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버려야 노무현이 산다”
  • 나권일 기자 (nafrsisapress.com.kr)
  • 승인 2003.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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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민심 르포/기대감 속 정치 개혁 요구 높아…대선 몰표 반성도


지난 1월22일 저녁 8시. 광주YMCA 회관 2층 무진관이 토론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토론 주제는 ‘지역 정치세력 교체, 새 리더십 창출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광주에서 시민단체 주최로 민주당을 대신할 정치 세력을 만들어내자는 공개 토론회가 열린 것은 민주당 구주류를 향한 ‘도전’이나 다름없었다. 발제자로 나선 김 준 교수(목포대)는 “호남에서 민주당은 개혁 대상이다. 낡은 정치인은 청산되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대신할 정치 세력 만들자”



20∼30대가 대부분인 방청객 가운데 노사모 회원도 눈에 띄었다.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 지지를 선언한 김영주 교수(초당대)는 “노무현 정부가 성공하려면 동교동계를 밟고 넘어가야 한다. 남북 문제 등 몇 가지 성과를 빼놓고는 DJ를 버려야 노무현이 성공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더 이상의 ‘호남 몰표’는 안된다고 자성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주간 시민의 소리> 기자를 지낸 양근서씨(35)는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에 대한 광주의 몰표는 지역주의 투표 행태였다는 비판에 동의한다”라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의 개혁을 지켜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지역에서 정치 개혁 기구를 만들어 내년 총선을 대비해야 한다는 토론자들의 주장에 방청석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토론회는 정치 개혁 기치를 내건 노무현 시대 신진 정치 세력들의 출사표 자리를 방불케 했다.
대선이 끝난 지 한 달여. 광주 사람들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에 가득 차 있었다. 기대감의 밑자락에는 ‘노무현 대통령은 광주가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깔려 있다. 1월23일, 폭설이 내린 광주 시내에서 눈길을 달리던 택시기사 김 아무개씨(39)는 “당연히 기대가 많제라. 그란디 처음엔 잘 나가다가 정치 오래한 사람들 입김에 밀릴까 그것이 꺽정이요”라고 말했다.



일단 지켜보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한 30대 공무원은 “대통령이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던 시대도 아니고, 노무현 대통령도 어차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DJ 때도 덕본 것 없고 기대만 걸었다 실망하느니 일단 지켜보겠다”라고 말했다.
노무현 당선자가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과감한 개혁을 주문했다. 김영집 광주참여자치연구소장은 “기성 정치인을 대체할 정치 신인이 많이 배출되어야 한다. 노당선자가 정치 개혁에 나서면 광주 지역의 시민 사회도 새로운 정치 참여 분위기를 만들어 가겠다”라고 말했다.




당직자들은 배신감 토로



그러나 ‘노무현식 개혁’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민주당 당직자들은 ‘배신감’까지 토로했다. 서현남 민주당 광주시지부 조직국장은 “인터넷 살생부 파동을 두고 ‘노무현이 어렵게 강을 건너고 나서는 타고 왔던 뗏목(민주당)을 버리겠다는 심사가 아니냐’고 항의하는 당원이 많다”라고 말했다. 서씨는 “솔직히 말해 노무현 당선자가 무소속으로 출마했더라면 호남에서 몰표가 나왔겠느냐. 함께 고생했던 사람들을 버려서는 안된다”라며 불편한 속내를 전했다.



속내 복잡한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



한화갑 민주당 대표의 전남 무안지구당 사무실을 찾은 당원들 가운데에는 노골적으로 노사모를 비난하는 이도 적지 않다. 지난 1월15일 민주당 주최 국민토론회에서 노사모 일부 회원들이 ‘호남 민심 볼모 맹주 노릇 한화갑 이제는 떠나라’는 등의 피켓을 들고 시위한 데 대한 앙금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호남 사람 다수는 지금 민주당에 대해 복잡한 심경인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당선자에게 표를 준 호남 유권자의 60%는 50대 이상의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이다. 이들은 ‘노무현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이회창이 싫어서’ 표를 던진 사람들이다. 민주당 일부 당직자들이 ‘노무현이 탈레반을 동원해 민주당을 홀대하면 내년 총선에서 호남 사람들에게 당할 것’이라고 내심 경고하는 것은 이런 표심을 믿기 때문이다.



호남에서 벌써부터 2004년 총선이 관심을 모으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노무현 정부가 정치 개혁을 하더라도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이 ‘인적 청산’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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