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과 불운''에 운 탈주범 신창원
  • 순천·羅權一 광주 주재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1999.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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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잘못 선택, 도피 생활로 지쳐 난동 못 부려

탈옥수 신창원이 7월16일 경찰에 붙잡혀 그가 탈옥한 부산교도소에 재수감되었다. 신창원은 2년6개월 동안 도망다니면서 5억4천만원을 훔친 것으로 드러났고, 서울 청담동에 사는 한 예식장업자 집에 침입해 심야 인질극을 벌이며 2억9천만원을 뜯어낼 정도로 대담했다. 그러나 그의 ‘범행 리스트’에는 아직도 채워야 할 빈칸이 많다.

탈옥수 신창원이 2005년 12월17일 오후 부산교도소에서 열린 탈출과정 현장검증에서 쇠톱을 구하는 장면을 재현하는 모습 ⓒ 연합뉴스
탈옥수 신창원이 2005년 12월17일 오후 부산교도소에서 열린 탈출과정 현장검증에서 쇠톱을 구하는 장면을 재현하는 모습 ⓒ 연합뉴스

또 ‘내가 신창원이다’라고 이름을 밝혔는데도 그를 도와주거나 동거한 여자가 14명이나 되었고, 그를 ‘의적’으로 미화하는 사회 분위기마저 있었을 정도로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다. 그를 체포하는 데 실패하거나 도주를 막지 못해 ‘물 먹은’ 경찰관도 수십 명에 이른다.

부산교도소에 재수감된 뒤, 검찰과 경찰의 합동 수사 결과 신창원은 3년 동안 치밀하게 준비한 끝에 탈옥을 감행해 영화 <쇼생크 탈출>을 연상시켰다. 즉 하루 20분씩 3개월 동안 쇠톱으로 환풍구 쇠창살을 잘랐고, 식사량을 줄이며 체중을 조절한 끝에 15㎏을 감량해 화장실 환풍구를 빠져나갔다. 웬만한 집념과 끈기 없이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훔친 돈으로 인심을 쓰고, 자신의 일기장을 통해 ‘부잣집만을 털고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는 신화를 만들어내며 ‘성공한 탈옥수’를 꿈꾼 신창원은, 그러나 한 시민의 제보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제압하자 ‘허무하게’ 무너졌다.

신창원이 전남 순천에서 붙잡힌 데는 정확한 제보와 신속한 경찰의 대처가 일등공신 노릇을 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도피 생활에 지친 신창원 본인의 방심도 상당히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신창원은 6월1일 천안에서 경찰의 포위망을 벗어난 뒤 남원·논산 지역에 은거하며 한동안 자신을 숨겨줄 여인을 물색했다.

이번에 범인 은닉죄로 구속된 마지막 동거녀 김 아무개씨(26)를 만난 곳은 지난 6월25일 새벽 1시께 충남 논산에 있는 단란주점이다. 평소 간과 위가 나빠 술을 마시지 않아 다방 여종업원을 선호하던 그로서는 이례적인 선택이었다(신창원은 소주는 입에 대지 않고 맥주도 1병을 다 비우지 못한다).

단란주점에서 김씨와 함께 술을 마신 신창원은 다음날 점심을 같이 하자며 김씨를 만나 자신이 신창원이라고 밝힌 뒤 가방 안에 있는 돈을 보여주며 함께 살자고 제의했다. 김씨가 자기 고향인 순천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자 충남 번호판인 쏘나타 승용차를 타고 국도를 거쳐 함께 순천으로 잠입한 것은 6월27일.

이틀 뒤인 29일, 마침 분양공고를 내걸고 있던 ‘금당지구 대주 파크빌 모델 하우스’를 발견한 김씨는 분양가 8천55만원인 29평형 아파트를 분양받은 뒤 7월1일 입주했다. 이 아파트는 신창원이 도피 중 구입한 아파트 가운데 가장 고급인데다 가격도 제일 높다. 때문에 신창원이 불규칙한 식사와 도피로 쇠약해진 몸을 추스르기 위해 상당 기간 김씨와 함께 살며 은신할 생각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2중 현관문에 갇힌 신창원

실제 신창원이 살던 이 아파트 안에서는 신혼 가정에서처럼 고급 가구와 전자 제품, 러닝머신·아령·역기 등 운동 기구와 보약 봉지가 여럿 발견되었다.

