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 된 ‘범인들의 적’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5.01.1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20년간 범죄 현장 누빈 ‘진짜 형사 5인’의 종횡무진 활약상
형사는 많다. 1년에 강도 한 명 못 잡는 형사도 많다. 반면 1년에 수십 명을 검거하는 형사도 많다. 어떤 형사든 훈장 같은 흉터 한두 개씩은 품고 산다. 이들에게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다.
<시사저널>은 사명감으로 무장한 채 ‘전공’을 늘리며 종횡무진 현장을 누비는 형사 다섯 사람을 만났다. 이들은 짧게는 십수 년, 길게는 20여 년을 비바람 불고 눈보라 치는 현장에서 청춘을 보낸, 진짜 형사들 가운데 눈에 띈 일부다.


소매치기범 ‘저승사자’ 황규인 경위

전국의 소매치기범들이 퇴직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서울 마포경찰서 강력6팀장 황규인 경위다. 1976년 경찰에 들어가 1981년 강력반 형사로 발탁된 그는 24년간 ‘소매치기범 검거 전문 형사’로서 외길을 걸어왔다. 그가 가는 경찰서마다 소매치기 사건이 현저히 줄어든 데는 소매치기범들 사이에 소문 나 있는 그의 이름값이 한몫을 했다.

황경위가 지금까지 잡아넣은 소매치기범은 한 팀이 5~8명으로 이루어지는 조직만 10개에 이르고, 일반 소매치기범은 수백 명이 넘는다. 1991년 경찰청 특수수사과도 손을 놓고 있던 시멘트 매점매석 사건을 해결해 경사로 특진했고, 1998년 소매치기 조직을 검거해 경위로 특진했다.

황경위는 ‘미행의 대가’이기도 하다. 소매치기 조직 검거 여부는 미행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소매치기범들의 특성상 서로의 거처를 모르고 순간적으로 모여 ‘일’을 처리한 뒤 다시 흩어지기 때문에 오랫동안 차량·망원렌즈를 이용해 미행하며 증거를 확보하고, 은밀하게 피해자를 조사하는 일이 그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위장해 미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평상복을 입은 상태에서 소매치기범들의 시선을 피하는 능력이 있어야 고난도 미행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황경위는 2~3명이, 특정 시간에, 카드 비밀번호를 읽어내는 기술자를 끼고 범행하는 것이 최근 소매치기 범죄의 특성이라고 귀띔했다.탈주범 ‘애인 전담’ 박미옥 경위

부산교도소에서 만난 탈주범 신창원이 머리 숙여 인사한 형사, 전국 여자 경찰관들이 가장 만나고 싶은 선배로 꼽은 형사. 그가 서울 양천경찰서 강력5팀 팀장 박미옥 경위다. 공인 무도 자격증은 유도 1단·검도 1단이지만, 권투와 달리기로 몸을 단련하는 그녀는 누구보다 실전에 강한 베테랑이다. 형사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앞장서서 입증해 보이는 그녀는 1999년 10월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주는 ‘남녀평등 경찰상’을 받는 등 주목되는 스타 형사다.

1987년 경찰에 들어간 그녀는 1991년 서울지방경찰청 강력계에 여자기동수사반이 뜨면서 형사가 되었는데, 당시 여자기동대원 20명 가운데 지금까지 유일하게 살아 남은 ‘전설적인 여성 형사’다. 25세 때 ‘180일 작전’ 실적우수자로 뽑혀 경장으로 특진했고, 29세때는 부녀자 인질 강도를 검거해 경사로, 33세 때는 광주 동부지원 탈주범을 잡아 경위로 특진했다. 남자 형사들도 하기 힘든 연속 특진에 의한 고속 승진이다.

동료들은 우스갯소리로 박경위를 ‘애인 전담’이라고 부른다. 신창원 사건을 비롯한 각종 탈주범 사건 때 그녀가 탈주범들의 애인을 전담해 수사했기 때문이다. 신창원 사건 때 하루 2백~3백km를 뛰느라고 지쳐서 입이 돌아간 상태에서도 20여 일을 신씨 애인과 지내며 ‘신창원의 모든 것’을 캐냈다. 박경위는 어떤 형사가 되고 싶으냐는 물음에 “현장에서 변수를 책임져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멋진 답을 내놓았다.조폭박사 안흥진 경위

조직 폭력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경찰 치고 서울 송파경찰서 민원실장 안흥진 경위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오죽하면 안경위에게 ‘조폭박사’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1976년 경찰에 투신한 안경위는 1980년 중부경찰서 강력반에 근무할 때 명동 일대를 무대로 활약했던 신상사파 등 4개 조직을 검거하며 본격적으로 조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94년에 이미 조폭 검거 실적 1위에 다섯 차례나 오른 그가 지금까지 검거한 조폭은 30여 조직, 5백여 명에 이른다.

