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ㆍ철도 연결 계획 전모 공계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0.05.1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계로정부, 남북 교통망 연결 비책 마련… 유엔 산하 에스캅 통해 북한 설득할 듯
6월의 남북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관심사는 과연 북한측이 경협과 관련해 우리에게 어떤 요구를 해올 것인가 하는 점이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비료와 식량 지원이다. 식량은 우리도 외국에서 사다가 줄 수밖에 없어 부담이 된다. 대신 비료는 지난해 베이징 회담에서 합의한 선례도 있기 때문에 20만t까지는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초미의 관심사는 오히려 이런 문제보다는 북한이 과연 우리 정부에 사회간접자본(SOC) 지원을 요청해올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동안 북한이 경의선 복선화·남포항 개축·전력 공급 등을 원하고 있다는 얘기는 많았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대 등 민간 기업에 요구한 것이다. 아직 정부 채널로 요구해온 적은 없다. 따라서 정상회담 준비 접촉 과정에서 북측이 우리에게 이 문제를 거론할 것인지가 핵심 관심사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쪽이 어떻게 나올지 기다리고 있다. 얘기를 들어 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인지를 판단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미 정부는 정부대로 정상회담 합의 발표 직후부터 이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경우에 대비한 준비 작업에 착수해 있다. 청와대 경제수석실-건설교통부, 해양수산부-국책연구소를 축으로 하는 ‘SOC 기획단’이 출범해 시나리오별 협상 전략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남과 북 ‘전기가 통한다’

정부 주변 소식통들의 견해에 따르면, 정부가 우선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분야는 바로 전력 분야 협력 사업이다. 전력 분야는 북한이 지난해 말부터 민간 기업들을 통해 지원을 요청해온 대표적인 분야인데, 그만큼 북한 내부 사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 최상층부에 올라간 보고서에서도 이 분야에서의 다양한 협력 방안이 주로 언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체로 현재까지 나온 방안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방안으로 북한 해주까지 송신탑과 송배전 시설을 설치해 남한의 전력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해주까지 약 90㎞만 연결하면 북한내 다른 지역까지 갈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쉽게 할 수 있는 방안이다. 남북 간의 전압 차이 등 기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기는 하지만 ‘남과 북 사이에 전기가 통한다’는 것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는 매우 크다.

두 번째가 화력 발전소를 건설해 주는 방안이다. 1998년 현대와 북한 간에 작성한 경제 협력 리스트에는 평양에 20만kW짜리 화력 발전소를 짓는 사업이 들어 있었다. 이 평양 화력 발전소 건설은 원래 스웨덴 기업이 추진하다가 중단된 것인데, 북측이 현대에 요구하고, 또 한국전력도 협조하기로 했던 사업이다. 현재 정부 내에서는 평양 외에도 △가급적 남한 기업이 진출한 곳 △제2 경제지역(군사 경제지역)이 아닌 제1 경제지역 등을 중심으로 대상지를 선정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등장한 방안 중 참신성을 인정받고 있는 방안이 바로 북한에 남측의 석탄 재고분을 지원해 가동률이 떨어져 있는 북한의 화력 발전소를 가동하는 것이다. 현재 남한에는 정부 비축 창고에 약 7백2만t, 산지와 소비지에 약 3백25만t의 재고 석탄이 쌓여 있다. 석탄 약 천만t이 창고에서 사용처를 못찾고 방치되어 있는 것이다. 매년 2백만t 씩만 지원하면 북한 전력 생산량의 20% 정도를 끌어올리는 효과가 발생한다. 여기서 생산된 전력의 일부를 남한의 최대 전력 수요기인 여름철에 일부 공급받는다면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문제는 수송이다. 2백만t이라는 막대한 물량을 해상 루트로 수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능한 방법이 있다면 동해북부선의 단절 구간(강릉-온정리 약 121㎞)을 연결해 철도로 수송하는 방안이다. 북한이 이를 받아들인다면 전력에서 시작된 남북간 협력이 철도 연결로까지 이어지게 되는 이상적인 모델이 하나 만들어질 수 있다.

사실 분단이 한반도의 남과 북에 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 중에서 도로와 철도 등 육상 교통로 단절로 인한 피해는 매우 심각한 지경이다. 가장 단적인 예가 바로 남북 경협 현장에서 발생하는 물류비 문제다. 현재 인천-남포간 물류비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당 약 천 달러인데, 이 비용은 인천-대련간 4백∼5백 달러의 두 배로 부산에서 유럽까지 가는 비용과 맞먹는다. 만약 서울-신의주간 경의선이 연결될 경우 약 2백 달러로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분단에 의한 경제 손실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아시아 하이웨이 통해 유럽으로 직행

더 큰 틀에서 보자면, 육상 교통로가 단절된 상태에서는 남과 북 모두 21세기에 걸맞는 생존 전략을 짤 수 없다. 현재 동북아시아는 중국과 일본의 경제력과 러시아의 자원 공급 능력이 맞물려 환황해 경제권과 환동해 경제권이 발흥하고 있는 상태다. 한반도는 양 경제권 사이의 전략적 요충이자 교통망의 중계 거점으로 성장할 ‘지경학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나 육상 교통망이 연결되지 않으면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다. 특히 동북아 경제권과 유럽을 연결하는 아시아횡단철도나 아시아하이웨이 구상 역시 남북간 도로와 철도 연결이 안되면 추진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디부터 연결해야 할 것인가. 건교부 산하 국책 연구기관의 핵심 전문가들이 현재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는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사실 대략적인 구상은 이미 다 나와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 건설교통부가 발표한 ‘국가 기간통신망 계획’에는 2000∼2019년 20년간 남북 간에 연결할 철도와 도로 연결망에 대한 청사진이 비교적 소상하게 나와 있다(47쪽 그림 참조). 즉 철도는 경의선과 경원선을 축으로 하는 한반도의 X자형 철도망을 복원하는 것을 기본 출발점으로 한다. 경의선은 궁극적으로 중국횡단철도(TCR)와 만주횡단철도(TMR)를 통해 유럽과 연결하고, 경원선은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통해 유럽과 연결한다는 구상이다.

