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 싫다, '사장님' 되자/'여성 창업'
  • 이문환 기자 (lazyfair@e-sisa.co.kr)
  • 승인 2001.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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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창업 봇물 시대 '유망 업종·틈새 시장·성공 비법'


바야흐로 여성 창업 시대가 열렸다. 창업 컨설팅 업체 '창업e닷컴'의 조사에 따르면, 최근 상담한 고객 8백명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65%.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실직한 남편 대신 아내가 장사를 해 생계를 꾸려 가는 가정이 생겨나면서 '남자는 돈을 벌고 여자는 살림을 한다'는 고정 관념은 깨진 지 오래다. 실질 금리가 0% 밑으로 추락한 초저금리 시대인 요즘, 여성 창업은 새로운 재테크 방법으로 각광받고 있기도 하다.


20대 후반∼30대 초반 직장 여성 중에서 사업을 시작하려는 이가 늘어나면서 여성 창업자들의 평균 연령은 점차 낮아지는 추세이다. 창업 비용은 평균 2천만∼3천만 원 늘어나 사업 규모가 남성과 어깨를 견주는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시사저널〉은 최근 여성이 창업하기 좋은 유망 업종과 창업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취재했다.




맛도 좋고 몸에도 좋고 : 생과일 아이스크림점 '프렌치 키스' 아셈점의 황봉선씨(위). 영양가마솥 배달점 '가마메시타로'의 김평순씨(아래).


지난해 2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한 할부금융사에 취직했던 장소연씨(25)는 지난 6월 직원 4명을 거느린 '사장님'이 되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 강남 제일생명 사거리에 애완 동물 전문점 '나라애견' 강남점을 차린 것이다. 개·고양이 등 애완 동물과 관련한 제품을 판매하고 미용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이 사업을 시작하려면 보통 7천만∼8천만 원이 든다. 하지만 장씨는 부모님의 쌈지돈에 직장을 다니며 모은 돈을 합쳐 1억5천만원을 투자했으니 대단한 모험을 한 셈이다.


장씨가 안정적인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이처럼 모험을 한 것은 '평생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결혼 적령기에 이른 장씨는 결혼한 뒤에도 계속 일을 하려면 자기 사업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한 마리에 40만∼80만 원 하는 강아지가 하루에 2∼3마리씩 팔리는 나라애견의 하루 매출은 최소 80만원. 오전 2시까지 가게문을 열기 때문에 연애할 시간조차 없다지만, 장씨는 사업가인 자신이 대견하기만 하다. 그녀는 "시집 간 친구들 중에는 시집이나 가지 무슨 사업을 벌이냐고 그러다가 다시 전화를 걸어 잘 생각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라고 말했다.


소규모 점포 창업은 유행을 타기 쉽다. 2천만∼1억 원 안팎을 가지고 전문 기술 없이 시작할 수 있는 틈새 업종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애완 동물 전문점은 집에서 애완 동물을 기르는 이들이 늘어나자 수요가 급증한 업종이다. 건강에 대한 현대인들의 높은 관심에 부응하는 업종은 스포츠 마사지·발 마사지 전문점, 녹즙·생식 전문점, 장어구이점 등. 매장에서 과일을 직접 갈아서 만든 저지방 아이스크림을 파는 생과일 아이스크림점 역시 같은 부류이다.


육아·어린이 관련 사업, 적은 투자로 큰 소득




서울 아셈타워 지하 1층에서 생과일 아이스크림 전문점 '프렌치 키스'를 운영하는 황봉선씨(42)에 따르면, 생과일 아이스크림의 주고객은 고등학교 남녀 학생에서부터 직장 남성과 여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다만 어린아이와 외국인은 예외. 황씨는 "어린이들은 달지 않아서 좋아하지 않는다. 외국인들도 맛이 밋밋하다면서 싫어한다"라고 말했다.


