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건물은 내부에서 폭파되었다?
  • 프랑크푸르트/허 광 (rena@sisapress.com)
  • 승인 2003.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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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비공식 버전’ 독일서 화제 …‘미국 음모론’ 확산
독일에서는 최근 ‘9·11 비공식 버전’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주간 <차이트>가 7월24일 발표한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30세 이하 청소년층에서는 3명 중 1명이 9·11을 미국의 음모로 보고 있으며, 78%가 신문·방송이 9·11의 실체를 제대로 알리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독일에서 9·11 비공식 버전을 유력하게 만든 주역으로는 단연 저널리스트 세 명이 꼽힌다. 그 중 첫 번째가 독일 정부에서 과학연구장관·국방차관을 역임한 안드레아스 폰 뷸로. 서방 세계의 정치권 인사이더 중에서는 처음으로 9·11 ‘공식 버전’에 반기를 들어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던 폰 뷸로는 지난 7월 <미국 중앙정보국과 9·11>을 펴냈다. 그는 ‘이런 책을 쓰면서 두렵지 않은가’라는 신문 기자의 질문에 ‘어디선가 나를 죽이면 오히려 내 얘기가 옳았다는 것이 증명될 텐데…. 그런 걱정은 하지 않는다’라고 응수하기도 했다.
9·11 비공식 버전을 확산시킨 두 번째 주인공은 1980년대 독일의 유력 일간지에서 문화 비평가로 필명을 날린 마티아스 브뢰커스. 그는 자신의 글이 신문사에서 퇴짜맞자 9·11 이틀 후부터 웹사이트에 일기 형식으로 글을 올렸다. 그 일기를 모아 지난해 말 펴낸 책 <9·11-음모와 음모론 그리고 비밀>은 현재 35쇄까지 찍었고, 지난 7월에 출간된 속편 <9·11-사실과 기만 그리고 은폐된 증거>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세 번째 인물은 게르하르트 비스네프스키. 독일 공영 TV인 WDR의 시사 프로그램 <모니터>에서 활약했고, 10여 년 전부터 정치 암살이나 여객기 폭파 추락 사고의 배후를 파헤치는 책과 영화를 만들고 있다. 1989년 암살된 도이체 방크 총수 헤어하우젠이 극좌 테러 조직 적군파에게 희생되었다는 독일판 ‘공식 버전’의 허구를 파헤친 책 <적군파 유령>(1992)이 그의 대표작이다.

비스네프스키가 9·11 현장을 답사해서 만든 기록 영화 <미해결 문서 9·11>은 지난 6월20일 WDR에서 상영한 후 네 번이나 재방송될 만큼 주목되었다. 이로써 지난 6월20일은 독일 방송계가 ‘침묵의 카르텔’을 깬 중요한 날로 기록되기에 이르렀다. 비스네프스키는 지난 7월 <9·11 작전-지구에 대한 공격>을 펴내, 영화에 미처 담지 못한 9·11의 내막을 소상히 전했다.

9·11 비공식 버전에 공감하는 여론이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는 반면, 한쪽에서는 이런 흐름을 막아보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탐사 보도의 원조라 자처하는 주간지 <슈피겔>이 ‘9·11 공식 버전 엄호’에 총대를 매고 나선 것이 흥미롭다. <슈피겔>은 브뢰커스나 폰 뷸로가 책을 펴낼 때마다 그들을 ‘정신 나간 음모론자’로 몰아부쳤다. 슈피겔은 브뢰커스가 쓴 책이 사실을 날조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도, 책 이름을 공개하지 않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비공식 버전은 ‘보통 상식’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섬뜩한 주장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비스네프스키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객기 4대는 무역센터와 펜타곤, 생스빌에 떨어지지 않았다. 여객기 4대는 사라지고 두 대 또는 네 대의 다른 비행체가 나타났다.” 다시 말해 무역센터에 충돌했다는 여객기가 사실은 여객기로 위장된 비행체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여객기 두 대도 어디론가 사라졌고, 그 대신 다른 비행체가 등장했는데 펜타곤에는 미사일이, 생스빌에는 폭탄이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놀란 만한 폭로는 이뿐이 아니다. “무역센터는 비행체가 충돌해서 무너진 게 아니다. 무역센터는 정교하게 폭파된 것이다. 9·11 작전은 수십년 전에 만든 ‘노스우드 작전’에 기초했을 것이다.” 노스우드 작전은 1962년, 미국 합참본부에서 만든 비밀 작전인데, 군용기를 여객기로 위장해서 쿠바 침공에 필요한 구실을 만든다는 내용이 골자다.
비스네프스키는 노스우드 작전이 실제로 9·11의 기초가 되었음을 확인하는 증거는 없지만, 취미 삼아 비행 훈련을 받은 테러범들이 정밀 비행을 해서 무역센터와 펜타곤을 공격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보다는 더 설득력이 있다고 말한다.

이상이 이른바 비공식 버전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데, 폰 뷸로나 브뢰커스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이들이 펴낸 책을 좀더 들여다보자. 먼저 9·11 이틀 만에 FBI는 여객기 납치범 19명 중 6명이 살아 있다고 ‘자진 신고’ 했다. 그 중 두 명은 사우디아라비아 외교관의 아들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외무장관은 미국측의 이같은 발표에 강하게 항의했고, 사과를 받아냈다. BBC나 서방 통신사가 보도한 사실이다.

세 독일 저널리스트들은 또 어딘가에서 시체로 발견되어야 할 납치범들이 살아 있다는 것만큼이나 이상한 일은, 2년이 지나도록 납치범 명단에 변화가 없었던 점이라고 지적한다. 납치범 가운데 주동자로 알려진 모하메드 아타의 행적도 의문투성이다.

