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미래’ 그것이 알고 싶다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4.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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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사마’와 ‘보아’로 대표되는 한류 열풍의 풍향은 과연 어디로 향할까? <시사저널>은 2004년 한국 대중문화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한류 열풍의 ‘통념과 실재의 간극’을 냉정하게 진단함으로써 미래지향적인 한
지난 연말 한국 연예계의 풍경은 ‘태풍의 눈’을 닮아 있었다. 일본으로, 중국으로, 동남아로 태풍처럼 몰아친 한류 광풍을 따라 스타들이 해외 원정에 나서면서 아이러니컬하게도 국내 연예계가 평정을 되찾은 것이다. 세밑 연예계는 폭풍 전야를 연상시킨다. 보아와 욘사마를 능가하는 한류 스타가 과연 2005년에 나올 수 있을까? 2004년 대한민국 최대 히트 상품, 한류에 관한 논의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한류에 대해서우리가 꼭 확인해야 하는 대목이나 한류에 관해 꼭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황이다. <시사저널>은 한류에 대한 통념과 이에 대한 실제 현실 사이의 간극을 살핌으로써 한류의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해 보았다.

한류의 풍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한류의 풍속은 얼마나 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시사저널>은 네티즌의 힘을 빌렸다. 다음카페 한류열풍사랑(cafe.daum.net/hanryulove)은 10만여 명의 ‘한류 폐인’이 모인 곳이다. 한류의 숨어 있는 1인치를 찾아 24시간 인터넷을 서핑하는 이들은 국내외 한류 관련 기사를 스크랩하는 것은 물론 현지 네티즌 반응을 살피고 전문가들의 분석을 모으고 있다. 이렇게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한류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갑론을박하며 최고의 ‘한류 싱크탱크’로 활약하고 있는 이들과 함께 한류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알아보았다.

- 한류는 일시적인 계절풍이다?

흔히 한류는 1980년대 일었던 홍콩 영화 붐에 비유되곤 한다. 이 비유에 꼭 뒤따르는 것은 한류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잦아들 것이라는 예언이다. 그러나 영화라는 장르와 10대 팬들에게 국한되었던 홍콩 영화 붐을 한류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한류는 장르의 다양성이나 팬의 규모에서 홍콩 영화 붐을 뛰어넘는다.

홍콩 영화 열풍과 달리 한류는 드라마를 중심으로 영화와 대중 음악이 삼각 편대를 이루고 있다. 이 중 영화는 한국 대중 문화의 저력을, 드라마는 저변을, 대중 음악은 파괴력을 보여주며 총체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문화를 즐기는 세대도 차이가 난다. 10대에 국한되었던 홍콩 영화 팬과 달리 한류 팬은 10대(대중 음악)와 20대(영화), 30대 이상(드라마)의 모든 세대를 아우르고 있다.

한류의 지속성과 관련해서 살펴볼 것은 바로 각국의 위성 방송 시스템이다. 미국 팝 문화가 아시아를 지배하게 된 것은 바로 텔레비전 보급 때문이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아시아인들은 자연스럽게 팝 문화에 빠져들었다. 한류와 관련해서 텔레비전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위성 방송이다.

경쟁적으로 위성 방송 시스템을 도입한 아시아 각국은 위성 방송을 채울 새로운 콘텐츠로, 저렴하면서도 팝 문화에 못지 않고 아시아인에게 친근한 한국의 대중 문화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위성 방송을 통해서 뿌리를 내린 한류는 이제 한류 콘텐츠를 보기 위해 위성 방송 가입자가 늘기 시작하면서 역으로 위성 방송이 안착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 한류는 아시아의 지역풍이다?

한류는 처음 동북 3성을 중심으로 한 중화권에서 형성되었다. 이후 타이완과 태국을 거쳐 동남아에 전파되었고 2004년 일본 열도에 상륙하면서 안정 단계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한류는 아시아를 벗어나면 미풍이 된다. 기본적으로 ‘아시아적 감수성’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를 벗어나면 ‘문화 할인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류는 조금씩 그 영향권을 넓히고 있다. 드라마 <올인>이 중세 동서 교역료였던 초원길을 따라 몽골과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우크라이나에까지 전파되었고, 내년에는 마케도니아·알바니아에까지 전파될 예정이다. 드라마 <가을동화>는 또 하나의 동서 교역료인 바닷길을 따라 태국·베트남을 넘어 필리핀·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에까지 전해졌다.

