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전문가 헤이즈 박사 논문 공개
  • 워싱턴/변창섭 (cspyon@sisapress.com)
  • 승인 1997.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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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즈 박사, 논문서 주장…톰슨 박사 “논의 초점에 문제” 반박
지난 3월4일 북한은 마침내 대만에 대해 핵쓰레기 수입면장을 발부했다. 북한 핵안전감시위원회가 발급한 이 면장은, 대만을 방문한 북한의 핵담당 관리 3명에 의해 대만전력공사측에 전달되었다. 수입면장이 발부됨에 따라 이제 대만은 빠르면 6월부터 북한에 핵쓰레기를 수출할 수 있게 되었다.

같은 날, 인터넷의 한 웹사이트에는 미국의 저명한 핵 전문가가 대만·북한 간의 핵쓰레기 거래와 관련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논문 한 편을 실었다. 이 논문의 주인공은 주한 미군부대에 핵무기가 존재하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내 유명해진 피터 헤이즈 박사. 그는 과거 수년 동안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한 한반도 전문가이다.

현재 캘리포니아에 본부를 둔 유명한 환경 및 에너지 연구소 노틸러스 인스티튜트의 공동 소장이기도 한 헤이즈 박사는, 이 논문에서 대만의 핵쓰레기 수출 문제와 관련한 논란이 도덕과 환경 측면에만 모아지고 있는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서 한국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원전을 11기나 가동하고 있으면서 대만보다 훨씬 더 많은 방사능 폐기물을 배출하고 있는 한국이 정작 논란의 대상에서 빠져 있다는 점을 이해하기 힘들다면서, 한국이 이번 문제를 정략적으로 다룰 경우 북한을 자극해 최악의 경우 핵동결 합의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경고했다.

이런 주장이 인터넷을 통해 등장한 지 엿새 뒤 미국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 시에 소재한 자원·안보문제연구소(IRSS)의 고든 톰슨 박사가 역시 같은 웹사이트에 헤이즈 박사의 견해를 비판하는 반박문을 띄웠다. 두 저명한 학자가 대만 핵쓰레기 논란과 관련한‘인터넷 논쟁’을 시작한 것이다.

두 학자의 논쟁이 가열되자 3월14일 전혀 예상하지 않은 곳에서 반응이 나왔다.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가 헤이즈 박사의 논문을 유엔 외교가에 회람시킨 것이다.

논문 맨 앞 표지에는 대만의 핵쓰레기 수출과 관련한 한국의 비판이‘중상 모략’일 뿐이며, 첨부된 헤이즈 박사의 논문이 사태의 핵심을‘정확하게’파악한 글이라는 북한대표부측의 간단한 코멘트도 덧붙어 있다. 북한측 회람이 돌기 전날인 3월13일에는 환경운동연합과 재독 한국여성회 베를린 지부 회원들이 대만의 핵쓰레기 북한 수출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여 국제적 관심을 촉구하기도 했다.

헤이즈 박사는 최근 인터넷 논란과 관련해 기자와 가진 전화 통화에서 “유엔 주재 한국대표부도 이 문제에 관한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최근까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외무부의 한 실무자는, 사태 전말을 파악하고 있지만 문제의 글이 악의가 없는 데다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 문제삼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가 문제의 글을 가지고 무슨 반응을 보인 모양인데,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북한에게 창피스런 내용도 많다. 굳이 대응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헤이즈 박사와 톰슨 박사 사이에 오간 인터넷 핵 논쟁 가운데 핵심 부분을 간추린 것이다. 헤이즈 박사의 논문

대만의 핵쓰레기(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수출 문제는 대만·북한 두 당사국은 물론 한국까지 세 나라가 모두 첨예한 이해 관계를 갖고 있다.

우선 대만을 보자. 77년 최초의 원자로를 보유한 대만에는 현재 6기가 가동되고 있다. 여기서 생산되는 전력은 하루 4백90만㎾. 백만㎾급 원자로가 1년에 쏟아내는 방사성 폐기물은 6백55㎥이므로 대만이 지난 20년간 원자로를 가동하며 저장해온 양은 약 4만5천㎥로 추정되고 있다. 해마다 늘어나는 핵쓰레기 문제로 대만은 80년대 중반부터 적당한 매립지를 찾아오다 이번에 북한이라는 절호의 고객을 만난 것이다. 특히 한국과 단교한 대만은 냉전이 끝난 뒤 의류를 포함한 여타 분야에서 북한과 교역을 확대하며 관계 개선을 꾀해온 터였다.

