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조정법안은 의사에게 주는 선물?
  • 정희상 기자 (hschung@e-sisa.co.kr)
  • 승인 2001.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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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시안, 일부 사고에 형사 처벌 면제·국가 보상…
법무부·재경부는 '반대'


병원과 의사는 괴롭다. 연간 7천여 건씩 발생하는 의료 사고 시비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병·의원을 찾았다가 과잉 진료나 오진, 혹은 의료 과실로 피해를 본 환자는 해마다 30%씩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환자들의 권리 의식이 부쩍 높아져 웬만한 피해는 참고 넘어가지 않는다. 문제는 체계적인 분쟁 조정 기구나 법적인 구제 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때문에 일단 사고를 당한 피해자는 병원과 의사를 상대로 완력을 행사하거나 시위를 하기 일쑤다. 이로 인해 의료 사고가 난 개인 의원의 경우 아예 문을 닫거나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곳도 적지 않다. 심지어 일부 사망 사고 피해자 가족은 시신을 볼모로 장기 투쟁을 벌여 병원으로서는 속수무책인 경우도 있다. 현재 한 의료 사고 피해자가 4백여 일째 영안실에 시신을 안치해놓고 버티는 바람에 법원 판결이 나기만을 기다리며 노심초사하는 서울 삼성의료원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만큼 병원과 의사 들이 고달파진 셈이다.




실정이 이렇다 보니 병·의원과 의사 처지에서는 일단 의료 사고가 나면 무조건 발을 빼고 고압적인 자세로 나가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있다. 생업을 포기한 채 온몸으로 병원과 맞서 싸우는 환자와 이에 대항해 `'배 째라' 식으로 맞서는 병·의원의 모습이 한국 의료 사고 처리의 현주소인 셈이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우석균 정책실장은 "공식적인 의료 분쟁 조정 기구가 없으니까 심한 경우 환자쪽 브로커와 의사쪽 브로커가 만나서 협상을 해 커미션을 챙겨 가 양측이 모두 피해를 보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이같은 의료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오는 2003년 시행을 목표로 의료분쟁조정법 시안을 내놓았다. 의료 사고를 당한 환자가 조정위원회를 통해 분쟁을 신속하게 해결하고 배상(보상)받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보건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이 법안이 통과되면 의료 사고로 인한 분쟁 해결에 결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법은 너무 의사의 입장에 치우쳤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의료계 불만 달래기 위한 '처방전'


법안의 핵심은 환자의 특이 체질이나 과민 반응으로 인한 사고를 무과실로 보고 국가가 보상하며, 의료 사고를 일으킨 의사에 대한 형사 처벌을 면제한다는 조항이다. 아울러 공정성 있는 의료분쟁조정위원회(민간 특수법인)를 만들어 분쟁 접수 후 60일 이내에 신속히 해결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이 법안에 대해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는 전폭적으로 환영한다. 그러나 법무부는 형사 처벌 평등의 원칙을 내세워 면책 조항을 넣는 데 반대하고 있다. 재경부는 국가의 무과실 보상제도가 기금을 확보하기 쉽지 않고, 민법상 과실책임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점을 들어 반대하고 있다. 정부 내의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복지부가 이 법률안을 밀어붙인 배경에는 의약분업 사태 후 의사들에게 '당근'을 줄 필요가 있었다는 점도 있었다. 따라서 복지부는 환자·국민·의료계가 모두 납득할 수 있도록 여론 수렴 절차를 거쳐 논란이 되는 법안의 내용을 손질해야 할 것이다.


학교 폭력 방지를 위한 특별법을 마련했다고 해서 학교내 폭력이 없어지지 않듯이, 이 법이 통과된다고 해서 의료 사고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복지부는 의료 사고를 일으키는 근본 원인으로 꼽히는 과잉 진료와 일부 병원들의 비효율적 의료 관리 체계를 바로잡는 데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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