특히 이슬람 문화권에 속하는 말레이시아에 한류가 진출한 것은 큰 의미를 갖는데, 이는 한류가 이슬람 문화권에도 통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리랑TV 김태정 영상물수출지원센터장은 “이라크에서 e메일이 왔다. 미군 공습 때문에 드라마 방영 시간을 놓쳤는데 재방송 시간이 언제냐고 묻는 e메일이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가을동화>는 이집트에서도 방영되어 호평을 받았다. 2005년에는 아프리카에서도 한류가 예고되고 있다. MBC 프로덕션 박재복 국제사업부장은 “<겨울연가> <불새> <호텔리어> 같은 드라마가 가나에 판매되었다. 한류의 외연이 생각보다 빨리 넓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별은 내 가슴에>와 <이브의 모든 것>이 멕시코에서 성공적으로 방영된 후, 히스패닉 문화권에서도 한류가 발화하고 있는데, 주목할 만한 것은 미국 본토의 반응이다. 시카고 등지에서는 <무인시대>와 <대장금>의 백인 팬클럽이 만들어지는 등 아시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류 수요층이 형성되고 있다. 미주 한국일보의 이의헌 기자는 “‘파란 눈의 한류’도 맹아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동방신기가 LA에서 공연했는데 많은 미국 여대생들이 그들을 보기 위해 멀리서 날아왔다”라고 말했다.

- 한국 대중문화는 일본의 아류다?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이다. 일부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의 경우 아직까지도 일본 프로그램을 파렴치할 정도로 모방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시장 규모가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인 일본의 엔터테인먼트 산업 수준은 아시아 최고다. 그런데 흥미로운 현상은 유럽 문화가 미국이라는 필터를 통해 세계에 전해지듯 일본 대중 문화 역시 한국을 거쳐 아시아에 전해진다는 사실이다.

최근 들어서는 한국과 일본 간에 대중 문화 역전 현상이 일어나는 것도 발견할 수 있다. <겨울연가>의 성공으로 일본에서는 한국 드라마와 같은 순정 멜로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이 붐을 일으키고 있다. <올드 보이> <내 머릿속의 지우개> 등이 일본 콘텐츠를 원작으로 제작되어 원작의 10배가 넘는 판권료를 받고 되팔린 것은 한국의 콘텐츠 제작 능력이 일본을 뛰어넘었음을 방증한다.

스타 모형 역시, 그동안 한국은 일본을 모방해 왔다. H.O.T와 S.E.S는 일본 미소년 미소녀 아이돌 그룹을 따라 했고, 원빈은 기무라 다쿠야를, 이효리는 아무로 나미에 스타일을 모방했다. 그러나 단순한 모방을 벗어나 한국의 스타들은 일본 스타에게는 없는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며 아시아의 스타로 떠오르고 있다.

왜 일본 스타는 국내 스타로 그치는 반면, 한국 스타는 아시아의 스타로 떠오르는 것일까? 이에 대해 한서대 얼굴연구소 조용진 소장은 색다른 분석을 내놓는다. 일본 스타가 세기말적 미남미녀인 데 반해 한국 스타는 세기 초에 선호되는 미남미녀라는 것이다. 조소장은 “어느 시대건 세기 말에는 병든 것 같은, 우수에 젖은 얼굴이 선호된다. 반면 세기 초에는 밝고 활기찬 얼굴이 선호된다”라고 말했다.
- 한류로 실제 돈 번 사람은 일본인들이다?

한류에 대한 비난 중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한류가 실제로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겨울연가>의 경우도 이 드라마를 통해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개선되는 효과가 있었지만 실제 돈을 번 쪽은 일본이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이는 일면 맞는 부분이 있지만 간과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바로 최종 수혜자가 한국이 된다는 사실이다.

