)의 2배 가까이 된다. 한 정당의 지지율이 40%대를 넘어선 것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이토록 커진 것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현정권과 국민의 밀월 관계가 깨지기 전이던 1999년에도 국민회의 지지율은 38.1%에 불과했다(<경향신문>-현대리서치 1999년 10월6일 조사).





정당 지지율은 2배 차이



지난 2년간 양당 지지율 격차는 한나라당이 박빙 우세를 유지한 채 엇비슷하게 유지되어 왔다. 올해 1월1일 실시한 <경향신문>-현대리서치 조사(한나라당 28.6% 대 민주당 26.3%) 역시 2% 포인트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노풍이 불던 3월 말에는 민주당이 한나라당을 앞서기도 했다(한나라당 27.9% 대 민주당 29.6%, <시사저널>-미디어리서치 3월22일 조사).


그러나 민주당 경선이 채 끝나기도 전인 4월 말 한나라당은 지지율 순위를 다시 뒤집었고, 지방 선거를 통과하면서 두 당의 격차는 벌어져버렸다. 한나라당에 두드러진 상승 요인이 없었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서는 여론조사 전문가들마저도 당혹해 하고 있다. 지방 선거 직후에 실시한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한나라당을 선택한 국민 중 8.4%만이 ‘이회창 후보 혹은 한나라당이 이전보다 나아져서’라고 응답한 바 있다. 한 전문가는 이에 대해 “지난번 노풍처럼 이번 이총재 대세론과 한나라당 지지세도 ‘묻지마 지지’ 경향을 띠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노·창 대결’과 정당 지지율에서 압승을 거둔 이회창 후보는 당선 가능성에서마저 노무현 후보를 완벽하게 따돌렸다. 이후보 당선 가능성 74.7%는 여론조사 전문가가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게임은 끝났다고 말할 정도로 경이적인 수치이다(노무현 후보는 11.3%).



1997년 DJ는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을 때도 당선 가능성만큼은 1위를 지켰다. 반면 당시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는 한때 이회창 후보를 따돌리고 선두에 바짝 다가서기도 했지만, 당선 가능성에서는 10%대를 넘기지 못했다. 이처럼 당선 가능성은 향후 지지율 추이와 국민들의 심리를 미리 드러내는 지표다. 노풍이 꼭지점에 달했던 3~4월에도 이회창 후보는 당선 가능성만은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70% 이상의 국민들이 ‘이회창 당선’을 예상하고 있다. 노무현 지지자의 51.8%도 이회창 후보가 당선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노무현 후보와 민주당에게는 지지율 역전보다 훨씬 치명적이다. 마음이 위축된 선수들을 이끌고 게임을 치르는 것이 얼마나 힘드는지는 월드컵 기간 내내 보아온 터다.



이회창 후보는 노·창 대결에서 완승을 거둔데 이어, 박근혜 한국미래연합 대표나 무소속 정몽준 의원을 대입한 3자 구도에서도 너끈히 1위를 굳혔다. 박근혜 의원을 포함한 3자 구도에서 이후보(48.1%)는 노후보(32.8%)와 박의원(10.7%)을 가볍게 눌렀다. 또한 정몽준 의원이 ‘제3의 신당’을 결성하고 뛰어든 것을 가정한 질문에서도 이후보(44.8%)는 노후보(27.0%)와 정의원(20.2%)을 멀찍이 따돌렸다.



그럼 이회창 대세론은 얼마나 견고할까. 지난해 이회창 대세론이 위세를 떨치던 무렵, 한나라당 전략팀은 보고서를 작성했다. 당시 이후보는 35%쯤의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었는데, 20~25% 정도인 고정 지지표를 제한 나머지는 부동층이 흡수된 것으로, 상황이 변하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다시 말해 ‘대세론은 허구다. 정신 차리자’는 지적이었다. 이후보는 당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빌라 게이트가 터지고 노풍이 불면서 보고서의 지적은 사실로 확인되었다. 그때처럼 지금도 이회창 대세론이 화두다. 이번 대세론에는 틈새가 없을까.





한나라당 일부와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지금도 대세론이 안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른바 ‘3홍 비리’ 등 여권의 부패와 노무현 후보의 실수, 민주당의 내분 등이 이후보 상승세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후보 스스로의 노력보다 여권의 실책에 따른 반사 이득이 크다는 분석인 셈이다. 지방 선거 직후 실시한 한국갤럽 조사(한나라당을 찍은 유권자의 8.4%만이 한나라당과 이후보가 이전보다 나아졌다고 응답)에서도 표의 충성도는 낮다는 것이 드러났다.