안경위가 조폭박사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 것은 그가 현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자료로 남기는 데 앞장섰기 때문이다. 그는 <조직폭력의 실체> <서울 윤락가 폭력조직 근절 대책> <한국 조직폭력의 실태 및 효과적인 대처 방안> 등 책을 세 권 냈다. 이 가운데 1999년에 낸 <조직폭력의 실체>는 당시 존재하던 조직폭력배 2백여파, 5천여명의 이름이 실명으로 기록되어 있어 사료 가치도 크다. 대외비인 이 책은 검·경이 조폭 관련 수사를 할 때면 참고하는 필수 도서이다.

2001년 당뇨와 고혈압으로 쓰러져 2개월 동안 경찰병원 신세를 진 후유증 때문에 민원실에 근무하는 안경위는 머지 않아 다시 ‘현장’으로 갈 계획이다. 개인적으로 조폭 보스들을 거의 다 알고 있다는 그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청송교도소 대부 장영권 경사

별명 빠삐용, 전공 청송교도소.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강력팀에 근무하는 장영권 경사는 경찰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청송교도소 전문가다. 1992년부터 지금까지 강력반에서만 근무해 온 그는 1996년부터 청송교도소 출신들이 저지르는 사건을 수사하는 데 전념했다. 서울에서 왕복 열두 시간이 걸리는 청송교도소를 오가며 재소자들에게 영치금과 옷을 넣어주고 인간적으로 대화하면서 친분을 쌓았다. 출소자들에게는 보증을 서주면서 취업을 도왔고, 사회에 적응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그가 “청송교도소에서 1천명이 출소하면 8백명은 꿰차고 있다”라고 큰소리칠 수 있게 되기까지에는 이런 노력이 있었다. 하나를 주면 열로 갚는 사람들이 청송 사람들이라는 깨달음, ‘청송의 대부’라는 별명도 이런 과정에서 얻었다. 범행 수법이나 범행에 사용한 복면·칼을 보고 ‘청송 출신 누구’라고 짚어낼 수 있는 사람은 경찰에 그말고는 없다. 지난해 광역수사대가 담당한 ‘매스컴 사건’(사회에 파장이 커 언론이 크게 보도한 사건) 15건 가운데 5건에 그의 손때가 묻었다는 것은 ‘청송’에 대한 장경사의 정보력과 수사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준다.

5년간 유도 라이트급(71kg) 국가대표를 지낸 장경사는 검도·태권도·합기도를 합쳐 17단에 이르는 무술의 달인이다. 그는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평생 형사의 길을 걸을 것이다”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변두리 전문’ 박재동 경위

서울 노원경찰서 강력1팀장 박재동 경위는 스스로를 ‘변두리 형사’라고 불렀다. 1978년 순경으로 경찰에 들어가 1981년 북부경찰서 형사가 된 뒤 지금껏 북부·노원·도봉 경찰서에서만 24년을 근무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지역과 관련된 암수 범죄(숨어 있던 범죄)나 달건이(건달을 지칭하는 형사들의 은어)들 정보는 앉아 있어도 다 들어온다”라고 말했다.

‘변두리 형사’의 활약은 뛰어났다. 전국에서 한 해에 특진하는 인원이 10명도 안될 때인 1993년, 그는 떼강도 8명을 검거한 공로를 인정받아 경사로 특진했다. 2000년에는 손님을 가장해 노래방에 들어가 강도·강간을 한 떼강도 6명을 잡아 경위로 특진했다. 2001년 전국 최초로 자살 사이트를 적발한 사건, 2003년 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되었던 아들을 진범을 잡아 풀려나게 한 사건도 그의 작품이다. 그가 이끄는 강력1팀은 지난해 수배자를 7명 검거했고, 강도 사건을 10건 해결했다. 그가 평생을 ‘변두리 형사’로 보내면서도 자부심을 갖고 큰소리 치며 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박경위는 “은퇴하는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한 진정한 형사였다고 후배들에게 기억되고 싶다”라고 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