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대세론 굳혔다
  • 고제규·차형석 기자 ()
  • 승인 2005.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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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의 당권은 어디로 갈 것인가. <시사저널>은 국내 언론 최초로 ‘당원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당원협의회장의 명부를 단독 입수해 밑바닥 표심을 알아보았다.
 ‘당심의 핵’ 당원협의회장 
 
 
지난 1월31일, 국회 헌정기념관. 열린우리당 당원협의회장 워크숍(왼쪽 사진)에서 임채정 당의장은 전국에서 모인 당원협의회장 2백20여명을 ‘열린우리당의 1대 당주(黨主)’라고 표현했다. 기간당원(2월3일 현재 24만9천8백3명)으로 구성된 당원협의회는 대의원을 선출해 대통령 후보, 당의장 등 사실상 거의 모든 당직과 공직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를 뽑는 권한을 가진다. 기간당원들이 시·군·구 별로 직접 선출한 당원협의회장은 ‘개미 정당’의 선봉에 선 사람들이다.
임기는 1년이고, 1년에 한해 연임할 수 있다.

당원협의회장은 전당대회에서 한 표를 행사하는 당연직 대의원이다. 하지만 영향력은 ‘n분의 1표’ 그 이상이다.


당헌·당규상 대의원의 60%를 읍·면·동 기간당원대회에서 선출하고, 40%를 운영위원회에서 구성하는 추천위원회가 선발한다. 당원협의회장이 운영위원장을 겸임하는 데다 지역 조직에 영향력을 갖기 때문에 당원협의회장의 성향에 따라 당권의 향배가 달라질 수 있다.

<시사저널 >은 당원협의회장 명부를 단독 입수해 이들을 대상으로 지난 2월1~2일 전화 설문 조사를 했다. 설문에는 1백60명이 응답했다. 당원협의회장들을 상대로 한 언론의 설문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열린우리당이 본격적인 당권 경쟁에 돌입했다. 오는 4월2일 열린우리당은 전당대회를 열고 상임중앙위원과 당의장을 선출한다. 후보들은 2월14일부터 출마를 선언하고, 2월24일부터는 중앙위원 추천을 받아 본격적인 경선에 돌입한다. 전당대회에서 5위 안에 들어야 상임중앙위원에 뽑히고, 최다 득표자가 당의장에 선출된다.

기간 당원 중심으로 체질을 바꾼 열린우리당의 당권은 당원들 손에 달려 있다. 기간 당원들이 직접 대의원을 선출하고, 전국에서 뽑힌 대의원 1만3천6백여명이 당의장을 뽑는 명실상부한 상향식 첫 전당대회를 앞두고, 밑바닥 당원 민심은 당권 레이스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시사저널>이 당원협의회장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것도 바로 이런 밑바닥 민심을 읽기 위해서다.

상임중앙위원 1위, 김원웅 <br><시사저널>은 먼저 상임중앙위원으로 누가 적합하다고 생각하는지 2명을 꼽으라고 물었다. 당원협의회장들이 당내 역학 관계와 중앙 정치를 잘 안다고 판단해 사전 예문 없이 주관식으로 물었다. 복수 응답을 요구한 것은 실제로 전당대회에서 당원협의회장을 포함한 대의원들이 1인 2표를 행사하기 때문이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김원웅 의원(26.9%)이 1위를 차지했고, 2위는 신기남 의원(21.3%), 3위에는 문희상 의원(19.4%)이 뽑혔다. 김혁규 의원(15.6%), 장영달 의원(15%), 김두관 전 장관(15%), 유시민 의원(11.3%), 한명숙 의원(9.4%)이 뒤를 이었다. 염동연 의원은 호남권의 지지를 받아 9위(8.8%)에 올랐다. 한명숙 의원을 제외하고 여성 의원 지지율은 대체로 낮았다. 출마 여부 자체가 관심을 끌고 있는 국민참여연대 명계남 의장(0.6%)도 예상과 달리 낮은 지지율을 보였다.

조사 결과를 보면 개혁당 출신이 주축인 참여정치연구회(참정연)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1위에 오른 김원웅 의원과 공동 5위를 차지한 김두관 전 장관, 7위인 유시민 의원은 참정연 트로이카다.