지지도 상승의 상당 부분이 반사 효과에 기인한 것이라는 점과 함께, 비토 세력이 여전하다는 점도 이회창 대세론의 한계다. <시사저널>은 이번 조사에서 ‘대통령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후보’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 결과를 이회창·노무현 두 후보만 놓고 볼 때, 이후보(14.8%)가 노후보(9.9%)보다 비토 세력이 더 많았다. 최근 감점 요인을 자주 드러낸 노후보보다 ‘서민 행보’ 등으로 이미지 보완에 치중하고 있는 이후보에게 여전히 비토 세력이 많다는 점은 그에게나 한나라당에나 꺼림칙한 대목이다.



비토층 “이회창, 대쪽 아니다”



이회창 후보를 ‘부적절한 대통령감’으로 지목한 응답자들은 ‘이미지가 나쁘다'(35.0%)와 ‘도덕성이 없다’(26.1%)를 이유로 들었다. 반면 노후보를 선택한 응답자들은 ‘리더십이 없다’(33.3%)와 ‘국정운영 능력이 의심스럽다’(29.8%)를 꼽았다. 이는 평소 두 후보의 이미지와도 상통한 면이 있다. 이는 또한 말실수나 가벼운 처신이 노후보에게 감점 요인이 되고 있듯이, 아들 병역 문제나 빌라 게이트, 세풍 의혹 등 도덕성 시비를 낳았던 재료들이 여전히 이후보의 발목을 잡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1997년 그에게 치명상을 입혔던 아들 병역 문제가 최근 다시 쟁점화할 조짐이 있어 한나라당을 긴장시키고 있다. 아직은 당시 폭로를 확인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지만, 진전된 사실이 드러날 경우 파장이 만만치 않으리라는 것이 이번 조사에서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



이회창 후보에게 거부 의사를 밝힌 응답자들은 또한 이후보가 집권할 경우 ‘지역 갈등’(48.0%)과 ‘부정부패’(39.6%)가 우려된다고 꼽았다. 비록 비토층 사이에서라고는 하지만, 이후보가 원칙과 대쪽 이미지를 상실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반면 노후보 비토층이 노후보가 집권할 경우 우려되는 것으로 든 항목은 ‘정치 안정’(41.2%)과 ‘경제 정책’(39.95)이었다. 비토층의 강도도 이후보가 더 셌다. 이후보를 지목한 사람 중 29.7%는 ‘절대 되어서는 안된다’고 응답했다. 노후보가 ‘절대 되어서는 안된다’고 응답한 사람은 25.4%였다. 이런 비토 그룹의 존재는 대선 기간 내내 이후보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듯하다.





물론 이후보의 이런 약점들이 심각한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노후보가 리더십이나 국정운영 능력 등 주로 하드웨어 측면에서 지적되고 있는 반면, 이후보에 대한 지적은 이미지나 도덕성 등 이른바 소프트웨어 측면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이후보보다 노후보가 오히려 불리하다”라고 지적했다.



“이회창에게 다시 고비 오고 박빙 승부 될 것”



결국 국민들이 ‘차악(次惡)’을 선택해야 할 경우 ‘불안한 리더’보다는 ‘나쁜 리더’ 쪽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선거전략 전문가들은 특히 한나라당이 수도권 기초 단체장의 82%를 장악한 점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최대의 격전지에서 정보와 인맥을 장악한 채 싸울 수 있다는 점은 분명 과거의 ‘말뿐이었던 대세론’ 시절과 달라진 점이다.



그러면 노무현 후보와 민주당은 이제 끝인가.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대통령 선거는 이렇게는 안 간다. 이회창 후보에게 다시 고비가 올 것이고, 결국은 박빙 게임이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앞으로 6개월이나 남았다. 한국 정치에서 이 정도면 어떤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다.” 여권 선거 전략 전문가의 말이다. 대통령 선거는 특성상 여야의 박빙 승부가 될 수밖에 없다는 데에 대부분의 여론조사 전문가들도 동의하는 편이다. 물론 이들의 이런 분석에는, 민주당과 노무현 후보에게 꺼내 들 ‘특단의 카드’가 남아 있어야 한다는 단서가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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