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통상부 비판한 이장춘 대사 단독 인터뷰
  • 崔寧宰 기자 ()
  • 승인 2000.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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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비판해 도중 하차한 이장춘 본부대사/“통상 기능 겸한 것은 큰 실책”
“외교부는 국내 정치기관이며 국제 정보기관이다. 이것만 해도 잘하기가 힘든데 통상 기능을 가져와 무리를 저질렀다. 한국은 통상장관을 없앤 꼴이다. 남이 잘하고 있던 것을 뺏어와서 남도 못하게 하고 자기도 못하고, 이런 훼방이 어디 있는가.”

이장춘 외교통상부 본부대사는 2월10일자 <문화일보>에 외교통상부 인사와 조직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글을 기고해 정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는 바로 그날 사표를 냈고 외교부는 개혁안을 만들고 있다. <시사저널>은 사태가 일어난 지 이틀 뒤인 2월12일 오전, 외교안보연구원에서 이대사와 단독으로 인터뷰했다.


외교통상부 인사와 조직을 정면 비판한 <문화일보> 기고문 이후 파장이 크게 일어났다. 지금 심정이 어떤가?

나는 정년 3년 반을 남겨 놓고 물러난다. 외무공무원법으로 신분이 보장되어 있는데, 보직을 주지 않아 그렇다. 경남 마산 출신이어서 새 정부 출범 이후 외교통상부 조직 안에서 ‘왕따’당했다. 경상도 출신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되었겠는가. 나는 평생 나라를 대표해서 대한민국 국기를 달고 다닌 사람이다. 명예롭게 은퇴하는 것은 모든 외교관의 희망이다. 직업 군인과 직업 외교관을 팽해서는 안된다.


그만두고 나면 무엇을 할 것인가? 출마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었는데?

천만부당한 말이다. 우리나라도 전문 직업의 위신과 권위를 살릴 줄 알아야 한다. 벼슬은 대사만으로 충분하다. 내 나이가 육십인데 초선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나는 3월 초부터 경희대 아태국제대학원에 국제법외교학 교수로 나가게 되어 있다.


새 정부가 외교 장관을 너무 자주 갈아치운다고 비판했는데?

외교부는 대통령 직속 부대나 마찬가지며, 대통령의 외교통수권을 보좌하는 기관이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지 1년10개월도 안되는 기간에 장관을 세 번이나 바꾸고 공관장을 이렇게 바꾸는 것은 말도 안되는 행위이다. 얼마 전 어느 주한 외국대사가 나에게 한국이 지난 5년 동안 외무장관을 여섯 번이나 바꾸었다고 빈정거렸다. 독일을 보더라도 통일을 이루기까지 겐셔 외무장관이 18년 동안이나 재직했다.


현재의 외교통상부는 무엇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보는가?

통상 기능을 갖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한국은 나라도 크고 분단 국가라는 특수 상황을 안고 있다. 이렇게 정치·안보 이슈가 산적해 있는데 사소한 대외 경제 업무까지 다 할 수는 없다. 일본 외무성에도 통상 기능은 없다. 미국 국무부도, 중국 외교부도 마찬가지다. 외교부가 통상 기능을 하는 곳은 정치·안보 이슈가 없는 태평스런 나라거나, 아주 작은 나라, 내각제를 하는 몇몇 나라뿐이다.


외교부가 통상과 전혀 무관하다는 말인가?

외교부는 정치·경제·문화 등 대외적인 국가 기능 전체를 다 맡고 있다. 말하자면 소매 기관이 아니라 도매 기관이란 말이다. 통상도 세계 무역 제도라는 큰 테두리로 접근할 일은 외교부 관심 사항이다. 그러나 무역과 투자 및 금융 거래 업무는 외교부가 맡을 사안이 아니다. 외교부 출신인 내가 외교부 기능이 늘어나는 것을 무작정 반대하겠는가.


외교부가 통상 기능을 겸하면 어떤 부작용이 있는가?

외교부가 통상 기능을 가져오면서 한국은 통상 장관을 없애 버린 꼴이 되어 버렸다. 현재 한덕수 통상교섭본부장은 전 통산부 차관 출신이기 때문에 무난히 일을 꾸리고 있다. 그런데 그가 일본에 가면 통상산업대신의 상대가 될 수도 없고 중국에 가더라도 카운터 파트가 없다. 국내에서도 내각 멤버가 아니다. 에이펙(APEC) 회의에 참석하더라도 각료 대우를 못받는다. 남이 잘하고 있던 것을 뺏어와서 남도 못하게 하고 자기도 못하고. 이런 훼방이 어디 있는가.


너무 부작용만 강조하고 효율적인 측면은 보지 않는 것 아닌가?