그런데 ‘김원웅 이변’에는 참정연 관계자들마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대중성을 지닌 유시민 의원도 아니고, 김원웅 의원이 1위를 차지한 것은 놀랍다”라고 참정연 관계자는 말했다. ‘김원웅 이변’에는 이유가 있었다. 김의원의 밑바닥 훑기 행보 덕이다. 김의원은 지난해 10월부터 전국을 샅샅이 돌아다녔다. 당원 배가 운동을 벌인 영남권부터, 여권의 전통적 지지 기반인 호남까지 독립군처럼 민심 행보를 강화한 것이다. 제주도를 두 번이나 방문할 정도로 김의원은 분주하게 밑바닥을 훑었다.

한 당원협의회장은 “김원웅 의원은 얼굴만 비치고 가는 의원들과 달리 저녁 늦게까지 소주잔을 기울이며 당원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이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당원협의회장은 “협의회장 당선을 축하한다고 축하 난을 보낸 의원은 김원웅 의원이 유일하다”라고 말했다.

김의원측도 밑바닥 행보를 부정하지 않는다. 김원웅 의원은 “중앙에 앉아서 의원들을 상대로 그림을 그리며 판세를 짜는데, 이게 바로 낡은 정치다. 당원이 중심인 정당에 맞게 의원보다도 당원들을 꾸준히 만났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원웅 의원이 넘어야 할 난관은 높다. 본선보다 예선을 통과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자기 지지 기반인 참정연과도 이미 갈등의 골이 깊다. 김원웅 의원은 일찌감치 참정연의 결정과 무관하게 독자 행보를 보였다. 참정연은 후보를 조정해 2명을 내세울 방침이었는데, 김의원의 독자 행보로 물거품이 되었다. 참정연의 한 관계자가 ‘김원웅 의원이 참정연이기는 하느냐’고 되물을 정도로 반감이 크다. 이에 대해 김원웅 의원측은 “참정연이 마치 유시민 의원과 김두관 전 장관의 사조직인 것처럼 두 사람이 좌지우지한다. 상임중앙위원 후보로 등록하려면 중앙위원 5명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현재 중앙위원은 66명으로 복수 추천은 안된다. 그런데 두 사람이 독식하기 위해 개혁당 출신 중앙위원들에게 김원웅 의원은 추천하지 말라고 했다는 소문까지 돈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참정연의 트로이카 협력은 무너졌다.

신기남 약진, 눈에 띄네

김원웅 이변과 함께 눈에 띄는 현상은 신기남 의원의 약진이다. 신기남 의원은 지역적으로 수도권, 연령대에서는 40대 협의회장들의 지지에 힘입어 2위에 올랐다. 신기남 의원은 지난해 부친의 친일 논란으로 당의장에서 낙마했다. 그 후 일선에서 후퇴해 자중했다. 신의원은 지난해 말 이후 ‘명예회복론’을 내걸며 당의장에 도전할 뜻을 비쳤다. 그러자 당내에서는 시기상조론이 퍼졌다. 구 당권파인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 그룹 내부에서도 신기남 의원을 주저앉히려 했다. 라식 수술을 하고 이미지 변신을 꾀하는 신기남 의원은 “공식 출마를 선언하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 지지를 받는 걸 보면 당의 정체성 확립을 요구하는 당원들의 기대가 큰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신기남 현상’은 각 캠프가 실시하고 있는 내부 설문조사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한 당직자는 “한 후보 캠프에서 당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신기남 의원이 매번 3위 안에 들고 있다. 각 캠프마다 신기남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신기남 현상을 두고, 당내에서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중앙당의 한 당직자는 “신의원의 낙마는 부친의 친일 논란뿐 아니라 본인의 거짓말 때문이다. 짐을 벗기에는 아직 이르다”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한 의원은 “신의원은 부친 문제가 불거지자 미련 없이 물러나면서 박근혜 대표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말 4대 입법 파동 때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며 정치적으로도 살아났다”라고 말했다.

일찌감치 당의장 대세론을 형성한 문희상 의원은 중앙상임위원 3위에 올랐다. 문의원의 저력은 본선에 강하다는 점에 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확인되었다.

