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옥과 10억 진실 게임
  • 이숙이·주진우 기자 ()
  • 승인 2002.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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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양이 비자금을 어떻게 조성했고, '한인옥 10억원 수수설' 관련자 중에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추적했다.
기양건설은 김병량 회장과 이교식 전 상무가 1996년 7월 국민투자개발을 3천만원에 인수해 만든 회사다.
두 사람은 한창 재개발 논의가 진행 중이던 부천 범박동 재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신앙촌 주민회의 쪽과 접촉했지만, 주민회의측은 이미 세경진흥이라는 건설회사와 손을 잡은 상태였다. 두 사람은 방향을 바꾸어 토지 소유주인 시온학원측에 선을 댔다.





신앙촌 출신 김 아무개씨의 소개로 이청환 시온학원 이사장과 접촉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얼마 후 ‘3천만원짜리 페이퍼 컴퍼니에 불과하던’(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의 표현) 기양건설은 사업비만 1조원대에 이르는 신앙촌 재개발 사업에 종단측 대리인으로 나서게 되었다. 이교식 전 상무는 이 과정에서 “김병량 회장 부인 장순예씨와 이회창 후보 부인 한인옥씨가 친인척 사이라는 점이 종단측을 움직이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다”라고 주장했다(26쪽 인터뷰 참조).


이 때부터 신앙촌 재개발 사업은 종단측이 앞세운 기양건설(시공사는 동아건설)과 주민회의측이 내세운 세경진흥(시공사는 극동건설) 사이에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진흙탕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사이 양측은 극동건설로부터 지급보증을 받아 어음을 1백38억원(기양건설)과 4백47억원(세경진흥) 발행해 토지 매입에 나섰다. 이교식 전 상무가 한인옥씨에게 전달되었다고 주장하는 비자금은 이 1백38억원에서 조성되었다는 얘기다.


갈등을 반복하던 양쪽은 1997년 12월6일 마침내 합의에 도달했다. 세경진흥이 사업을 포기하면서 시행사는 종단측이 내세운 기양건설이, 시공사는 주민회의측이 내세운 극동건설이 맡기로 합의서를 작성한 것이다. 세경진흥이 발행한 어음 4백47억원을 기양건설이 회수하는 대신 세경진흥은 매입한 토지 20여 필지를 모두 기양측에 넘기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얼마 후 외환 위기가 터지고 극동건설이 부도가 나면서 극동건설의 지급보증을 받은 기양과 세경 모두 부도가 나고 말았다. ‘기양건설’이라는 이름을 못 쓰게 된 김병량 회장은 1998년 6월 이름이 비슷한 ‘기양건설산업’(기양산업)을 설립하고 회장으로 취임했다.


새 시공사를 찾던 기양산업은 1999년 LG건설과 약정을 체결하고 주민 이주비 명목으로 60억원 가량을 대여받았다. 하지만 일부 주민의 반발로 이주가 지연되자 사업이 불안하다고 여긴 LG건설이 나중에 이 돈을 돌려받는 조건으로 계약을 해지했다. <뉴스메이커> (495호)는 이 과정에서 비자금 6억원이 조성되어 이회창 후보의 서울 가회동 경남빌라 202호 구입 자금으로 흘러 들어간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기양산업이 LG건설로부터 54억원을 대여받아 놓고, 최종 시공사로 선정된 현대건설에는 60억원을 갚아야 한다고 해서 차액 6억원을 고스란히 비자금으로 남겼으며, 이 돈이 장순미씨(장순예씨의 여동생) 명의로 개설된 기양산업의 비자금 통장에서 이회창 후보 고모의 손녀딸 장석자씨에게 들어가 경남빌라 202호에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비용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병량 회장은 현대에서 받은 돈은 그대로 LG 대여금을 갚는 데 쓰였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해 김정길 전 법무부장관은 지난 11월1일 국회 예결위에서 “김병량 회장이 LG건설과 현대건설 간 시공사 변경 과정에서 조성한 비자금 6억원의 사용처 등에 대해 현재 관할 검찰청이 수사 중에 있음을 말씀드린다”라고 답변했다. 기양 비자금 수사가 어떤 식으로든 진행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기양, 유령 회사 만들어 엄청난 자금 마련


2000년 4월 현대건설을 최종 시공사로 맞이한 기양산업은 현대건설의 지급보증을 받은 돈으로 기양건설과 세경진흥이 발행했다가 부도 난 어음 약 5백85억원을 회수하는 데 나섰다. 사업을 진행하려면 부실 채권 매입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기양산업측은 변칙을 썼다. 부실 채권을 범박동 사업 당사자인 기양산업측이 금융권으로부터 직접 회수할 경우 원금에다 이자까지 주어야 하기 때문에 제3의 회사를 만들어 어음을 헐값에 사들이는 방법을 짜낸 것이다.


