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100달러 시대 오는가
  • 장영희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2004.08.1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붙은 유가가 잡힐 줄 모른다. ‘제3차 오일 쇼크·배럴당 100달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유가 상황이 고착화·장기화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기름값, 어떻게 될 것인가?
“기름값이 미쳤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푸르느모 유스기안토르 의장이 이렇게 표현할 정도로 국제 유가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8월13일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서부텍사스중질유(WTI) 9월 인도분은 46.58달러로, 1983년 선물 거래가 시작된 이래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7월30일 이후 거의 날마다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는 서부텍사스중질유는 1년 전에 비해 무려 51%나 올랐다.

북해산 브렌트유 9월 인도분도 런던 국제석유거래소(IPE)에서 배럴당 43.88달러로 최고치 기록을 갈아치웠다. 한국 원유 도입의 77%를 차지하는 중동산 원유의 기준 유가인 두바이유 역시 이 날 38.91달러로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해 평균보다 12.12달러, 7월 평균보다 4.25달러나 높은 가격이다. 두바이유가 39달러에 육박한 것은 2차 석유 파동 때인 1981년 이후 처음이다. 이로써 국제 유가는 심리적 저항선인 40달러(두바이유)~50달러(서부텍사스중질유) 시대가 시간 문제로 떠올랐다.

국제 유가가 고공 행진을 벌이는 이유는 한마디로 수급 불안을 자극하는 요인들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석유 시장은 유난히 많은 악재가 동시 다발적으로 돌출하는 지뢰밭으로 변했다. 우선 석유 수요가 크게 늘었다. 올해 국제 원유 수요는 하루 8천2백만 배럴로 지난해에 비해 3% 이상 늘어나 24년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수 년째 고성장으로 ‘기름 먹는 하마’가 된 중국은 올해 더욱 많은 석유를 소비했다. 최근 중국 신화통신은 올 1~7월 월 평균 원유 수입량이 2백49만 배럴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지난해 하반기부터 세계 경제가 회복세를 보여 통상 1% 수준인 원유 수요 증가율을 3%로 끌어올렸다. 특히 최대 석유 소비국인 미국의 본격적인 경제 회복이 원유를 대거 빨아들였다.
반면 공급쪽 상황은 불안하기만 하다. 산유국의 정정 불안과 돌발 악재가 한꺼번에 터져 시장을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뜨리고 있다. 하루 원유 생산량이 1백90만 배럴에 달하는 이라크 남부 바스라 유전지대는 시아파 무장 세력의 공격 위협으로 생산이 중단되었다가 가까스로 부분 재개되었다. 러시아 최대 원유 수출업체인 유코스가 파산 위기에 내몰린 것도 몇 주째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유코스는 러시아 하루 원유 생산량(8백50만 배럴)의 20%, 세계 공급 물량의 2%(1백70만 배럴)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세계 4위 산유국에다 5위 수출국인 베네수엘라가 화약고로 떠올랐다. 8월15일 우고 차베스 대통령 소환 국민투표를 둘러싼 정정 불안이 유가 급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태풍 보니의 미국 멕시코 만 유전지대 강타, 미국 인디애나 주 BP 정유공장 폭발 사고 같은 일시적이고 작은 일에도 국제 석유 시장이 과잉 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공급 차질이 빚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급 상황은 고무줄 처럼 팽팽하다. 7월 세계 원유 생산량은 하루 평균 8천3백50만 배럴로 수요량보다 겨우 1백20만 배럴 많았다. 이라크 바스라나 러시아 유코스 한곳에서 생산이 전면 중단된다면 공급 부족은 현실화할 수밖에 없다.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키는 이유는 또 있다. 세계 석유 생산량의 3분의 1을 담당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완충 기능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예측이 무성해졌기 때문이다. 시장은 점점 석유수출국기구의 증산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분석에 따르면, 이라크를 뺀 10개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잉여 생산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도 증산 여력이 하루 60만 배럴로, 전체 석유 수요의 1%에도 못 미친다. 2002년 증산 여력이 하루 6백만~7백만 배럴로 수요의 8% 가량을 차지했던 석유수출국기구의 완충 능력이 크게 떨어져 있는 것이다.

더욱이 석유수출국기구는 원죄 시비에 휩싸여 있다. 지난 2~3년간 미국 달러화 약세에 따른 수입 악화에 반발해 지난 2월10일 기습적으로 감산을 단행해 의도적으로 가격을 올렸던 것이 고유가의 출발선이 되었기 때문이다. 감산 결정 이후 대규모 투기 자금이 석유 시장으로 유입되었고 베네수엘라 정정 불안이 가세하면서 유가 30달러 시대를 연 것이다.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감이 커지면 커질수록 석유 투기꾼이 발호할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다. 실제로 투기 매수세는 유가 흐름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지난 2월 석유수출국기구가 기습 감산을 결정한 이후 원유 선물 순매수 포지션이 5월 말 6만5천 계약으로 정점에 달했다가 6월 증산 결정으로 1만4천 계약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7월 말 유코스 사태가 발생하면서 최근 계약고가 5만 개로 다시 크게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현재 유가에 8~10 달러 가량의 리스크 프리미엄이 붙은 것으로 보고 있는데, 투기 세력의 발호가 이 수치를 높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심리적 저지선이라는 50달러 유가 시대가 코앞에 들이닥치면서 석유 전문가들의 논쟁 포인트는 제3차 석유 위기 가능성으로 옮아가고 있다. 이미 독일 도이치방크 아담 지멘스키 석유 전략가는 8월 초 유가 100달러 시대의 도래를 언급해 지구촌을 경악시켰다. 주요 산유국 가운데 두 곳 이상에서 어떤 이유에서든 생산이 중단되거나 차질이 빚어지면 국제 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은 ‘3차 오일 쇼크 오는가’라는 보고서를 통해 올 하반기 평균 유가가 두바이유 기준으로 40달러에 이른다면 3차 오일 쇼크를 유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아직 3차 위기가 일어날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전문가들은 매우 적다. 1·2차 석유 위기와 현재의 상황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1973~1974년 1차 석유 파동과 1978~1979년 2차 석유 파동은 각각 중동 전쟁과 이란 혁명으로 인해 원유 공급량 자체가 장기간 크게 줄어들어 일어난 것이지만, 현재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이문배 연구위원(동향분석팀장)은 석유 위기 가능성은 여전히 매우 낮다고 주장했다. 두바이유 기준 유가가 40달러에 임박해 1981년 최고치에 근접했지만, 물가를 고려한 실질 가격으로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 그친다는 것이다. 1, 2차 때와는 달리 세계 각국이 상당량의 비축유를 확보하고 있는 것도 방어막이 된다.

