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에 나타난 노무현 행적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2.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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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모 출범에서 ‘죽다 살기’까지



‘변방의 비주류 정치인’. 불과 얼마 전까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를 일컫던 말이다. 1988년 청문회 스타로 반짝 떴지만, 1990년 3당 합당에 따라나서지 않으면서부터 그의 고난은 시작되었다. 지역 감정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그는 고향 부산에서 세 번이나 낙선했다.



그런데 2000년 4월 세 번째 낙선을 한 직후, 기적이 벌어졌다. 인터넷에 그의 낙선을 애석해 하는 글이 떠오르기 시작하더니, 그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 데 일등 공신 역할을 한 ‘노사모’가 결성된 것. <시사저널> 제551호(2000년 5월18일자)는 ‘한국 정치의 X파일, 노무현’이라는 제목의 커버 스토리를 통해, 종이 매체로서는 유일하게 이를 소개했다. 노무현씨는 <시사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차기 대통령 선거에 반드시 출마하겠다”라고 선언했다. 이에 대해 당시 정치권은 어이없어 했지만, 이는 2년 반 만에 현실이 되었다.



그가 대선 도전을 선언했을 때 강호는 여전히 ‘이회창·이인제 대권 쌍웅 시대’(제548호 커버 스토리 제목)였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왔다. 민주당 쇄신운동 여파로 동교동계가 쇠락하고, 국민 경선이 현실화한 것. 대번에 그는 바람을 일으키면서 부활했다. <시사저널> 제648호(2002년 3월28일자)는 ‘어, 노무현’이라는 제목의 커버 스토리를 통해 ‘노풍’을 보도했다. 그리고 여론조사를 통해 노풍의 실체를 본격적으로 파헤쳤다. 당시 표지 제목은 ‘끝까지 지지하시겠습니까’였다.






이 물음에 응답이라도 하듯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경선 기간부터 일부 신문을 중심으로 ‘노무현 죽이기’가 본격화했다. 한 달도 못 되어 그는 ‘위기의 남자’(제656호)가 되어야 했고, ‘노무현 본선 못 가나’(제661호)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민주당 대의원 44.6%가 후보 교체를 원한다(제667호)는 조사도 나왔다. 후단협 소속 의원들의 노무현 흔들기도 심해졌다.



하지만 그는 오뚝이 같았다. 10월17일 김민석 전 의원이 탈당하자마자 개미군단의 후원금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노사모 회원 수가 가파르게 늘었고, 개혁 세력도 뭉치기 시작했다. <시사저널> 제679호는 ‘죽다 살다’라는 제목으로 그의 부활 기미를 전했다. 이어 그는 후보 단일화라는 도박마저 통과하면서 최후 승리에 성큼 다가섰다. <시사저널>은 제684호(12월4일자)에서 ‘잘 만났다’는 제목으로 노무현·이회창 양강 구도를 다룬 데 이어, 2주 후 제686호 커버 스토리 제목을 ‘2002 선거혁명, 잘 가라 돈·조직’으로 붙이면서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것을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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