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선해야 한다” 50.3%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2.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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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이 민주당 대의원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절반 이상이 노무현 후보가 교체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보았으며, 그 '대타'로 정몽준 의원을 가장 많이 지목했다.
7월26일 오후 2시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민주당 정치개혁특위(위원장 박상천)가 주최한 개헌 공청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이인제 의원과 정균환 총무를 비롯한 당내 비주류 의원 20여명이 총출동했다. 대선 출마를 꿈꾸고 있는 이한동 전 국무총리와 자민련 김학원 총무, 조희욱 의원이 참석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





같은 날 저녁, 여의도 한 호텔에서는 민주당 재야 출신과 정풍운동을 주도했던 쇄신파 의원들의 합동 워크숍이 열렸다. 뿔뿔이 흩어져 있는 당내 개혁파를 하나로 묶어내자는 것이 주제였다. 대체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성향이면서도 그동안 서로 통합에 거부감을 나타내 실질적인 노무현 지원군 역할을 하지 못했던 이들은 각종 개혁 모임을 통합해 ‘민주개혁연대’를 만들기로 하고, 이상수·이해찬·장영달 의원 등 9명을 출범 준비위원으로 선임했다.


공교롭게도 ‘반노(反盧)’ 대 ‘친노(親盧)’가 동시에 세력 과시를 하는 모양새가 된 이 날, 두 모임을 관통하는 화두는 하나였다. 민주당이 노무현 후보를 앞세워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느냐이다. ‘반노’ 진영에서는 노후보로는 가망이 없으니 대안을 찾자는 것이었고, ‘친노’ 진영에서는 그래도 노무현밖에 없으니 합심해서 밀어보자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었다.


10명 중 7명 “대선에서 민주당이 진다”


이 두 주장은 아직 공개적으로 충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8·8 재·보선 이후 후보교체론은 민주당을 뒤흔드는 최대 화두로 떠오를 전망이다. 민주당 사람들은 물론 한나라당에서조차 8·8 이후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잔뜩 긴장하는 분위기다.





<시사저널>은 8·8 재·보선 이후 정가의 핵심 화두로 떠오를 후보교체론에 대해 민주당 대의원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지난 4·27 전당대회에서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한 민주당 대의원들은, 재경선이 치러지거나 신당이 추진될 경우 민주당 내 여론을 좌우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민주당이 차기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에 대해 대의원들은 매우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10명 가운데 7명이 올 대선에서 질 것이라고 전망한 반면, 이길 것이라는 대답은 24.9%에 불과했다. 전지역에서 ‘승리 가능성이 낮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는데, 특히 수도권(78.8%)과 충청권(81.7%)에서 비관적인 응답이 많았다.


민주당 대의원들의 패배 의식은 노무현 후보에 대한 심각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당장 절반이 넘는 대의원들이 8·8 재·보선 후에 대선 후보 재경선을 실시해야 한다고 응답했다(50.3%). 수도권에서 재경선을 해야 한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53.9%), 대구·경북과 호남에서는 재경선을 안해도 된다는 응답이 좀더 많았다(각각 54.5%와 51.5%).


물론 재경선에 찬성하는 응답자 중에는 재경선을 ‘노풍’을 재점화하는 계기로 삼자는 ‘친노’ 성향 대의원도 포함되어 있다. 한 서울지역 대의원은 “(6·13 지방선거 이후) 이미 약속을 한번 어겼는데 이번에 또 어기면 안된다. 어차피 대안이 없으니 노후보는 무조건 재경선 약속을 지켜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작 노후보는 재경선 자체에 회의적인 입장이다. “누구든 도전하면 받아줄 생각이다. 하지만 도전하겠다는 사람이 없으면 재경선이 무의미한 것 아닌가”라는 것이 노후보측 주장이다.


이를 두고 정가에서는 노후보가 ‘재경선’과 ‘재신임’을 혼용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재경선’은 후보 사퇴를 전제로 하고, ‘재신임’은 후보직 유지를 전제로 하는데, 노후보는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누구든 도전하라고 하니 재경선이 성립되겠느냐는 것이다.





“후보 교체해야 한다” 44.6%


노후보 지지도가 좀체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대의원들 사이에서는 노후보를 아예 바꿔야 한다는 극단적인 여론이 점차 높아가고 있다. 응답자들은 ‘노무현 후보를 바꿔야 하느냐 마느냐’는 민감한 질문에 서슴없이 응답했다. ‘후보를 교체할 필요가 없다’는 응답이 52.2%로, ‘교체해야 한다’는 응답 44.6%보다 많았다. ‘재경선’에 찬성하는 대의원이 절반 이상이었던 것에 비하면 노후보에게 유리한 결과다. 하지만 국민경선까지 해가며 뽑은 자기 당 후보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의원이 절반 가까이 된다는 사실은 노후보의 당내 지지 기반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더욱이 ‘후보 교체’에 찬성하는 44.6%는 온전한 ‘반 노무현’세력이라고 해석해도 무리가 아니다.


‘후보 교체 가능성’으로 들어가면 상황은 훨씬 더 열악해진다. ‘당신의 견해와 상관없이 실제로 노무현 후보가 교체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50.6%가 가능성이 높은 쪽을 택했다(매우 높다 8.3%, 높은 편이다 42.3%). ‘노후보를 교체해야 한다’는 단순 응답보다 높은 수치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가능성’조사는 미래에 대한 지표로서 유용하다. 그 해석대로라면 노무현 후보에 대한 교체 여론은 점점 더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민주당 대의원들은 노무현 후보 대신 누구를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만약 후보를 교체할 경우 누가 대안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의원들은 ‘정몽준’이라는 대답을 가장 많이 내놓았다(39.8%). 앞서 ‘후보 교체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대의원들 사이에서는 ‘정몽준 대안론’이 더욱 거세게 나타났다. 후보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 대의원 4백51명 가운데 48.8%가 정의원을 대안으로 꼽았다.