외국에서 수출을 진흥하는 평소의 통상 업무는 대기업 상사들이 다 알아서 한다. 대사관 직원들이 통상 업무를 다 알려고 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물론 재외 공관이 나설 때도 있다. 정부 차원 교섭이 필요한 무역 분규가 있을 때는 대사관이 직접 나선다. 그러나 평소에 대사관이 수출을 조절하는 것은 아니다.


외교부 인사 제도와 관련해 외무공무원법을 공격했는데, 원래 그 법을 만드는 데 관여하지 않았는가?

그 말은 말도 안되는 날조이고 모략이다. 나는 당시 강력히 반대했다. 군대도 소위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별을 달지 못한다. 장교·경찰·판검사 같은 전문직 공무원법은 곁에서 끼어드는 것을 막는 측방입문(Lateral Entry) 금지 원칙이 핵심이다. 그런데 외교부는 언제든지 끼어드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그렇게 해놓고 정년 제도를 까다롭게 도입하여 직업 외교관을 괴롭히고 있다. 이런 법은 만들 필요도 없고, 세계에서 유례도 없다.


미국 같은 나라는 학자나 민간 전문가를 외교 인력으로 활용하는 예가 있지 않은가?

그것은 바람직스런 일이다. 우리 외교부에도 직업 외교관 이외에 일반직 공무원이 일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해외에서 근무하지 않고 국내에서 전문직으로 봉사할 분야는 너무나 많다. 그러나 직업 외교관 제도를 두는 이상 해외 근무(the foreign service)를 하는 집단의 신분은 따로 보장해야 한다.


외교 인력이 많다는 것을 굳이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일본을 보라. 일본은 외무성의 역사가 1백31년인데도 정규 외교관 숫자가 8백50명 남짓하다. 한국은 이보다 훨씬 더 많다. 또 인터넷과 통신이 발달하면서 직업 외교관의 기능이 양적으로 많이 축소되었다. 현재 한국 외교부에는 인력 거품이 많다. 이는 냉전이 끝나고 공산권 수교라는 횡재를 만나 보직이 많이 늘어난 탓이다. 신규 채용 규모를 계획도 없이 한 해에 50명씩 4년간 2백명을 모집한 적도 있다. 사람이 많으니까 전근이 잦을 수밖에 없다. 좋은 보직을 많은 사람이 갈라 먹다 보니 자주 바꿀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탈북자 7인 송환 사태에서도 나타났듯이 중국·러시아와의 외교 분야는 인력이 오히려 모자라지 않는가?

북방 정책에 따라 외교 조직에도 큰 변화가 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중국과 수교하기 전인 1970년대 초에도 중국 담당과가 하나였고 지금도 하나이다. 러시아 관련 업무가 늘어나면 당연히 이를 조직에 반영해야 한다. 그리고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나 다름없는 부서의 인력과 조직을 그대로 두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외교부에 다른 문제점은 없는가?

인사와 조직 문제는 어디에도 있다. 정부 구조 조정은 단순히 교수들의 상아탑적인 지식을 벗어나 실무 경험이라는 임상적 바탕에서 진행했어야 했다. 외교부는 국제 정보 기능을 확충해야 한다. 외교부는 이를 전담할 과도 없는 실정이다. 기껏 있는 것이 법정 기관도 아닌 정보상황실이다. 견줄 바가 아니지만 미국 국무부에는 외교관도 아닌 지역별·분야별 정세 분석 전문가가 4백명 정도나 된다.


국정원이 있지 않은가?

초각료급의 정보기관장과 국가안전보장회의 등은 미국에만 있는 제도이다. 거기에 분단 국가인 한국에는 통일부가 있다. 그리고 많은 경제부처가 대외 관계에 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교부가 총괄적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면 누가 하겠는가. 대통령은 효율적인 조직의 보좌를 받아야 한다. 이 점에서 외교부말고 어느 다른 기관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현재의 국정원은 규모를 더욱 줄여야 한다.


평소에도 외교부 내에서 튀는 소리를 많이 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정부의 대북 외교를 가끔 비판해서 그런 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1993년 3월 북한이 핵확산방지조약(NPT)에서 탈퇴하겠다고 통보했을 때 당시 김영삼 정부가 북한을 잘 다루지 못한다는 글을 언론에 기고해 소동을 빚기도 했다. 러시아에 수교 대금 10억 달러를 현금으로 지급하는 어리석은 짓도 비판했다. 대북 경수로 사업에 ‘조용히’말려든 것도 문제삼았다. 외교는 국익 관점에서 지혜를 짜내며 프로세스를 거쳐야만 하는 종합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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