북한은 어떤가. 아마도 대만이나 한국에 비해 북한의 처지에서 볼 때 문제는 매우 간단해 보인다. 대만 핵쓰레기를 수입하는 대가로 한푼이 아쉬운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이 예정대로 대만 핵쓰레기 20만 배럴을 들여갈 경우 약 2억3천만달러를 벌게 된다.

문제는 한국이다. 가뜩이나 90년대 들어 한 차례 북한과 핵씨름을 벌인 적이 있는 한국이 이번에는 난데없는 핵쓰레기 문제로 달갑지 않은 싸움을 벌이게 되었으니 말이다. 특히 북한이 대만의 핵쓰레기를 처리할 기술이 전혀 없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생태계 오염 등 환경 문제를 크게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문제 접근은 문제의 핵심을 비켜가는 것이 되고 만다. 핵쓰레기에 관한 한 그 양보다는 방사능 함량이 더 중요하다. 즉 유해한 방사능을 많이 포함한 고준위냐 그 반대인 중·저준위냐가 더 큰 문제다. 따라서 대만의 핵쓰레기 문제도 이같은 차원에서 보아야 하며, 나아가 한국처럼 원전을 가동하는 나라에서 골치 아프게 생각하고 있는 방사성 폐기물 문제도 당연히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에서 가동 중인 원자로 11기의 사용후 핵연료와 노심에 들어 있는 방사능은 대만이 북한에 수출하려는 방사능보다 2만배나 더 유해하다. 이런 상황에서 누출 사고가 나거나 유사시 외부의 공격으로 원자로가 파괴될 경우 그 피해는 엄청날 것이다.

한국은 북한에 공급할 경수로 2기에 대한 주계약자가 확실한 만큼 대만의 핵쓰레기 수출 논쟁에 너무 휘말리지 말고 장기적인 차원에서 효율적인 정책을 세워야 한다. 2000년대 초 북한이 경수로를 가동하게 되면 한국처럼 핵쓰레기를 배출하는 원자력 관련 기술과 핵쓰레기 처리 시설이 없는 북한이 안전하게 원자로를 운용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며, 필요하다면 부대 시설도 제공해야 한다. 나는 언젠가 평양 외곽의 한 건전지 공장을 방문했을 때 수은과 납성분이 있는 폐기물을 우물에 마구 버려 지하수가 심각히 오염된 사례를 보았다.

톰슨 박사의 반박

헤이즈 박사의 논거에는 대체로 수긍하지만 논의의 초점이 대만의 핵쓰레기 수출 문제에서 한국의 방사성 폐기물 문제 쪽으로 옮겨진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도 문제는 있지만 아무런 처리 시설이 없는 북한으로 핵쓰레기가 반입되는 데 대한 한국 국민과 환경단체의 우려와 시위는 충분히 근거가 있는 것이다.

특히 핵쓰레기 수출은 △선적중 또는 해상 이동중 불의의 사고를 만나 엄청난 환경 오염·파괴를 부를 수 있고 △부유한 나라가 핵쓰레기와 같은 환경 오염 물질을 가난한 나라에 수출하는 것은 부당하며 △수출된 핵쓰레기가 군사 목적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상당히 많다. 따라서 국가간 핵쓰레기 거래를 규제하기 위해 국제적인 감시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

헤이즈 박사의 재반박

핵쓰레기 거래를 규제하기 위한 국제적인 감시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는 톰슨 박사의 주장에 공감을 표시한다. 하지만 아직은 시기 상조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북한처럼 사람이 살지 않는 두메가 많고 주민의 저항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나라는 남의 나라 핵쓰레기를 수입해 돈을 벌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둘째, 이미 원자로를 가동하고 있는 나라의 경우 일단 핵쓰레기 매립을 위한 계획이 세워지면 그때부터 원자력산업이 더욱 촉진되고, 그 결과 새로 지은 원자로에서 핵쓰레기가 더 많이 배출된다.

결론적으로 중·저준위이든 고준위이든 방사능은 방사능이므로, 핵쓰레기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기존 원자력 의존 중심의 에너지 정책에서 벗어나 대체 에너지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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