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개발에 ‘목숨’거는 선진국들
  • 박성준 기자 (snypesisapress.com.kr)
  • 승인 2004.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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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재생에너지 개발해 ‘석유에서 해방’ 잰걸음…한국은 걸음마 단계
앞으로 50년 뒤, 독일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새로운 에너지 대국으로 탈바꿈한다. 독일뿐 아니다. 벨기에·덴마크·프랑스·영국·이탈리아 등 유럽연합에 소속한 국가 대부분이 저마다 특성을 지닌 ‘에너지 독립국’으로 당당하게 세계 무대에 선다.

여기서 말하는 에너지는 ‘에너지의 대명사’로 통하는 석유나 원자력과는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물이나 바람, 햇빛 등 경제학에서 말하는 ‘무한재’를 이용해 얻는 이른바 ‘재생 가능 에너지’를 뜻한다. 재생 가능 에너지(재생에너지)가 전통적 에너지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미 이들 에너지원은 일부 국가에서 서서히 화석 연료나 원자력의 자리를 밀어내고 있으며, 앞으로 그 자리는 훨씬 더 넓어질 것이다. 앞으로 50년 후 세계는 재생에너지를 장악한 나라가 지배할지도 모른다.

먼저 독일부터 살펴보자. 독일은 2003년 말 현재 전체 전력 소비의 7.9%, 열 에너지(냉난방 및 취사)의 4.1%, 연료(수송용)의 0.9% 등 전체 에너지 소비의 약 3.1%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했다. 재생에너지가 전체 에너지 소비 구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10년 4.2%, 2020년 10%, 2050년에는 50%로 높아진다.

독일, 50년 뒤 재생에너지 비율 50%

독일에서는 최근 중요한 법안 하나가 발효되었다. 지난 8월1일부터 효력을 갖기 시작한 재생가능에너지지원법(EEG)이 그것이다. 이 법안에는 독일 정부가 세운 원대한 목표치를 법적으로 강제하기 위한 각종 투자 방안 및 세제 혜택 계획이 제시되어 있다. 전세계적으로 이해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이산화탄소 저감 계획까지 제시되어 있다.

유럽 전체 차원에서도 고유가 공포로부터의 해방과, 석유로부터의 독립이 추진되고 있다. 유럽연합은 일찍이 2001년 초 에너지 전략을 담은 <그린 페이퍼>를 작성한 바 있다. 회원국 각국의 논란 끝에 유럽의회를 통과한 이 보고서의 핵심은, 전체 에너지 소비에서 차지하는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2010년까지 현재 수준의 2배로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지난 6월 독일에서 열린 ‘재생가능에너지 국제회의’에서 유럽재생가능에너지협회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유럽연합 15개국(확대 이전)은 2020년까지 최소 1차 에너지(가공 전 단계 에너지)의 20%, 전력의 33%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할 계획이다.

어떻게 해서 이런 계획이 실현될 수 있을까. 이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덴마크는 현재 전체 전력의 20%를 풍력 발전으로 해결하고 있다. 2003년에만 덴마크는 풍력산업을 통해 2만명에 이르는 고용을 창출하고, 30억 유로(약 4조2천억원)를 벌어들였다.

유럽연합이 2010년까지 전력의 22%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고 목표를 세우면서 가장 주목하는 에너지원은 간벌재·유채 기름 등 ‘바이오 매스’이다. 유럽연합은 바이오 매스를 전력 생산이나 난방에 적극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이 방면에서 오스트리아 사례가 두드러진다. 이미 25년 전부터 바이오 매스에 주목해 지속적으로 연구·개발에 전념해온 결과, 최근 오스트리아 전체 에너지 공급의 12%를 바이오 매스로 해결하고 있다. 바이오 매스를 태우거나, 기체화 또는 액체화해서 발전소에 보내고 터빈과 엔진·보일러를 돌리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시골 농가는 대부분 나무를 연료용으로 가공한 칩이나 펠릿으로 난방을 해결하고 있다.

