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80%가 잉여 인간?
  • ()
  • 승인 1998.06.1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산층 몰락은 전지구적 현상…노동의 종말·세계화 탓에 20%만 ‘편안’
‘착취당할 기회조차 잃어버린 사람들.’ 직장을 잃은, 또는 직장을 언제 잃게 될지 몰라 불안해 하는 프랑스 사람들은 여성 작가 비비안 포레스테의 이같은 지적에 열광했다. 그가 쓴 <경제적 공포>는 발간(96년 10월) 4개월 만에 25만 부가 팔려 나갔다. 그에 따르면, 권력과 재산, 당연하다고 공인된 특권은 이제 극소수의 몫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내가 과연 살아 남을 자격이 있는 존재인가, 곧 이 사회를 지배하는 경제 체제에서 수익성을 높이는 데 유용한 존재인지를 끊임없이 반문해야 한다. 여기서 자격을 인정받지 못한 인간은 ‘쓸모 없는 잉여 인간’으로 낙인 찍힌다.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노동을 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타락한 존재에 불과하다고 교육받아 온 중산층에게 이처럼 당혹스러운 전망이 또 있을까. 그러나 이것이 작가의 과도한 공상만은 아닌 듯하다. 이미 많은 경제학자·미래학자는 가까운 미래에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중산층이 몰락하고 빈부 양극화가 심해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노동의 종말>을 쓴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정보화 혁명으로 상징되는 기술 혁신에 따라, 전통적인 노동이 거의 필요없는 시대가 열리게 된다고 전망했다. 소수만으로도 다수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이같은 시대에 노동자 계급은 종말을 맞는다. 중산층도 예외가 아니다. 최초의 자동화 물결이 블루칼라에 충격을 주었다면 그 다음 이어진 리엔지니어링 혁명은 중산층의 일자리를 속속 빼앗고 있다고 리프킨은 분석했다.

미국 조사통계국에 따르면, 69년 인구 대비 71%에 달했던 이 나라 중산층 숫자는 90년대 초 63%로 떨어졌다. 87년과 91년 사이,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노동자의 실질 임금은 3.1% 떨어졌다. 리프킨에 따르면, 이같은 현상은 ‘노동의 종말’을 예고하는 신호탄에 불과하다.

중산층이 몰락하게 되는 배경으로 범지구적인 경쟁의 격화를 강조하는 입장도 있다. 이른바 ‘세계화’를 비판하는 입장이다. <세계화의 덫>을 함께 쓴 한스 피터 마르틴과 하랄드 슈만(전 <슈피겔> 편집위원)은, 세계화가 종국에는 세계를 ‘20 대 80의 사회’로 재편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여러 나라 노동자가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살아 남기 위해 살인적인 생산성 경쟁을 벌이다 보면,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도태가 일어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여기서 살아 남은 20%만이 좋은 일자리를 갖고 안정된 생활을 누리며, 나머지 80%는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21세기에는 20%의 노동력만으로도 전세계 인구를 위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중산층은 급격히 소멸되며, 살아 남은 중산층 또한 기득권을 잃게 될까 두려워 외국인 배타주의·분리주의 따위를 주장하는 우익 선동가의 그늘 뒤로 몸을 숨기게 된다고 <세계화의 덫>은 주장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