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대기오염 대책 기구 만든다
  • 朴晟濬 기자 ()
  • 승인 1995.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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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국 민간 단체들, 대기오염대책 국제기구 결성키로
중국의 경제 성장률은 최근 몇년 동안 연평균 10%를 기록했다고 알려진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속도라면, 다음 세기 중국이 세계의 초강대국으로 떠오르는 일은 시간 문제라고 내다본다. 전쟁의 잿더미에서 경제를 일으킨 한국으로서는 가까운 장래 최대 경쟁 상대가 될 중국의 높은 성장률에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 눈부신 발전을 인접국이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는 이유는 또 다른 데 있다. 중국 땅덩어리 크기만큼이나 대규모로 진행되는 개발 후유증, 즉 환경 파괴가 그것이다. 9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90년 한 해 동안 중국이 배출한 아황산가스 총량은 1천7백50만t이었다. 같은 기간 한국이 배출한 아황산가스 총량은 1백61만t, 일본은 87만여 t에 불과했다. 한국보다 20년 이상 경제 개발이 늦은 중국이 산업화 10년 만에 대기 오염의 대명사 격인 아황산가스 배출량에서 한국을 10배 이상 앞지른 것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한국에게는 중국의 대기 오염 문제가 이제까지 ‘바다 건너’ 남의 나라 얘기였다. 오염 물질을 배출하든지 말든지 경제 성장을 국가 지상 목표로 내세우기는 한국이나 중국이나 매한가지였다. 민간 환경단체들의 운동 역량은 내부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벅찬 실정이었다. 게다가 한국 정부는 중국과 대화하는 데 외교·경제 협력 같은 현안에 발목이 잡혀 환경 문제를 뒷전으로 돌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환경을 개발의 희생양으로 삼아온 셈이다.
한·중·일 주축…한국 단체들이 산파역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사정이 달라질 기미를 보인다. 정부는 고위 정책 회담·실무자 회담 등 환경 문제에 관한 다자간 협의를 구체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민간은 동아시아 지역 대기 오염 상황을 감시할 국제 기구를 만들어 본격적인 공동 대응을 모색하려고 하는 것이다. 지난 8월19일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연구원은 한국·중국·일본 등 동북아시아 지역 전문가들로 조사단을 구성해, 이 지역 대기 오염 물질의 장거리 이동과 환경 보전 협력 방안에 관한 연구·조사 작업을 벌이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거의 같은 때, 환경부도 대기보전국을 중심으로 동북아 국가간 환경 협력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세부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 눈길을 끄는 움직임은 민간 차원에서 포착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일본·러시아·몽고 등 동아시아 지역 7개국의 민간 환경운동 단체가 한자리에 모여 ‘동아시아 대기 행동 네트워크’(AANEA·아네아)라는 비정부 기구(NGO)를 출범시켜, 중국의 대기 오염 문제는 물론, 동아시아 전체의 환경 문제를 다루겠다고 결의한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환경운동연합·배달녹색연합 등 국내의 주요 환경단체들은 현재 이 기구의 출범 작업에 산파역을 맡고 있다.

아네아 태동은 8월22~25일 서울에서 열린‘동아시아 지역 대기 문제의 현황과 대응’이라는 국제 심포지엄에서 비롯했다. 여기에는 중국 민간 환경단체인‘자연의 친구들’ 대표 梁從械 박사(30쪽 인터뷰 참조), 이타이이타이병과 함께 일본의 대표적 공해병으로 알려진 미나마타병 원인 발견자인 하라다 마사즈미 박사, 그리고 국내 환경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정욱(서울대)·김선태(대전대) 교수 등 국내외 환경 전문가 40여 명이 참가했다.
중국 산업화 부작용이 최대 난제