황씨가 아이스크림 사업을 시작한 것은 지난 3월부터이다. 유동 인구가 많은 상권 특성상 평일 매출액과 주말 매출액의 차이가 크지만, 아무리 장사를 못해도 하루 15만원어치는 판다는 것이 황씨의 말이다. 손익분기점이 17만∼18만원 선이니 수익을 내는 데에 무리가 없어 보인다. 황씨는 '프렌치 키스' 체인점 중에서 유일한 여성 경영자여서 다른 여성 창업 희망자들의 벤치 마킹 대상이기도 하다. 그녀는 "생과일 아이스크림 전문점을 하려는데 어디서 하는 게 좋겠냐고 물어오는 이가 많다. 식당을 하고 있는데 너무 힘들다며 업종을 바꾸겠다고 찾아온 이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핵가족화가 진행되는 동시에 맞벌이 가족이 늘어나면서 어린이·육아 관련 사업도 각광받고 있다. 아기를 돌볼 사람이 필요한 가정에 '보모'를 공급하는 베이비시터 사업은 외환 위기 이후 등장한 여성 전용 업종. 최근에는 영어 교육 전문, 생일 파티를 치러주는 이벤트 전문 등 특화한 베이비시터를 공급하는 업체도 등장하고 있다.


'베이비시터 코리아' 강북지점을 운영하는 정주연씨(26)는 이 사업의 장점으로 초기 투자비가 적게 든다는 점을 든다. 대학에서 에어로빅을 전공한 그녀의 원래 직업은 놀이 공원의 댄서. 그러나 올해 초 정씨는 춤을 추다가 무릎을 다쳐 직장을 그만두었다. 20대 중반이 넘은 나이로는 다른 곳에 취직할 마음을 먹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제자리를 찾지 못하던 정씨에게 학교 선배가 아르바이트로 베이비시터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권했다. 아이들의 생일 파티 이벤트에서 한번 일해 보고 난 뒤 그녀는 자신이 직접 이 사업을 해보겠다고 생각했다.


정씨가 모아둔 창업 자금은 2천5백만원. 어머니는 화장품 가게를 권했지만 그 정도 돈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화장품 가게는 재고를 비축해 두어야 하므로 물건이 팔리지 않으면 큰 손해를 볼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녀가 베이비시터 사업을 하겠다고 나서자 부모님은 탁아방·놀이방이 많은데 무슨 장사가 되겠느냐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든든한 도우미인 남편이 있었다. 정씨는 "동네 주변에 전단을 돌릴 때 남편이 많이 도와 주었다. 어린이대공원 앞에서 전단과 풍선을 나누어 주었다. 풍선에 상표와 전화번호를 적었다. 소아과 앞에서 전단을 나누어 주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현재 정씨가 확보한 베이비시터 수는 50명. 사업을 시작한 지 겨우 두 달이지만 그녀의 한 달 수입은 2백만원이 넘는다.


지난해 11월 서울 화곡동에 문을 연 어린이 속옷 전문점 '무냐무냐'의 이은화씨(32)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귀여운 만화 캐릭터 속옷으로 틈새 시장을 겨냥했다. 값은 팬티 두 장에 1만∼2만 원이어서 비교적 고가이지만 백화점에서 팔리는 고급 속옷보다는 싸다. 게다가 다른 곳에서는 구할 수 없는 제품을 팔기 때문에 단골 고객도 많다. 이씨는 "가격 문제로 손님들과 실랑이를 벌일 일도 없고, 물건을 좀더 싸게 사려고 새벽 시장에 나갈 일도 없어서 좋다"라고 말했다. 창업 비용 8천만원을 들여 가게를 낸 그녀의 순수입은 한달 평균 3백만원. 앞으로 이씨의 계획은 돈을 더 모아 3년 뒤에는 좀더 장사가 잘 되는 'A급 상권'으로 가게를 옮기는 것이다.


