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개혁 첫발 ‘민 주당 재건축’
  • 이숙이 기자 (sooksisapress.com.kr)
  • 승인 2002.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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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당선자 앞에 놓인 맨 처음 관문은 당 개혁이다. 새 정권의 첫 인상을 가름할 ‘노무현 신당’의 밑그림은 어떤 것인가.
"뺄셈 정치가 덧셈 정치를 이겼다.” 노무현 후보 당선이 던진 메시지 가운데 하나다. 노당선자는 올 4월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후 줄곧 ‘뺄셈 정치’를 고집했다. 동교동계와 이인제 의원을 포용해야 한다는 주변의 권유에 코방귀도 뀌지 않았고, 충청표를 얻으려면 김종필 총재에게 손을 내밀라는 충고도 외면했다. 이유는 한 가지, ‘원칙 없는 야합’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노당선자의 한 핵심 참모는 선거 막판에 있었던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후보 등록 사흘을 앞두고 한 후보측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노후보와 얘기(협상)만 잘 되면 후보 등록을 포기하고 노후보 지지를 선언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였다. 하지만 노후보에게 얘기해봤자 씨알도 안 먹히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예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노무현식 ‘뺄셈 정치’의 하이라이트는 투표 전날 벌어진 정몽준 대표와의 결별이다. 판은 정대표가 먼저 깼지만, 노당선자도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있다. 지분 보장용 각서를 요구하는 정대표측에 “대통령 안 하는 한이 있어도 각서는 못 쓴다”라고 버틴 것이 끝내 정대표를 폭발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뺄셈 정치’ 행보는 계속된다



정치권에서는 이런 뺄셈 정치가 결국 노후보의 당선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리라고 보았다. 정치권의 기존 문법으로 보면 선거 때는 한 사람이라도 더 끌어들이려고 노력하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 유권자들은 노후보의 뺄셈 정치에 오히려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원칙 없이 사람만 모으고 보는 덧셈 정치를 청산해야 할 낡은 정치라고 심판한 것이다. 덕분에 노후보 진영을 충격에 빠뜨렸던 ‘정몽준 악재’는 오히려 노당선자의 발걸음을 홀가분하게 만드는 호재로 변했다.
그렇다면 노당선자는 이런 뺄셈정치를 당선 후에도 계속 고집할 것인가. 그리고 그 대상은 누가 될 것인가?



그는 당선이 확정된 후 가진 몇몇 인터뷰에서 새 정치를 향한 가장 시급한 과제로 ‘당 개혁’을 꼽았다. 12월20일 첫 번째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당·정 분리 원칙은 지킬 것이나, 평당원의 한 사람이자 정치에 큰 책임을 맡은 사람으로서 정치적 변화를 국민과 함께 수행할 책임이 크다”라고 당 개혁 의지를 드러냈다.



“골격은 그대로” “완전히 갈아엎자” 양론



노당선자가 민주당을 가장 먼저 수술대에 올리려는 이유는 세 가지다. 우선 3김 정치를 끊는다는 상징적 의미에서라도 DJ가 만든 민주당 간판을 내리는 것이 급선무라는 판단이다. 노당선자는 후보 시절 한나라당이 DJ 양자론을 내세워 자기를 집중 공격하자 “당 이름이라도 바꿀 걸 잘못했나 보다”라며 아쉬워한 적이 있다. 한화갑 대표가 선대위원장을 맡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내심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둘째로, 범동교동계가 여전히 당의 요직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대위원회는 노당선자와 성향이 맞는 인사들로 채워졌지만, 선대위가 해체되고 이 인사들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로 대거 빠질 경우, 당은 또다시 동교동계의 영향권에 들게 된다. 이 때문에라도 노당선자는 당의 주도 세력을 하루빨리 바꾸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인물들이 민주당에 동참하도록 걸림돌을 제거해야 한다는 점이다. 비단 이번 대선 과정에서 노후보 지지를 선언했던 개혁 국민정당을 겨냥한 것만은 아니다. 노당선자는 정치인을 싸잡아 욕하는 풍토를 없애 참신한 전문가들이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정치권 문을 두드리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고 틈만 나면 강조했다. 그래야 취임 1년 후에 치러지는 2004년 총선에서 노무현 바람을 이어갈 수 있다는 계산이다.



