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 · 한화갑 · 노무현 '3자 구도 압축'
  • 이숙이 기자 (sookyi@e-sisa.co.kr)
  • 승인 2001.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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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민주당 대의원 여론조사/
노무현, 부산 · 경남 지지율 10% 올라…총재감 1위는 한화갑
〈시사저널〉이 김대통령 총재직 사퇴 이후 처음 실시한 민주당 대의원 여론조사 결과, '대심(代心)'은 빨리 전당대회를 열어 새로운 구심점과 강력한 지도부를 세우자는 쪽으로 모아졌다.


민주당의 차기 경선 구도가 이인제·한화갑·노무현 3자 대결로 압축되는 분위기다. 〈시사저널〉이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제4차 민주당 대의원 여론조사 결과가 이런 흐름을 또렷하게 반영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총재 직에서 물러난 후 실시한 이번 대의원 여론조사는 여러 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10·25 재·보선 패배 이후 여권 내부에서 전개된 대선 후보간 권력 다툼의 결과가 반영되는 데다, 내년도 정치 일정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하는 시점의 '대심(代心)'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더욱이 1차 조사를 실시한 2000년 11월 이래 1년 간의 지지율 추이를 점검해 본다는 의미도 있다.




이번 조사에서는 후보 지지도를 두 갈래로 나누어 물었다. 하나는 당 총재를 겸하는 대선 후보를 뽑을 때의 지지도이고, 다른 하나는 총재와 대선 후보를 나누어 뽑을 경우 각각의 지지도이다.


'당 총재를 겸하는 차기 대선 후보로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의원들은 1위 이인제(35%), 2위 한화갑(14.7%), 3위 노무현(13.4%) 상임고문을 꼽았다. 이들 3인은 모두 지난 8월 조사 때보다 지지율이 올랐고, 다른 후보들과 달리 꾸준히 두 자릿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이 3룡은 각각 국민 지지도·당내 지분·개혁 주자라는 분야별 대표성을 띠고 있다. 그 뒤를 잇고 있는 고 건 서울시장과 김중권 상임고문, 정몽준 의원, 김근태·정동영 상임고문, 한광옥 대표, 박상천 상임고문은 모두 지지율이 한 자리에 머무르는 데다 대부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무응답률 1년 전 33%에서 7%로 '뚝'


이번 조사에서 무응답은 6.9%에 불과했다. 1년 전 33.1%였던 무응답률이 15.1%(2차), 10%(3차)로 점차 줄더니 마침내 한 자릿수에 그친 것이다. 이는 민주당 대의원들이 어떤 후보를 밀 것인지 어느 정도 결심을 굳혀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인제 고문은 지지율 35%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켰다. 1년 전에 비하면 지지율이 13.2%(1차 21.8%→4차 35%)나 증가해 상승 폭이 가장 크다. 2위인 한화갑 고문과의 지지율 격차도 두 배가 넘는다. 현재까지는 "대중적 지지가 대의원의 지지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이고문의 주장이 현실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차기 대선 후보 · 당 총재 겸직 후보 지지도
대선 후보를 뽑는 전당대회가 내일 열린다면 누구를 지지하겠습니까?













이인제
35.0%
한화갑
14.7%
노무현
13.4%
고 건
8.1%
김중권
7.2%
정몽준
5.8%
김근태
3.4%
모르겠다
6.9%


사실 이번 대의원 조사를 하면서 내심 주목한 대목이 있다. 지난 쇄신 파동 과정에서 이고문이 '음모론'을 제기하며 김대중 대통령과 동교동 구파에 반발한 것이 과연 일반 대의원들에게 어떻게 비쳤겠느냐는 점이다. 당시 동교동 구파 사이에서는 이고문에게 불만을 나타낸 사람이 적지 않았고, 경쟁 주자 진영에서는 호남 대의원들 사이에서 이인제 지지층이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 나왔다.


하지만 이번 여론조사 결과는 이인제 지지층에 큰 변화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부산·경남 지역을 제외한 전지역에서 이인제 지지층이 두터워지는 양상이다.


한화갑 고문의 2위 복귀는 이번 여론조사의 하이라이트다. 1차 조사에서 2위를 했던 한고문은 2차·3차 조사에서 김중권·노무현 고문에게 추월당했다가 1년 만에 제자리를 찾았다. 민주당 경선 구도가 이인제 대 김중권, 이인제 대 노무현에서 이인제 대 한화갑의 대결로 옮아가고 있다는 한고문 진영의 주장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는 얘기다.


정가에서는 한고문이 약진한 배경으로 '끝까지 가겠다'는 그의 결연한 의지 표명을 꼽는다. 사실 지금까지 정가 안팎에서는 한고문이 과연 끝까지 가겠느냐는 회의적 시각이 우세했다. 까놓고 얘기해서 당권을 잡기 위해 대권 주자 행세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었다.