이런 ‘정몽준 대안론’은 월드컵 특수와 함께 반짝 인기로 끝나는 것 아니냐던 정의원의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특히 이회창·노무현·정몽준 3자 대결에서 정의원은 이회창 후보보다 노무현 후보의 표를 잠식하는 것으로 나타나, ‘반 이회창’을 표방하는 세력은 결국 노무현·정몽준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을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방문 중인 정의원은 7월28일 현지 특파원들과 만나 “대선 출마를 위해 가족을 설득중이다. 9월 정기국회 전에 대선 출마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겠다”라고 대권에 도전할 뜻을 강력하게 암시했다.


이런 정치적 여건과 당 안팎의 여론 변화는 민주당 지도부의 판단에도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장 ‘재경선’에 대한 중진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동안 이인제 의원 계보가 재경선에 적극적이었고, 박상천·정균환 의원은 소극적, 한광옥·김중권·동교동 구파는 오히려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 지금은 대부분 재경선 불가피 쪽으로 옮아가는 분위기다.


가장 주목할 만한 대목은 한화갑 대표의 태도 변화다. 당초 한대표는 노후보를 적극 뒷받침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는 노후보에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노후보가 햇볕정책을 비판한 데 대해 “공부 좀 하고 얘기하라”고 질타하는가 하면, 재경선에 대해서도 ‘수용’ 쪽으로 한 발짝 이동하는 모양새다.


이를 놓고 한대표 주변에서는 한대표가 원점에서 그림을 다시 그리려고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노후보에게 집착하지 않고 12월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가에서는 그 가능성을 두 가지 정도로 꼽는다.


‘민주당식’ 창당이냐, ‘국민회의식’ 창당이냐


하나는 노후보 사퇴 후 재경선이다. 이 안은 노후보만 동의하면 쉽게 성사될 수 있다. 하지만 효과가 미지수다. 일단 민주당 이름으로 재경선을 치를 경우 참여할 후보가 많지 않다. 이미 정몽준 의원의 경우 민주당 재경선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게다가 이런 과정을 통해 노후보가 재신임받는다고 해도 새로운 ‘노풍’을 기대하기란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또 한 가지는 신당 창당 후 재경선이다. 민주당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외연을 넓힌 후 새롭게 경선을 치르는 것이다. 정가에서는 이를 ‘새천년민주당식’ 창당(2000년 1월 DJ가 당의 이미지를 바꾸고 새 인사들을 규합하기 위해 국민회의를 새천년민주당으로 바꾼 것과 같은 식이라는 뜻)이라고 부른다. 한 재야 출신 재선 의원은 민주당을 버려야 하는 이유를 네 가지로 들었다. 하나는 DJ당이고, 둘째는 호남당이며, 셋째는 외연을 넓힐 수 없고, 넷째는 노후보가 사퇴했다가 재출마하는 것이 우습다. 그는 “대선에서 승리하는 길은 반 이회창 세력을 하나로 묶는 것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의 노무현으로는 대선 승리도, 분당을 막는 것도 불가능하다. 신당 창당 후 새로 경선을 치러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 과정을 통해 노후보가 거듭나던가, 아니면 새로운 대안이 탄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이 주장이 힘을 얻는 추세다. 한대표가 최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때가 되면 당 공식 기구에서 신당에 대해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것은 이런 당내 여론의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노무현 후보다. 노후보가 기득권 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신당 창당 후 재경선’이라는 카드는 무용지물이 된다. 노후보 사퇴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신당을 추진하더라도 새로이 참여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노후보는 “후보 사퇴는 없다”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26쪽 인터뷰 참조). “신당이든 재창당이든 결국 노무현당이 될 수밖에 없다”라는 주장도 내놓았다. 재경선 약속은 지키겠지만, 기득권 포기는 없다는 의미다.


48.3% “반창·비노 신당에 동참할 생각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노후보가 끝까지 기득권을 고집할 경우 민주당이 쪼개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노후보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당을 깨고 나가 ‘반 이회창 비 노무현’ 신당을 창당하리라는 것이다. 이 신당은 1995년 정계에 복귀한 DJ가 KT(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를 왕따시키기 위해 국민회의를 창당한 것에 빗대어 ‘국민회의식’ 신당이라고 불린다. 이인제 의원의 한 측근은 “대통령 후보가 당내 지지를 얻으려면 당선 가능성이 높든지, 아니면 공천권이나 자금 등으로 의원들을 줄세울 만한 힘이 있어야 한다”라면서, 그렇지 못한 지금 상태라면 의원들이 노후보를 외면할 수밖에 없다고 장담했다.


그렇다면 민주당 대의원들은 ‘반창 비노’ 신당에 얼마나 호응할 것인가? 여론조사 결과 놀랍게도 민주당 대의원 열에 다섯이 ‘반창 비노’신당이 생길 경우 동참할 용의가 있다고 대답했다(48.3%).
당초 여론조사를 준비하면서 이 질문에는 상대적으로 무응답률이 높으리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매우 민감한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응답자들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만큼 노무현 후보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는 얘기다. 7월27일 MBC가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이인제·정몽준·박근혜 3자 연대에 대한 지지 여론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난 것은 당 안팎에서 노후보의 위기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핀치에 몰린 노무현 후보가 마운드를 끝까지 지켜낼지, 아니면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는 구원투수에게 마운드를 내줄지, 불볕 더위만큼이나 뜨거운 대선 후보 쟁탈전이 2002년 여름을 달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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