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쇼몽><라이어 라이어>...영화 속의 거짓말
  • 노순동 기자 (sosisapress.com.kr)
  • 승인 1999.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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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다양하듯, 거짓말에 관한 이야기도 다양하다. 퍼즐 게임처럼 거짓말을 찾아보라고 주문하는 범죄 영화나,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는 법정 드라마는 거짓말을 들여다보는 데 유용한 텍스트다.

흔하디 흔한 진실 게임을 ‘과연 객관적인 진실이란 존재하는가’라는 더 진지한 물음으로 몰아가는 예도 있다. 숲속에서 일어난 살해 사건을 다룬 <라쇼몽>(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거짓말의 퍼즐을 푸는 데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진실에 관한 통념을 공략하는 데 더 관심을 기울인 영화다. 사건의 당사자인 사무라이의 아내, 산적, (무당이 불러낸) 사무라이의 영혼, 그리고 현장을 목격한 나무꾼이 모두 엇갈리는 증언을 내놓는다.

용의자로 지목된 산적은 갖고 싶은 여자를 취한 자신의 용기를 강조하고, 여자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사무라이(의 영혼)는 하찮은 여자 때문에 명분을 중시하는 두 남자가 목숨을 걸었음을 강조한다. 상황 묘사도 엇갈린다. 하지만 나무꾼에 따르면 세 사람 모두 지리멸렬했다. 사무라이는 아내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지 않았고, 여자도 정절을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귀부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구경꾼인 나무꾼은 객관적인 증언을 한 것일까. 그도 아니다. 현장의 칼을 슬쩍함으로써 그도 사건 당사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진실은 밝히기 어렵지만 추구할 가치가 있다”

이를 통해 구로사와 감독은 당사자가 진실을 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역설한다. ‘진실이 존재한다는 믿음, 그리고 그것을 밝혀낼 수 있다는 믿음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가’를 묻는 셈이다(증언이 엇갈리는 이번 청문회를 보면서 영화 <라쇼몽>을 떠올렸다는 사람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정이 진실을 가려내는 데 무력할 뿐 아니라 관심도 없다는 인식은, 소송 천국인 미국에서는 꽤 흥미로운 화두다. 이런 상황을 코믹하게 풀어간 영화가 <라이어 라이어>다. 변호사 프래처의 아들 맥심은, 아버지의 직업을 묻는 선생님에게 ‘라이어(거짓말쟁이)’라고 대답한다. ‘로이어’와 혼동한 것이지만, 그 혼동은 거짓말을 잘하는 아버지 탓이기도 하다. 그는 악의 없는 사소한 거짓말(화이트 라이)에서부터 본질을 호도하는 변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거짓말 실력을 갖추고 있다. 합리화 방법도 다양하다. 때로는 진실이 오히려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는 이유를 둘러대고, 혹은 변호사의 본분은 판단이 아니라 변호라는 직업관에 기댄다.

그는 일곱 번이나 외도해 이혼 소송에 휘말린 의뢰인을, 무정한 남편 때문에 가정 밖에서 애정을 구걸한 가련한 희생자로 회칠하면서도 전혀 갈등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딱 하루만 아버지가 거짓말을 하지 못하도록 해달라’는 아들의 소원 때문에 그의 삶은 뒤죽박죽이 된다.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그는 재판에서 변론다운 변론을 한마디도 할 수 없는 지경이 된다.

때로 거짓말은 진실에 이르는 유용한 창구가 된다. 삶이 거짓말을 필요로 하는 것은 때로 개인에게 진실보다 평화가 더 절박할 때이다. 흑인 딸을 낳은 미혼모였음을 숨기고 살아온 한 중년 여인의 고통을 다룬 <비밀과 거짓말>(마이크 리)이 그 예다. 여인은 자책감 때문에 평생 신경증을 앓았으면서도 자신을 찾아온 딸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간의 삶을 부정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거짓말을 하는 이의 고통을 껴안으면서, 진정한 평화란 진실과 대면해 비로소 확보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나치 전범으로 기소된 아버지를 변호하는 딸의 이야기를 다룬 <뮤직 박스>(코스타 가브라스 감독)는 진실과 평화 사이의 긴장을 밀도 있게 보여준다. 기소장에 따르면, 아버지는 나치 치하의 폴란드에서 살인을 오락처럼 즐겼던 살인마다. 유능한 변호사인 딸은 갖가지 변론 기술을 동원해 혐의를 물리친다. 주로 증인과 증거의 약점을 들추어 신뢰도에 흠집을 내는 기술이다.

변론술보다 더 돋보이는 대목은 등장 인물의 심리 묘사다. 평생 쌓아온 것이 한순간 무너질 수 있는 절박한 상황에 내몰린 아버지는, 스스로 최면을 건다. 드센 추궁에 격앙된 그는, 법정에서 기절하기도 한다. ‘난 30년 동안 선량한 미국 시민이었다. 내가 키운 자식들이 미국에 기여하고 있다.’ 딸은 뛰어난 변론술로 재판을 유리하게 이끌면서도 심상치 않은 균열을 느낀다. 혐의가 진실이라는 확증을 얻은 순간, 딸은 아버지의 만행이 담긴 사진을 검사에게 보낸다. 그가 육친을 고발하는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진실의 편에 선 이유는, 거짓으로 확보한 평화란 다른 이의 희생을 요구한다는 것에 대한 확고한 자각 때문이다.

결국 거짓말을 다룬 영화가 들려주는 진실은 이렇다. ‘진실은 생각만큼 자명하지 않다. 하지만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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