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먹고 자란 소 고기 맛 '고소'
  • 나권일 광주주재기자 ()
  • 승인 2001.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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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맥우 등 '브랜드 한우' 개발 줄이어… 유통망 확보가 관건


소고기 완전 수입 개방에 대처하는 국내 축산 농가의 활로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고품질 고급육을 생산하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10만원씩 지원하던 수소 한우 사육 농가의 거세 장려금을 지난 11월부터 마리당 20만원씩으로 올려 지원하고 있다. 생후 3∼4개월 때 수소를 거세하면 선홍색의 살코기 부위에 지방질이 서리처럼 골고루 분포된 형태의 마블링(marbling)이 이루어져 마치 고기에 눈꽃이 핀 것 같은 모양을 만들어낸다.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소고기 등심 부위가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내는 고품질로 생산되는 것이다.

거세한 수소는 일반 수소보다 성장 기간이 6개월 정도 길기 때문에 소규모 축산 농가일수록 늘어나는 사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거세 한우에 장려금을 지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부는 또 암소 도축을 줄이기 위해 세 번 출산한 암소에 다산 장려금을 20만원씩 지원하고 있다.

수입 개방에 대처하는 정부의 대책 못지 않게 고급육으로 활로를 찾으려는 노력은 한우작목반이나 영농조합법인 등을 통해 일찍부터 시도되어 왔다. 최근에는 60여 자치단체가 자기 고장의 특산물을 활용한 고품질 고급육을 내걸고 특허청에 상표 등록을 출원하는 등 브랜드 한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라남도의 경우 녹차를 먹이는 보성녹우에서부터 대나무숯을 갈아서 먹이는 담양 죽향한우, 무안 양파한우, 고흥 유자한우, 영암 무화과한우, 진도 구기자한우에 이르기까지 활발하게 시도되고 있다.


자치단체들, 브랜드 육성에 박차

그 가운데 대표적인 브랜드가 무안 양파한우와 함평 천지한우이다. 매년 13만여t의 양파를 생산해 전국 양파 생산량의 18.4%를 차지하는 무안군은 양파에 우리 밀기울을 혼합한 특수 사료를 하루 3.6kg씩 6개월간 먹여 지난해 2천4백 마리의 '양파한우'를 출하했다. 무안군은 1998년 양파한우를 특허청에 상표 등록했고, 양파한우 유통사업단까지 꾸려 무안군의 대표 브랜드로 내걸었다. 무안군 산업과 축산계의 관계자는 "양파한우는 리놀산·리롤렌산 등 필수 지방산 함량이 높고 콜레스테롤 함량을 낮추는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부드러운 한우 고기를 생산해내고 있다"라고 밝혔다.

전남 함평군도 1999년 5월 특허청으로부터 '함평천지한우'라는 상표를 취득해 함평군의 얼굴로 내걸고 5년 전부터 고급육 생산을 통해 축산 농가의 활로를 찾고 있다. 해수찜으로 유명한 함평은 항암 효과가 있는 게르마늄 성분이 국내에서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고 알려진 고장이다. 때문에 함평천지한우는 일반 사료와 달리 섬유질이 많은 TMR 특수 사료와 함께, 게르마늄 성분이 들어 있는 개펄을 말린 가루를 하루 100g씩 먹는다.

함평군 농산과 축산계의 백승배씨는 "대도시인 광주 지역에만 함평 천지한우를 내건 대형 식당이 48개소나 성업 중이다. 그만큼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다"라며, 앞으로 서울에도 판매센터를 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함평 천지한우는 모두 47개 농가에서 3천5백여두를 사육하고 있다. 함평군은 지난해 초부터 이들 농가에 마리당 10만원씩 거세 장려금을 지원하고, TMR 사료비를 장기 저리로 융자하는가 하면, 발효사료기를 농가에 지원하는 특별지원책으로 축산 농가의 고급육 생산에 앞서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함평군 손불면에서 한우 54마리를 사육하는 임강빈씨(58·함평 천지한우 보존·육성협회장)는 "소는 원래 풀을 먹는 초식 동물이어서 풀이나 볏짚 등 조(粗)사료를 많이 먹이는 게 고급육으로 키우는 지름길이다. TMR 사료의 경우 일반 사료와 가격 차이는 없지만 조사료 성분이 많아 소들이 훨씬 많이 먹기 때문에 사료값이 더 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등급 판정에서 고급육이 많이 생산되어 1등급을 받는 경우가 80%를 넘기 때문에 사료비 손해는 충분히 보전하고도 남는다고 임씨는 말했다. 함평 천지한우는 소고기 등급 판정에서 1등급을 받는 비율이 85%나 된다.

축산 농가들은 특수 사료와 수소 거세를 통한 고급육 생산으로 일반 소고기보다 1kg당 평균 천원을 더 받는다. 그러나 특산물을 내건 자치단체의 브랜드 한우들은 실제 소고기 자체에서 특산물의 성분이 확연히 검출된다기보다는 거세를 통한 고급육 생산과 지역 특산물을 통한 자치단체 이미지 제고 효과가 더 크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원산지 표지·생산자 실명제 정착 '숙제'

자치단체들의 브랜드 한우 붐과 달리 축산인들 스스로 노력해 고품질 소고기를 생산해내는 농가로는 전남 강진의 맥우영농조합법인이 꼽힌다. 10년 전부터 시판되기 시작한 강진맥우(麥牛)의 성공 비결은 공판장에 출하하기 7∼8개월 전부터 알코올 도수 3∼4도인 막걸리와 물을 3 대 7 비율로 함께 먹이는 것이다.

막걸리를 오랫동안 섭취한 한우는 부드럽고 고소한 옛날 한우 고기 맛을 낸다. 거세한 수소 한 마리가 하루에 먹는 막걸리는 보통 6ℓ. 일반 한우가 빠르면 18개월 만에 출하되는 것과 달리 평균 30개월을 사육해 출하하는 강진맥우는 마리당 30만∼40만 원씩 막걸리 비용이 더 들어간다.

강진맥우는 현재 30여 농가가 2천 마리를 사육해 하루 평균 2.5마리가 도축되어 소비되고 있다. 강진맥우를 1백20마리 사육해 매년 5천만원씩 수익을 올리고 있는 강진맥우영농조합법인 회장 장을재씨(47·강진군 옴천면 영산리)는 일찍부터 고급육 생산에 목표를 두고 충분히 준비를 해온 축산인이다. 장씨는 "수소를 거세하고 조사료 위주로 사육하면 마블링이 잘된 고급육을 생산해낼 수 있다. 문제는 소비자들이 믿고 찾을 수 있도록 신뢰를 구축해 꾸준히 유통될 수 있는 판매처를 확보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장씨는 출산 장려금과 거세 장려금을 지원하는 정부의 대책도 안정적인 소비가 가능한 판로를 확보하지 못하면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진맥우는 10년 전부터 서울 갤러리아백화점에 납품하면서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했다.

그러나 고급육 생산 못지 않게 유통 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가장 시급한 것이 원산지 표시제와 한우 생산자 실명제 정착이다. 정육점이나 음식점에서 수입 소고기와 한우를 명확히 구분해 팔지 않는 현실에서는 소비자들이 농가가 고생해 생산한 고급육을 충분히 맛볼 수 없다는 한계 때문이다. 무엇보다 먼저 유통 구조 개혁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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