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살이 덕에 환경 영웅 된 사나이
  • 시사저널 나명석 ()
  • 승인 1995.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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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열씨 ‘골드만 환경상’ 받아…20년간 반공해·반핵 운동 편 공로
아군과 적군 모두에게 실력을 인정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적의와 폄하의 색안경을 끼고 보기 마련인 상대편으로부터도 인정 받는 것은 진정한 실력자임을 뜻한다.

환경이나 핵 문제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현장이면 어디든 나타나는 환경운동연합 최 열 사무총장(46)은 개발 정책을 밀고 나가는 정부나 기업 처지에서 보면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정부든 기업이든 그가 환경 문제에 관한 한 전문가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최사무총장은 현재 환경부와 감사원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행동하는 환경 전문가로서 최 열이라는 이름은 이제 나라 밖에서도 낯설지 않다. 그는 4월1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골드만 환경상’시상식에서 수상자 6명 중 한 사람으로 시상대에 섰다. 이 상은 민간이 제정한 세계 최대의 환경 분야 상으로, 올해가 여섯 번째 시상이다. 이 상을 제정한 골드만환경재단측은 최씨를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신변 위협을 무릅쓰고 환경 파수꾼 역할을 자임하여 환경 문제를 첨예한 사회적 관심사로 끌어올리고 반핵 운동을 강력히 전개하는 데에 기여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대륙마다 1명씩 선발

골드만 환경상은 90년 미국에서 리처드 골드만과 로다 골드만이 제정하였다. 그들은 이 상 제정 취지에서, 환경 문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뛰어난 환경 운동가의 창조적인 노력에 보답하며, 이들이 세운 모범을 다른 사람이 본받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수상자는 해마다 6명으로, 북미·중남미·유럽·아시아·아프리카·해양국 들에서 1명씩 선발한다. 수상자는 골드만환경재단으로부터 6만달러를 받는데, 올해는 특별히 상금이 7만5천달러로 늘었다.

이 상은 여러 환경 분야 상 중에서도 특별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이 상의 특징은 선발 대상자를 과학자나 정부 관료가 아니라 대중 활동가나 기층 전문가로 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골드만 환경상 수상자들의 활동 무대는 연구실이나 사무실이 아니다. 항상 오염이나 공해의 현장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환경을 지키기 위해 삶을 던지는 사람들이 이 상을 받을 수 있다. 상을 수여하는 골드만환경재단은 이들을 ‘환경 영웅’이라고 부른다.

최사무총장과 함께 올해 수상자로 결정된 사람은, 로스앤젤레스 동부 어머니 모임을 이끌며 환경 문제에 앞장서온 미국의 오로라 캐스틸로, 다국적 석유회사에 삶의 터전을 유린당한 오고니족의 환경권을 위해 싸우다 투옥 상태에 있는 나이지리아의 작가 켄 사로비바, 시위를 조직해 대규모 도로 건설 계획을 중단시킨 영국의 엠마 머스트 등이다.

최사무총장은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오염이나 공해 문제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던 때에 일찌감치 환경에 눈뜬 선구자로 평가된다.

감방 안에서 환경 서적 탐독

한국에서 환경 문제가 본격적으로 싹튼 것은 그가 5년 6개월 동안 머물렀던 좁은 감방 안에서였다. 75년 명동성당 사건과 79년 YMCA 위장 결혼 사건으로 두 차례 투옥되었던 그는 감방 안에서 환경 서적 수백 권을 탐독하며 자기 삶의 방향을 환경으로 잡았다. 그것은 민주화 운동과는 또 다른 험난한 앞길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개발과 산업화의 경제 논리가 국가 이념이 되어 있던 상황에서 환경은 곧 반정부와 동의어로 여겨진 데다가, ‘운동 진영’에서도 환경에 대한 관심이 채 무르익지 않은 상황이었다.

80년대 초부터 그의 관심은 핵발전소와 핵쓰레기 처리장 같은 핵 문제로 확대되었다. 현재 그는 전국반핵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이기도 하다.

90년대 중반을 넘어가는 한국 사회에서 환경은 가장 뜨거운 관심사 중 하나가 되었다. 많은 환경 단체가 조직되어 전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최사무총장은 이번에 자신이 골드만 환경상을 받은 것은 한국에 환경 운동의 씨앗을 뿌리는 데에 작은 도움이 된 것을 평가받은 덕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최사무총장의 골드만 환경상 수상은 모든 것이 세계화하는 시대에 한국의 환경 운동도 세계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는 증명일 것이다. 그것은 또한 한국의 환경 상황이 국제적으로 주목 받을 만큼 어려운 지경에 빠져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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