이를 위해 기양은 BHIC라는 유령 회사를 만들어 이교식 전 상무를 대표이사로 내세웠고, 연훈이라는 로비스트를 고용해 신한종금 같은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권에서 5백85억원 가량의 어음을 약 25%인 1백48억원에 모두 회수했다. 민주당이 “기양이 공적자금 손실을 초래했다”라고 주장하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현대에서 어음 회수용으로 2백70억원을 받아 실제 1백48억원만 쓰는 등 막대한 차익을 남긴 기양산업은 이 돈으로 금융기관 관계자와 검찰·경찰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제공했고, 2001년 11월과 2002년 6월 두 차례 검찰 수사 끝에 결국 김회장과 김진관 제주지검장 등 검·경 공무원, 금융권 인사 등이 여럿 구속되었다. DJ의 처조카인 예금보험공사 이형택 전무도 조사를 받았지만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당시 검찰이 입수한 장부는 김회장의 동서 홍용표씨가 부인 장순미씨 명의로 하이텔 서버에 관리하고 있던 개인 계좌 입출금 내역과 2000년 8월∼2001년 10월 기양산업 경리 장부다. 이 가운데 뇌물로 사용된 비자금 내역이 들어 있다. 한나라당은 <시사저널>이 보도한 비자금 자료와 관련해 “왜 사법 처리된 인사들은 빠지고 한인옥씨에게만 비자금이 제공된 것으로 되어 있느냐”라고 문제를 제기했지만, 사법 처리된 인사들에게 제공된 비자금은 2000년 4월 이후 조성된 것이다.


김병량 회장과 이교식 상무 사이가 틀어진 계기가 바로 이 두 차례 검찰 수사 때문이다. 2001년 가을 검찰이 공적자금 수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이 전 상무는 김회장에게 “어음 회수 과정에서 발생한 BHIC의 세금 문제를 빨리 해결해 달라”고 독촉했다. 이씨가 BHIC 대표이사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잘못하면 세금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회장은 세금 문제에 대해 나 몰라라 했고, 이에 격분한 이씨가 2001년 11월 검찰에 이 사실을 진정하면서 이른바 기양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나라당, <시사저널> 상대로 5억원 소송 제기


이씨의 진정으로 구속되었다가 집행유예로 나온 김회장은 곧바로 이 전 상무를 협박 갈취 혐의로 고발했다. 그가 김회장을 협박해 16억5천만원을 갈취해 갔다는 것이다. 이 일로 이 전 상무는 검찰 조사를 받았고, 기양산업과 각을 세웠던 세경진흥의 김선용 부회장을 찾아가면서 이른바 ‘김선용-이교식’ 공조가 시작되었다.


지난 10월10일 민주당 전갑길 의원은 이런 자료들을 근거로 기양산업에서 비자금 수십억원이 조성되어 이회창 후보측에 유입된 의혹이 있다고 폭로했다. 그런데 김정길 당시 법무부장관이 국회 답변에서 “수사 계획이 없다”라고 하면서 어물쩍 넘어갔다. 그랬다가 이번에 이 전 상무가 <시사저널>을 통해 “한인옥씨에게 비자금이 건네졌다”라고 주장하면서 다시 한번 불거진 것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시사저널>의 보도는 날조된 허위’라고 반박하면서, <시사저널>과 취재 기자를 상대로 5억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기양산업도 11월9일자 <조선일보>에 호소문을 내고 ‘기양건설산업은 한나라당이나 어떤 정치권과도 무관하며 장순예 등은 한인옥 여사와 일면식도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한인옥씨에게 비자금이 전달되었는가’를 놓고 김회장과 이 전 상무의 주장이 팽팽하게 엇갈리고 있다. 양쪽은 모두 검찰에 진실을 가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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