도로는 남북 7개 축 중 5개를 연결한다. 장기적으로는 중국·러시아와 연결한 뒤 아시아 하이웨이를 통해 유럽과 연결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문제는 그동안 도상으로 그려온 이런 계획을 어떻게 실전에 적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 내부의 요구 사항과 북한의 요구, 그리고 중국이나 러시아 등 주변 국가의 이해 관계를 조화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특히 어떤 노선을 연결하는가 하는 문제는 북한 내의 목적지를 어디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정부 산하 한 국책 연구기관이 작성한 대외비 연구 자료를 보면 정부측 실무자들이 어떤 점에 착안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북한은 도로망 개통 꺼려


이 연구 자료는 우선 북한의 각 지역 중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전략 지역으로 △앞으로 자유경제무역지대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지역- 나진·선봉 남포 신의주 △물류 및 교류 거점 지역- 만포 청진 원산 △관광 거점 지역- 백두산·금강산 일대 등을 선정해, 북한내 연결 대상 지역에 대한 기준을 나름으로 제시했다.

다음에 짚어볼 문제는 대상 지역간 우선 순위에 대한 것이다. 한꺼번에 모든 지역을 대상으로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큰 틀에서는 도로·철도·항만 중에서 무엇부터 할 것인가도 문제가 된다.

정부 주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우리측의 첫 번째 제안은 바로 도로망 연결 사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구체적으로는 북한의 대표적인 산업 집산지이고 인구 밀집 지역이기도 한 서해안축, 즉 서울-개성-평양-신의주 축을 고속도로로 연결하는 것이 최우선적인 관심사다. 현재 개성-평양 간에는 고속도로가 깔려 있기 때문에 문산에서 개성간 단절 구간과 평양-신의주 구간을 고속도로로 연결하는 것이 주 내용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 노선이 받아들여진다면 신의주에서 하얼빈-창춘-선양-베이징으로 연결되는 중국의 간선도로망으로 연결되고, 궁극적으로는 유럽에 연결되는 아시아 하이웨이 구상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도로망 연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것은 바로 북한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요구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기업 처지에서는 물품을 싣고 한번에 원하는 장소까지 이동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도로를 통한 운송이 가장 매력적이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과연 도로망 연결을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견해가 많다.
따라서 그동안의 과정을 돌이켜볼 때 철도 연결 쪽이 더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철도 역시 우선 순위는 서해안 축, 즉 경의선 노선(서울-신의주)이다. 김일성 주석의 유훈 사업이기도 하고 지난해 말께 북측이 현대에 요구한 내용이기도 하다. 경의선 외에도 금강산 관광과 연동된 금강산선 및 경원선 연결도 고려해야 한다. 또 앞서 언급한 석탄 지원 문제가 합의된다면 동해북부선 연결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철도 연결 사업에는 중국과 러시아의 이해 관계도 얽혀 있어 복잡한 양상을 띨 수 있다. 즉 중국 쪽의 중국횡단철도(TCR)에 우선 순위를 둘 것인지, 러시아쪽 시베리아횡단철도(TSR)에 우선 순위를 둘 것인지 하는 점이다. 전자를 염두에 둔다면 경의선에 무게 중심이 두어지고, 후자의 경우는 경원선이나 동해북부선에 무게 중심이 두어질 수 있다.

철도 문제 다음의 우선 순위로는 남북 간에 단절된 4개 도로망을 연결하는 것이고, 그 다음이 바로 항만이다. 특히 서해 쪽에서는 남포항을 개축해 국제항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남포항이 국제항으로 개방된다면 인천과 남포에서 중국 동북 3성의 물동량을 모아서 광양만을 거쳐 태평양으로 이어지는 해상 루트가 형성될 수 있다. 즉 광양항이 서해 쪽의 허브항으로 성장하는 데 열쇠를 쥐고 있는 곳이 바로 남포항이다. 동해 쪽에서는 원산과 부산이 연결된다면 블라디보스토크나 일본까지 잇는 수송 루트가 완성된다.

마지막으로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점이 바로 남북 간의 협상에 국제기구를 개입시키는 방안방안이다. 현재 유엔 산하 기관인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ESCAP)가 추진하고 있는 아시아횡단철도 및 아시아 하이웨이 노선 결정을 위한 시범 사업이 관심사다. 현재 에스캅의 이 사업에는 우리가 일본과 더불어 최대 물주이고 건설교통부에서 도로와 철도 담당자가 1명씩 파견 나가 있기도 해 한반도 노선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다. 부산을 출발점으로 하자는 우리측 안에 대해 북한측이 한반도 노선을 제외하거나 아니면 나진을 출발점으로 하자고맞서 왔는데, 최근 들어서는 입장이 많이 완화되었다고 한다. 특히 에스캅의 노선 확정 시기와 정상회담 개최 시기가 모두 6월에 몰려 있어 일괄 타결을 시도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 북한은 북한대로 국제기구에 협력한다는 명분을 확보할 수 있고, 우리는 국제 무대에서 자본을 유치할 명분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