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무덤이 더 무섭다
  • 蘇成玟 기자 ()
  • 승인 1995.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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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립지 메운 뒤 식수 오염·건물 붕괴·가스 폭발까지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 쓰레기 매립장이 사용이 끝난 뒤 ‘쓰레기같이’ 버려져 있다. 방치된 쓰레기 매립장들은 갖가지 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떠오르고 있다. 더구나 매립장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아, 안정되지도 않은 매립지에 건축물이 들어서는 위험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원혜영 의원(민주·노동환경위)이 최근 입수한 국정감사 자료에서 밝혀졌다. 환경부가 한국자원재생공사를 통해 한국폐기물학회에 용역 의뢰한 ‘사용 종료 매립지의 적정 사후관리 방안 연구’ 중간 보고서와,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환경부에 제출한 ‘쓰레기 매립지에 설치된 건축물 현황’이 그것이다.

한국폐기물학회의 중간 보고서에 따르면, 80년대 이후 사용이 끝난 매립장들은 대부분 위치조차 파악되고 있지 않다.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사후 관리를 의무적으로 해야 할 매립장은 이 법이 전면 개정된 91년 이후 사용이 끝난 매립장에 한하기 때문에 그 이전 매립장들에 대한 사후 관리는 완전히 무방비로 방치되고 있다.

이 중간 보고서에 따르면, 그나마 파악된 전국의 생활 쓰레기 매립장 6백60여개소(전남 제외) 가운데 환경 오염 방지 시설인 지하수 감시정을 설치한 곳은 1백55개소(23.3 %)에 지나지 않는다. 침출수 오염 방지에 필요한 차수 시설이 설치돼 있는 곳이 1백9개소(16.4%), 집수 시설 설치 1백26개소(19.0%), 빗물 배제 시설 설치 78개소(11.7%)에 그칠 따름이다.

이처럼 미비한 시설로 인해 쓰레기 매립지에서 새어 나오는 ‘완전히 썩은 물’인 침출수의 약 80%가 인근 하천이나 해안으로 유입되고 있다.

놀랍게도 전체 매립지의 3.4%인 23개 매립장이 상수 취수원에서 겨우 10km 이내에 있다는 사실도 중간 보고서에서 밝혀졌다.

더욱 큰 문제는, 이같은 침출수가 그 속에 존재할 수 있는 각종 유해 물질이 규명되지 않은 채 마구 흘러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중간 보고서에 따르면, 발생할 때의 침출수와 방류되는 침출수에 대해 수질 검사를 시행하는 곳은 전체 매립장 가운데 9%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9월 대구광역시 평리동 ‘평리·이현 쓰레기 매립장’(매립 기간 81~83년) 침출수를 수질 조사한 결과, 생물학적산소요구량(BOD)이 323.8ppm으로 나타났다. 장세균씨(원혜영 의원 비서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 침출수는 매립지 옆 달서천에 바로 흘러들어가 금호강을 거쳐 낙동강으로 합류한다. 금호강의 BOD 허용 기준이 11.8ppm 이하, 낙동강 중류가 5.5ppm 이하임을 감안할 때 그보다 27~59배나 더러운 침출수가 상수원으로 흘러들고 있는 것이다.

침출수 처리 시설을 갖춘 매립장들이 이렇다면 시설이 없는 매립장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환경부는 90년대 들어 거의 해마다 전국 매립장의 90%가 넘는 곳에 개선 명령을 내렸지만 제대로 이행되는 곳이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벌칙을 가하지도 못한다.

환경부 폐기물 시설과 안문수 서기관은 “고발 대상은 시장·군수 등 지방자치 단체장이지만 책임은 청소과장들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막대한 재원이 필요해서 못하는 일에 대한 책임을 가뜩이나 궂은 일만 도맡아 하는 청소과장들에게 전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쓰레기 썩은 물이 상수원으로 곧장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도 ‘넓게 보면 국가 사업인데 정부가 돈 한푼 지원해 주지 않으면서 개선만 강요할 수 있는가’라는 불만을 갖고 있다. 안서기관은 “돈을 지원해 개선 의지를 북돋는 방향으로 대책을 세워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침출수 누출에 그치지 않는다. 쓰레기 매립지에 세워진 건축물 현황(도표 참조)에서 드러났듯이, 매립된 지 10년도 되지 않은 매립장 위로 건축물이 마구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매립장 위치 자체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데다, 국정감사에 대비해 각 지자체가 지난 8~9월 대충 파악한 현황이어서 빙산의 일각만 드러났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지배적이다.

중간 보고서에 따르면, 토지로 이용되고 있는 매립장은 매우 광범위하다. 이를 용도 별로 보면 택지 90개소(13.6%)·공장지 62개소(9.3%)·임야 69개소(10.4%)·농경지 2백41개소(36.3%)이다.

독일 함부르크 시의 경우, 쓰레기 매립을 끝낸 부지는 25년간 일절 사용을 금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이처럼 매립지가 널리 사용되고 있는 사실은 심각한 문제이다.

인명 사고가 날 위험성이 높은 건축물이 가장 큰 문제이다. 한국과학기술 연구원 황경엽 박사(환경연구센터 폐기물연구팀)는, 안정되지 않은 매립지 위에 건축을 할 경우 두 가지 큰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 지반이 침하해 건물에 균열이 생기거나 무너질 위험이다. 둘째, 유해 물질로 인한 환경 피해이다. 침출수에 지하수가 오염될 수도 있지만, 더욱 위험한 요소는 가스이다. 저기압 상태에서 농축돼 있던 메탄 가스가 폭발할 수도 있는 데다, 가스에 포함된 유해 성분이 계속 방출되어 인체에 해를 끼칠 수도 있는 것이다. 미국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매립지에서 발생하는 가스에서 인체에 해로운 유기 물질이 70종이나 검출된 바 있다.

지난해 4월 터키 이스탄불 교외의 쓰레기 매립장에서는 메탄 가스가 폭발해 30명이 넘는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쓰레기 매립장에 대한 사후 관리를 더 이상 쓰레기 취급하듯 해서는 안될 시급한 시점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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