심포지엄의 최대 성과는 날로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대기 오염의 문제점을 재확인하고,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동아시아 각국의 민간 환경단체들이 공동 보조를 취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첫날 한국측 대표의 한 사람인 에너지경제연구원 양의석 박사는 발제문을 통해 ‘80년대 2~3% 증가세를 보이던 전세계 에너지 소비 증가율은 90년대 들어서 1% 이내로 줄어든 데 반해, 아시아 지역의 에너지 소비는 85년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지난해는 전세계 평균 증가율의 5배에 달해 대응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행사 첫날 기조 연설을 한 사토시 이와모토 박사(‘대기와 지구를 구하는 시민동맹’ 대표)는 이같은 사실을 다시 거론하며 인종과 이데올로기, 종교, 정치·경제적 차이를 초월한 국제 시민 연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8월23~25일 서울대 호암관으로 장소를 옮겨 계속된 토론회는 토론 결과를 아네아를 발족시키는 데까지 구체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 토론회에서는 △새로 출범할 국제 연대 기구의 이름 △주요 활동 방향 △국제 기구에 참여할 회원의 참가 형식 △사무국 소재 △재정 마련 방안 등이 집중 논의됐다. 참가자들 사이에 합의를 본 결론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아네아의 1차 연도(2년간) 사무국 활동을 한국이 맡기로 했다는 점이다. 사무국은 올해 안으로 아네아의 기능· 역할·활동 내용을 알리는 소식지를 작성해 각국 회원에게 배포하고, 회원국이 개별적으로 작성하게 되어 있는 대기 오염 관련 보고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아네아를 결성하는 과정에서 핵심 과제로 등장한 것은 중국 산업화 문제의 해결 방안이다. 사실 지형·기후 특성·기상 관계상 중국 산업화의 부작용은 단지 중국만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특히 바람의 영향을 받아 오염 물질이 이리저리 국경을 넘나드는 대기 오염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김정욱 교수(서울대·환경공학)는 “중국에서 발생하는 아황산가스의 2% 정도가 한반도로 이동한다. 비록 2%에 불과하지만 이것은 한국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2020년 중국의 아황산가스 배출량은 한국의 2백 배가 되는데, 그 때 중국에서 한국으로 유입되는 아황산가스 총량은 국내에서 배출하는 아황산가스 배출량의 4배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아황산가스가 특히 문제가 되는 까닭은, 이 물질이 산성비로 대표되는 이른바 ‘대기의 산성화’를 일으키는 원인 물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석 연료가 연소하면서 발생하는 아황산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문제는 각국 정부의 산업화 정책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나라만 배출량을 줄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국제 기구가 필요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산성비 문제로 홍역을 앓아온 유럽의 경우, 역내의 각국 정부 대표들이 모여 ‘레인스-유럽(RAINS-EUROPE)’ 모델을 탄생시켰다. 에너지원·규제 기술·배출 완화 정책 등 다양한 시나리오 별로 산성비를 야기할 환경 오염 효과를 분석하는 모델을 개발한 것이다. 현재 아시아 지역에서도 이와 비슷한 ‘레인스-아시아’ 모델이 개발되고 있다.
자동차 산업 규제에도 적극 나설 계획

아네아는 이같은 노력이 열매를 맺을 수 있게끔 민간 차원에서 더 많은 후원과 비판을 기울이기 위해 결성됐다. 아울러 아네아는, 또 하나의 환경 오염 배출원인 자동차 산업을 규제하는 데 독자적인 활동을 펴나갈 예정이다. 현재 각국에서 다르게 정해 놓은 질소산화물 배출 기준을 통일하고, 자동차 증가 추세를 둔화시키기 위한 캠페인을 벌여 나가겠다는 것이다. 자동차 엔진이 가동하면서 공기 속의 질소 성분과 산소 성분이 결합하여 발생하는 질소 산화물은 아황산가스보다 사람의 순환 계통에 훨씬 더 심각한 피해를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네아 탄생은, 동아시아가 전세계 에너지 소비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로 인해 갑자기 주목 받는 이 지역 환경 오염 상황에 전기를 마련해 줄 것으로 보인다. 한국측 비정부 기구로 아네아에 참가하게 된 배달녹색연합 남상민 부장은 “자연 파괴나 수질 오염 따위는 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데 비해, 기후 변화라든지 대기 오염은 피해가 더 큰데도 피부에 잘 와닿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아네아 탄생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아네아를 통해 동아시아 각국의 태도 변화를 유도할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아시아인이 공존하기 위한 첫 실험이 대기 오염을 감시하려는 아네아가 출범하는 것과 함께 시작되고 있다. 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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