 
문희상, 당의장감 1위로 꼽혀

‘본인의 선택과 관계없이 누가 당의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한명만 꼽으라’는 주관식 질문에 문희상 의원(20%)이 1위를 차지하며 ‘대세론’을 굳혔다. 김혁규 의원(13.1%)이 2위, 신기남 의원(11.3%)이 3위에 올랐다. 김원웅 의원(6.3%), 김두관 전 장관(5%)이 뒤를 이었지만 격차가 컸다.

‘개혁과 민생’ 동반 성장론을 설파하고 있는 문의원은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받았다. 예상과 달리 40대 당원협의회장들로부터도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았다. 한 40대 당원협의회장은 “중량감 있는 문희상 의원이 당의장을 해야 중심이 잡힌다고 보는 당원이 많다”라고 말했다. 문희상 의원측도 “상임중앙위원은 개혁적일 필요가 있지만, 당의장은 개혁과 실용을 아우르는 통합우선론자가 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반영된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문희상 의원측은 김혁규 의원에 비해서는 개혁적이고, 신기남 의원에 비해서는 실용주의자라는 점을 대세론의 근거로 본다. 김혁규 의원의 실용주의우선론은 개혁을 화두로 삼은 열린우리당 정체성과 어긋나고, 개혁우선론이 강한 신기남 의원은 2기 참여정부 국정 기조와 어긋난다며 문의원측은 당원들이 현명한 선택을 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런 문희상 대세론은 현재 열린우리당이 표방하고 있는 실용주의 노선에 대한 당원협의회장의 높은 지지율에서도 간접으로 확인된다. 당원협의회장 10명 가운데 7명은 실용주의 노선을 표방한 현재 지도부가 잘하고 있다고 보았다. 또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합당에 대한 찬성이 압도적인 설문조사 결과도 문의원에게 유리하다(20~21쪽 딸린 기사 참조). 문희상 의원은 민주당 한화갑 대표와 동교동 신파를 이끈 주역이다.

하지만 문희상 의원의 개혁 색깔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국가보안법 처리 문제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말 문의원은 합의처리 우선론을 외쳤다. 하지만 이번 설문조사에서 국가보안법 처리 방향을 묻는 질문에 협의회장 10명 가운데 5명이 문의원과 달리 개혁적인 목소리를 냈다(16쪽 상자 기사 참조).

영남권의 지지를 받은 김혁규 의원은 문의원에 이어 당의장감 2위에 올랐다. 경북(30%)과 경남(26.7%)에서 높은 지지를 받았다. 김의원은 김두관 전 장관과 표를 양분하고 있는데, 김 전장관이 예선을 통과하지 못할 경우 확실하게 영남권 지지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사에서 눈에 띄는 것은 전남 지역 당원협의회장들이 당의장감으로 김혁규 의원에게 후한 점수를 주었다는 점이다. 김의원은 전남 지역 당원협의회장들로부터 문희상 의원(29.4%)에 이어 두 번째(23.5%)로 높은 지지를 받았다.

 
영남 출신 김혁규, 전남 지역에서 각광


김혁규 의원을 당의장감으로 꼽은 전남 지역의 한 협의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호남 지역 회장들 가운데 민주당 특무상사 출신이 많다. 전부 정치 해설 9단쯤은 된다. 정세균 원내대표가 호남 출신인데, 당의장은 다른 지역에서 나와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 후보군을 딱 보면 정답이 나오기 마련이다”라고 말했다.

문희상 의원측이 보기에 다크호스는 아무래도 신기남 의원이다. 당의장감 3위에 오른 신의원은 전국 선거를 두 번이나 치른 경험이 있다. 한 당직자는 “짧지만 당의장을 지낸 점을 무시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또한 현장 변수도 신기남 의원 쪽에 유리하다. 4월2일 토요일에 서울에서 열리는 전당대회장까지 와서 투표하는 대의원은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당원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1월, 신기남 의원이 예상을 뒤엎고 정동영 장관에 이어 2위에 오른 것도 역시 개혁적인 현장 연설의 영향이 컸다. 지난해 당권 도전에서 개혁을 키워드로 삼은 신기남 의원측은 이번에는 “개혁과 단결을 주장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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