3차 석유 위기 발발 가능성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30달러 대의 고유가 상황이 고착화·장기화하리라는 데 이의를 다는 전문가는 별로 없다. 국제 유가가 10~15 달러 선에서 움직였던 1986~1998년은 영영 되돌아갈 수 없는 과거가 되어 버렸다. 8월16일 열린 국제유가전문가협의회 회의에서 한국석유공사 구자권 해외조사팀장은 당분간 두바이유가 35~40 달러 수준에서 등락을 거듭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석유수출국기구의 잉여 생산 능력이 하루 100만 배럴 이내로 줄어든 상황에서 러시아·베네수엘라·이라크 등의 정정 불안이 지속된다면 공급이 부족하리라는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문배 연구위원은 최근 ‘국제 유가 동향 및 전망’ 보고서에서 하반기 유가를 3단계 시나리오로 전망했다(51쪽 아래 표 참조). 최악의 시나리오는 중동 정세가 악화하고 석유 수요 증가세가 이어지는 경우인데, 이렇게 되면 올 하반기 평균 가격이 39달러로 치솟는다. 상반기보다 24%, 지난해보다 32% 오른 가격이다. 중동 정세가 부분적으로 호전되고 수요 증가도 완만한 중간급 시나리오에서의 하반기 가격 수준은 35달러. 가장 좋은 경우가 지난해보다 19% 오른 32달러로 예측된 것을 감안하면 30달러 유가 시대는 이제 피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국제에너지기구는 한술 더 떠 현재 고유가가 내년까지 지속된다고 전망했다. 분수령은 중동 정세의 향방을 가늠할 11월 미국 대선이 되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은 하루 2백20만 배럴의 원유를 소비하는 세계 6위 에너지 소비국이자 4위 에너지 수입국이다. 석유 의존도가 50% 밑으로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97%의 석유를 수입해야 한다. 총수입액 가운데 석유 수입 비중은 지난해 16.8%에 달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유가가 연평균 배럴당 5달러 오를 경우 성장률은 0.3% 포인트 낮아지고 물가는 0.5% 포인트 오르며 경상수지는 60억 달러가 줄어든다.

이미 한국 경제에 고유가 쇼크가 들이닥치고 있다. 휘발유 등 석유 제품 가격을 비롯해 항공 운임·해운 운송료·철강 등 원자재 가격이 줄줄이 오르고 있다. 원유 값이 오르면 천연 가스와 전력 등 다른 에너지 요금들도 인상 압력을 받는다. 수입·수출·생산자 물가지수 등 각종 물가 지표들도 일제히 급등하고 있어 머지 않아 소비자 물가에도 파급될 것이다. 유가 급등은 기업들의 채산성 악화를 불러 소비자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기업들은 채산성이 급격히 악화하는 시점을 두바이유 기준 36달러로 잡고 있으며 기업 운영이 불가능한 수준을 47.5달러로 보고 있다.

고유가 후폭풍이 현실화하면서 기업들은 연초 경영 계획을 전면 수정하고 있다, 정부도 올해 목표를 고쳐야 할지 모른다. 이헌재 경제 부총리는 아직 낙관론을 접지 않고 있지만, 5% 성장률에 회의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부터 유가 일일 동향을 점검했으며 올 들어 서너 차례 고유가 대책을 내놓은 산업자원부가 가장 강조하는 대책은 ‘기름 덜 쓰기’다. 가격이 오를 때 소비를 줄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것은 달리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뜻도 된다.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고유가 시대에 따른 타격을 더 크게 받는 이유는 단순히 에너지 해외 의존도가 높기 때문만은 아니다. 에너지 다소비 산업 구조를 가지고 있는 데다 에너지 효율이 낮기 때문이다.

에너지 효율을 갑자기 올릴 방법은 없다. 해외 자원 개발을 통한 원유 확보도 요원한 일이며 성공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다. 석유 등 화석 연료 고갈에 대한 근본 처방인 재생에너지 개발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사상 초유의 유가 급등 추세가 에너지 문제의 접근법을 근본적으로 달리해야 한다고 웅변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고유가 시대의 고착화·장기화가 에너지에 대한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요구하고 있다(관련 기사 참조).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