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슈뢰더 신드롬, 콜 총리 위협
  • 베를린·金鎭雄 통신원 ()
  • 승인 1997.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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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민당의 뉴 리더로 등장, 인기 ‘상종가’… 98년 정권 교체 가능성
영국과 프랑스에 이어 독일에도 좌파 정권이 들어설 것인가. 15년간 장기 집권하고 있는 보수 연합 콜 정권을 물리치고 만약 사민당이 집권에 성공할 경우, 유럽에는 70년대 이후 다시 좌파의 르네상스 시대가 활짝 열리게 된다. 따라서 다음 총선거는 내년 가을에 있지만 정권 교체 가능성에 대한 관심은 벌써부터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여기에는 정치 변화를 바라는 독일 국민의 높은 여론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5백만명에 육박하는 실업 사태는 30년대 이후 최악이고,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는 국가 채무는 벌써 2조마르크를 넘어 이자 상환에만도 매년 예산의 20% 이상이 흘러나가고 있다. 게다가 사회 복지 혜택의 대폭 축소를 골자로 한 일련의 정책 변화는 가뜩이나 어려운 국민들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이러한 콜 정권의 문제점은 ‘국가 도산’이라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심각해 국민의 불만과 불안감이 극에 달해 있다. ‘통일 총리’라는 콜의 긍정적 이미지도 약효가 다한 지 오래다.

94년 총선에서 콜이 이끄는 보수 연합 정권은 승리를 거두었지만, 90년 통일 직후 실시한 선거 때에 비한다면 상당한 표를 잃었다. 특히 동독 지역에서의 인기 하락이 뚜렷해 통일 이후 동독 주민들의 실망감을 반영해 주었다. 이와 반대로 사민당에 대한 인기는 상승했지만 정권 교체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여기에는 당시 콜 총리와 대결했던 사민당 총리 후보 루돌프 샤르핑의 허약한 리더십과 선거 직전까지 꼬리를 물고 이어진 지도층의 불화설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샤르핑이 이끄는 사민당은 선거 후에도 콜 정부에 끌려 다니는 등 일관성 없는 정책을 펼쳐 당내외로부터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96년 사민당 전당대회에서 오스카 라퐁텐이 기습적인 신임 투표를 제안해 샤르핑을 밀어내고 당 대표에 오르는 이변을 일으켰다. 당권을 장악한 라퐁텐은 98년 총선거에서 콜과 재대결할 총리 후보까지 노리고 있다.

슈뢰더의 노선, 블레어와 흡사

그러나 라퐁텐은 라이벌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대중적 인기에 가려 있다. 90년부터 니더작센 주 총리로 있는 슈뢰더는 93년 초 당시 시민당 대표 겸 총리 후보였던 뵈욘 엥휼름이 정치 추문을 일으키고 사퇴한 이후부터 대권 야욕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첫 번째 도전에서 슈뢰더는 샤르핑에게 당 대표 및 94년 총리 후보 자리를 빼앗기는 쓴 맛을 보았다. 그러나 97년 총선을 통해 그는 경제 전문가로 자신을 내세우는 실리를 챙기는 한편, 선거 후 샤르핑 체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끝내 샤르핑을 대표 직에서 끌어내리는 데 성공했다.

샤르핑이 퇴진한 이후 사민당을 이끌고 있는 트로이카, 즉 샤르핑·라퐁텐·슈뢰더 세 사람 중 콜 총리와 맞설 인물은 슈뢰더와 라퐁텐으로 압축되고 있다. 라퐁텐에 대한 지지는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데 슈뢰더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치솟고 있다. 사민당 예비 총리 후보로서 두 사람을 비교한 한 여론 조사에서 슈뢰더는 69% 지지율을 확보해 27%인 라퐁텐을 크게 앞질렀다. 그는 콜을 누를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인식되고 있다.

슈뢰더의 대중적 지지는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우선 그는 미국의 클린턴, 영국의 토니 블레어 못지 않게 언론 이용하기에 능하다. 신문·방송·잡지를 가리지 않고 대중 앞에 자주 등장하는 그는 항상 미소를 띠면서 어떤 질문에도 유창한 언변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게다가 풍부한 유머 감각이 여유 있고 넉넉한 이미지를 부각한다. 자신에게 비판적인 시사 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 요청을 지금까지 한번도 수락하지 않은 콜 총리나, 완벽한 언론 통제를 시도하는 라퐁텐의 경직된 태도와 달리, 슈뢰더는 늘 언론과 함께하고 있다. 한 신문의 표현처럼, 슈뢰더는 미디어를 위해서 태어난 듯, 마치 물속의 물고기처럼 언론을 자유로이 헤치고 다닌다.
다른 정치인에 비해 개방적인 자세도 인기로 이어지고 있다. 체험을 통해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잘 이해하고 있는 슈뢰더는 누구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44년에 빈곤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슈뢰더는 공사장의 막노동자로 일하는 등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 야간 학교를 졸업하고 뒤늦게 대학에 진학하여 법학을 전공했다. 19세에 사민당에 입당한 이후 당 청년 조직의 핵심 인물로 활동하기도 한 그는 80년부터 연방 의회에 진출했고, 90년에 니더작센 주 총리 자리에 오른 후 94년 재선되었다.

슈뢰더는 정통 좌파에 속하는 조스팽보다는 ‘모던화한 좌파’로 불리는 블레어와 유사한 정치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사회 복지나 사회적 공평보다는 독일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부르짖고, 환경 정책보다 경제 정책 우선을 강조하는 등 보수 여당이 주장할 테마들이 그의 입을 통해 단골 메뉴로 흘러 나온다. 당면한 경제 문제를 우회하여 정치적 입지 강화를 노리는 그의 전략은 독일 국민의 가슴에 광범위하게 먹혀들고 있다. 원칙론자아닌 노련한 실용주의자로서의 솜씨가 돋보인다.

슈뢰더는 이른바 중도 좌파 정책을 내세우며 좌측으로 무게가 실려 있는 사민당을 우측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최근에는 느닷없이 외국인 범죄의 심각성을 들고나오는 등 보수적 태도를 드러내 당내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새 정치 요구하는 국내외 여론, 사민당에 유리

슈뢰더가 총리 직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우선 공식으로 사민당 후보로 선출되어야 한다. 문제는 대중적 인기와 달리 당내에서 그에 대한 지지 기반이 아직 취약하다는 점이다. 만약 경선을 통해 후보가 결정될 경우 슈뢰더는 라퐁텐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그래서 그는 경선을 거치지 않고 추대 형식으로 콜 총리의 맞상대로 나설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내년 3월에 있을 니더작센 주 선거에서 현재와 같은 절대 다수 의석 확보에 다시 성공할 경우 총리 자리에 도전하겠다고 슈뢰더는 공언하고 있다. 이 전략 아래 그는 이미 당 차원이 아닌 개인 차원에서 자신의 후보 추대 분위기 조성을 위한 미디어 선거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여론의 압력으로 라퐁텐이 자신을 총리 후보로 추대하게끔 만든다는 것이 그의 각본이다.

아직 변수가 많지만 현재 야당인 사민당에 대한 지지도는 콜 정권을 앞서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 슈뢰더(혹은 라퐁텐)가 집권할 경우 지난 30년간 독일 사회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친 68 학생운동 세대 주역이 30년 만에 독일 정치를 좌우하는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새로운 정치를 요구하는 독일 안팎의 분위기도 사민당에게 순풍으로 작용하고 있다. 콜 총리 진영은 내년 총선이 어느 때보다도 힘겨운 선거전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벌써부터 긴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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