신창원이 김씨와 함께 살았던 대주 파크빌 104동은 아파트 단지 맨 뒤편에 위치해 있으며, 2m 높이 담장과 24m 도로로 통하는 작은 출입구가 있다. 신창원은 대개 2층이나 3층 등 도주하기 쉬운 층을 선호했는데 이 아파트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신창원이 살던 205호는 104동의 오른쪽 끝으로, 담장 출입구와 인접해 있다. 2m 높이 담장을 뛰어넘는 것은 신창원으로서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 신창원은 또 경찰의 추적에 대비해 쏘나타 승용차를 담장 출입구 부근 도로 한쪽에 주차해 두고 언제든지 도망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신창원은 만약 경찰이 현관과 베란다 양쪽으로 동시에 진입할 경우 베란다가 인적이 많은 아파트 단지 정문 쪽을 향해 있어 차라리 현관 쪽의 경찰을 밀치고 계단을 뛰어내려 담장을 넘어 도주하는 것이 수월하다. 그런데 일반 아파트와 달리 대주 파크빌은 ‘도둑 방지’를 위해 현관문이 2개인 이중문 구조였다. 따라서 아무리 타고난 체력과 운동으로 단련된 신창원일지라도 탈출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신창원으로서는 불리한 입지 조건이었지만 이미 계약금을 지불하고 입주했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도둑 방지’를 위해 만들어진 2중 현관문이 희대의 도둑 신창원으로 하여금 도망을 포기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신창원의 두 번째 불운은 제보자가 너무나 ‘노련한’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7월16일 신창원을 신고한 김영근씨(29)는 군대 시절 정보부대에서 근무한 경력 덕택에 사람을 식별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김씨는 휴대폰으로 서울 경찰청 112에 신고한 뒤 즉시 분양 사무소를 찾아가 ‘혹시 사람을 잘못 보았는지’ 계약자 명단까지 확인했다. 신창원이 자기 이름으로 계약하지 않고, 동거녀 김씨 이름으로 기재한 것을 확인할 정도로 치밀했다.

 

‘신창원 증후군’ 오래갈 듯

김씨는 신창원의 특징이랄 수 있는 운동 기구와 애완견(마르티스종) 똘이, 튀어나온 광대뼈, 그리고 ‘서로 말이 없고 어색한 신혼 부부’라는 분위기를 감지했다.

신창원의 ‘불운’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신창원을 검거한 순천경찰서(서장 정병률)는 공교롭게도 이날 11시20분께 1주일에 1회씩 하는 ‘신창원 검거 훈련’을 실시했다. 경찰 1백50명이 ‘순천 조례 저수지에서 낚시하는 신창원을 봤다는 제보를 받고 출동해 검거하는 가상 훈련’은 성공적이었다.

1년 가까이 훈련을 통해 실전 감각을 익힌 순천경찰서 소속 경찰들은 ‘실제 상황’에서도 빈틈없이 대처했다. 순천경찰서가 경찰 병력 70명을 권총과 M16 소총으로 중무장시키고, 치밀한 작전회의를 거쳐 계단과 현관문에 4명, 베란다에 강력반 형사 3명을 배치한 것은 7월16일 오후 4시50분께.

가스관을 타고 방충망을 뜯은 뒤 베란다로 진입한 이만근 경사와 정종인·김광원 경장이 거실로 들어가 안방에서 나오는 신창원과 맞닥뜨린 후 권총을 들이대고 엎어치기로 신창원을 소파에 넘어뜨리자 신창원은 과거와 달리 저항을 포기했다.

이만근 경사는 “동료들과 함께 수갑을 채운 뒤 문신을 확인하려 하자 ‘내가 신창원이다’라고 자백했다. 왜 저항하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간이 안 좋다. 몸이 안 좋다’고 말했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경사는 “도망가기에는 몸이 좋지 않은데다 권총을 들이대니까 저항을 포기한 것 같다. 수갑을 채운 뒤 신창원이 ‘담배 하나 달라’고 했으나 자해할 염려가 있어 주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신창원 검거는 제보자의 신고와 경찰의 작전이 효과를 발휘한 결과였다. 그러나 그가 지난 2년 6개월 동안 도피한 행적과 검거될 때의 정황을 비교할 때 오랜 도피 생활에 지친 신창원 본인의 실수와 방심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신창원은 <창작과 비평>을 읽고, <딴지일보>를 뒤적여 가며 ‘수백·수천을 살해한 자들은 떵떵거리며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라고 일기장에 울분을 토했다. 이는 어쩌면 ‘범죄 행위는 밉지만 인간적으로 불쌍하다’는 동정 여론을 얻으려는 계산이었는지 모른다. 아무튼 신창원의 탈주 행각은 종말을 고했지만 왜곡된 사회 구조가 온존하는 한 ‘신창원 현상’은 상당 기간 사람들의 입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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