당 개혁과 관련해 민주당 내부에는 두 가지 기류가 있다. 하나는, 당의 골격은 그대로 둔채 당명을 바꾸고 지도부를 교체하는 선에서 리모델링하자는 쪽이다. 정당 구조 자체를 바꾸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일단 간판 먼저 바꾸고 새로 전당대회를 열어 지도부를 바꾸자는 주장이다.
다른 하나는, 이 기회에 중앙당을 폐지하고 원내총무를 당 대표로 내세우는 원내 정당제도를 도입하자는 쪽이다. 노당선자와 핵심 참모들은 주로 후자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어차피 당의 체질을 개선하려면 기회가 왔을 때 기초부터 갈아엎자고 판단해서다.



현재 당선자 진영에서 그리고 있는 이른바 ‘노무현 신당’의 얼개는 대강 이렇다. 첫째, 돈 먹는 하마로 불리는 중앙당은 직원 20~30명이 근무하는 연락사무소 정도로 축소한다, 둘째, 국회의원들이 선출한 원내총무가 당 대표 역할을 맡는 미국식 원내 정당 제도를 도입한다, 셋째, 지역 별로 당비를 내는 진성 당원을 2천명 이상 확보하고 이들 중에서 선거 때마다 공직 후보를 선출하는 상향식 공천 제도를 정착시킨다는 내용이다. 투표 6일 전 경기도 평택에서 대전으로 가는 유세 버스 안에서 만난 노후보는 이번 대선을 치르면서 정당 개혁의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한국 사회에서 과연 돈을 내는 당원이 나올까 싶었어요. 그런데 희망 돼지 열풍을 보면서 이런 자발적 참여 문화를 잘만 키우면 정당 개혁도 의외로 쉽게 이루겠다는 희망을 갖게 됐습니다.”



노당선자의 당 개혁 의지가 전해지면서 당내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이런저런 하마평이 무성하다. 이를테면 ‘원내 정당으로 전환될 경우 김원기 고문이 총무감으로 적임이다’는 식이다. 김고문은 노당선자가 가장 의지하는 정치 선배이며, 여야 두루 대화가 통하는 몇 안되는 민주당 중진 가운데 한 사람이다. 민주당의 한 고위 인사는 “노당선자는 DJ 정권 초기처럼 야당 의원 빼내기를 통해 여대야소를 시도할 생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야당과 대화가 통하는 인물이 당 대표로 나서야 한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아예 정동영·추미애 같은 40대 기수들을 신당의 얼굴로 내세워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젊은 주자를 앞세워 정치권 세대 교체를 가속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닌 게 아니라 노당선자는 이미 정몽준 대표와의 마찰을 감수하면서까지 두 사람을 확실한 차기 주자 반열에 올려놓은 터이다.



어떤 방안을 택하든 급선무는 현 지도부가 사퇴하는 것이다. 그래야 신당의 성격과 방향을 연구할 ‘준비위원회’를 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당 내부에서는 당분간 한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의 결단 여부를 지켜본 후, 필요하다면 누군가 총대를 메고 지도부 사퇴를 압박한다는 시나리오를 세워놓고 있다. 이와 상관없이 당내 초선 의원들의 모임인 새벽21 소속 한 의원은 “조만간 모임을 열어 당의 개혁 방안을 논의하겠다”라고 말했다.



당내 기득권층 저항 이겨내야 성공



이렇듯 당내에 주도 세력 교체론이 본격화하면서 그동안 민주당을 쥐락펴락했던 동교동계는 좌불안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노후보 당선이 확정된 날, ‘노무현 흔들기’에 앞장섰던 정균환·박상천 최고위원의 표정은 묘했다. 한화갑 대표 역시 웃기는 했지만 결코 ‘활짝’은 아니었다. 범동교동계 출신 한 최고위원의 보좌관은 개표가 진행되는 동안 ‘노후보가 마지막 유세에서 신당을 언급한 배경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다’며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늘어졌다.


권력의 속성상 노무현 당선자가 추진할 주도세력 교체론은 당내 기득권층의 거센 저항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 고비 때마다 ‘결별’을 통해 오히려 더 많은 민심을 얻었던 노무현식 뺄셈 정치가 이번에도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노무현 정권의 첫인상은 바로 노무현 신당에서 결정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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