하지만 한고문이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서겠다며 대표 자리를 포기하는가 하면, 동교동 구파와 각을 세우며 차별화에 주력하자 주변의 인식이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 한고문을 명실상부한 대권 주자로 올려놓고 경쟁력을 진지하게 따져보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고문은 최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끝까지 갈 것이냐 하는 질문은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 나는 모든 것을 정면 돌파할 것이며 최종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제 신곡을 선보였으니 조만간 히트할 것이라는 자신감도 내보였다. 정가에서는 한고문이 개혁세력 연대론에 즉각 반대하고 나선 것도 아마 '연대=경선 포기'라는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비록 2위에서 3위로 내려앉았지만, 노무현 고문의 경쟁력 역시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특히 부산·경남 지역 대의원 사이에서 지지율이 10% 가까이 급상승한 것은 이례적이다. PK지역에서 노고문 지지율은 15.4%에서 24.8%로 는 반면, 이인제 고문 지지율은 30%에서 20.8%로 줄었다. 노고문이 빅3 구도에 안착하면서 영남 민심이 꿈틀대는 모양새다.


이런 여세를 몰아치려는 듯 노고문은 "호남(동교동 구파)·충청(이인제)이 연대해 영남 고립 작전을 펴고 있다" "개혁 세력이 연대해야 한다"라며 연일 반 이인제 노선을 강화하고 있다.


당내 지지 기반이 약한 노고문 처지에서는 어떻게든 반 이인제 진영을 묶어 자신이 대표주자로 나서는 것이 관건이다. 하지만 한화갑·김중권 고문은 물론 김근태·정동영 고문도 당장은 연대에 부정적이어서 노고문의 이인제 따라잡기가 성공할지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총재와 대선 후보를 따로 뽑을 경우의 대선 후보 지지도는 앞서 총재·후보 겸임 지지도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2위와 3위, 4위와 5위가 서로 자리를 맞바꾼 정도라고나 할까.


그러나 총재 지지도에서는 사뭇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한화갑 고문이 35.2% 지지를 얻어 압도적 1위를 차지했고, 한광옥 대표가 11.7%로 2위, 이인제 고문이 11.2%로 3위를 차지한 것이다. 대의원 사이에 총재감과 대선주자감에 대한 기준이 뚜렷하게 나뉘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선 후보 지지도에서 하위권을 맴돌던 한광옥 대표가 총재감 2위로 오른 것이 눈에 띈다.




당 총재 후보 지지도


















한화갑
35.2%
한광옥
11.7%
이인제
11.2%
김중권
8.3%
노무현
4.4%
고 건
4.2%
김근태
3.1%
박상천
2.3%
김원기
2.0%
정몽준
1.1%
기타
3.2%
무응답
13.3%




외부 인사가 민주당 대선 후보 될 가능성








별로 없다
41.5%
전혀 없다
22.6%
다소 높다
28.3%
매우 높다
6.3%
모름/무응답
1.3%




민주당의 재집권 가능성






재집권 어렵다
21.1%
후보에 따라 다르다
64.7%
무조건 재집권
14.3%


한화갑 고문은 지난 3차 조사에서도 상당한 표차로 대표감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정작 한고문측은 이런 조사 결과에 못마땅하다는 반응이다. 대권을 노리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반길 만한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민주당 대의원들은 대체로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기를 바라고 있다(34쪽 도표 참조). 그렇게 될 경우 한광옥 대표가 최대 수혜자가 될 전망이다. 지금 추세라면 한화갑 고문이 끝까지 대선 후보로 나설 태세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인제 후보, 한광옥 총재'로 연대가 이루어진다면 더욱 막강 파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여권의 경선 구도가 가닥을 잡는 것에 비례해 제3 후보가 출현할 가능성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대의원들은 당 외부의 인물이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에 대해 '높다' 34.6%, '없다' 64.1%로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재집권 어렵다" 비관론 높아져


이는 김대통령의 '대선주자 문호 개방' 발언과 총재직 사퇴로 정계 개편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는 정치권의 일반적 관측과는 상반되는 반응이다. 특히 반 이회창 세력이 신당을 만들어 영남 후보를 내놓아야 한다고 역설해온 김윤환 민국당 대표가 보면 매우 허탈해 할 결과다.


그러나 이번 대의원 여론조사에서 가장 집권 여당을 우울하게 만드는 대목은 바로 '재집권 가능성'에 대한 전망이다. 일단 과거 세 차례 조사에서처럼 '후보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다'는 응답이 64.7%로 가장 많았지만, 문제는 후보가 누구든 재집권이 어렵다는 대답이 그 어느 때보다 많아졌다는 점이다. 3개월 전 조사와 비교하면 '재집권이 어렵다'는 비관론은 4.3%가 증가(16.8%→21.1%)했고, '무조건 재집권한다'는 낙관론은 3%가 감소(17.3%→14.3%)했다. 이런 비관론의 우세는 최근 몇몇 언론사가 발표한 일반인 대상 여론조사 결과와도 궤를 같이한다.


민주당 대의원들이 대선 후보 선출과 당 체제 정비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34∼35쪽 참조). 요컨대 혼란스럽고 비관적인 분위기에서 빨리 벗어나 새 후보를 내세워야만 그나마 재집권할 가능성이 열린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듯 대의원들이 조바심을 내면 낼수록 민주당 경선 구도는 메이저 리그 대 마이너 리그로 급속히 재편될 전망이다.


※ 어떻게 조사했나

언제 : 2001년 11월14∼15일

누구를 : 민주당 대의원(전체 9,354명)

얼마나 : 1,044 

어떻게 : 전화여론조사

무엇으로 : 구조화한 설문지

오차범위 : ±2.9%포인트(95% 신뢰수준)

누가 : 미디어리서치(02-583-6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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