일단 일본이 돈을 벌었기 때문에 한류에 대한 역풍이 적었다. 특히 NHK를 비롯한 방송사와 스포츠 신문 등 주류 미디어들이 한류를 통해 돈을 벌면서 역풍을 잠재웠다. <겨울연가>와 욘사마의 성공 모형이 생기자, 제2의 <겨울연가>, 제2의 욘사마를 발굴하기 위해 다른 한국 드라마와 한국 스타에도 관심을 많이 보이게 된 점이 의미가 크다.

일본 언론의 도움으로 많은 한국 스타들이 아시아급 스타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4월 배용준의 일본 방문을 즈음해서 일본 언론은 이병헌·원빈·장동건을 배용준과 함께 ‘한류 4대 천황’으로 지목하며 배용준급의 스타로 띄워 주었다. 11월 방문에 즈음해서는 비와 권상우 류시원 박용하 최지우 전지현 이영애 김희선을 아시아급 스타로 띄워주었다. 일본 언론의 도움으로 한국 스타들은 아시아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선점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에서 불고 있는 <겨울연가> 열풍을 평가절하하는 이유 중 가장 많이 제기되는 것은 <겨울연가>의 팬들이 문화 주도층인 10~20대가 아니라 40~50대 아줌마여서 값어치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일본 대중 문화에서 <겨울연가>가 갖는 의미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생긴 오해이다.

- 한류 팬은 아줌마들이어서 가치가 없다?

독립된 그들만의 문화를 누리지 못하고 10~20대 문화를 따라 했던 40~50대 아줌마들이 <겨울연가>를 통해서 자신들만의 문화를 갖게 되었다. 한류 전도사를 자청하며 각종 한류 관련 특집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아나운서 다시로 지카요 씨는 “40~50대는 인생을 살 만큼 산 사람들이다. 원숙한 인격을 가진 그들이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은 한국 드라마의 정서가 그만큼 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일본 대중문화산업 종사자들이 <겨울연가>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40~50대 틈새 시장을 키워냈다는 점이다. 단순히 틈새 시장을 공략한 것을 넘어 이 시장을 10~20대 주류 시장 못지 않게 키웠다는 점을 이들은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일본 음악산업문화진흥재단 마사키 세키 전무이사는 “일본 내에서 2005년의 한류 시장 규모는 지난해의 10배가 될 것이다. 40~50대 아줌마는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10대 아이들의 코 묻은 돈과는 다르다”라고 분석했다.

- 정부 지원은 약인가, 독인가?

한류와 관련해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요구 사항 중의 하나는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정부의 지원은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다. 그룹 베이비복스를 아시아 스타로 키운 DR기획 윤등룡 대표는 “정부가 적극 나서는 것에 대해 상대 국가가 불쾌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정부의 지원은 신중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지원에 대해 한류의 최전선에 서 있는 대중 문화 종사자들의 평가는 냉혹하다. 정부가 나서야 할 때는 숨고, 나서지 말아야 할 때는 얼굴을 들이밀고,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으면서 쓸데없는 일에는 팔을 걷어붙인다는 것이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해외에서 콘서트를 하면 현지 대사관에서 공짜표를 100장씩 요구한다. 돕지는 못하고 짐만 되고 있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부의 역할과 관련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문화 교류를 통해 일방적인 한류를 보완하는 것이다. 일방적인 한류에 대해서 각국 정부의 불만이 높기 때문이다. 아시아문화산업교류재단 신현택 이사장은 “문화 교류는 시장 원리에만 맡겨 놓아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정부가 지원해서 적극적으로 불러들여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한류열풍사랑’ 카페의 ‘한류 폐인’들이 한류만큼 관심을 기울이는 것들이 있다. 바로 한국어의 우수성을 비롯해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찾는 일이다. 한류 폐인들은 한국인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한국 문화의 우수함에 대해 다양한 분석을 내놓는다. 카페 운영자 ‘한류황파’씨는 “한류의 가장 큰 의미는 우리 안의 능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한류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감을 갖게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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