사교육 서비스로 '대박'




'아이들 사업'이 뜬다 : 아동 속옷 전문점 '무나무냐'의 이은화씨(왼쪽)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속옷을 판매한다. 6년 전부터 과학 교육 사업을 해온 '와이즈만 영재교육원'의 기순씨(오른쪽)는 지난해부터 흑자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 교육부가 초등학교 교육에 창의성을 중시하는 '제7차 교육 과정'을 실시하면서 새롭게 떠오른 업종이 미술·과학·애니메이션 교실 등 공교육을 보완하는 사교육 서비스이다. 학교와 1 대 1 계약을 맺고 과학·미술 등을 가르치는 '방과후 교실' 강사로 일하며 1인 사업을 하는 이도 나오고 있다.


서울 양천구에서 과학교실을 운영하는 '와이즈만 영재교육원' 양천센터장 기순신씨(42)는 '과학 교실'을 기업형으로 운영하는 사례. 교육원의 강사 16명이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실험은 천 가지가 넘는다.


기씨가 과학교실을 시작한 것은 6년 전. 그러나 흑자를 거두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이다. 미술·음악과 달리 과학 교육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학부모가 턱없이 적었기 때문이다. 기씨는 학부모들을 초대해 주방에서 쉽게 응용할 수 있는 실용 과학을 가르치며 과학에 관심을 갖게 하려고 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명지대 객원 부교수이기도 한 그녀는 강의해서 번 돈을 모조리 학원 운영비로 쏟아부었다. 교육업에 종사하는 남편이 물심 양면에서 큰 힘이 되어주었다. 기씨는 "처음에는 남편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이제 내가 돈을 잘 버니까 남편이 안식년에 들어갔다"라고 말했다.




여성이 창업하기에 가장 유리한 종목으로 꼽히는 요식업은 예전보다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다. 장어요리 전문점·생과일 아이스크림점을 비롯해 테이크아웃 커피점·야채면 전문점·오리고기 요리점 등 최근 등장하는 업체들의 공통점은 가게 주인의 '손맛'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 업체는 조리 방법과 재료의 양을 철저하게 매뉴얼로 만들어 누가 요리하더라도 고객에게 언제나 같은 맛의 음식을 내놓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난 8월28∼30일 여의도에서 열린 '신산업 박람회'에 등장해 눈길을 끌었던 영양가마솥 배달업은 조리하는 데만 적어도 30분이 걸리는 가마솥밥을 마치 피자·짜장면처럼 배달하는 새로운 사업이다.


경기도 분당 백궁역 근방에서 영양가마솥밥집 '가마메시타로'를 경영하는 김평순씨(47)는 치킨·호프집을 하다가 지난 4월 솥밥 배달업으로 업종을 바꾸었다. 치킨·호프집의 경우 한 동네에 적어도 3∼4곳이 있어 치열하게 경쟁하다 보니 돈을 벌려면 쉬는 날 없이 일해야 했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솥밥을 만들어 배달하는 김씨의 가게 하루 매출액은 30만∼50만 원. 게다가 밤 9시면 문을 닫기 때문에 술을 팔던 시절보다는 훨씬 편하다.


여성은 소자본 창업 시장 '태풍의 눈'


창업 전선에 뛰어드는 여성의 숫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까지 여성 창업자는 남성에 비해 지나치게 '위험 회피형'이라는 지적도 있다. 여성 창업·취업 컨설팅 업체 '사비즈'의 김희정 대표는 "2년 전에는 여성들이 말 그대로 어떤 아이템을 해야 할까 질문을 했지만 지금은 사업성과 리스크에 대해 주로 묻는다. 그런데 남자들과 달리 여자는 위험 요인이 있으면 사업을 접는 경우가 많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여성 창업자가 남성보다 2배나 빨리 증가하는 미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여성 창업은 이제 막 걸음마를 걷는 단계다. 한국창업개발연구원 유재수 소장은 소자본 창업 시장에서 여성이 '태풍의 눈'이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미국의 통계 조사에 따르면, 여성들의 창업 성공률은 75%로 남성의 20%보다 훨씬 높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남성들이 사업을 주도하는 동안 간과해 왔던 '여성용' 틈새 시장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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