미국 저널리스트 다니엘 홉 시커는 아타가 등록했다는 사설 비행학교 주변을 취재하면서 특종감을 건졌다. 두 달 동안 동거한 콜걸을 찾아내 아타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수집했다. 보드카와 마약을 즐기고 돈 쓰기를 물 쓰듯하며, 독일인 5명과 자주 접촉했다는, 아랍 테러범에 어울리지 않는 행적이 드러난 것이다. 인터뷰에 응한 여인은 그 후 홀연히 사라졌다. 테러범과 동거했다는 이야기를 언론사에 팔면 팔자를 고칠 수도 있었던 그 여인은 왜 사라졌을까. 아타의 행적을 알고 있는 지역 주민들도 입을 다물고 있으라는 압력을 받았다. 아타가 다닌 비행학교 서류도 FBI가 ‘수사용’이라는 구실을 대고 모조리 실어갔다.

스위스 경찰은 오사마 빈 라덴의 형제 예슬람을 수사한 일이 있다. 스위스에서 그가 운영하는 항공사가 플로리다 비행학교 선전을 했기 때문이다. 홉 시커는 아타와 몇몇 공범들이, 당국은 부인했지만 미국 공군 국제 장교학교를 다닌 경력도 찾아냈다. 이는 정부 차원의 허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여객기 4대에 관련해서도 이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이 탑승객 수이다. 보통 항공사는 정원을 초과해서 표를 파는데, 이날 탑승객은 정원의 1/3도 안되었다. 또 여객기 AA 11이 납치되었을 때, 나머지 세 대는 공항에 대기 중이었다. 첫 번째 여객기의 납치 사실이 알려지면 대기 중인 여객기의 이륙이 연기될 수 있다. 그렇다면 비행기 4대가 모두 이륙한 후에 납치극을 시작하는 게 정상이 아닐까(위 표 참조).

또 여객기들이 납치된 시각부터 정상 항로를 벗어났다고 보면, 그 다음부터 여객기는 타격 목표를 향해 전속력으로 날아가야 한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미국 공군의 추격망에 걸려들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객기들이 납치된 후의 궤적을 보면 타격 목표와는 반대 쪽으로 꺾어서 우회 비행을 하고 있다. 게다가 펜타곤에 충돌했다는 여객기는 납치된 후에도 가던 방향으로 계속 날아갔다.

흔히 ‘아랍 테러범들이 미국의 심장부를 타격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타격 효과를 극소화한 것이다. 만약 테러범들이 무역센터가 아니라 중앙정보국이나 국가안보국(NSA), 아니 원자력 발전소를 공격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아마도 미국의 전투력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거나, 정권 유지도 어려워졌을 것이다. 또 펜타곤 건물만 따져도 항공기 충돌에 의해 무너진 부분은 ‘공사 중’이라는 이유로 텅 비어 있던 곳이다. 물론 무역센터가 무너지고 인명 피해가 생겼지만 그것은 미국이 전투력을 확대하는 데 좋은 명분을 제공하는 구실을 했다.
무역센터가 불타고 있던 아침 9시에 네브라스카 공군 기지에서는 빌 게이츠 버금가는 미국의 갑부 워렌 버핏이 유명 인사와 기업가들을 초대해 자선 만찬 모임을 열고 있었는데, 그날 오후 부시 대통령이 들른 곳이 바로 이 곳이다.

WDR이 상영한 기록 영화에서, 펜실베니아 주 생스빌 시장은 여객기가 추락했다는 현장에서 아무도 여객기 잔해를 보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현지 주민이 주변에서 찍은 사진에는 버섯 구름이 일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군 폭탄이 떨어진 곳에서 볼 수 있었던 버섯 구름과 비슷하다.

비공식 버전에 따르면 여객기 유족들이 블랙 박스 기록에 대해 설명받는 모임에 기자들이 접근할 수 없었고, 유족들도 함구령을 받았다. 펜타곤 사건 현장에서도 여객기 잔해나 탑승객 사체는 볼 수 없었다. FBI는 주변 호텔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에 찍힌, 사건 현장을 정확히 담고 있을지도 모를 사진을 모두 압수했다.

무역센터에도 보잉 여객기가 충돌한 흔적은 없다. 당시 현장을 찍은 사진 가운데에는 여객기가 충돌한 위치와는 동떨어진 곳이 폭파되어 불기둥이 솟는 장면이 있다. 여객기가 충돌하지도 않았고 쌍둥이 건물이 무너질 때도 충격을 받지 않았을 다른 건물들이 폭파되거나 불에 탔고, 이튿날 3번 호텔 건물도 무너졌다.

더구나 뉴욕의 지진 기록 장치는 쌍둥이 건물이 무너지기 직전에 이미 지하에서 폭파 사고가 일어났음을 기록하고 있다. 멕시코 출신으로 미국 최고의 폭파 전문가로 꼽히는 반 로메로 박사는 ‘비디오 분석 결과 무역센터는 비행기 충돌로 무너진 것이 아니다’라는 9월11일 발언을 열흘 만에 뒤집고는, 대통령 직속 스페인계 미국인 지원위원회에 직장을 얻었다.

9·11 공식 버전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두 비행체의 충돌을 무역센터의 붕괴 원인을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한 장치였다고 간주한다. 구조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소방관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현장 철거 작업이 강행된 것도 붕괴 원인을 감추기 위한 것으로 본다.

비공식 버전의 주장과 근거는 대략 위와 같다. 그렇다면 사라진 여객기와 탑승객들, 그리고 테러범들은 어디에 있는가. <9·11 작전>의 저자 비스네프스키는 이것을 앞으로 밝혀야 할 문제로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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