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찔린 한나라 “헷갈려!”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2.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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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단일화 소식에 충격·긴장…“노무현이 당했다” 분석도


한나라당은 뒤통수를 맞았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가 전격적으로 단일화에 합의한 일은 한나라당 전략가들을 혼돈에 빠뜨렸다. 당내에 두 사람의 단일화 논의가 이렇게 빨리 진전될 것으로 본 사람은 없었다. 당 전략팀과 대선기획단은 기본적으로 두 사람의 단일화가 안될 것으로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이 합의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11월16일에도 상당수 당직자들은 결국 단일화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애써 믿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였다.


단일화 합의 소식을 접한 한나라당 전략가들의 첫 반응은 노후보가 당했다는 것이었다. 청와대와 동교동 그룹 등 여권 핵심부가 노후보를 주저앉히고 정몽준 후보를 단일 후보로 만들기 위한 시나리오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일화 합의 뒤에 청와대가 있다”라는 김영일 본부장의 언급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한나라당 한 핵심 인사는 이렇게 분석하는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했다. 우선 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얼마 전 전화 통화를 하며 이에 대한 교감을 나누었다는 말이 있다는 것이다. 정후보가 ㅅ교회 목사를 만난 자리에서 청와대 고위 인사가 자신을 밀고 있다고 말했다는 소문, 동교동계 인사들이 노후보의 돈줄을 끊고 조직을 흔드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는 것도 이유로 든다.


이런 관점에서 한나라당은 정후보 개인에 대해 강도 높은 공격을 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한때 국회의원 보좌관 3∼4명으로 ‘MJ 대응팀’을 만들어 정후보 개인의 약점을 추적했던 한나라당은 관련 파일을 다시 꺼내 드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주말을 지나면서 이런 흐름은 신중론으로 바뀌었다. 각 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서 노후보가 정후보를 제치고 2위로 올라선 것으로 보도되면서 한나라당 내에는 청와대와 동교동계가 당혹해 한다는 말이 나왔다. 과연 정후보가 단일 후보가 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며 한나라당은 또 한 번 당황한 것이다.


세 불리기·취약 부분 공략 계속키로


한 당직자는 여론조사로 후보를 정하는 것은 역사에 없던 일이어서 당황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1주일 가량은 방향을 잡기가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나라당 전략가들 사이에서는 단일화가 될 것인가, 된다면 누구로 될 것인가, 단일화 상승 효과는 있는가, 있다면 어느 정도인가 등을 놓고 분분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한나라당은 헷갈리는 상황이 계속되자 노-정 두 사람이 권력을 나누어 먹기로 야합했다고 공격하면서, 일단 기본에 충실하자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세 불리기와 취약 부분 공략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로 한 것이다. 박근혜 의원 입당과 함께 민주당과 자민련 의원들을 영입하는 데 속도를 붙일 계획이며, 호남 지역과 젊은층에 대한 득표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당 일각에서는 노-정 단일화 합의를 계기로 그동안 정가에 나돌았던 ‘김대중-이회창 밀월설’을 비판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을 전면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대세는 여전히 김대통령을 껴안아야 한다는 쪽이다. 홍준표 의원은 “호남 정서가 변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호남 유권자들은 특정 후보에게 과거와 같은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김대통령을 포용해야 한다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원칙이다”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노-정 두 후보가 단일화를 이룬다면 득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도 나온다. 지지자들은 위기감을 느끼면서 결집하고, 후보가 안된 사람 표가 이회창 후보에게 모여 대세론에 가속이 붙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비상이 걸린 한나라당은 하루에 한번씩 여론조사를 하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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