전력이나 냉난방은 재생에너지로 해결할 수 있다 하더라도, 자동차나 비행기 등 화석 연료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수송 수단의 연료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전문가들은 앞으로 20년 안에 이에 대한 고민도 사라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물 분해 과정에서 나오는 수소를 수송 연료로 이용하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에 활약했던 공상과학소설가 쥘 베른의 소설에 처음 아이디어가 나왔던 수소의 에너지화는, 실제 이 기술이 상용화할 경우 엄청난 산업 효과를 예고하고 있어 현재 미국과 유럽연합·일본 등 기술 선진국들이 천문학적 돈을 쏟아부으며 너도나도 개발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2001년 에너지 안보 관련 종합 보고서를 내놓을 때, 재생에너지나 온실 가스 배출 문제 등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면서도 유독 이 분야에 대해서 만큼은 ‘파격적인 투자’를 약속하며 개발 의욕을 불태웠다. 부시 대통령은 또 2003년 2월 상하원 합동연설 때 수소 연료 개발에 15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수소를 에너지화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수소가 에너지원으로 상품화되기 위해서는 수소 생산 단가가 크게 낮아져야 한다. 그런데 천연 가스와 석탄·석유 등 기존 화석 연료를 사용하면 수소를 싼값에 손쉽게 얻을 수 있다. 독일 정부가 내놓은 수치에 따르면, 천연 가스 등에서 수소를 추출하는 데 필요한 단가는 kWh 당 4센트. 화석 연료와는 무관하게 수소를 생산할 경우는 kWh 당 12~13센트이다.

하지만 화석 연료를 수소 생산에 이용하면 온실 가스를 배출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미국은 바로 이 방식을 권장하며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공언했다. <노동의 종말>을 쓴 제레미 레프킨이 이같은 계획이 나오자마자 이를 ‘진정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며 혹독하게 비판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유럽은 이 문제에 대해 ‘일단 이산화탄소 저감 목표치를 달성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장기적인 투자를 강조하는 절충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유럽연합 등 선진 국가들이 50년 후를 내다보고 에너지 전략을 다시 짜고 있는 데 비해, 한국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했다. 한국의 경우 현재 대수력·소각열 등 엄밀히 말하자면 재생에너지의 범주에 들지 않는 것까지 모두 포함해도 재생에너지가 전체 에너지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1%에 불과하다. 게다가 재생에너지를 바라보는 일반의 시각에는 재생에너지가 ‘선진국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이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최근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정부는 지난 5월 수소연료전지·태양광·풍력 등 3대 재생에너지 개발 사업에 앞으로 5년간 2천5백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2011년까지 전체 에너지 소비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의 2.1%에서 5%로 끌어올린다는 목표치까지 세웠다.
하지만 에너지대안센터 이상훈 국장은 화석연료 중독증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한국은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재생에너지 개발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에너지 효율성 제고 방안인데, 이 부분에 관한 한 한국의 목표는 너무 느슨하다는 것이다.

2001년 현재 한국의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독일이나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다. 경제력 차이를 감안하면 한국은 독일이나 일본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쓰는 경제 구조이다. 이상훈 국장은 “현재의 추세대로 성장 패턴이 지속된다면, 한국은 오는 2020년께 독일이나 일본에 비해 두배 가까이 에너지를 많이 쓰게 될 것이라는 추산도 있다”라고 경고한다. 산업 구조 전반에 걸쳐 혁신적인 효율화 방안이 나오지 않는 한, 한국은 에너지 공포로부터의 해방은 고사하고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한 화석연료 중독증을 겪을 것이라는 얘기다.

한국과 산업 구조가 비슷한 독일의 미래 전략은 한국에 중대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독일은 지난 5월 펴낸 <재생가능에너지-미래를 위한 혁신>에서, 에너지 대책의 핵심은 ‘지속 가능한 에너지 공급’에 있으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효율성·일관성·충족성 등 3대 전략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 가운데 특히 독일 정부가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확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쓸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에너지 위기와 그에 대한 대응 방식 면에서 독일과 한국이 다른 것 또 한 가지는, 독일의 경우는 정부가 앞장서 민간을 견인하는 반면, 한국은 민간이 정부를 상대로 대안 마련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있다는 점이다. 에너지대안센터(대표 이필렬)와 유네스코한국위원회(사무총장 김여수)가 공동 주관해 오는 8월 19·20일 이틀 동안 서울 은행회관에서 여는 국제 회의가 단적인 예다.

‘재생 가능 에너지와 평화’를 주제로 한 이 회의에는, 베르너 치텔(독일)·코지마 베버 류(독일)·가오후(중국) 등 세계적으로 저명한 에너지 관련 전문가들이 참석해, 세계 에너지 현황과 재생에너지 확산 전략 등을 토론할 예정이다. 이번 회의는 재생에너지의 가능성을 단순히 환경 보호나 기술 진보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안보 전략과 국제 평화 차원에서 검토한다는 점에서 과거 유사한 회의와 성격을 달리한다. 그만큼 에너지 문제는 한국의 생존에 절박한 과제가 되어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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