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에너지 기업 “부시와 함께 춤을!”
  • 워싱턴/변창섭 (cspyon@sisapress.com)
  • 승인 2002.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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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 유착으로 ‘황금 시대’구가…행정부에 업계 출신 우글우글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에너지 업계가 황금기를 맞을 전망이다. 대통령·부통령은
물론 에너지 주무 장관, 나아가 여러 행정부 고위 관리들이 하나같이
에너지 업계와 끈끈하게 유착해 있는 데다,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이들의 이해를 충실히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유명한 정치
감시 기관인 책임정치센터(CRP)의 피터 아이즈너 집행국장이 “부시
행정부는 본질적으로 ‘석유 행정부’나 다름없다”라고 꼬집었을 정도다.



부시 행정부 들어 특히 에너지 기업들이 승승장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이들은 부시와 공화당에 엄청난 정치자금을 쏟아부었다. 책임정치센터
자료에 따르면,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원유와 가스 회사들이 부시 후보에게
뿌린 자금은 1백80만 달러를 넘는다. 이들 업계는 또 텍사스 주 공화당
중진인 필 그램 상원의원에게 1989년 이후 1백60만 달러, 같은 주 출신
케이 허친슨 상원의원에게도 1백30만 달러를 제공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시는 자기를 도운 에너지 업계를 외면할 수
없게끔 되어 있다. 부시는 지난해 5월 종합에너지대책을 발표해 ‘보은’했다.
원유 및 천연 가스 추가 발굴, 전국적 송전망 확충, 정유소와 발전소
증설, 원자력 발전소 신설안 등 핵심 대책들은 하나같이 에너지 업계
처지에서 ‘황금알을 낳아줄 거위’이다.


부시는 특히 장차 세계 에너지원에 대한 미국의 패권을 강화하려고
에너지 업계에 세심하게 배려했다. 즉 가장 큰 이권이 걸린 중앙아시아는
물론이고 남미의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중동의 알제리와 아랍에미리트,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 심지어 아시아의 인도·미얀마에 적극
진출하라고 권장한 것이다. 중립적 정치 감시 단체인 카먼 코즈의 제프
크로닌 대변인은 “지난 선거 때 에너지 업계가 엄청나게 지원했기 때문에
부시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업계의 입김에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지적했다.


4개 메이저 회사는 ‘부시 패밀리’


부시 가문이 지금도 텍사스 주에서 석유회사를 운영할 정도로 에너지
업계와는 오래 전부터 밀착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부시는
이런 튼튼한 사업 기반과 에너지 업계와의 끈끈한 유대를 바탕으로 1990년대
들어 텍사스 주지사에 두 번이나 당선했다. 현재 부시와 밀착한 기업들은
그의 고향인 텍사스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엔론·TXU·디너지·릴라이언트
등 메이저 회사들이다. 이들 에너지 거인들은 부시가 대통령이 되기
훨씬 전부터 부시 가문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또 그런 연유로 부시가
주지사일 때부터 에너지 정책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부시의 선거 사무장이었던 다이엔 앨보(여)는 지난해 가을 TXU와
릴라이언트, 그리고 텍사스 주의 또 다른 에너지 회사인 엔터지의 로비스트로
등록해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이 가운데 최근 파산한 엔론은 지난 대선 때 부시측에 56만3천 달러를
기부해 단일 기업으로는 최고 액수를 기록했다. 매출액 2백93억 달러로
업계 55위인 릴라이언트의 스티븐 레드베터 회장은 10만 달러 이상 정치헌금
기부자 모임인 ‘파이어니어’ 멤버였고, 지난해 1월 부시의 취임 축사행사
때도 10만 달러를 기부했다. 매출액 2백94억 달러로 업계 54위를 기록한
디너지 사는 지난 선거 때 부시 캠프에 12만7천 달러를 기부했다. 또한
TXU 사는 매출액 2백20억 달러로 업계 85위에 불과하지만 에너지 규제
완화 덕분에 해마다 기록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 회사의 얼 나이
회장은 지난 선거 때 부시측에 5만 달러를 기부했다.


공교롭게도 이처럼 부시에게 막대한 선거자금을 제공한 엔론·릴라이언트·디너지
등은 캘리포니아 주가 극심한 전력난으로 어려움을 겪은 지난해 상반기에
엄청난 흑자를 기록했다. 캘리포니아 전력난 당시 부시 대통령이 적극
개입하지 않은 것은 이들 기업의 이익을 더 우선시했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등 고위 관료들도 ‘끈끈한 관계’


부시는 지난해 1월 하순 행정부 내 에너지 대책반 발족을 발표할
때부터 호된 비난을 받았다. 에너지 정책처럼 중요한 국가적 사안을
초당적 기구와 인사가 아닌 에너지 업계와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
행정부 인사들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대책반의 돈 에번스 상무장관은
10년 이상 텍사스의 유명한 천연 가스 회사인 톰 브라운 사의 회장을
지냈다. 또 에이브러햄 에너지장관과 게일 노턴 내무장관도 과거 상원의원
선거 때 에너지 업계로부터 엄청난 정치자금을 받았다. 무엇보다 대책반
책임자인 체니 부통령이 세계 굴지의 원유개발회사인 핼리버튼 회장을
지낸 인물이다. 부시는 2000년 정권 인수팀 에너지 인수반 위원 48명
가운데 무려 31명을 현직 에너지 업계 회장들로 채워 비난을 사기도
했다.


이런 외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와 에너지 업계와의 유착
관계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 같다. 부시 자신뿐 아니라 행정부 내 여러
고위 관리들이 이들 에너지 회사들과 끈끈한 인연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인사들을 몇 사람 꼽아보면, 우선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지난 1991∼2000년 석유 메이저인 세브론 사의 이사로
근무했다. 그녀는 이사로 재직할 당시 연 3만5천 달러의 명예 보수,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1천5백 달러, 그밖에 수십만 달러 상당의 스톡
옵션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브론은 지난 선거 때 공화당 후보들에게
정치 자금을 약 76만 달러 제공했다.


게일 노턴 내무장관은 1996년 상원의원 선거 때 에너지 업계로부터
약 2만8천 달러의 헌금을 받았다. 또 에너지부의 제시 로버슨 환경관리
담당 차관보는 조지아 전력회사와 듀퐁, 그리고 비키 베일리 에너지부
차관보 역시 PSI에너지사 회장 출신이다. 새뮤얼 보드맨 상무부 부장관은
과거 부시가 텍사스 주지사 시절 시행한 에너지 규제 완화 덕에 횡재한
캐봇 사 회장 출신인데, 그는 지난 선거 때 부시에게 천 달러, 공화당
선거본부에 2만 달러를 각각 제공했다. 이 회사는 지난 선거 때 공화당에
29만 달러를 기부했다.


이래저래 부시 행정부는 대통령에서 각료급 인사에 이르기까지 에너지
업계와 얽히고 설킨 관계 때문에 ‘석유 행정부’라는 오명을 벗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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