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원 변론 맡은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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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9.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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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 조세형씨에 대한 보호감호형 취소 청구 소송을 승리로 이끌어 유명해진 엄상익 변호사(법무법인 정현)는 최근 한 고등학생으로부터 다소 부담스러운 편지를 받았다. 그가 신창원의 변호를 맡았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받은 편지였다. 내용은 ‘(엄변호사가) 평소 좋은 변호사인 줄 알고 존경해 왔는데, 어떻게 신창원과 같은 나쁜 사람의 변호를 맡았는지 실망스럽다. 앞으로 (엄변호사를) 다시 생각해 보겠다’는 내용이었다.

신창원의 변론을 맡은 이후 엄변호사는 적지 않은 부담감에 쫓기고 있다. ‘천하의 흉악범 신창원이나, 그의 편을 들기로 한 엄변호사나 나쁘기는 매한가지’라는 항간의 선입견이 아무래도 꺼림칙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동료 변호사들로부터도 또 다른 형태의 압력을 받기도 한다.‘결과가 뻔한 사건에 왜 매달리느냐’는 말을 듣는 것이다.

그런데도 엄변호사는 지난 7월26일 사흘간 예정으로 부산 출장을 떠났다. 가족과 함께 신창원을 면회하기 위해서였다. 엄변호사가 올라온 때는 예정보다 사흘이 더 지난 7월31일. 오전 8시부터 밤 늦게까지 연일 마라톤 면회가 이어졌지만 신창원이 30개월 동안 도주하면서 가슴에 쌓아둔 얘기를 다 듣기에는 시간이 빠듯해 부득이 귀경 일정을 늦추었다는 것이다.

엄변호사가 말하는 신창원 변론 이유는 단순 명쾌하다. 지은 죄는 있는 그대로 시인·자백하게 설득하는 대신, 여론 재판에 의해 왜곡된 사실은 철저히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일부 언론·학자·호사가 들이 신창원을 자기 사고의 틀 안에서 마음대로 재단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같은 여론 재판을 시정하는 일이야말로 변호사의 본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부산교도소 면회를 통해 ‘의적도 아니고, 그렇다고 잔학 무도한 악마도 아닌’ 인간 신창원의 면모를 본인 스스로의 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신창원을 맨 처음 만났을 때 대뜸 ‘신창원이라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신창원은 ‘강도범이고 절도범이다. 굳이 따지자면 죽어도 싼 놈’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엄변호사는 이 말을 들으며 신창원이 99%가 악으로 이루어졌을지라도 나머지 1%의 선이 남아 있다면 자신은 이를 드러내는 데 진력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엄변호사는 장장 6일에 걸쳐 신을 면담하면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었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정작 자기가 들은 내용에 대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하나씩하나씩 진실성을 검증한 뒤에야 공개할 수 있다며 피해 갔다. 신창원에게 쏠렸던 눈은 이제 엄변호사의 이야기 보따리로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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